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파병까지 하는데 입국 때 지문 찍게 하느냐’ 문제제기 할 것”

  • 글: 방형남 동아일보 논설위원hnbhang@donga.com

    입력2004-02-27 1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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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찬용 인사수석의 ‘자주-의존외교’ 브리핑은 본인의 인식일 뿐
    • 조화 유지하며 유연하게 나가는 게 균형적 실용주의
    • ‘외교부 혁신’이란 말 다신 안 나오게 하겠다
    • 일곱 차례 해외근무 중 다섯 번이 미국…인맥 거명하자면 끝 없어
    • 북핵 문제는 우리 혼자 해결 못 하는 글로벌 이슈
    • 남북관계에서 완전한 상호주의는 어려워
    • ‘북한-파키스탄 핵 커넥션’, 정부차원은 아닌 듯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파병까지 하는데 입국 때 지문 찍게 하느냐’ 문제제기 할 것”
    일부 외교통상부 직원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외교는 큰 혼란에 빠졌다. 문제의 발언을 한 ‘범인’을 색출하기 위한 조사가 실시되고 노 대통령은 연두회견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가 있었다”며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시하기에 이르렀다.

    윤영관 장관을 경질하면서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이 거론한 ‘의존적 대외정책과 자주적 외교정책 비교’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됐다. ‘외교부 최대의 위기’ ‘자주파와 동맹파의 충돌’ 등 유례없이 비관적인 표현들이 난무하면서 정부의 외교노선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가 다시 등장했다. 뿌리째 흔들린 외교부가 제대로 역할을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깊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극심해 보이던 혼란과 불신이 반기문 신임 외교통상부 장관의 등장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미국 등 주요 동맹국의 외교 파트너들까지 일제히 환영하면서 기대를 표명했을까. 의문이 풀리기를 기대하면서 지난 2월8일 일요일 아침, 한남동 장관공관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장관이 새로 임명되면 언론이나 국민들이 ‘왜 그 사람이냐’고 의문을 제기하기 마련인데 반 장관에 대해서는 ‘왜 반기문이냐’는 반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다’는 분위기라고 할까요. 이례적인 지지를 받는, 제 표현으로 하자면 ‘준비된 외교부 장관’인 셈인데, 앞으로 펴나갈 ‘반기문 외교’의 청사진부터 이야기해주시죠.

    “‘반기문 외교’라고 하니까 너무 거창한 것 같네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외교정책의 기본, 특히 참여정부 외교정책의 기본은 ‘평화와 번영’으로 정리가 됩니다. 평화라는 측면에서는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고, 번영의 측면에서는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외교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화 유지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현안이 북한 핵문제입니다. 저 역시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외교적 과제를 안고 취임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한미동맹관계를 발전시키고 강화하는 것도 저의 과제입니다. 한편으로 우리 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과 해외투자 유치 및 수출 증대를 위한 외교력의 강화와 집중이 필요합니다.

    지난 50여년간 이러한 외교의 근간이자 기본정책에 큰 변함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상황변화에 따라 현안과 과제가 달라지는 만큼 적절한 외교적 대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안에 따라 적절한 방침과 대응을 만들어나가겠습니다.”

    취임 3주 만에 가족 축하모임

    -전반적인 이야기를 해주셨으니까 각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경력에 대해서도 차차 질문을 하겠습니다만, YS정부와 DJ정부에서 차관급 또는 차관으로 일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도 청와대 외교보좌관을 지냈습니다. 오랫동안 장관급 문턱에 머물면서 스스로 ‘아, 또 차관이냐’고 생각했을 법도 한데 드디어 장관이 됐습니다. 남다른 소감이 있을 텐데요.

    “어쩌다 보니 차관급을 오래 했습니다. 1996년 청와대 의전수석부터 시작했으니까 그 누구보다도 오래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장관이 이렇게 바쁜 자리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외교안보수석, 외교부 차관, 외교보좌관 등 나름대로 바쁜 자리에서 일했는데 외교부 장관은 특히 더 바쁜 것 같습니다. 대외 관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다루어야 하고, 국내적으로도 여러 가지 행정 절차나 대국회 관계, 언론 관계에 이르기까지 워낙 일이 많아서 5분, 10분을 쪼개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장관 취임 이후 오늘 아침에서야 아이들하고 처음으로 식사를 같이했으니 말 다했지요.”

