- 전국 산림이 ‘펜션’ 몸살을 앓고 있다.
- 깊은 계곡자락에도, 상수원보호구역에도, 바닷가 갯벌 위에도 유럽형 고급민박시설인 펜션(Pension)이 거침없이 들어서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경기도 가평군의 펜션 단지 신축 현장.
산자락 깎아내고 택지 분양
중미산으로 향하는 길가에 나붙은 ‘○○펜션’의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언덕을 올랐다. 구불구불한 좁은 길을 따라 100m 정도 오르니 눈 덮인 산자락과 대비되어 황토색이 더욱 선명히 드러나는 널찍한 공터가 펼쳐진다. 시골마을 하나쯤은 족히 들어설 만큼 넓은 땅에는 유럽풍 주택 두어 채가 서 있고, 한 채의 목조 주택이 한창 건설중이다. 아직 조경(造景)이 끝나지 않은 어수선한 정원에는 서울 번호판을 단 승용차 대여섯 대가 북적거린다. 가족끼리 놀러왔다는 펜션 투숙객들은 아침식사를 마친 후 등산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여기 살면서 펜션 두 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과 무척 가까워서 입지 조건이 좋은 편이죠. 펜션 바로 옆에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고 유명산과 중미산 휴양림과도 가깝고…. 중미산천문대에는 하루 200여명이 놀러오는데, 아이들 데리고 온 김에 펜션에서 하룻밤 묵고 가는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아요. 주말에 이용하려면 한두 달 전에 예약해야 합니다.”
이 펜션의 주인 A씨에 따르면 2~3년 전만 해도 이곳은 중미산 산자락의 일부였다. 그러나 전원주택과 펜션 입지로 개발하기 위해 산을 깎았고, 최근 택지 분양이 끝났다고 한다. 분양받은 이들은 대부분 외지인으로, 이곳에 전원주택과 펜션을 지을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2~3년 전만 해도 평당 25만원 하던 땅값이 지금은 50만~100만원까지 올랐다”면서 “땅을 되팔아 차익을 크게 남긴 사람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경기도 양평, 남양주, 광주 등 팔당상수원 일대가 최근 ‘펜션’ 열풍에 시달리고 있다. 그중 북한강을 끼고 있는 양평은 산자락뿐 아니라 강변에서도 대규모 펜션단지 개발이 한창이다. 강변 곳곳에는 ‘전원주택·펜션 분양 상담 환영’ ‘펜션단지 현장사무소 500m’ 등의 현수막이 나부낀다. 강 건너 남양주의 러브호텔과 양평의 유럽풍 펜션이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꼴이다.
북한강변의 ‘△△펜션단지’는 일요일인 데도 덤프트럭과 굴착기 등이 동원되어 공사가 한창이다.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산 XX번지, 산지전용허가지, 허가면적 5479㎡, 일반주택 부지조성’이라는 공사개요 설명판만이 이곳이 예전에 수려한 산림지역이었음을 말해준다.
인근의 또 다른 펜션단지는 “4억7000만원을 투자해 200평 대지에 60평 짜리 펜션을 신축할 경우 객실가동률이 70%만 되어도 연간 20.3%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향후 객실 이용률 및 부동산 상승률이 최고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투자가치가 최상급”이라는 것.
