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민주당 한화갑 전 대표 작심 토로

“2000년 총선 때 정동영 신기남에게 수억대 특별지원금 보냈다”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gangpen@donga.com

    입력2004-02-27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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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가 선거운동본부이고 대통령이 본부장인가
    • 청와대 관계자, 작년 11월 대구서 ‘구정 후 사법처리 된다’고 발언
    • 김원기, 김근태, 신계륜 의원에게 직·간접 통합제의 받고 ‘명분’ 요구
    • 입당논의, 탈레반과는 상관없이 다른 쪽에서 진행됐다
    • 김화중 장관 남편 곡성군수, 민주당 탈당압력 받아 만류중
    • 노무현 당선 도운 건 여당으로 남기 위했던 것
    • 노 대통령 성공하기 바라는 마음, 아직 다 접지 않았다
    • 구속 피하지 않고 고향에서 옥중 출마할 터
    민주당 한화갑 전 대표 작심 토로
    위기에 빠진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전 대표가 그의 정치인생 최대의 승부수를 띄웠다. 위기는 1월 말에 찾아왔다.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및 당 대표 경선자금과 관련, SK와 건설관련 업체인 하이테크 하우징 등으로부터 10억원대의 불법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

    민주당과 한 전 대표는 이에 대해 ‘표적수사’라며 검찰수사의 형평성을 문제삼으면서 열린우리당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향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민주당 지도부는 노 대통령과 정동영(鄭東泳) 열린우리당 의장에 대한 경선자금 수사가 함께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선자금 특검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경선자금 수사에 반발, 여의도 당사에서 농성을 벌였던 한 전 대표는 노 대통령을 향해 격한 감정을 쏟아내면서 열린우리당 입당권유 거절에 따른 ‘보복성 수사’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한 전 대표와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정체성을 상실한 채 붕괴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지지자들의 결집과 당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는 ‘호재’로 삼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민주당은 요즘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과연 이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까. 민주당은 최소한 총선까지 불씨를 살리기 위해 열린우리당이나 노 대통령을 향해 각을 세울 게 뻔하다. 그렇다면 총선을 코앞에 두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양당의 통합과 연합공천 논의는 영원히 물 건너간 것일까.



    “나만 이렇게 콕 찍어서…”

    지난 2월9일 오후 6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 전 대표를 만났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국회 본회의 표결이 예정됐던 이날, 한 전 대표는 “반드시 투표는 해야 한다”며 의원회관과 본회의장을 오가며 4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했다(이날 국회는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기명·무기명 찬반투표와 정회를 거듭하다가 표결에 부치지도 못한 채 1주일 후로 연기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한 전 대표는 이날 작심 한 듯, 그동안 가슴 한켠에 묻어뒀던 이야기들을 솔직히 털어놨다. 특히 인터뷰 도중 “내가 감옥에 가는 것이 민주당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다. 옥중에서 출마하려면 아무래도 고향이 낫지 않겠느냐”며 구속을 전제로 고향에서의 ‘옥중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한 전 대표는 그러나 노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왠일인지 자제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전 대표는 천주교 신자다. 그의 영세명은 토마스 아퀴나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그의 대부다. 과연 그는 요즘 어떤 기도를 드릴지 궁금했다.

    -가벼운 질문부터 하지요. 요즘에도 성당에 다니나요.

    “그럼요. 자주 갑니다. 몇 번 빠지고나면 괜히 짜증이 날 때마다 내가 성당에 안 가서 그러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성당을 다녀오면 맘이 편해.”

    -최근엔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이번에 겪은 일에 대해 담담하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비굴하게 보이지않도록 해달라, 그리고 다른 사람도 다 그런(불법경선자금을 사용한) 건데 나만 이렇게 콕 찍어서…. 하느님께 좋은 지혜를 주셔서 극복하도록 해달라, 그런 기도를 드리고 있어요. 또 남북통일과 건전한 사회, 민생해결, 국민화합과 통합이 이뤄지게 해달라, 뭐 그런 거.”

    -요즘의 솔직한 심경을 듣고 싶습니다.