    -가족 축하모임이었나요?

    “그렇죠. 집사람하고도 잠깐이나마 대화할 여유가 없군요. 책임이 막중하다고 생각하니 통 짬이 나질 않습니다.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장관은 한 부처의 수상이기 이전에 국무위원이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국무회의에서 인사를 할 때도 ‘외교부 장관이라기보다는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의 발전을 위해 미력하나마 노력하겠다. 저에게 주어진 외교통상이라는 분야는 물론 그 외에 나라의 전반적인 일에 대해서도 국무위원으로서 기여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민감한 시기에 노 대통령이 반 장관을 발탁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대통령으로부터 특별한 주문이나 요청을 받은 게 있습니까.

    “지난 11개월간 대통령 옆에 있으면서 끊임없는 대화를 했기 때문인지 이번에 따로 어떻게 하라는 지시는 없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위치와 상황이 있으니 이를 잘 관리해 나가는 것이 외교부 장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교부가 국민의 질책을 많이 받아 어려운 상황이지만, 대통령께서는 제가 외교부의 조직과 인원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필요하고 좋은 방향으로 외교부를 변화, 혁신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외교부 장관에 이어 차관과 문제가 됐던 북미국장이 바뀌었습니다. 지도부가 대폭 바뀌었으니 외교정책도 바뀌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참여정부 출범 1년을 결산하면서 새로운 외교를 추진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외교정책의 근본방향이 바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말씀 드린 대로 우리 외교의 방향은 변화가 없습니다. 평화번영 정책,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미동맹 강화 및 일본 중국 러시아와의 미래지향적 관계발전 등이 목표입니다. 앞으로의 외교는, 평소 대인 관계와 대외국 관계를 통해 상대방과 개인적 신뢰관계를 탄탄히 구축해서 격의 없이 의견을 나누는 외교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세상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우리 외교의 다변화가 시급합니다. 예를 들면 유럽연합(EU) 회원국이 5월부터 25개국으로 늘어나고 EU의 국제적 영향력이 확대됩니다. EU와의 관계는 물론 우리와 관계가 좀 소원한 편인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와도 관계를 증진시켜야 합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전문화시대입니다. 외교의 폭을 다원화시키고 다차원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환경 인권 군축 등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야에도 외교력을 집중할 생각입니다.”

    ‘부적절한 발언,’ 정보유출은 아닌 듯

    -전임 북미국장이 워낙 큰 ‘사고’를 쳐서 국민의 관심이 큽니다. 이번 파문을 거치면서 북미국장 자리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됐지요. 신임 북미국장은 무슨 원칙으로 선택했습니까.

    “북미국장이 왜 중요할까요. 미국은 지난 50년간 동맹국으로서, 또 최대의 경제 파트너로서, 그야말로 우리 경제와 안보의 사활과 관련된 위치에 있는 나라입니다. 또한 한반도 주변의 평화와 안정 유지에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요. 당연히 한미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이번 인사는 한미관계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간의 경험이나 경륜은 물론 소신도 중요한 잣대였습니다. 훌륭한 후보가 두세 명 나왔지만 김숙 국장이 그 기준에 잘 맞고 또 저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적임자라고 판단했습니다. 경험도 많고 인맥도 두터워서 아주 잘 뽑았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문제 발언은 인사조치로 일단락됐습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언급한 ‘정보유출’의 실상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기자의 통화내역 조사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는데요.

    “조사 결과 보안사항이 유출되지는 않았다고 결론이 났습니다.”