1~2년 전부터 양평 등 팔당상수원 일대에 숙박시설인 펜션이 빠른 속도로 들어서고 있지만,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는 상태. 일반주택 용도로 건축허가를 받아 건설한 뒤 민박형태로 숙박 영업을 하고 있어 펜션 업주들은 따로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각 지방자치단체의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
한강유역환경청이 지난해 가을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양평에 33개, 가평에 10개, 여주에 12개의 펜션이 영업중이다. 한강유역환경청은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10개동), 양서면 대심리(35개동), 그리고 춘천시 남산면 서천리(50개동) 등 상수원관리지역에 펜션이 집단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론 이보다 훨씬 많은 펜션이 영업중이라는 게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남양주, 이천, 광주 등은 아예 지역 내 펜션의 숫자를 파악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는 “건축법상 건축물 용도에 펜션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어 지자체가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누락된 펜션에 최근 새로 문을 연 펜션까지 합친다면 팔당상수원 일대는 가히 ‘펜션 천국’이라고 부를 만하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팔당상수원은 수도권 주민 2000여만명의 생명줄인 식수원이다. 정부는 2005년까지 팔당상수원을 1급수(BOD·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 1ppm 이하)로 만들겠다는 목표하에 지난 10년간 1조7000억원을 쏟아부었다. 또 한강변 9개 시·군 일대 20만여㎢을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하고 공장, 숙박시설, 음식점, 축산시설, 양식장 등 오염시설을 엄격히 규제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의지가 무색할 정도로 이 일대에는 수많은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다. 숙박시설과 음식점은 1만2000여개, 공장은 40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의 규제 방침과는 정반대로 오염시설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여건에서 팔당상수원의 수질이 좋아졌을 리 만무한 일. 팔당상수원 주민환경감시연대(대표 정진성)가 지난해 9월 실시한 수질검사에서 팔당상수원 1권역에 속하는 양평군 8개 지천은 수질 부영양화의 주요 원인물질인 총질소(T-N)가 기준치(환경부 호소수질기준 5등급 1.5ppm)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을 흐리고 악취의 주요 원인인 인(P) 또한 용담천 및 양근천 등지에서 기준치(환경부 호소수질기준 5등급 0.15ppm)를 초과했다.
이러한 사정은 인근 지역인 남양주나 광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팔당상수원의 수질은 BOD 1.2ppm인 2급수로, 당초 목표대로 2005년까지 1급수로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팔당상수원 일대에 최근 오염원이 하나 더 추가됐다. 산자락이든 계곡 옆이든 강변이든 가리지 않고 들어서는 펜션이 그것이다. 팔당상수원 주민환경감시연대 정진성 대표는 “이들 펜션은 사실상 대규모 관광위락단지”라고 지적하며 “주말이면 팔당상수원 일대 펜션들은 외지에서 놀러온 사람들로 가득 찬다. 대개 펜션은 계곡이나 강변 바로 옆에 위치하기 때문에 오폐수를 그대로 방출할 경우 팔당상수원 수질을 악화시키는 주요 오염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계곡 따라 40여개 밀집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흥정계곡은 ‘펜션 1번지’라 불러도 손색 없을 지역이다. 평창에는 현재 대략 350여개의 펜션이 영업중인데, 이중 200여개 펜션이 흥정계곡에서 레저단지 ‘휘닉스파크’에 이르는 봉평면 일대에 밀집되어 있다.
흥정계곡은 해발 276m의 흥정산에서 발원하여 흥정리 마을을 관통하며 흐르는 2급 하천이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입구에서부터 빼곡하게 들어찬 가지각색의 펜션들이 외지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눈꽃마을’ ‘물소리’ ‘메밀꽃’ ‘화이트’ ‘폴라리스’ 등등 아기자기한 이름의 간판이 나붙은 유럽풍 펜션 건물들은 4km에 이르는 흥정산 중턱까지 쉼 없이 이어진다. “겨울이라 계곡이 얼어붙었지만, 여름이면 집 안에서도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천혜의 휴식처”라는 게 이곳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박모씨의 자랑이다.
평창군청 건축계 신승호씨는 “흥정계곡 주변에 펜션을 지을 만한 땅은 이미 외지인들에게 거의 다 팔렸다”면서 “현재 50여 군데 펜션이 건설중”이라고 말했다. 흥정리 이장 김형일씨는 “원래 고랭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지만 2~3년 전부터 펜션이 들어서고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농사 짓는 주민은 거의 없고 대다수 민박집이나 음식점 등을 운영하며 관광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전했다.