    “좀 심하다, 지나치지 않느냐, 그리고 이렇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총선 준비를 하는 것이 노 대통령에게 보탬이 될까 회의적입니다. 이런 일은 유신 때나 군사정권 때를 제외하고 YS, DJ 시절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이에요. 청와대가 선거운동본부처럼, 또 대통령이 선거대책위원장처럼 나갈 사람 모아놓고 선거운동 방식까지 가르쳐주는, 이런 예는 없었어요. 청와대나 행정부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선거에 나가기 위한 후보자 트레이닝 코스가 돼버렸어요. 이게 정당기관이지 국가기관인가요. 안 그렇습니까.”

    인터뷰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차분히 가라앉았던 한 전 대표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한껏 올라가 있었다.

    -한 전 대표께선 1차 검찰수사를 받은 직후 ‘여러 카드를 가지고 날 협박했다. 동서남북으로 날 들었다 놓았다 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여권에서 경선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문제를 가지고 협박했다는 건가요.

    “협박이라기보다 표적수사한 거죠. 작년 11월 대구에 갔는데, 아는 분이 몸조심하라고 그래요. 청와대 사람이 대구에 와서 누구하고 점심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서 ‘한화갑이가 경선자금 때문에 구정 지나면 바로 사법처리 된다’고 했다는 거요. 그러니까 (청와대는) 작년 10월부터 알고 있었던 셈인데 중수부장도 SK 관계는 작년 10월에 파악해서 알고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가지고 있다가 선거를 앞두고 제가 서울로 온다고 선언하니까 써먹은 거요. 그렇기 때문에 이건 표적수사입니다. 지난해 11월3일 김원기 의장이 ‘엄청난 돈이 쓰였는데 경선자금도 조사하자’고 나왔어요. 그것도 나를 표적으로 한 거요.”

    -여러 카드라고 하셨는데요.

    “여러 사람이 여러 갈래로 제 입당 이야기를 할 뿐 아니라 어떤 쪽에서는 막 흘려. ‘한화갑이가 사법처리 된다’ 이런 식으로. 검찰 출입기자 중에 나한테 전화한 사람도 있었어요. 이번(SK와 하이테크 하우징) 건말고 ‘어디서 돈 얼마 받았다는데 그런 사실이 있느냐’고. 그래서 ‘그런 사실 없다’ 그랬죠. 이번에 검찰에 갔을 때 박병윤 의원이 금호에서 CD 1억원을 받아서 현대증권에서 바꿨답디다. 그걸 나한테 당비라고 줘서 내가 이상수 의원한테 바로 보내버렸거든. 그런데 ‘한화갑이한테 공천 바라보고 그 돈 갖다준 것 아니냐’고 검사들이 계속 나와의 관계만 묻는 거요. 그게 표적수사가 아니고 뭐요.”

    “나에게 명분을 찾아달라”

    -입당 제의를 거절한 데 따른 보복수사 의혹을 제기하셨습니다.

    “한동안 한화갑이가 탈당해서 신당으로 옮긴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열린우리당 그 사람들끼리 그러는 거요. 김원기 의원이 직접 한 건 아니지만 교섭단체 만들어서 통합하자는 이야기가 있었고, 김근태 원내대표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형님 통합합시다’라고 한두 번 이야기한 적이 있죠. 신계륜 의원도 민주당 의원을 통해 통합운동에 나서자는 그런 이야기를 했죠. 그리고 민주당에도 통합파가 있잖아요. 조성준 설훈 배기선 의원 등 몇 사람. 정범구 의원도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 통합파들과 많이 접촉했던 모양이요. 그 사람들 보고 내가 그랬어요. ‘통합 이야기 자꾸 나오는데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찾아봐라. 그걸 나를 줘라. (명분이) 합당하면 내가 나서마.’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명분이 없어요.

    최근엔 누가 ‘이건 노무현 대통령의 뜻이다. 민주당도 소용없고, 한화갑 당신만 와주면 된다’고 하기도 했어요. 소위 탈레반이라는 사람들하고 상관없이 딴 쪽에서 그런 일이 진행된 거요. 그래서 역시 ‘명분을 달라. 이 상태에서는 할 수가 없다’고 그랬어요. 다만 총선 끝나고 필요하면 ‘우리도 노무현 대통령 당선시킨 당 아니냐.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 위해서 정책연합은 할 수 있다’, 그 말은 내가 했어요.”

    -입당을 제의하거나 의사를 타진한 사람으로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맞습니까.

    “보건복지부 장관은 제가 잘 알죠. 그러나 그 사람은 정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아요?”

