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청와대-한나라당-검찰 ‘적과의 동침’?

  • 글: 윤영찬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yc11@donga.com

    입력2004-02-27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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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검찰청사에는 구속되는 정치인들이 연일 줄을 서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청와대나 한나라당 주류는 그리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속내가 뭘까.
    청와대-한나라당-검찰  ‘적과의 동침’?

    2003년 6월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전국 검사장과의 오찬을 위해 강금실 법무장관 (오른쪽 두번째), 송광수 검찰총장(왼쪽에서 세번째) 등과 오찬장에 들어서고 있다.

    2003년 1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386 핵심그룹’ 내에서 의미 있는 보고서가 제작됐다. ‘정당개혁 프로그램 안(案)’(‘신동아’ 2003년 2월호 게재)이란 문패를 단 이 보고서는 향후 노 대통령의 정치개혁의 요체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건은 신당창당과 민주당의 재창당을 저울질하면서 신당창당의 조건, 시기, 방향 등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바로 그 시나리오대로 만들어진 신당이 지금의 열린우리당이다.

    지금 와서 이 보고서의 내용을 새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그 핵심내용이 17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대선자금을 둘러싼 정치권의 소용돌이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정치권 판갈이의 완결은 2004년 총선’ ‘정치권의 합종연횡이 아닌 기본틀 자체의 변화에 주력’ ‘제도적 청산의 내용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인적 청산의 환경 조성’이란 대목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과 측근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분명했다. ‘정치권의 판갈이’와 ‘인적 청산’이 그것이다.

    정치권뿐만이 아니었다. 노 대통령은 집권 직후부터 구시대(앙시앙 레짐)에 대한 인적, 제도적 청산과 해체를 타깃으로 삼았다. 집권 직후 ‘검사들과의 대화’를 필두로 한 기수 파괴, 고영구(高泳) 구국정원장의 등장과 함께 이뤄진 국정원 1급 간부들의 ‘싹쓸이 퇴진’,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의 등장을 통한 관료사회의 세대교체, 고참 외교관들의 순차적 퇴진 등 지난 1년 동안 알게 모르게 노 대통령과 권력 핵심부의 ‘판갈이 작업’은 상당부분 진척이 된 상태다. 이제 4·15 총선은 노 대통령 판갈이의 완결판이 되고 있다.

    盧, DJ정부 인물은 모두 물갈이

    노 대통령의 판갈이 대상은 우군과 적군의 구별이 없는 듯하다. 보고서에 언급된 대로 유·불리에 따른 ‘합종연횡’이 아니라 ‘기본틀 자체의 변화에 주력’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2002년 대선에서 누구를 찍었는지도 중요치 않아 보인다.



    국민의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가 지난해 3월 노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당시 권력 핵심부에서 흘러나오던 국정원 1급 인사에 대한 물갈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언했다고 한다. “현재 국정원의 1급 인사들은 대부분 이번 대선에서 대통령을 지지했던 인물들입니다. 국민의 정부 때 그들을 1급에 올리기 위해 무척 어려운 과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을 물갈이할 경우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국정원을 장악할 수도 있습니다. 물갈이 방침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노 대통령은 “예, 알겠습니다. 검찰인사처럼은 하지 말란 말씀이죠?”라고 반응했다. 그 인사는 “노 대통령이 말뜻을 알아들었구나” 하고 안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며칠 후 고 원장 취임과 함께 국정원 1급 인사들은 일괄사표를 제출한 뒤 전원 퇴진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정책과 이념을 계승했다는 노 대통령은 그러나 DJ 정부의 인물만큼은 계승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세 명이 노 대통령 출범 이후 구속됐다. 야당시절의 비서실장인 권노갑(權魯甲), 대통령 재임시절 비서실장이었던 한광옥(韓光玉) 박지원(朴智元)씨가 구속됐다. ‘리틀 DJ’라는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전 대표는 2002년 당대표 경선당시 불법자금 수수혐의로 풍전등화(風前燈火) 신세다.

    노 대통령의 정치권 개조 작업의 수단은 검찰이었다. 물론 노 대통령이 검찰에 수사를 지시하거나 방향을 제시했다는 증거는 없다. 또 노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해왔듯이 검찰이 청와대의 ‘사슬’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징후도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검찰의 자율성이 꽃피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인적 청산’ 이끈 검찰 수사

    청와대와 검찰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대선자금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은 열린우리당의 한 인사가 청와대 핵심인사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구명을 요청하자 청와대 인사가 검찰 핵심인사를 만나 “억울한 부분이 있으니 사정을 잘 살펴달라”고 말했다는 것. 그러나 이 검찰 핵심인사는 “요즘 젊은 검사들은 위에서 이야기해도 통제가 되지 않는다. 몇몇 검사들은 손에 피를 묻히겠다는 각오로 덤비고 있다. 우리도 어찌할 수가 없다. 청와대에서 한번 젊은 검사들을 설득해보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사상 유례없이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대선자금 수사는 그 동기와 관계없이 권력 핵심부가 원했던 ‘인적 청산’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특별하다. 우선 검찰이 대선이 끝난 뒤 1년도 안 돼 대선자금을 낱낱이 파헤친 적이 없다. 현직 대통령의 ‘구린 곳’에 손 대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검찰의 역대 대선자금 수사는 임기말 또는 새 정권이 들어선 후, 그것도 일부만 파헤친 뒤 덮곤 했다.