    -그러면 누군가 대통령에게 잘못 보고 한 게 아닌가요.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릅니다만 일단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관련 기관들과의 협조하에 조사해보니 보안유출 사고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철학 통하는 사람 쓰는 건 당연

    -갑작스런 외교장관 교체와 관련해 신임 장관의 외교가, 심한 표현을 하자면 ‘대통령 눈치보기’나 ‘대통령의 하명외교’가 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따라가는 외교에 대한 걱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기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든 새로 국가 지도자가 선출되면 각료나 보좌진들은 지도자의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설령 지도자와 다른 경력을 가진 사람이 기용되더라도 대개는 대통령이 추구하는 가치나 방향으로 함께 갑니다. 단지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스타일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노 대통령이 추구하는 평화번영 정책은 지난 50여년간 우리나라가 계속 추구해 온 큰 테두리 안에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코드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한미동맹관계를 강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인데, 노 대통령의 대미관(對美觀)은 확고합니다. 제가 그 동안 잘 지켜보고 배워왔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의존적 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주적 외교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외교부를 질책한 정찬용 인사보좌관의 발언에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게 아니냐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정 수석이 ‘자주외교’를 거론한 것은 제 판단으로는 본인의 여러 가지 인상이나 인식에 기초해서 얘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자주외교라는 게 무엇인지 구태여 정의하자면, 제가 취임사에서도 언급했듯 균형적인 실용외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에 200여 나라가 있지 않습니까? 각각 국가관계가 있습니다. 세계화를 하면서 지역협력도 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이념과 가치가 공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국익을 최대한 도모하면서 조화롭게 사느냐가 문제죠. 일률적, 획일적인 정책만으로는 안 되니까, 실용적인 입장에서 신축성 있고 유연한 외교를 하는 게 중요합니다. 조화를 유지하며 유연하게 나가는 게 균형적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미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나라의 의견이 항상 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미국에 의존하는, 특히 안보협력 분야에서 수혜자적인 입장에 있었을 때와 지금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1980년대, 90년대 초에 한미 간에 통상마찰이 잦았습니다. 그것을 마찰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서로의 입장을 얘기하는 과정입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입장을 서로 기탄없이 얘기하는 것이 건전한 동맹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냐 동맹이냐 양분해서 얘기하는 것도 바람직스럽지 않습니다. 많은 국민이 한미동맹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입장을 좀더 적극적으로 반영시키려고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용산기지 이전은 거리 변화일 뿐

    -한미관계의 각론으로 들어가 보지요.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국내에서 갈등이 심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내느냐 안 보내느냐의 갈등도 있었고 몇 명을 보낼 것인지도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정부 내에서도 3000명이다, 1만명이다 목소리가 다양했습니다. 대미관에 대한 시각차가 혼란을 초래한 것은 아닙니까?

    “분명하게 말씀 드립니다만 이라크 파병문제와 관련해서 한미간에 갈등은 없었습니다. 처음에 미 국방부의 롤리스 차관보와 허바드 주한대사가 저한테 ‘파병해 줬으면 좋겠다’고 공식적으로 요청을 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파병은 매우 뜨거운 감자’라면서 주권적인 사항이기 때문에 무엇이 됐든 한국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국내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죠. 그렇지만 저는 이것을 국론의 분열이라고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경험하고 배워가는 것이고, 국론을 통일시키는 과정에서 얻는 교훈이라고 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웠죠. 그러나 파병을 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다만 얼마를 보내느냐, 어떻게 우리의 안위를 확보할 수 있느냐, 시민단체 등이 흔쾌하게 받아들일 것이냐, 그런 점에 관해서 걱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청와대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을 수 있죠. 청와대 조직도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각자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지난해 10월18일 추가파병을 결정한 이후에는 청와대나 정부 내에서 이견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미국과 관련된 현안으로 사사건건 국론이 분열되고 정부도 빨리 단안을 내리지 못해 혼란이 계속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용산기지 문제도 상당한 반대가 있었는데 결국 이전으로 낙착됐습니다. 정부는 한미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만 실제론 점증하는 반미 분위기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용산기지 이전은 우리 정부가 1988년부터 미국측에 요청해 왔죠. 한미연합사와 유엔사가 용산에 잔류하느냐 마느냐에 대해서는 미국도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허바드 대사나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 등의 얘기를 종합하면, 미국은 아무런 정치적 배경 없이 진심으로, 오산 평택으로 이전하는 게 여러모로 좋겠다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지난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 참석했다가 현장을 보고 나서 밝힌 바도 있습니다만, 미국 입장에서는 오랜 세월 미군이 주둔하면서 한국민과 접촉하는 과정에 여러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해 반미감정을 촉발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전이라고 해야 20~30km의 거리 변화일 뿐이고, 이는 지휘통제 측면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옮기는 게 낫다고 결론 내렸다는 것입니다.