    -그러면 김 장관으로부터는 그런 의사타진이 없었다는 말인가요.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어차피 알려지게 될 텐데요.

    “남편이 곡성군수 아닙니까. (부인이) 장관 하고 있으니까 탈당 압력을 받는 것 같아요. 몇 달 전에 탈당한다는 말이 있어서 내가 못 하게 했어요. 그래서 안했는데, 장관은 그것이 불편할 수 있을 거요. ‘우리가 좀 자유롭게 됐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안 된다’고 했죠.”

    ‘정치 쇼’는 못해

    -청와대나 열린우리당 현역의원들로부터 직접 영입 제의를 받은 적은 없나요.

    “직접 나를 만나서 한 적은 없고 민주당 국회의원을 통해서 통합을 이야기하데요. 그 다음에 입당 권유는 국회의원 아닌 쪽에서 한 거고.”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장관급하고, 그 외에 또 있어요. 두어 갈래.”

    -입당 제의를 받았을 때 당을 옮기게 되면 그 쪽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달라고 했습니까.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 없지. 처음부터 내가 명분 없이 움직일 생각이 없었으니까.”

    -민주당 도와주는 차원에서 공개할 용의는 없나요.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에요.”

    이 부분에 대해서 한 전 대표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정치적 신의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이해를 구했다. 영장실질심사에 대한 입장이 하루 만에 바뀐 이유가 궁금했다.

    -당초에 영장실질심사에 응할 계획이었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심사를 안 받을라고 했어요. 불공정하지만 사실이기 때문에. 당 대표를 지낸 사람으로서 치사하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어요. 지금까지 비교적 깨끗한 정치인으로 이미지 매김이 돼 있었는데, 이런 사실이 국민들께 부끄럽기도 하고, 주위에 곤혹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깨끗이 대가를 치르자고 생각한 거지.”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하고 곧바로 구속되려고 생각했던 거군요. 그런데 왜 갑자기 입장을 바꿨나요.

    “그날 저녁 내 방에 왔더니 조순형 대표랑 옛날로 치면 최고위원들이 다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입당 권유받은 것하고, 그동안 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했는지 다 설명해줬어요. 그랬더니 ‘이건 표적수사다. 그러면 한 대표가 (검찰에) 가면 안 된다, 당에서 한 대표 문제를 들고 나서야 한다’ 그러더라고요. 그 다음날 당사에 나갔는데 마침 당원들이 모두 몰려와서 나를 못 나가게 한 거요. 그래서 (당원들에게) 붙잡힌 거죠. 그런데 거기서 ‘나가는 척하고 쇼라도 한번 하자’ 그러더라고. 내가 안 된다고 그랬어요. 여기서 나가면 당원들이 ‘우~’하고 몰려와서 나를 막을 텐데, 그러면 막아서 못 갔다고 하는 이런 쇼는 하지 말자고. 이미 한화갑과 검찰 문제가 아니라 당하고 검찰하고 노무현 문제가 돼버렸어요. 그렇게 번져버렸죠.”

    -당 지도부가 이번 일을 총선용 이슈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 아닌가요.

    “정치하는 단체니까, 정치적으로 유리하면 활용하는 건 당연하죠. 저는 부인하지 않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결속되니까 당 입장에서는 활력이 솟았죠. 특히 호남 쪽에서 ‘보복’이라는 여론이 생기니까 민주당으로서는 큰 호재죠.”

    민주당, 여기서 잘해야 돼

    -그동안 민주당은 공천을 둘러싼 당내 분란도 끊이지 않았고, 지지도도 바닥에서 맴도는 수준이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당에다 이런 말을 했어요. 구멍가게도 장사를 할 때는 확실한 자기 고객을 관리해야 한다고. 민주당 입장에서 볼 때 확실한 고객이 호남표 아니요. 그러니까 호남표를 결속시켜야 하는데 물갈이한다 어쩐다 하면서 이걸 흔든 거요.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라고 하는데, 서울로 쫓겨온 사람들이 어디서 무슨 표가 나오겠소. 호남 여론이 물갈이를 원한다고 그러지만 투표할 때 되면 다 성향대로 하는 거요. 물갈이도 다 타이밍이 있어요. 물갈이라는 말이 민주당에서 먼저 나왔으면 민주당이 1중대요. 그런데 한나라당에서 먼저 나오고 나서민주당이 따라서 했잖아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사람들에게 깊이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한건주의로 한거요. 또 정동영 의장이 당선되니까 우리도 젊은 사람 내세우자 했잖아요. 그런 데서 또 열린우리당 따라간 거요. 먼저 나가야 하는데. 그러니까 정체성이 없어지고 지지도가 떨어질 수밖에 더 있습니까? 다행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체성을 찾게 된 거요. 다시 회복시켜가고 있고. 여기서 잘해야 돼요 민주당이.”

