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은 총선 승리를 위해 ‘뉴 페이스’ 영입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그 정점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고 한다. 노 대통령측은 3월 중순 ‘정동영 바람’이 주춤해질 경우 ‘2차 총선 올인 전략’을 기획하고 있다는데….
고위공직자 총선 징발령 얘기가 나오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 부부(앞줄 가운데)는 1월 25일 국무위원 및 대통령 수석비서관들과 함께 청와대 뒤 북악산을 등반했다.
노 대통령의 또다른 386측근도 당시 “대선 승리는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국회에서 입법권을 확보해야 참여정부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승산에 관계없이 일단 많은 사람을 데려와 총선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17대 총선 ‘올인’ 전략은 2002년 말 대선 승리 직후부터 구상되고 있었다. 특히 취임 이후 측근비리와 불법 경선·대선 자금 문제 등으로 일다운 일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특검과 청문회 공세에 시달리다 보니 총선 올인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올인의 핵심은 ‘인당수론’에서도 알 수 있듯 ‘가용 인력 총동원령’이다. 노 대통령의 인재 풀이 워낙 빈약한 데다, 민주당마저 떨쳐내고 열린우리당을 만든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경쟁력이 있어 보이는 주변인물은 모두 선거에 징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권 지도부에서 형성됐다. 노무현 대통령후보 정무특보를 지낸 염동연씨가 2004년 2월9일 청와대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수석, 강금실 법무장관, 이창동 문화관광장관 등 총선에 나서지 않으려는 인사들을 “악처” 운운하며 신랄하게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권 올인 전략의 최상층부에는 누가 뭐래도 노 대통령이 있다. 염 전 특보는 자신의 발언에 노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는 것이냐고 묻자 “그럴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뜻에 따라 총선 총동원령을 실무적으로 지휘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이강철 영입추진단장에게 염 전 특보의 발언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 단장은 “맞는 말 아니냐”고 맞장구쳤다. 이것이 노 대통령과 핵심측근들 사이의 기류다. 이 단장은 “대통령이 어려울 때 도와야 하고, 당에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스스로 (출마) 결심을 해줬어야 했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총선 올인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이 단장은 “대통령이 누구 누구를 지목해 이들을 접촉해 보라는 식의 지시는 하지 않았다”면서 “낯을 가리는 노 대통령의 성격상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정색을 하면서 출마를 권유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강금실 장관과 문재인 수석 등에게 직접 출마를 권유했다는 보도에 대해 “하도 말들이 많으니까 농담삼아 ‘열린우리당이 그렇게 원하는데 출마해보지 그러느냐’는 정도의 말은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강금실 장관이 노 대통령과 담판을 하는 자리에서 ‘출마하느니 차라리 장관을 그만두겠다’고 배짱을 내밀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서도 그는 “서로 농담조로 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비중이 큰’ 일부 영입대상 인물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출마를 권유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출마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몇몇 인사들에게 대통령이 농담조로 한 말도 당사자들에게는 큰 압력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문재인 전 수석은 2월12일 사퇴의사를 밝히는 기자간담회 자리서 ‘대통령이 직접 출마를 권유했느냐’는 물음에 “명시적으로 권한 적은 없다”면서도 “최근 저와 정찬용 인사수석에 대해 출마를 바라는 내외부의 분위기가 높았고,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저와 정 수석은 대통령에게 출마할 뜻이 없다고 말했으며, 대통령도 양해했다”고 덧붙여 노 대통령과 출마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음을 확인해 주기도 했다.
또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대구 수성을 출마가 확정된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의 경우 노 대통령에게 직접 출마를 권유받았음을 실토한 바 있다. 윤 전 부총리는 2003년 12월17일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대학수학능력시험, 학생부CD 파문 등에 책임을 지고 취임 9개월 만에 퇴진하면서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서 (총선에 출마해) 도와달라고 했지만 대통령에게 ‘소질이 없다’고 말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노 대통령은 부산·경남의 광역자치단체장들에게 “어려운 때 도와달라”며 직접 협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월4일 자살한 안상영 부산시장은 “노 대통령이 몇 차례 찾아와 ‘도와달라, 손잡고 일하자’고 제의했지만 ‘다른 방법으로 돕겠다’고 했다”고 친구인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에게 말했다고 최 대표가 전한 바 있다.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는 과정에서도 노 대통령의 권유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김 전 지사가 노 대통령의 설득에 마음이 흔들리는 듯하자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이 접촉해 ‘대통령 경제특보’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 ‘전국구 앞순위 공천’ 등 자리를 먼저 보장하고 입당을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김 전 지사는 기회만 되면 한나라당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산·경남지역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해묵은 앙금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경남에 내려가 김 전 지사를 집중적으로 몰아세우자 탈당 결심을 굳히게 됐다고 한다. 그 틈새를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파고들어 영입을 성사시킨 셈이다.