    현재 주한미군 기지는 전 국토에 걸쳐서 120~130여 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이를 관리하는 일은 미국의 큰 고민입니다. 미군부대가 과거에는 깊은 산속에 있었지만 지금은 이 지역이 모두 주택가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들 미군기지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전력유지, 효율성, 억지력 강화를 위해서도 더 유리하다고 미국 스스로 전략전술적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파월 장관의 전화

    -장관께서 청와대를 떠난 이후에 청와대 보좌관 개편 인사가 있었습니다.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에게 더욱 힘이 실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외교를 잘 아는 사람들이 떠나고 군사분야 전문가들이 기용되면서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약해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미동맹관계를 우선시하는 사람이 청와대에서 나가고 그렇지 않은 인사들이 들어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코멘트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우선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있는 제가 한미동맹관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신임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방보좌관은 저와 오랫동안 함께 일한 분들입니다. 한미관계를 포함해 대외관계를 많이 다뤘고 여러 분야에 인맥도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외교안보팀이 잘 구성됐다고 봅니다.”

    -외교보좌관으로 있는 동안 NSC가 외교부 출입기자의 통화내역 조사를 국가정보원에 의뢰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그때는 몰랐습니다. 당시 외교부 고위간부와 NSC가 협의를 해서 조사를 결정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외교부로서도 여러 가지 불필요한 의혹을 받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고, 혹시라도 공직자가 지켜야 할 규정 등을 위배한 사항이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장관으로 임명된 1월16일 당일 파월 미 국무장관이 축하전화를 거는 등 미국의 반응이 각별했습니다. 국무부 대변인은 ‘경륜 있는 외교관이자 뛰어난 공직자’라고 치켜세웠고 켈리 차관보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외교관’이라고 했더군요. 대표적인 미국통인 데다 미국측의 기대도 높은 것 같습니다.

    “34년간 외교관 생활 동안 연수를 포함해 일곱 차례 해외근무를 했습니다. 그 가운데 다섯 번을 미국에서 근무했고요. 외교부 본부에서 가졌던 직책도 전부 미국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 공화당 구분 없이 미국내 정관계 인사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름을 거명하자면 끝이 없겠지요.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도 미 정부의 전현직 인사, 학계 언론계 인사를 부단히 만났습니다. 파월 장관은 국무장관이 되기 전부터 친분이 있었습니다. 외람되지만 인맥이나 여건상으로는 어느 정도 갖춰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6자회담과 북한의 속셈

    -거창한 외교도 중요하지만 국민 입장에선 피부에 닿는 외교가 더 중요합니다. 테러방지 대책의 하나라고는 합니다만, 최근 미국이 비자 신청받을 때 지문을 채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동맹관계를 생각해 이라크에 군대까지 보내는데 미국은 한국 국민의 자국 방문을 점점 더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 국민의 반미감정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될 우려도 있고요. 미국의 비자정책 개선을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까.

    “파월 장관을 만나면 거론하겠습니다. 한승주 주미대사를 통해 미국의 방침이 결정되자마자 우리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혔습니다. 양국의 특수한 동맹관계라든지, 지적하신 대로 어려운 여건에도 이라크에 파병을 하는데 이렇게 할 수 있느냐 등등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우리 국민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월25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열립니다.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2차 6자회담에서 모든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리라고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인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대치는 무엇이냐, 지난 6개월 동안 북한을 포함해 모든 참여국들과 여러 채널을 통해 부단하게 협의해 왔습니다. 남북간에 직접적인 협의는 없었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지금 북한이 처한 입장이 그렇게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어요. 저는 북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9일 성명을 통해 핵동결을 할 테니 여러 가지 상응조치를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최근에도 핵동결 대(對) 보상을 다시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 북한이 처해 있는 입장, 그간의 상황, 그런 얘기가 나온 배경을 고려하면 북한이 이제는 핵문제를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해결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도 북한의 태도를 부추기는 코멘트를 한 겁니다. 윤영관 전 장관은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고 파월 장관은 긍정적(positive)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 중에도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자꾸 주저하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럴 경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합니다.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동결이 궁극적으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을 확인한다면 좋은 징조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 대해 북한이 대외적으로 동의를 표하고 워킹그룹이라도 구성해서 실무적인 협의를 해나가기로 한다면 상당히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병행’과 ‘연계’의 딜레마