    -지도력 부재가 결국 가장 큰 문제였다는 말씀인데요.

    “어쨌든 지지도가 떨어진 것은 지도력하고 관계가 있어요. 모든 건을 이슈화하지 못했어요. 영입문제만 해도 영입위원회를 구성해서 영입위원장이 영입하고 당에서 결의하는 등 이벤트화해야 하는데, 사무총장이 영입자를 데리고 나와서 손들고 있을 때도 있고…. 그러니까 누가 어떤 경로를 통해 영입했는지를 모르는 거요.”

    -당내에선 한 전 대표와 박상천 전 대표를 물과 기름에 비교하던데요. 분당 이후 민주당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당을 살리고 내가 살겠다는 경우가 있고, 내가 살고 당이 산다는 경우가 있어요. 내가 대표할 때는 내 계보원을 사무국에 심어두는 일 같은 거 안 했어요. 그런데 누가 대표가 되면 자기 계보원을 심어서 당을 지구당으로 만들어버려. 그런 차이가 있어요.”

    한 전 대표는 박상천(朴相千) 전 대표에 대한 평소의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칼자루를 줄 수는 없지

    이 대목에서 이야기가 지난 대선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민주당은 한화갑 대표-노무현 후보 양 체제로 운영됐다. 노 후보의 지지도가 크게 떨어지자 양측 갈등도 적지 않았다. 당내 선거대책본부가 꾸려진 후 당 재정권을 둘러싼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그 갈등은 더욱 깊어갔다. 당시 노 후보측이 당에서 선거자금을 전혀 지원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하자 한 대표는 “당에 돈 한 푼 없는 데 어떻게 주느냐”며 발끈했다.

    “노사모가 당사 앞에서 한화갑이 돈 내놓으라고 데모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말을 한 거요. 과거 같으면 후보가 후원금도 걷고 당비 만들어서 당에 내놓고 쓰잖아요. 당에 돈 한 푼 없는데 어떻게 돈을 주느냐 이거요. 노무현 후보 된 이후 그때까지 한 10억원은 갔어요. 그래서 당에 돈이 없었어. 대통령후보 등록하고 123억원(선거보조금)인가 당에 나온 것 다 줬잖아요. 선거 끝나고 정당비용으로 나온 28억인가 있었는데 그것도 다 줘버렸어. 그런데 그런 거 갚지도 않고 다 나가버렸어. 외상으로 달아놓고.”

    -대선 때 이상수 총무본부장측에서 강하게 성토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대표와 당 지도부가 왜 당 재정권을 내놓지 않느냐고. 그때 당과 선대본 재정이 이중구조로 운영되면서 말이 많았는데요.

    “당연히 이중구조지. 왜 그러냐면 선거법상 선거대책위원회에 회계책임자를 두게 돼 있어요. 당의 재정권은 대표가 갖고 있는 것이고, 후보 재정권은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갖고 있는 거요. 당은 선거대책위원회와 별개의 기구인데, 그러면 대표가 거기서 당 운영비를 타다 써야 된다는 거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후보를 중심으로 안 하면 무조건 반역이여. 그때 노무현 후보가 재정권 내놓으라고 막 그랬잖아. 어떻게 보면 그건 참 무례한 거요. 돈이 필요할 때 당에 돈이 있으면 주는 것인데, 돈이 없는데 어쩌냔 말이요. 지구당에 보낼 돈도 못 주고 그랬는데.”

    -빚투성이었다면 재정권을 줘버리지 그러셨습니까.

    “그건 안 되지. 자기 칼자루는 자기가 갖고 있어야지, 대표가 그걸 줘버리면 되겠어요. 뭣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자기 일 자기가 하는 거요. 자기들은 선거대책기구 만들어서 하면 되지. (요즘 보니까 그때) 자기들이 돈을 다 만들어 쓰면서도 그랬던 거요.”