계곡 하나를 둘러싸고 수십 채의 숙박시설이 지어져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데, 계곡이라고 온전할 리 없다. 마을 주민들은 펜션이 건립된 후 계곡의 유량이 급격히 감소했다고 말한다. 펜션마다 지하수를 뚫어 계곡 물을 끌어다 쓰기 때문이란 것. 또 관광객이 줄지어 찾아오는 여름철이면 하루에만 1t짜리 트럭 2~3대 분량의 쓰레기가 배출된다. 마을을 잇는 길은 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닐 만한 넓이의 농로인데, 길가에 늘어선 펜션의 담벼락이 농로를 침범하는 바람에 통행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흥정계곡의 수질도 나빠지고 있다. 원주지방환경청은 지난해 강원 영서지역의 유명 산간계곡 13곳에 대해 토지이용 및 오염원 실태를 조사했는데, 이중 어름치와 붉은배새매 등 천연기념물이 서식하는 흥정계곡을 환경훼손이 가장 심화된 곳으로 꼽았다. 원주지방환경청은 그 원인으로 펜션과 음식점 등의 과도한 건축을 들었다.
아울러 원주지방환경청은 유명 계곡들에 자리잡은 14개 펜션 및 음식점이 운영하는 오수처리시설 방류수의 BOD농도를 조사했는데, 피서기간의 방류농도가 피서전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고 밝혔다. 오수처리시설 방류수의 수질기준은 BOD 20ppm 이하이지만, 피서기간에는 115.2ppm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평창군청이 지난해 평창 일대 펜션에 대해 방류수의 수질을 검사한 결과 총 26곳이 오수처리 규정을 위반한 채 방류수를 배출한 것으로 적발됐다.
평창군청 관계자는 “펜션들이 정화조 등 오폐수 정화시설을 갖추고는 있으나 일반주택 기준으로 설치했기 때문에 그 용량이 모자란다”며 “그나마도 전기료를 이유로 제대로 가동하지 않고 있는 형편”이라고 실정을 전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1~2년 전부터 지방 유명 관광지를 찾으면 그 주변에서 어김없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림 같은 집’, 펜션이다. 나뭇결을 살린 목조건물, 동화적인 세모꼴 지붕, 분위기 있는 테라스, 호텔을 넘보는 깨끗한 침실. 계곡이나 해변가 등 경치 좋은 곳만을 골라 들어선 펜션은 ‘주5일 근무 시대’를 맞아 관광과 휴식을 동시에 해결해주는 최적의 여가 시설로 각광받고 있다.
수도권 주민 2000만명의 식수원인 팔당상수원 일대에 대규모 펜션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공사 현장 바로 앞쪽으로 북한강이 보인다.
그렇다면 펜션은 전원주택일까, 아니면 숙박업소일까. 현재 펜션은 민박업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농어촌 지역에서 일반주택으로 용도 허가를 받아 농지나 임야 등을 전용해 건물을 지은 후 펜션업을 개시하는 식이다. 객실 7개 이하 민박시설은 숙박업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별다른 사업자등록도 필요하지 않다.
숙박업에서 제외되는 덕분에 펜션은 숙박업소가 받는 각종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일반주택보다 강력한 오폐수처리시설 설치 의무도 지킬 필요가 없다. 또한 공중위생관리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소독, 환기, 조명 등을 규정대로 이행하는지 감시받지 않는다. 또한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숙박료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납부하지도 않는다. 한국펜션협회는 ‘전국 펜션은 지난 2년간 1000억원의 소득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는데, 결국 부가가치세 10%에 해당하는 100억원 정도의 세금이 누락된 셈이다. 24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면 세금을 내야 하는 여관 등의 숙박시설에 비하면 엄청 유리한 업종인 셈이다.
그러나 숙박업으로 분류되지 않아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계곡이든 강가든 바다든 원하는 입지 어디에라도 사실상의 숙박업소인 펜션이 들어설 수 있다는 점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숙박업소 등 오염시설의 신축을 제한하고 있지만 일반주택으로 분류되는 펜션은 이러한 제한을 피해갈 수 있다.