    -리비아의 자발적인 핵 포기, 이란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은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반면 최근에 파키스탄이 북한에 핵기술을 제공했다는 커넥션 의혹이 제기되면서 6자회담에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있습니다.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얼마 전 방한했을 때 북한에 핵기술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단언한 것도 거짓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1차 조사 결과에 대해 들었습니다만 내용을 좀더 깊이 파악해가면서 대처할 생각입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을 비롯한 관련 국가들에 진상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촉구할 것입니다. 파키스탄의 핵기술 제공 자체가 6자회담 전체 프로세스에 걸림돌이 되기보다는 문제해결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노 대통령에게 핵 협력이 없었다고 얘기한 것은 아마 정부 차원에서는 없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지금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칸 박사 개인의 유출에 관한 것인 듯하고요. 먼저 정확한 과정을 파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파키스탄 정부에 협조요청을 했습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파병까지 하는데 입국 때 지문 찍게 하느냐’ 문제제기 할 것”

    반기문 장관은 달변이다. ‘기름장어’라는 별명대로 두 시간을 넘긴 인터뷰 동안 까다로운 질문을 던져도 막힘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가장 큰 현안인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외교부가 통일부와 긴밀하게 조율을 하십니까? 6자회담과 남북대화는 어쩐지 보조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통일부 입장에서 보면 어떤 경우에는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통일부는 금강산 개발, 개성공단 개발 등 남북관계를 가능한 한 빨리 진척시켜 나가려고 하지만 북한 핵문제라는 큰 이슈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는 어느 정권에나 어려운 숙제입니다.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1991년부터 이를 남북관계와 연계할 것인지, 병행 발전시킬 것인지의 문제가 대두됐습니다. 예를 들어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 잠수함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남북관계와 연계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노 대통령의 입장은 햇볕정책의 근간은 유지하되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핵문제의 국제적인 진전 과정과 연계해가면서 조화롭게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남북관계를 잘 진행시켜 나가면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생기면 핵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겁니다. 반면 북한 핵문제는 우리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글로벌 이슈입니다.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긴밀히 협의할 문제이므로 이를 도외시하고 남북한 관계를 진전시킬 수만은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지난번 장관급 회담에서 “지난 1년 동안 해준 게 뭐가 있느냐, 앞으로 6개월 동안 지켜보겠다”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해줄 것은 다 해주면서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면 남북관계가 잘못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북한 나름대로 의도가 있겠죠.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 가장 많은 경제원조를 해온 것이 우리 아닙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북한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지 자기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주지 않았다는 얘기를 한 게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당신들이 경협을 더 받으려면 핵문제 해결을 위해 좀더 성실하게 나오라’고 촉구합니다. 남북관계에서 완전 상호주의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나 북한도 국제규범이나 모든 나라가 준수하는 원칙은 지켜야 합니다. 정부는 그런 점을 장관급 회담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 장관은 취임 후 과장급 직원과의 대화(1월6일), 전 직원 참여 워크숍(1월7일), 공관장 회의(2월11~13일) 등을 통해 의욕적으로 외교부 개혁을 추진중이다. 400여명의 외교부 직원이 참여한 워크숍에서는 업무혁신, 조직혁신, 인사분야 혁신을 주제로 하루종일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업무혁신과 조직혁신

    “제 방침은 이렇습니다. 업무혁신 분야에서는 개선할 게 있으면 당장 내일부터 시행하자고 했습니다. 불합리한 부분은 바로 고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조직혁신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조직을 혁신한다고 하면 흔히 사람을 자르고 조직을 줄이는 것만 생각하더군요. 효율성 낮은 군더더기는 과감히 자르되 외교를 잘하는 나라를 벤치마킹해서 앞으로 40~50년간 혁신이나 조직개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제대로 해보려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통령께도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지만 복수 차관제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에서 외교부에 차관을 한 명만 두는 나라는 드뭅니다. 비근한 예로 일본은 차관이 부대신 2명을 포함해서 6명입니다. 미국도 6명입니다. 아미티지 부장관까지 넣으면 7명이지요. 우리는 장관이 움직이면 차관이 자리를 지키고 차관이 움직이면 장관이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도 국회에는 장관이나 차관이 안 가면 난리가 납니다.