    -굉장히 오해를 많이 받았을 것 같네요.

    “그래도 어떻게 하겠소. 어쩔 수 없지. 내가 대표 할 때 정대철 최고위원이 그랬잖아요. ‘이 당에 200억원이나 빚이 있다는데 누가 빚을 졌냐고, 이거 범죄행위’라고, 그래 내가 불러서 ‘정 최고, 이렇게 된 거여. 누가 이거 썼어? 자꾸 누적돼서 이런 거여’ 설명해줬지. 그랬더니 그 후로는 아무 얘기도 안 합디다.”

    “많아, 수억 원씩이여”

    -그게 얼마 전 한 전 대표께서 2000년 총선 당시 2001년 당 후원비를 미리 당겨 쓰면서 장부상 빚이 누적된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죠.

    “나중에 당 대표 때 들은 이야기요. 2000년 총선 때 그해에 모금한 후원금을 다 써버렸어. 그러니까 당을 운영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후원금을 걷어가지고 다음해 걸로 해서 당에서 빌려 쓴 거요. 그것이 200억이여. 당의 입장에서는 이 다음해에 후원금 200억을 가져왔다고 하면 빚은 없어져버리는, 꼭 갚아야 할 빚이 아니었어요.”

    -총선 당시 당에서 현재 열린우리당으로 간 정동영이나 신기남 의원 등 당시 정치신인들에게 일반지원금 이외에 상당한 돈을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아요. 대표 때 공일환(당 재정국장)에게 뽑아오라고 해서 내가 그 목록을 봤어요. 많아, 수억 원씩이여. 그런데 김옥두 의원이 참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그때(2000년 총선) 김 의원이 사무총장을 했으니까, 김 의원에게 그걸 보여주면서 ‘이거 맞는가’ 물어봤더니 ‘맞다’ 이거라.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니까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십니까. 그거 알려지면 안 됩니다. 정치 신의 지켜야지’ 그럽디다. 그래서 나도 일체 말 안 해.”

    -김옥두 의원이 공개할 수도 있다고 했다는데.

    “그거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거요. 그러나 김 의원은 안 할 거요. 그런 치사한 짓 안 해, 절대.”

    -몇 명 정도나 되고, 총액은 얼마 정도나 되는지 말씀해주실 수 없습니까.

    “나는 그것…대충 한 20명 정도 되는데…. 총액은 잘 모르겠어.”

    -당시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거죠.

    “지금은 공소시효가 지났죠. 그래도 그런 거 이야기하는 거 아녀.”

    -아직까지는 공개하기 곤란한가요.

    “영원히 말 못 하죠.”

    -무덤까지 가지고 가시겠다는 건가요.

    “아, 그럼요.”

    지난해 공개된 2000년 4·13 총선 당시 민주당 중앙당 지원금 내역을 보면 전국 225개 지역구에 338억4000만원이 지원됐다. 1인당 평균 1억5000만원이고, 그중 91명의 후보가 2억원 이상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전 대표가 밝힌 20여명에게 지원된 자금은 이와는 별도의 이른바 ‘특별지원금’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해당 지역구별 선거인수에 따라 법정선거한도액이 평균적으로 1억2000 ~5000만원선인 점을 감안하면 특별지원금을 받은 후보들은 대부분 법정선거한도액을 초과했다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총선당시 특별지원금을 받은 의원들은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 책임은 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도덕적 책임은 피하기 어렵다.

    대표실은 유배지였다

    한편 한 전 대표는 대선 직후 노 후보의 측근인 신주류로부터 거센 사퇴압력을 받았다. 단일화 과정에서 대표가 노 후보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것도 그렇고, 당 재정권을 둘러싸고 깊은 불신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 전 대표는 노 당선자와의 회동에서 전당대회 때 대표직을 물려주기로 합의했으나 2003년 2월 곧바로 물러났다.