    두 번째는 대선자금 수사의 장기화다. 검찰이 SK 비자금사건을 수사하다 대선자금의 ‘꼬리’를 잡고 한나라당 최돈웅(崔燉雄) 의원을 출국금지 조치한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그 이후 대선자금 수사는 벌써 5개월째로 접어들었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주도한 대선자금 청문회가 진행되던 2월12일, 검찰은 “삼성그룹이 한나라당에 추가로 170억원의 대선자금을 채권으로 제공했다”는 메가톤급 발표를 하기도 했다. 따라서 검찰 수사의 종착지는 아직도 가늠하기 힘들다. 또 검찰의 내사기간까지 포함하면 반년 이상을 대선자금 수사에 매달린 상황이다. 4·15 총선의 최대이슈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대선자금 수사뿐만이 아니다. 박주선(朴柱宣) 이훈평(李訓平) 박명환(朴明煥) 박주천(朴柱千) 박재욱(朴在旭) 의원 등은 대선자금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개인비리 차원에서 구속됐다.

    세 번째는 대선자금 수사의 여파가 정치권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후폭풍을 동반했다는 사실이다. 대선자금 수사 이후 현재까지 구속된 현역의원은 모두 13명. 이중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전 대표만이 국회 본회의에서 ‘석방결의안’을 통과시켜준 동료 의원들의 ‘의리’로 잠시 풀려난 상태. 여기에 한화갑 의원 등 앞으로 수사를 받아야 할 의원은 10여명에 이른다.

    대세에 떠밀린 불출마 선언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르지 않은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가져왔다. 한나라당의 경우 28명의 현역의원들이 불출마 선언을 했는데 이중 지역구 의원이 25명에 이른다.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민자당 박경수(朴炅秀) 의원이 15대 총선을 앞둔 1996년 “본업인 농부로 돌아가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을 때 각 언론은 그의 불출마 선언을 매우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그 정도로 현역의원의 자의적 불출마는 흔한 장면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중진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은 말 그대로 신문의 ‘한 줄’ 이상을 차지하기 어렵게 됐다. 이들의 불출마 선언 이유는 각기 다르다. 검찰의 수사를 앞두고 타의에 의해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도 있고, ‘개혁’과 ‘세대교체’라는 시대적 대세에 밀려 정치권에 이별을 고한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불출마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 안팎의 눈총에 등이 떠밀린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에 가속도를 내고 있는 데는 검찰 스스로의 생존본능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권에서 ‘정권의 첨병’ ‘권력의 시녀’라는 비난 속에 ‘정치 검찰’의 딱지를 떼지 못했던 검찰은 정치권에 대한 가차 없는 사정수사만이 살 길이라고 판단했음직하다. 더욱이 검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노 정권에게 ‘서열파괴’와 ‘인사개혁’이라는 빌미를 제공했고, 이것이 검찰의 자존심을 더욱 상하게 만들었다. 검찰의 위기타개 방식은 대개 ‘성역 없는 수사’라는 귀착점에 이르게 되고, 검찰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정치권을 지독한 ‘독감’에 감염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검찰이 ‘정치권의 인적 청산’과 ‘판갈이’를 원하는 권력 핵심부의 의중을 읽어냈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개혁’과 검찰의 생존본능은 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든 염화미소(拈華微笑)든 청와대와 검찰이 이해를 같이하는 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선자금 수사의 최대 피해자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의 침묵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한화갑 의원의 경선자금 수사를 빌미로 민주당은 광주로 내려가 장외투쟁까지 벌였다. 이에 비해 대선자금 수사로 혼돈상태에 빠진 한나라당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검찰 수사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차떼기’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할 말이 많지는 않겠지만 국회 과반수가 넘는 거대야당으로서는 너무 무기력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국민의 정부 시절 검찰의 자당 의원 수사에 대해 영남과 수도권에서 대규모 규탄집회를 열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반응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있다. 대선자금 수사로 검찰에 줄줄이 소환된 한나라당 인사들은 대부분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핵심측근이었다. 박주천 의원 정도만이 대표경선 당시 최병렬(崔秉烈) 대표 쪽에 섰다.

    청와대-한나라당-검찰  ‘적과의 동침’?

    구속된 서청원 전 대표를 위해 당이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하는 서 전 대표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최병렬 대표. 그의 미소가 알듯 모를듯 하다.

    대선자금 수사로 한나라당의 주류였던 이회창계는 된서리를 맞았고 이제는 비주류로 전락했다. 이회창계의 대표격이었던 서청원 전 대표마저 검찰에 구속됐다. 영남중심의 나머지 이회창계 인사들도 줄줄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또 당내 공천심사과정에서 탈락할 인사들도 적지 않다.

