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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정치

청와대-한나라당-검찰 ‘적과의 동침’?

  • 글: 윤영찬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yc11@donga.com

청와대-한나라당-검찰 ‘적과의 동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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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검찰청사에는 구속되는 정치인들이 연일 줄을 서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청와대나 한나라당 주류는 그리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속내가 뭘까.
청와대-한나라당-검찰  ‘적과의 동침’?

2003년 6월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전국 검사장과의 오찬을 위해 강금실 법무장관 (오른쪽 두번째), 송광수 검찰총장(왼쪽에서 세번째) 등과 오찬장에 들어서고 있다.

2003년 1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386 핵심그룹’ 내에서 의미 있는 보고서가 제작됐다. ‘정당개혁 프로그램 안(案)’(‘신동아’ 2003년 2월호 게재)이란 문패를 단 이 보고서는 향후 노 대통령의 정치개혁의 요체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건은 신당창당과 민주당의 재창당을 저울질하면서 신당창당의 조건, 시기, 방향 등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바로 그 시나리오대로 만들어진 신당이 지금의 열린우리당이다.

지금 와서 이 보고서의 내용을 새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그 핵심내용이 17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대선자금을 둘러싼 정치권의 소용돌이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정치권 판갈이의 완결은 2004년 총선’ ‘정치권의 합종연횡이 아닌 기본틀 자체의 변화에 주력’ ‘제도적 청산의 내용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인적 청산의 환경 조성’이란 대목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과 측근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분명했다. ‘정치권의 판갈이’와 ‘인적 청산’이 그것이다.

정치권뿐만이 아니었다. 노 대통령은 집권 직후부터 구시대(앙시앙 레짐)에 대한 인적, 제도적 청산과 해체를 타깃으로 삼았다. 집권 직후 ‘검사들과의 대화’를 필두로 한 기수 파괴, 고영구(高泳) 구국정원장의 등장과 함께 이뤄진 국정원 1급 간부들의 ‘싹쓸이 퇴진’,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의 등장을 통한 관료사회의 세대교체, 고참 외교관들의 순차적 퇴진 등 지난 1년 동안 알게 모르게 노 대통령과 권력 핵심부의 ‘판갈이 작업’은 상당부분 진척이 된 상태다. 이제 4·15 총선은 노 대통령 판갈이의 완결판이 되고 있다.

盧, DJ정부 인물은 모두 물갈이

노 대통령의 판갈이 대상은 우군과 적군의 구별이 없는 듯하다. 보고서에 언급된 대로 유·불리에 따른 ‘합종연횡’이 아니라 ‘기본틀 자체의 변화에 주력’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2002년 대선에서 누구를 찍었는지도 중요치 않아 보인다.



국민의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가 지난해 3월 노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당시 권력 핵심부에서 흘러나오던 국정원 1급 인사에 대한 물갈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언했다고 한다. “현재 국정원의 1급 인사들은 대부분 이번 대선에서 대통령을 지지했던 인물들입니다. 국민의 정부 때 그들을 1급에 올리기 위해 무척 어려운 과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을 물갈이할 경우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국정원을 장악할 수도 있습니다. 물갈이 방침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노 대통령은 “예, 알겠습니다. 검찰인사처럼은 하지 말란 말씀이죠?”라고 반응했다. 그 인사는 “노 대통령이 말뜻을 알아들었구나” 하고 안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며칠 후 고 원장 취임과 함께 국정원 1급 인사들은 일괄사표를 제출한 뒤 전원 퇴진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정책과 이념을 계승했다는 노 대통령은 그러나 DJ 정부의 인물만큼은 계승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세 명이 노 대통령 출범 이후 구속됐다. 야당시절의 비서실장인 권노갑(權魯甲), 대통령 재임시절 비서실장이었던 한광옥(韓光玉) 박지원(朴智元)씨가 구속됐다. ‘리틀 DJ’라는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전 대표는 2002년 당대표 경선당시 불법자금 수수혐의로 풍전등화(風前燈火) 신세다.

노 대통령의 정치권 개조 작업의 수단은 검찰이었다. 물론 노 대통령이 검찰에 수사를 지시하거나 방향을 제시했다는 증거는 없다. 또 노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해왔듯이 검찰이 청와대의 ‘사슬’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징후도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검찰의 자율성이 꽃피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인적 청산’ 이끈 검찰 수사

청와대와 검찰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대선자금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은 열린우리당의 한 인사가 청와대 핵심인사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구명을 요청하자 청와대 인사가 검찰 핵심인사를 만나 “억울한 부분이 있으니 사정을 잘 살펴달라”고 말했다는 것. 그러나 이 검찰 핵심인사는 “요즘 젊은 검사들은 위에서 이야기해도 통제가 되지 않는다. 몇몇 검사들은 손에 피를 묻히겠다는 각오로 덤비고 있다. 우리도 어찌할 수가 없다. 청와대에서 한번 젊은 검사들을 설득해보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사상 유례없이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대선자금 수사는 그 동기와 관계없이 권력 핵심부가 원했던 ‘인적 청산’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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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영찬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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