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농협 문건, “ 썬앤문 가압류 농협이 풀어줬다”

정대근 회장의 청문회 발언은 거짓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mshue@donga.com

    입력2004-02-27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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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대근 농협중앙회 회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썬앤문에 대한) 가압류 해지는 법원이 결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신동아’가 입수한 농협 내부 결재서류에 따르면 정 회장의 이 증언은 진실을 왜곡한 것이다.
    농협 문건, “ 썬앤문 가압류 농협이 풀어줬다”

    썬앤문에 대한 가압류 포기를 결정한 농협중앙회의 2003년 6월2일자 결재서류.

    농협중앙회는 2002년 12월4일부터 2003년 3월17일까지 썬앤문그룹 계열 대지개발(주)이 발행한 양평 TPC골프장 회원권 매수자 39명에게 120억3000만원을 대출했다. 대지개발은 120억3000만원 전액에 대한 보증을 섰다.

    이 가운데 37건 115억3200만원은 썬앤문그룹 김성래 전 부회장 등이 대출서류를 위조해 사기대출을 한 것으로 검찰이 공소를 제기해 재판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농협중앙회는 김 전 부회장과 썬앤문측이 공모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농협중앙회 입장에선 대출금을 떼일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므로 채권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농협중앙회는 2003년 4월10일 대지개발 소유 경기 양평군 소재 임야 113만4598㎡(양평 TPC골프장)에 대한 가압류를 수원지법 여주지원에 신청했다. 그러자 대지개발측은 2003년 5월12일 농협의 가압류는 부당하므로 해지돼야 한다는 이의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얼마 뒤 농협의 가압류는 해지됐다.

    이 대목에서부터 새로운 진실게임이 시작된다. 정대근 농협중앙회 회장은 최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썬앤문에 대한) 가압류 해지는 법원이 결정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신동아’가 입수한 2003년 6월2일자 농협중앙회의 ‘제소 포기 승인’ 서류는 정 회장의 증언과는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서류에 따르면 대지개발이 가압류에 대한 이의신청을 수원지법에 제기하자 농협중앙회는 가압류이의사건 응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농협중앙회 서울지역본부가 응소의 포기를 신청해오자 농협중앙회 채권관리실장이 이를 승인하는 방식으로 이 같은 결정이 이뤄졌다.



    농협측이 스스로 대지개발측 이의신청에 대한 응소를 포기한다고 법원에 밝힘으로써 법원은 대지개발 소유 부동산에 대한 농협의 가압류를 해지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가압류를 해지한 주체는 농협중앙회이지 법원이 아니라는 것. 썬앤문측과 소송분쟁중인 한 관계자는 “농협의 경우 형식논리로 법원이 가압류를 해지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장난”이라고 말했다.

    정대근 회장은 또 청문회에서 “‘썬앤문에 준 대출금 115억원은 결손 처리해야 될 상황’이라고 발언한 적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동아’가 확인한 국회속기록에 따르면 이 말도 사실과 다르다. 정 회장은 지난해 국회에 나와 박재욱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썬앤문 대출금의 경우) 지금 얼마나 건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건질 수 있는 것은 미미한 수준이고 나머지는 별 방법 없이 결손 처리해야 될 상황입니다”라고 답변했다.

    농협은 자신들이 응소를 포기해 가압류가 해지된 사실을 인정했다. 농협 관계자는 “답변시간이 부족해 정 회장이 그렇게 증언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가압류 포기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농협은 “검찰이 김성래 전 부회장의 단독 사기로 공소를 제기한 상황에서 대지개발에 대한 민사소송에서 질 경우 채권확보가 영원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판을 포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썬앤문과 소송관계에 있는 한 관계자는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최종판결 때까지 수년이 걸린다. 그 기간만큼 채권 확보가 가능한데 왜 가압류와 민사소송을 스스로 포기하나. 오히려 가압류를 풀어주고 재판을 포기하면 대지개발의 부동산 임의 처분을 막을 수 없어 영원히 채권확보가 불가능해질 위험이 더 커진다.”

    이광재, 여택수씨 등 노 대통령 측근들은 썬앤문으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았고, 썬앤문측은 농협으로부터 120억 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돈을 떼일 위기에 놓인 농협은 썬앤문에 대한 가압류를 포기했다. 이 과정에서 정대근 농협 회장은 자신의 발언을 뒤엎거나 진실과 다른 증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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