    당내 비주류였다가 하루아침에 당 대표가 된 최 대표로서는 검찰수사가 자연스럽게 당내 구주류를 솎아내는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따라서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노 대통령에게는 정치권의 판갈이를, 최 대표에게는 구주류의 자연스런 제거라는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이 때문에 최 대표를 보는 이회창계의 시각은 싸늘하다. 특히 최 대표가 서 전 대표의 구속 당시 보여준 태도는 이회창계를 분노시켰다. 최 대표는 2월1일 대검과 서울구치소를 찾아가 서 전 대표와 김영일(金榮馹) 전 사무총장, 최돈웅 신경식(辛卿植) 의원, 서정우(徐廷友) 변호사를 면회했다. 서 전 대표가 구속됐음에도 당의 대응이 너무 미온적인 것 아니냐는 당내 비판여론을 무마하기 위해서였다.

    최병렬-검찰 핵심부 교감 의혹

    최 대표는 면회를 다녀온 뒤 기자들과 만나 “서 전 대표 사건은 ‘전부(유죄) 아니면 전무(무죄)’인 것 같다”며 “무리하게 서 전 대표를 구속한 것이 확인되면 당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겠지만, 아직 판정을 내리지는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이날 홍사덕(洪思德) 총무가 제기한 서 전 대표 석방동의안에 대해서도 “당 법률지원단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서 전 대표측은 “최 대표가 검찰 수사를 즐기는 것을 넘어 검찰 핵심부와 교감을 나누고 있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실제로 대선자금수사로 구속된 이회창계의 핵심 신경식 의원은 검찰 출두 직전 “우리 당내에 검찰 핵심부와 핫라인이 있다. 위원장급인데 이름을 밝힐 수 없다. 검찰내부의 수사정보가 우리 당으로 전달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다른 인사는 “당의 전략기획위원회(위원장 홍준표)가 검찰 정보를 상세하고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 대표측은 서 전 대표가 구속되기 전 그의 혐의사실에 대해 사전 정보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 대표가 ‘올 오어 나씽(all or nothing)’으로 표현한 데는 서 전 대표의 혐의내용에 대한 모종의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당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서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자신의 ‘보스’가 2월9일 국회의 석방요구결의안으로 출소한 뒤 “최 대표가 석방요구결의안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이용, 서 전 대표를 다시 구치소로 보내기 위한 공작을 꾸미고 있다”고 비난했다. 서 전 대표측이 ‘도둑 빼내기’라는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를 석방시키는 데 앞장선 것도 서 전 대표가 없으면 공천과정에서 계보 자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대표측은 대선자금 수사를 반대세력 제거에 이용하고 있다는 서 전 대표측의 의심에 대해 펄쩍 뛰고 있다. 최 대표의 한 측근은 “검찰이 대선자금에 대해 수사를 벌이는데 과거 대선을 치렀던 책임자 중 어느 한 사람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책임지는 모습은커녕 도대체 얼마를 받았는지, 누구를 통해 받았는지, 어떻게 썼는지조차 상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최 대표는 대선 당시 자금의 흐름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비주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검찰수사를 무턱대고 막을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또 다른 인사도 “아무 말도 안 하면서 보호만 하라니 말이 되느냐”고 혀를 찼다.

    최 대표도 12일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신을 ‘죽은 자식을 놓고 넋두리하는 부인 앞에서 아무 말 없이 속으로 피를 토하고 있는 남편’이라고 비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서 전 대표에 대한 석방결의안 가결은 내연(內燃)하던 당내 갈등에 휘발유를 뿌린 격이 됐다. 최 대표는 서 전 대표의 측근인 박종희(朴鐘熙) 의원이 주도한 결의안에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못한 채 미적거렸다. 그는 “서 전 대표와 가까운 사이였다면 이를 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결의안 통과로 비난이 쏟아지자 당 공천심사위 김문수(金文洙) 위원장은 결의안 통과의 책임을 물어 박 의원의 공천을 배제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당내 비주류들이 “서 전 대표 결의안을 계기로 당 지도부가 비주류들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홍사덕 원내총무, 박진(朴振) 대변인도 사퇴했다. 일각에서는 총선도 치러보지 못하고 분당사태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주도하고 있는 정치권의 판갈이 작업은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정치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촉발했고, 그것이 다시 정치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켜 세대교체를 강제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나라당 역시 당내 역학구조에 의해 검찰의 수사를 무기력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청와대와 검찰, 한나라당(주류)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인적 쇄신이 가져올 정치권의 변화가 우리 정치의 질을 어느 정도 높일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하긴 어렵다. 새로운 정치의 지향점과 컨텐츠는 아직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각 정당이 총선 때마다 매번 ‘새 피’를 수혈해왔지만 우리 정치는 제 자리를 맴돌았다.

    정치권은 지금 전환기를 맞고 있다. 수십 년에 걸친 ‘3김’의 중앙집권식 정당지배구조가 무너지고 있다. 3김과 함께 정치를 해왔던 정치권의 중진들은 ‘변화’라는 도도한 흐름에 휩쓸려 정치무대에서 사라지고 있다.인적 청산과 판갈이가 정치의 패러다임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50년 헌정사에 뿌리내린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냉소주의를 더욱 심화시킬 것인지는 17대 국회가 말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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