    “대선기간 동안 대표실은 한마디로 유배지였어. 언제나 나 혼자여, 하루 24시간. 내 주변에 있던 사람도 전부 선거대책본부에 가서 일하고 있고. 노 후보가 당선되니까 다 그쪽으로 줄서. 나는 누가 쳐다보는 사람도 없어. 그렇게 외로웠어요 내가. 그런데 물러나라 이거요. 내 임기가 1년 반 이상 남았지만, 권력을 잡고 나를 계속 흔들어댈 게 뻔해. 그럼 나는 어떻게 보이느냐. 대표직 지키려고 연연하는 사람으로 비쳐. 그래서 물러나려고 생각했지. 저쪽은 맨 날 춤추고 희희낙락하고 있다면 이쪽은 혼자 쓸쓸히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거여. 그거 한번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어차피 그만두려면 노무현 정권이 출발하기 전에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그만둔 거요. 코드 맞는 너희들끼리 한번 해보라고. 그리고 당무를 볼 수가 없었어. 선거 끝나면 자동 해산해야 할 선거대책기구를 한 달간 운영했잖어. 정대철이랑 저희들끼리 해먹겠다 이거요. 그런 짓들을 한 거요.”

    -그때 이상수 의원이 사무총장 아니었나요.

    “당무를 대표와 상의한 것이 아니라, 선거대책기구 운영하는 식으로 저희들끼리 해. 나한테는 보고도 없고. 그렇다고 ‘왜 보고하지 않느냐’고 맨날 싸울거요. 그래서 내가 정대철한테 ‘대표가 하고 싶냐’고 물어봤지. ‘하고 싶다’ 그런데. ‘그럼 당을 지킬 자신 있어? 김원기나 자네도 정거장이여’ 그랬더니 아무 말도 안 하데.”

    -결국 우여곡절 끝에 분당이 됐는데요. 한 전 대표께서는 지금 야당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국민여당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다 접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노 대통령이 탈당한 다음에도 표현을 ‘국민여당’이라고 했어요.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야당이죠. 대통령이 속한 당이 여당이고, 속하지 않은 당은 다 야당이에요. 그러니까 민주당은 야당이죠. 그러면서도 우리가 정권 재창출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포기할 수 없는 거예요.”

    대통령 탄핵은 반대

    -일각에서는 이런 지적이 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배신을 외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 대통령의 품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안락한 이중적 사고’가 민주당 내에 내재돼 있는 게 아니냐는.

    “당연하지요. 노 대통령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도 못 듣고, 인정도 못 받으면서 당선시키려고 노력한 것은 야당을 면하려고 그런 거니까. 당선된 후에 노 대통령에게 그랬어요. ‘나도 최선을 다해서 운동을 했소. 그러나 결코 노 대통령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요. 나를 위해서 했소. 여당으로 남으려고 한 거요’ 그랬어요.”

    -그게 민주당의 한계이자 딜레마 아닙니까.

    “우리가 유신 때부터 수십 년 야당으로 수난 받다가 처음으로 정권교체해서 여당 해보니까 ‘이래서 여당을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디다.”

    -열린우리당의 고단수 전략에 민주당이 말려들고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습니다.

    “선전술이나 이벤트화하는 포장술은 열린우리당이 나아요. 민주당을 요조숙녀에 비유한다면 열린우리당은 신식여성으로 하이힐에 미니스커트 입고 지나가는 여성으로 비유할 수 있을 거요. 그러나 민주당의 지지도가 떨어진 것은 조순형 체제 이후 정체성이 애매해지고, 방송에서 의식적으로 양당구도로 가서 그렇게 된 거요. 요즘 민주당이 정면 대결하니까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잖아요. 이제 민주당이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야 돼요. 야당으로서의 순수성.”

    -서울 출마를 선언하셨는데, 요즘엔 고향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입장입니까.

    “만약 옥중 출마를 한다면 고향으로 가는 것이 정도이고, 그걸 준비하는 것이 내 할일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애정을 아직 다 접지 않았다고 했는데, 탄핵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 국민의 여론도 들어봐야 되고. 제 개인적으로는 대통령도 불행할 뿐만 아니라 국가도 결코 유익하지 않아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통합이나 연합공천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치의 내일은 아무도 전망할 수 없는 거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어렵죠.”

    한 전 대표는 마지막으로 노무현 정부의 지난 1년을 “세대간 지역간 계층간 대립과 반목, 그리고 일종의 분노와 원한이 다 뒤섞여 있어서 사방 모든 구석이 안정감이 없다”는 말로 혹평하면서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벌려놨던 것을 차분히 정리해서 화합과 통합의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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