    제가 차관을 하면서 외국과 정책협의회를 한 번도 못 했어요. 남북 정상회담 이후 2000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 차관이 열 명이 넘습니다. 관례상 제가 10개국을 방문해 차관들과 정책협의회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자리를 뜨면 장관이 움직이지 못하니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워크숍에서 여러 가지 얘기가 나왔다는데, ‘부적절한 발언’ 파문 이후 외교부 직원들이 서로 대화하는 것을 꺼린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기자와 만나는 것도 피하는 분위기고요.

    “외교부가 언제부터 이렇게 관료화 됐느냐, 왜 이렇게 관료주의가 심하냐, 타 부처에서 온 직원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통상교섭본부는 경제부처에서 온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다른 행정부처가 외교부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라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언론과 관련해서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기자들에게 쫓기며 묻는 것에 대해서만 일문일답식으로 대응하다 보니 말꼬리를 잡히고 실수도 한다는 겁니다. 그러지 말고 언론담당관을 정해서 ‘외교부가 본 오늘의 국내 관심사와 국제 관심사는 이런 것이다, 외교부의 입장은 이렇다’라고 먼저 밝히자는 겁니다. ‘프레스 가이던스(press guidance)’를 하자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국민과 언론을 고객으로 생각하겠다는 발상이 담겨 있습니다.”

    -흔히 상사를 분류하는 유형 중에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지칭하는 ‘똑부형’이 있지 않습니까. 장관께서는 전형적인 똑부형이라고 하니 부하들이 스트레스를 좀 받겠죠.

    “똑똑하지만 게으른 지도자가 제일 좋다고 하던데…. 천성 탓인지 제가 워낙 부지런하게 살았습니다. 시골 태생이기도 하고요. 미국 등 외국에는 인맥이 많은데 서울에는 자라온 환경 때문인지 인맥이랄 게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부지런하고 성실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 부분도 있었던 것 같네요.”

    ‘기름장어’와 ‘만물박사’

    -얼마 전 미국의 정치 관련 잡지에 실린 장관 평가에서 파월 장관이 유일하게 A학점을 받았습니다. 그도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이더군요. 새벽 5시에서 5시30분 사이에 일어나서 30분 동안 인터넷으로 대략 업무를 파악한 뒤 7시 전에 국무부에 출근한다고 합니다. 저녁 7시, 8시까지 일하다 귀가한 뒤에도 보통 두어 시간 이상 업무와 씨름한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 장관들도 거의 비슷합니다. 아까 말씀 드렸듯이 집에서 가족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을 정도니까요. 개인보다는 공(公)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외교부 과장들을 모아놓고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우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남을 먼저 생각하고, 개인적인 것보다는 공적인 것을 먼저 챙겨라.’ 이제까지 생일이든 결혼기념일이든 가족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상관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일을 위해서는 토요일 일요일도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쪽이고요.”

    반 장관이 청와대에 근무하던 시절 출입기자들은 그에게 ‘기름장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달변인 데다 외교문제에 해박해서 배경설명에 탁월하고 아무리 어려운 질문이라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간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다. 취임 후 첫 단독 인터뷰였으니 화끈한 답변이 나올 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역시 별명대로다.

    한편 노 대통령은 그를 ‘만물박사’로 불렀다고 한다. 그가 맡았던 분야에 대한 자신의 신뢰를 그렇게 표현한 듯하다. 반 장관이 수장이 되어 펼쳐나갈 외교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신임이 지속될 수 있을까. 바라건대는 부디 그렇게 되어 한국의 외교가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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