그 외 영입 인사들에 대해선 이강철 단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정동영 당의장, 김원기 최고상임고문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도 인맥을 총동원해 설득 작업을 벌였다.
총선 필승 ‘9인의 기수’
그러나 총선 출마 공직자들의 사퇴 시한인 2월15일 현재 여권의 총선 올인 전략 성적표는 일단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 먼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4·15 총선 필승을 위해 당초 구상한 ‘9인의 기수(旗手)’ 명단을 보자.
‘수도권=강금실, 강원도=엄기영, 충청권=심대평, 부산=문재인, 경남=김혁규, 대구=이강철, 경북=이의근, 광주·전남=정찬용, 전북=정동영’
여권은 특정 유력인사가 앞장서서 일으키는 바람이 권역별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총선의 특성을 감안, 대중적 이미지가 좋고 인지도가 높은 인물들을 각 시도별 간판주자로 내세우는 전략을 짰다. 이 작업은 2003년 9월 열린우리당 창당 직후부터 시작됐다.
전략을 구상한 핵심 인물은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하는 이강철 단장이었다. 그리고 일부 소장파 의원 및 당직자들과 청와대의 몇몇 ‘386 참모’들이 이 단장의 구상을 막후에서 도운 것으로 알려진다.
영입대상 인물에 대한 접촉도 이 단장이 전면에 나섰다. 염동연 전 특보가 상당 부분 거들었고, 정동영 의장, 김원기 최고상임고문 등 원로급들은 필요한 경우 지원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 단장(대구)과 정 의장(전북)이야 애초부터 총선에 출마할 예정이었으므로 제대로 ‘건진’ 인물은 김혁규 전 지사 한 사람밖에 없다. 권역별 대표주자로 내세우기 위해 접촉했던 9인의 ‘기수’감 가운데 영입대상이던 나머지 인사들은 모두 손사래를 쳤다.
강금실 법무장관(수도권)의 경우 영입을 추진했던 여권 인사들이 두고두고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다. 강 장관이 출마할 경우 전국적으로 10% 정도 득표율을 높일 것이란 기대 섞인 예상을 하고 전방위 작업을 벌였지만 “장관직에도 미련이 없다”며 버티는 그를 결국 당해내지 못했다.
엄기영 MBC 앵커(강원)도 열린우리당에서 ‘삼고초려(三顧草廬)’ 했으나 영입에 실패했다. 이강철 단장이 직접 집으로 찾아가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MBC 출신인 정동영 의장과 박영선 대변인까지 나서 측면지원을 했다는 후문이다. ‘역사에 몸을 던지자’는 이 단장의 꾸준한 설득에 본인은 마음이 흔들리는 듯했으나 엄 앵커의 부인이 “절대 정치는 하지 말라”고 결사반대 했다고 한다. 이 단장은 엄 앵커의 부인도 직접 만나 간곡히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영입 대상 가운데는 참여정부의 철학과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부인 등 가족의 반대로 무산된 경우가 허다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심하고, 정치인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줄줄이 교도소로 가는 것을 지켜본 가족들이 “그냥 지금 자리에 충실하라”며 한사코 만류했다는 것이다.
윤덕홍 전 부총리도 한때 부인이 정치권 입성을 반대하면서 대학으로 돌아갈 것을 희망해 영입에 애를 먹었다. 열린우리당측은 부인을 적극 설득해 가까스로 동의를 받았다. 지난 설 연휴 전 윤덕홍 전 부총리를 포함한 참여정부 전직 각료들이 노 대통령과 등산을 함께 하기로 했던 전날이었다.