숙박시설을 규제하는 팔당상수원 일대가 대표적인 펜션 지역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강변에 버젓이 들어선 대규모 펜션 단지는 현지인들의 명의로 택지를 분할 구입해 단독주택 용도로 허가를 받았다. 2~3년 만에 전국 최대 ‘펜션촌’이 되어버린 평창군의 흥정계곡 또한 상수원보호구역이기 때문에 펜션을 숙박시설로 분류할 경우 이 일대 40여 펜션은 모두 불법건축물이 된다. 숙박시설의 입지를 엄격히 제한하는 환경부 특별대책지역 고시도 펜션 앞에서는 한낱 종잇장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우후죽순으로 난립하는 펜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지난해 말 춘천지검은 강원도 일대를 대상으로 ‘자연환경훼손사범’에 대한 내사를 벌였다. 그 결과 총 39명의 펜션 업주들이 농지 및 임야의 전용 허가면적을 초과하여 펜션을 신축한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춘천 및 강촌 일대 펜션업자들은 1000~2000㎡까지 농지를 불법 전용해 족구장, 배구장, 주차장, 정원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펜션업주들은 해당 군청이 건축허가를 내준 뒤 사후 관리감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틈타 불법 전용을 일삼았다”며 “실제 지난해 6월 강원도청이 펜션에 대한 단속을 지시했음에도 일선에서는 일절 단속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역 주민과의 갈등
그러나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농지전용 면적의 상한선인 1000㎡를 초과했느냐 안 했느냐’만 따질 수 있었다. 펜션이 우후죽순 난립하여 자연환경을 훼손하고 있다 하더라도 규제할 수 있는 법규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상한선을 초과해 전용된 농지도 해당 군청이 사후 허가를 내주고 있는 형편이다. 평창군청 관계자는 “지난해 불법적으로 농지를 전용한 65개 펜션을 적발했는데, 이미 설치한 시설물을 철거하기 어려운 경우 절차를 밟게 해 허가를 내주는 쪽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한 농촌마을에 펜션이 난립하고 관광객들이 대거 몰려들자 지역 주민들의 불만도 점차 커지고 있다. 춘천시 서면은 지금까지 박사학위 소지자 82명을 배출해 면 단위로는 전국에서 ‘박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마을이다. 한승주 주미대사, 홍종욱 전 국회의원 등 전현직 국회의원, 장관, 법조인, 군수, 교육감 다수가 이 마을 출신이다.
‘박사마을’ 춘천시 서면의 서상리 주민들에게 얼마 전 골칫거리가 하나 생겨났다. 마을에서 2km 정도 산 위로 올라가면 서상리 일대 농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신매저수지(저수량 186만7000t)가 있는데, 이 저수지 상부지역에 찜질방과 펜션 15개 동으로 이뤄진 레저타운이 들어선 것.
주민들은 이들 시설로 인해 저수지 수질이 나빠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500여명의 마을주민들은 대다수 벼농사와 고추, 감자 농사 등을 하고 있다. 정종호 이장은 “길이라고는 좁은 농로밖에 없는데, 외부에서 사람들을 가득 실은 승용차가 지나다니면 농사 짓는 데 방해가 된다. 뿐만 아니라 자체 정화조를 설치했다고는 하나 관광객들이 대거 몰릴 경우에도 정화조가 제대로 가동할지 의문이다. 저수지는 고여 있는 물이라 쉽게 오염될 수 있다”고 말했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 동쪽 해안에 자리잡은 황도(黃島)는 보리밭이 많아 섬 전체가 누렇게 보인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천수만으로 둘러싸인 섬으로 들어가는 황도다리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지막한 섬의 능선이 아니라 삐죽삐죽 솟아오른 펜션들이다.
