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新權府’ NSC, 조정·통제 권한 막강한 ‘정보의 저수지’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shamora@donga.com

    입력2004-02-27 15: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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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참여정부 들어 외교안보정책의 사령탑으로 떠오른 이 기관이 주요 안보부처들과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는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NSC는 어떤 조직이며 어떻게 움직여왔고, 타 부처와의 갈등은 왜 불거졌나. 또 이를 해결할 방법은?
    ‘新權府’ NSC, 조정·통제 권한 막강한  ‘정보의 저수지’

    지난해 9월 이라크 파병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NSC 상임위원회.

    1998년 5월 세종연구소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외교안보정책 운영시스템을 들여다보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당시 새로 집권한 김대중 정부 외교안보수석실의 주요 인사들이 수 차례 연구소를 방문했을 만큼 정권 핵심부와의 깊은 교감하에 이루어진 이 연구는 특히 미국의 NSC 사무처를 공들여 탐구했다.

    완성된 보고서는 백악관 NSC를 모델로 한 청와대 안보시스템 개편을 건의하면서 ‘NSC 사무처를 만들어 100명 규모의 스태프를 확보할 것, NSC로 정보보고를 일원화할 것, 정책조정을 체계화할 것’ 등을 주문했다. 당초 공개 예정이었던 이 보고서는 청와대에 전달된 후 공개하지 않기로 방침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못했다. 정원 10여명의 NSC 사무처 조직은 만들어졌지만 실무기능과 권한은 임동원씨가 맡고 있던 외교안보수석실로 집중됐기 때문. 이후 5년 가까이 탁상공론으로만 떠돌았던 ‘NSC 강화방안’은 2003년 초 노무현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구성될 무렵 화려하게 부활했다. 모습을 드러낸 새 정부의 외교안보시스템은 1998년의 보고서에 담긴 건의내용과 거의 일치했다.

    당시의 프로젝트를 총괄 진행했던 사람은 인수위에 참여했다가 훗날 NSC 사무차장이 된 이종석 당시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실장. 백악관 NSC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우연치고는 묘한 우연이다. 인수위에 참가했던 인사들은 “NSC 강화는 안보분야 인수위원들의 공통된 견해였지 이 사무차장 개인의 생각은 아니었다”며 “후보시절부터 여러 자문위원들이 NSC 강화를 건의해왔다”고 말한다.

    당시 인수위는 왜 NSC 강화를 결정했을까. 인수위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우선은 2003년 초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한반도의 위기상황 때문에 보다 정밀한 위기관리시스템이 필요했다는 것. ‘북핵이 없었으면 NSC도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임동원 시스템’에 대한 반성. DJ 정부 시절 처음 마련된 NSC 상임위원회는 그 운영을 임동원이라는 개인의 역량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회의는 열렸지만 그 결과를 정책화하는 것은 외교안보수석의 결정에 달려 있었던 것. 이후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 통일 외교안보특보를 거친 임동원씨의 거취에 따라 논의구조와 결정방식도 바뀌었다. 각 부처의 정보가 통합·공유되지 못했고 부처간 이견을 조율하는 차관보급 회의는 상징적인 수준에 그쳤다. 한 인수위 참여인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장 큰 문제는 임동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체제였다는 점이었다. 노 대통령에게는 임동원의 역할을 맡아줄 사람이 없었다. 외교안보현안을 직접 챙겼던 DJ와는 달리 노 대통령은 이 분야의 경험도 부족하다. 인수위원들은 여러 사람이 시스템에 따라 함께 고민하는 NSC로 임동원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다행히 당선자도 흔쾌히 응했다. 인수위 후반 무렵 백악관 NSC를 모델로 조직도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1947년에 만들어진 백악관 NSC도 처음 한동안은 자문기구에 불과했다. 한국과 마찬가지였던 것. 그러다 1969년 닉슨 행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현재와 같은 위상과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100여명에 가까운 사무처 직원을 충원해 전략기획 등 독자적인 정책능력을 갖추고, 상황실 운영을 통해 각 부처 정보를 일괄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통령 둘러싼 정치환경