열린우리당은 자민련 소속 심대평 충남지사를 충청권 간판으로 내세우는 데도 실패했다. 당초 열린우리당은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으로 분위기가 고조된 충청권에서 심 지사만 영입하면 시너지 효과를 내 톡톡히 재미를 볼 것으로 판단하고 영입에 공을 들였다.
경북 영주, 수원 출마가 확정된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 김진표 전 재경부총리, 부산 출마를 고심중인 문재인 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왼쪽부터).
한나라당 소속인 이의근 경북지사(경북권) 영입 작업의 경우 이강철 단장이 대구의 단골 사우나에서 ‘우연히’ 이 지사와 조우하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우리 좀 도와달라”며 매달렸다. 나중에는 “지역정서상 열린우리당에 오는 것이 어려우면 한나라당을 탈당해 중립이라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 지사는 “뒤에서 돕겠다”며 웃어 넘겼다. 이 단장은 “이 지사가 초기에는 같이 할 듯 말 듯 해 애를 태우더니 이제는 더 이상 진전이 없다”고 말했다.
여권의 권역별 ‘기수’ 만들기 작업에서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부산의 경우 문재인 전 수석의 고사로 차질을 빚고 있다. 문 전 수석에 대한 설득 작업에는 염동연 전 특보와 김정길 전 의원 등 면식이 있는 인사들이 모두 팔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다. 정동영 의장은 2월1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김원기 고문 후원회에서 “선거에 나오기 싫다는 문 수석을 열린우리당에 입당시키기 위해 김 고문이 노 대통령을 찾아가 설득했다”고 비화를 소개했다.
역시 한 식구인 정찬용 인사수석(호남권)도 “출마 안 한다”고 버텼다. 청와대 내에서는 노 대통령이 정 수석에 대해 “청와대와 광주-전남의 가교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한 만큼 열린우리당에서도 무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권기홍 이영탁, 출마 자청
이처럼 권역별로 ‘기수’를 내세워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전략은 일단 차질을 빚고 있지만 아직은 ‘실패작’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여전히 이 전략은 유효하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열린우리당측은 김혁규 전 지사의 영입으로 경남에서 지방의회 의원 등 500여명이 집단 입당하고, 당 지지도가 크게 오른 것에서 보듯 권역별 간판주자 내세우기가 효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강금실 장관, 정찬용 수석, 이의근 지사, 심대평 지사 등은 공직사퇴 시한을 넘겨 총선 출마가 불가능해진 만큼 수도권과 호남권에 내세울 다른 간판주자를 물색중이다. 각 지역 선거구에 내세울 각계 인사를 데려오는 작업에서는 열린우리당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여권과 영입대상자 사이에 총선 차출 여부를 놓고 수개월 동안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들리기도 했다.
2·10 개각 때 퇴진한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경기도 수원)는 처음에 총선 출마 의사가 없다고 버텨 열린우리당 관계자가 국무회의장까지 찾아가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혼자만의 선거라고 생각하지 말라. 경기권 벨트를 구축해 바람을 일으킬 인물이 필요한 데 당신이 적임자’라는 말로 결단을 촉구했다는 것.
이 과정에서 은근한 압력도 병행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제부총리 취임 후 경제가 어려워져 ‘경제부총리를 갈아야 한다’는 여론이 사방에서 들려온다는 식으로 몰아붙였다는 것이다.
반면, 함께 물러난 권기홍 전 노동부 장관(경북 경산·청도)과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경북 영주)은 나중에는 본인들이 출마에 더 적극적이었다고 한 관계자가 귀띔했다. 특히 권 전 장관의 경우 공직자 사퇴시한에 맞춰 “굳이 물러날 필요 없이 장관직을 더 수행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노 대통령의 메시지가 전해졌으나 본인이 출마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조영동 전 국정홍보처장은 노 대통령의 뜻을 알고 순순히 부산 출마를 결심해 별 어려움이 없었던 케이스에 속한다. 반면,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은 “국회 공기가 싫다”는 말로 집요한 출마 종용을 일축했다.
