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김근태 의원 검찰진술서’ 통해 본 불법 경선자금 실태

“서랍 속에 비자금(현찰) 2억 4500만원 넣어두고 사용”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4-02-27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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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자금 대부분 국회 사무실에서 받아
    • 불법 경선자금 명세, 비밀장부 만들어 별도 관리
    • 권노갑씨 외에도 40~50명이 불법 경선자금 제공
    • 검찰, 권씨 이외 자금제공자 덮어‥형평성 논란
    • 190명 자원봉사자에 주당 15만원씩… 경선 20일 앞두고 4억 동나
    ‘김근태 의원 검찰진술서’ 통해 본 불법 경선자금 실태

    2002년 3월 3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김근태 고문은 2000년 8월 대표최고위원 경선 당시 불법 경선자금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김근태의원 불법경선자금’ 검찰진술 조서.

    검찰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과 2000년 대표 최고위원 경선 때 10억여원의 경선자금을 받은 혐의로 민주당 한화갑 의원의 사법처리를 추진중이다. 검찰이 당내 경선 자금이라는 뜨거운 감자에 칼을 댄 것이다.

    야당 편파수사 논란이 일자 검찰은 안희정씨가 대우측으로부터 노 대통령의 2002년 대선후보 경선자금 50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밝혔다. 정치권은 벌집을 쑤신 듯했다. 민주당 김경재 의원은 “대선후보 경선 때 16개 지역 레이스를 다 마친 노무현 대통령,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20억원 이상 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7월, 경선 때 불법행위를 했음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경선 자금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검찰은 노-정 경선자금 수사에도 본격 착수했다. 이와는 별도로 민주당 구 주류는 무엇인가를 쥐고 있는 듯 두 사람의 경선자금과 관련된 폭로를 직간접적으로 예고하고 있다. 특히 권노갑 전 고문은 ‘주간동아’ 인터뷰에서 “경선 자금 공개하면 정동영은 도덕적으로 죽는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권 전 고문은 보도 직후 인터뷰 내용의 대부분을 부인했지만 ‘정동영 경선자금’ 부분에 대해선 발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정치권은 경선자금 명세가 구체적으로 공개되면 그 파괴력이 엄청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경선자금 모금-집행 과정에서 불법성, 도덕적 취약성이 크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유력 정치인들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경선자금을 모금해 어디에 얼마를 썼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불법을 자행했고 이를 어떻게 은폐해 왔다는 것인지, 그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신동아’는 최근 ‘김근태 경선자금’ 검찰 진술조서를 입수했다. 이 기록은 이러한 의문을 풀어주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2002년 3월 “2000년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경선 때 5억4000만원을 썼고, 이중 2억4500만원은 선관위에 보고하지 않은 불법 모금이었으며, 여기에 권노갑 전 의원으로부터 받은 2000만원도 포함돼 있다”며 개략적인 자금사용 명세를 공개했다. 김근태 원내대표는 ‘고해성사 했다’는 정상을 참작받아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 진술조서에는 김 대표가 미처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지만 경선자금의 모금-집행 실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현장감 있는 증언들이 담겨 있다.

    또한 검찰이 여당, 야당을 구분해 자의적인 잣대로 경선자금 수사를 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한 내용들도 있다.

    기자회견 때 안 밝힌 내용들

    “양심적으로 고백한 쪽만 두고두고 피해를 보는 것은 억울한 일”이라는 불만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경선자금 문제가 논란과 궁금증을 낳고 있는 이상, ‘김근태 경선자금’ 검찰 진술조서를 공개할 필요성이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근태 원내대표는 경선 자금 공개 당시 “단언하건대 내가 쓴 경선자금은 최고위원 당선자 중 가장 작은 규모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염두에 두고 ‘김근태 경선 자금’의 실체를 관찰해 보자.

    김근태 원내대표(당시 민주당 고문·국회의원)가 경선자금을 전격 공개한 지 두 달이 지난 2003년 5월2일부터 김 의원의 회계책임자들은 서울지검에서 경선자금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다. 다음은 김 의원 후원회 회계책임자 유 모씨의 진술 내용. 2000년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당시 김근태 의원의 선거캠프 규모, 활동시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후원회 소재지 및 구성인원은 어떤가요.

    답 : 국회 의원회관 김 의원 사무실을 후원회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000년 8월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경선 당시에는 후원회 대표 변모씨, 회계책임자 김모씨, 회계책임자 직무대리자 저 등 3명이었습니다. 지구당 사무실은 서울 도봉구 H빌딩 3층이고 구성인원은 사무국장, 총무부장, 여직원 등이었습니다. 2000년 최고위원 경선 땐 여의도 J빌딩 8층에 경선사무실을 마련했고, 12명이 상근했습니다.

    -최고위원 선거운동 활동시기는 어떠했나요.