황도의 갯벌은 바지락이 많이 나기로 유명하다. 바지락 등 조개류와 각종 어류가 많이 잡히는 천혜의 어장이라 현재 자연환경보전지역의 수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숙박시설, 음식점, 공장 등의 입지가 제한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황도에는 10여채의 펜션이 성업중이다. 이 때문에 관광객도 거의 찾아오지 않던 조용한 섬마을 황도리의 여름 풍경은 1~2년 전부터 시끌벅적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마을주민 오모씨는 “계절 가리지 않고 주말이면 펜션마다 꽉 찰 정도로 놀러오는 사람이 많다. 갯벌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도록 단속하고 있지만, 여름밤이면 밤 늦도록 밖에 나와 술을 마시고 폭죽을 터뜨리는 통에 주민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쓰레기를 마을 아무 데나 버리고 가는 몰상식한 외지인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착잡하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민박업은 당초 농어촌 주민들의 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 농가주택을 활용하여 관광객들에게 숙박을 제공함으로써 농어촌 주민들이 부수입을 올릴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농어촌정비법 등에 관련 법규를 마련했던 것. 숙박업으로 등록하지 않고, 세금도 부과하지 않는 등의 혜택을 민박업에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1~2년 전부터 전국에 걸쳐 펜션 사업이 급팽창하면서 기존 농가 민박은 손님을 거의 뺏기고 있는 반면, 대다수 외지에서 온 펜션업자들이 민박업의 혜택을 누리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농림부 농촌진흥과 정병학 과장은 “이 때문에 각 지자체에서 펜션 관련 법규를 마련해달라는 건의가 빗발친다”며 “펜션은 대다수 외지인들 소유여서 농어촌 경제 활성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원도와 경기도에 이어 펜션이 대거 건립되고 있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대해 태안군청은 지난해 가을 ‘7실 이상 펜션은 숙박업으로 신고하라’며 계도에 나섰다. 태안군청은 “숙박업으로 신고하지 않을 경우 무허가 숙박영업으로 간주해 검찰에 고발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숙박업으로 신고한 펜션은 전무한 상태. 업주들은 2002년 안면도 꽃박람회를 앞두고 펜션 및 민박 영업을 권장해놓고는 지금 와서 단속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태안군청 건축계 관계자는 “현재 150여개 펜션이 일반 혹은 다세대 주택으로 허가받아 영업중이다. 20실 이상을 운영하고 있는 펜션들도 있지만, 숙박업으로는 전혀 신고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황도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K씨는 “숙박업 등록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앞서 말했듯 황도리 전체는 자연환경보전지역이기 때문에 숙박시설 자체가 들어설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숙박시설에 따르는 규제사항은 많다. 군도와 지방도로에서 50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하며, 농지에 들어설 경우 그 면적이 1000㎡을 넘으면 안 된다. 상수원보호를 위해 수변구역으로 지정된 곳에는 아예 들어설 수 없다. 태안군청 건축계 관계자는 “안면도에 들어선 펜션 중 절반 이상은 숙박시설 허가가 나지 않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관광부는 지난해 10월 관광진흥법에 ‘관광펜션업’을 신설해 펜션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현실적으로 역부족인 상태다. 관광펜션업 허가를 받으려면 먼저 숙박업소 등록을 해야 하는데, 허가가 날 수 없는 곳에 지어진 펜션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산과 계곡 다 내주고도… ”
주5일 근무제 확산과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도시 사람들의 욕구가 맞물리면서 펜션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또 펜션이 저금리 시대에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처로 각광받으면서 전국 80여곳에서 대규모 펜션 단지가 건설되는 등 투자 열풍까지 불고 있다.
전국 산림을 들끓게 하는 펜션 건설 붐이 관광업계와 농촌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각종 규제와 의무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갈 곳 못 갈 곳’ 가리지 않는 펜션이 지역경제에 어떠한 소득을 가져다줄 것인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산과 계곡 다 내주고도 세금 한푼 못 벌어들인다”는 어느 지방 군청 공무원의 탄식은 ‘펜션 몸살’에 시달리는 금수강산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