청와대 참모 4인방(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문재인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수석)의 차출은 김원기 고문이 노 대통령을 찾아간 것에서 보듯 열린우리당에서 노 대통령에게 강력히 요청했다. 이 가운데 문 전 실장(경기도 의정부)과 유 전 수석(서울 도봉구)이 우여곡절 끝에 ‘총선에서 승리해야 참여정부가 성공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에 손을 들었다. 이들도 사임 발표를 하는 순간까지 마음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실장 등과 같이 사표를 제출한 정만호 전 의전비서관은 사퇴시한 막판에 강원도 철원·화천·양구 출마를 결심했다는 전언이다. 열린우리당에선 정 전 비서관과 별도로 그 지역 현역인 민주당 이용삼 의원에게도 손짓을 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이 의원도 처음에는 마음이 흔들리는 듯했으나 막판 민주당에 재공천을 신청하는 바람에 결국 정 비서관이 차출됐다.
열린우리당 이강철 영입추진단장, 총선출마가 확정된 유인태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조영동 전 국정홍보쳐장(왼쪽부터).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이 총선을 한달 가량 앞둔 3월 중순 2차 총선 올인 전략을 펼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특검 수사 결과가 관건
2차 총선 올인은 두 갈래로 진행될 전망이다. 하나는 유인태 전 정무수석이 밝힌 대로 노 대통령이 3월 중순 열린우리당에 입당, 주춤해진 ‘정동영 효과’를 ‘노무현 효과’로 대체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인적 총동원령을 다시 한번 발동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3월5일 측근비리 특검이 1차로 종료되면 그 결과를 놓고 대 국민 입장표명을 한 뒤 여론동향을 살펴 열린우리당 입당을 공식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재신임’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총선 주도권 장악을 위한 이벤트로 활용할 가능성도 높다. 지방 방문 등 민생현장을 챙기면서 ‘식사정치’를 통해 분위기를 잡아 오던 그 동안의 소극적 지원에서 직접 국민에게 국정운영에 필요한 안정의석을 호소하는 적극적 지원으로 전환하는 셈이다.
이와 병행해 추진될 2차 인적 올인의 핵심은 문재인 전 수석이다. 그만큼 열린우리당은 부산지역 선거 승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여권은 문 전 수석이 부산 북·강서갑에 나가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대항마 역할을 맡아 부산 전역에 시너지 효과를 전파하는 데 앞장서달라고 요청했다가 거부당하자 부산 ‘기수’ 역할을 민주당 전국구 신분인 김기재 의원에게 맡기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4년 뒤 총선까지 계산
김 의원 영입은 박대해 부산 연제구청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자신들이 도와줄테니 연제에 출마해 한나라당 공천이 유력하던 권태망 의원과 겨루면서 부산 전체에 바람을 일으켜달라는 권유였다. 김 의원도 이 말에 솔깃해 부산에 거처를 마련하는 등 적극성을 보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의외의 난관에 직면했다. 한나라당 공천경합에서 박 청장 부인의 조카뻘 되는 김희정 당 부대변인이 권 의원을 물리치고 ‘단수후보’로 추천된 것이다. 결국 박 청장이 앞장서 김 의원을 밀기는 어려워졌고, 김 의원은 “연고도 없는 곳에서 구청장의 지원이 없으면 당선을 장담할 수 없다”며 출마 여부 자체를 재검토하고 있는 상태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두 사람에 이어 부산지역에 출마할 김정길 전 의원에게 ‘기수’ 역할을 기대하기도 했으나 그가 2월14일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에 소환되는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열린우리당 입장에서는 공직자 사퇴시한 전에 청와대를 나와 출마가 가능해진 문 전 수석이 더욱 필요해진 것이다.
그러나 문 전 수석의 성격을 잘 아는 한 지인은 “정치를 업(業)으로 하진 않겠다는 그의 의지는 확실하다”며 “문 전 수석의 성격상 한번 안 한다고 했으면 노 대통령이 출마를 강권해도 거절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여권에서도 문 수석의 직접 출마는 포기하는 대신 그에게 부산지역 선대위원장이나 선대본부장 정도를 맡겨 부산권 ‘기수’ 역할을 해주도록 하는 대안을 검토 중이다.
한편, 노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한 여권의 가용 인력 총동원령은 비단 이번 총선 올인 차원만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총력을 다해 확보한 인력을 이번 4·15 총선에 모두 투입하되, 낙선하는 사람은 낙선하는 대로 다음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즉, 참여정부의 전반적인 인재 풀 확대 차원에서 총동원령을 발동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