    답 : 2000년 7월10일 사무실을 오픈했고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은 8월30일이었으며 9월19일경까지 사무실을 운영했습니다.

    -2000년 회계보고 관계 등은 어떤가요.

    답 : 후원회 수입이 8억2964만원이었고 지출은 총 5억9731만원이었습니다.

    다음날 김 의원의 또 다른 회계책임자인 김모씨의 진술이 이어졌다. 김씨는 불법 경선자금의 모금시기, 방법, 관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김근태 의원은 “2억4000만원의 경선자금은 불법 모금한 자금”이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혔었다. “이때 불법 자금이라는 것은 김 의원측이 외부 인사들로부터 받은 돈 중 후원금 영수증처리를 하지 않은 돈을 의미한다”고 김씨는 말했다. 영수증처리를 하지 않은 돈은 선관위에 신고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검은 돈’이다. 김씨는 이를 ‘격려금’이라고 표현했다. 김씨는 “2000년 후원금 모집한도가 6억원이었는데 한도가 차게 되자 이후에 들어온 격려금은 영수증처리를 하지 않고 받았다”고 설명했다.

    “쇄단기로 비자금 장부 파쇄”

    여기엔 권노갑씨가 준 2000만원도 포함된다. 그런데 김씨는 김근태 의원에게 영수증처리하지 않은 불법자금을 제공한 사람은 권씨뿐만 아니라 40~50명에 이른다고 구체적 숫자를 검찰에서 밝혔다. 시점은 경선 무렵에 집중됐다고 한다. 격려금 제공자들은 주로 김 의원에게 직접 주거나 김 의원의 사무실을 방문해 돈을 줬다.

    -후원금의 모금 절차는 어떤가요.

    답 : 후원금 예금계좌로 입금되는 금액, 지로용지를 통한 금액, 우편환으로 송금되는 금액, 후원회사무실에서 직접 받는 후원금, 후원회 밤 행사를 통해 기부받는 돈, 김근태 의원이 직접 받는 돈 등 모든 후원금은 후원금 예금계좌로 입금 조치됩니다. 이 돈은 모두 영수증처리되어 선관위에 보고됩니다. 후원회 예금계좌는 은행별로 있는데 10여 개 정도 됩니다.

    -민주당 국회의원 김근태가 2002년 3월3일 “2000년 최고위원 경선 때 5억3872만원을 사용했으며 이중 2억4500만원은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은 불법선거자금이었다”는 취지로 기자회견을 했는데 알고 있나요.

    답 : 네. 선관위 신고를 누락한 2억4500만원은 최고위원 경선에 대한 격려금으로 받아 사용했습니다.

    -언제부터 격려금을 받았나요.

    답 : 2000년 7월 초순경부터 같은 해 8월 하순경까지 격려금을 받았습니다.

    -몇 명으로부터 받았나요.

    답 : 대략 40~50명으로부터 받았으며 1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입니다.

    -격려금 수령 방법은 어땠나요.

    답 : 후원자들이 국회의원 회관 사무실이나 경선캠프 사무실로 찾아와서 후원금을 주면 수령했습니다.

    -김 의원이 받은 돈은 어느 정도 되었나요.

    답 : 10여회 정도 받아서 저에게 주었습니다.

    김근태 의원은 불법 경선자금 2억4500만원의 경우 돈을 준 사람, 시점, 액수를 정리해놓은 별도의 비밀장부를 만들어 관리했다. 이 같은 사실은 김씨의 진술에 의해 확인된다.

    -경선캠프에서 받은 돈은 후원금으로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지 않아 영수증처리 하지 않고 사용했다는데 어떤가요.

    답 : 경선기간 중에 받은 2억4500만원에 대해서는 제가 따로 다른 장부를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그 장부는 임시장부였습니다.

    -그러면 돈을 두고 간 사람들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리하였나요.

    답 : 그 사람들의 이름, 날짜, 인적사항, 금액 등을 기재하였습니다. 그 장부는 2001년 2월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제가 쇄단기를 이용해 파기했습니다.

    김씨는 불법자금 2억4500만원을 제공한 40~50명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불법자금의 제공자들이 김근태 의원이나 김 의원의 측근들과 만나 직접 돈을 제공했으며, 김의원측은 이들의 이름, 받은 금액을 별도의 장부에 꼼꼼히 관리해 왔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권노갑씨를 제외한 나머지 불법자금 제공자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증언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반면 김근태 의원측은 권노갑씨로부터 돈을 받은 정황은 정확히 기억해 검찰에서 진술했다. 다음은 관련 진술내용. “경선 4~5일 전 오후경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근태 의원이 저를 불러서 들어가 보니 김 의원이 ‘권노갑 고문 한테서 받은 후원금이다’고 하면서 저에게 현금 1만원권 2뭉치 2000만원을 주었습니다.”

    검찰 입장에서 불법자금의 제공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은 돈의 대가성 여부와 구형량 판단 등 수사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한 검찰의 수사의지에 따라선 김 의원측은 권씨 이외 불법자금 제공자들에 대해서도 털어놓았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검찰, 김근태 불법자금 8%만 수사

    그러나 검찰은 김근태 의원이 공개한 권노갑씨 이외 불법자금 제공자들의 신원은 한 사람도 더 파악하지 않은 채 김 의원의 경선자금 수사를 마무리했다. 검찰은 이후 권노갑씨만 불법자금 제공자로 기소했다. 권씨가 제공한 자금은 김 의원이 받은 불법자금 2억4500만원의 8%를 겨우 넘는 2000만원이었다. 검찰은 김 의원의 나머지 92%의 범죄혐의에 대해선 수사를 안 한 셈이다.

    김 의원의 고해성사에 정상참작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검찰 수사가 김 의원에 대한 봐주기로 흘렀다는 의혹이 나오는 대목이다. 당시 검찰이 정동영 의장에 대해 수사를 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권노갑씨로부터 최고위원 경선자금 2000만원을 받았다고 인정했으나 검찰은 정 의장이 소환에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사를 종결했다.

    특히 비슷한 성격의 경선자금 수사에서 검찰이 야당이 된 민주당 한화갑 의원의 경우 수억 원대의 경선자금을 모두 밝혀내고 구속시키려 한 것과 비교된다.

    김근태 의원측은 주로 국회 내에서 불법자금을 받았으며, 이를 국회 내 자신의 사무실 책상서랍에 현찰로 넣어두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사용했다. 검사는 2억4500만원이나 되는 거액을 국회 의원실 서랍 속에 넣어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되묻기도 했다. 계속되는 회계책임자 김씨의 증언이다.

    -수령한 돈의 보관 방법은 어떤 식이었나요.

    답 : 의원회관에 있는 제 책상서랍 속에 넣어 보관을 했습니다. 주로 의원회관에서 돈을 받았고 경선 캠프에서 받은 돈도 의원회관 사무실로 가져와서 보관했습니다.

    -그 많은 돈을 서랍 속에 넣어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는가요.

    답 : 후원회 계좌는 한도금액 오버로 인해 입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따로 김근태 의원 계좌를 열면 재산등록 신고 문제가 있고 제 명의로 만들면 차명 계좌가 됩니다. 그리고 저도 재산신고를 하기 때문에 그 돈을 제 재산으로 신고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 서랍 속에 보관했습니다.

    -경선과 관련한 자금집행은 어떠했나요

    답 : 자금을 요청하면 제가 그대로 지출해 주었습니다.

    “4억에 맞추려 했는데 도저히 안 돼”

    김근태 의원의 선거캠프에서 경선 선거운동을 총괄한 장모씨는 경선자금의 집행과 관련해 상세하게 진술했다. 장씨에 따르면 김 의원은 선거운동 자원봉사자 190여명을 뒀으며 이들에 지급된 활동비도 상당한 부담이 됐다.

    또한 전국 대다수 지역에 선거조직을 구성해 돈과 인력을 투입했다. 이렇다보니 경선자금은 처음엔 4억원을 예상했으나 투표일(8월30일)이 20여일이나 남은 상황에서 모두 소진돼 결국 불법자금이라도 받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선자금은 어떻게 처리했나요.

    답 : 제가 회계책임자인 김OO에게 선거자금으로 얼마 정도를 쓸 수 있느냐고 묻자 김OO은 4억원 정도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4억 원에 맞추어 선거활동을 하려고 했던 것인데 8월10일쯤 되니 4억원을 오버하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왜 돈을 오버했나요.

    답 : 전국 230개 지구당입니다. 이중 약 150~160개 지구당에 각각 1~2명 정도로, 190여명(처음에는 80~90명 정도)의 자원봉사자를 두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1명당 1주일에 10만원을 예상했는데 8월10일경부터는 15만원으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조직활동비, 홍보비 등이 예상외로 많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많이 차지한 것이 조직활동비, 지구당 순회경비, 홍보비, 여론조사비입니다.

    김근태 의원의 주된 경선자금 사용내 후보기탁금(5000만원), 사무실 임대료(616만원), 사무실 집기비용(719만원), 자원봉사자 활동비(1755만원), 식사-교통비(1189만원), 지역순방 비용(1억698만원), 조직활동비(1억6530만원), 출장비(1798만원), 명함-화환 비용(550만원), 유세활동비(3539만원), 공보물 제작비(3230만원), 전화홍보비(826만원), 여론조사비(4000만원) 등이었다.

    이와 관련 김근태 의원 캠프는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은 경선비용(2억4500만원)을 날짜 별로 따로 정리해 2002년 5월6일 검찰에 제출했는데, 주로 전국 각 지역 조직활동비에 투입된 것으로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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