    정치학자들은 닉슨이 이렇듯 NSC를 강화하게 된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키신저라는 강력한 인물이 NSC의 수장인 외교보좌관으로 입성했다는 사실. 다른 하나는 국무부와 국방부, CIA의 전문관료를 신뢰하지 못했던 닉슨 본인의 성향과 당시 백악관을 둘러싼 불리한 정치 환경이다. 공화당 출신인 닉슨에게는 케네디와 존슨으로 이어진 민주당 집권기간 동안 이들의 안보철학에 익숙해진 관료조직도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때문에 닉슨에게는 기존의 관료조직을 견제하고 자신의 철학을 실현할 강력한 보좌진이 필요했다. 또한 계속되는 의회와 언론의 공격에 대항해 대응논리를 개발해 자신을 방어해줄 시스템도 필요했다. 이러한 필요성이 키신저의 임명과 NSC 스태프 조직 강화로 연결된 것이었다. 이 같은 닉슨의 NSC 강화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참여정부 출범 당시 노 대통령이 처해 있던 상황을 연상케 한다. 비록 정권교체는 아니지만 자신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정부 관료들,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가 그것이다.

    인수위 참여인사들은 NSC와 정치상황을 연결짓는 데 대해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보정책 결정시스템의 효율화와 체계화가 목적이었을 뿐 정치상황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학계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NSC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대통령의 헤게모니가 강력하다면 기존의 관료체계를 조정할 조직을 따로 만들 이유가 없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이 많은 국방부나 외교부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철학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강력한 제어장치를 맡길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관리’와 ‘정책조정’

    마침내 새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3월19일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NSC 기능 대폭 강화’라는 기사를 실었다. 전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NSC를 명실상부한 국가안보위기관리 사령탑으로 만드는 방안을 통과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이들 기사는 “NSC의 상근인력이 10명에서 69명(파견인력 24명)으로 늘어나게 됐다”고 전했다.

    사실 이날의 보도는 다소 호들갑스러운 면이 있었다. 단순히 NSC 사무처 확대라고 하기보다는 예전 외교안보수석실과 청와대 상황실의 기능 및 인원이 NSC로 흡수·통합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기 때문. DJ 정부의 외교안보수석실(30명), 상황실(5명), NSC(10명)의 정원을 합친 45명에다, NSC가 새로 담당할 위기관리업무 인력 등 파견공무원 24명을 합친 것이 새 NSC의 정원이었다. 대신 외교안보수석실의 후신인 안보보좌관실은 인원이 4명으로 줄었다.

    본래 NSC(National Security Coun- cil)라는 명칭은 ‘국가안전보장회의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 자문회의를 의미한다. 법적으로 사무처는 이 회의의 사무를 처리하는 곳. 그러나 노무현 정부 들어 회의운영은 실제 사무처 업무의 10분의 1 이하에 불과해졌고 대신 대통령 보좌가 핵심임무가 되었다.

    2003년 한해 동안 단 두 차례 열린 국가안보회의는 실질적인 회의체라기 보다는 일종의 ‘행사’에 가깝다.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이 회의는 주로 대형 안보이슈가 발생했을 때만 열리고, 실제로는 참석자가 비슷한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진다.

    장관급끼리의 업무협의 및 의결은 주로 매주 목요일 열리는 NSC 상임위원회에서 이뤄진다. 그 전까지 통일부 장관이 담당하던 상임위원장은 참여정부 들어 사무처장(장관급)을 자동 겸직하는 안보보좌관이 맡게 됐다. 반면 외교보좌관과 국방보좌관은 ‘배석할 수 있’을 뿐 상임위원이 아니므로 공식적인 안보정책 결정라인에서는 배제되어 있다.

    NSC 사무처의 핵심역할은 크게 ‘정보관리’와 ‘정책조정’의 두 분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사무처의 네 개 주요부서 가운데 정보관리실과 위기관리센터는 각 부처에서 올라온 정보와 현황을 정리·가공해 안보보좌관 및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input’을 기본 임무로 한다. 물론 올라온 정보를 다시 가공해 각 부처에게 공유·전파하는 기능도 한다. 반면 전략기획실과 정책조정실은 정책을 다룬다.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전달해 정책으로 만들거나 특정현안에 대한 각 부처의 입장을 조정해 통일된 결론을 만들어 이를 다시 부처로 내려보내는 ‘output’ 역할을 맡는다. 지금부터는 이 같은 분류를 바탕으로 NSC가 과연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실체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정보가 너무 많아 주체 못했다”

    정보를 장악하는 이가 대세를 장악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NSC가 오늘날의 위상을 갖게 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원칙적으로 모든 정보가 NSC를 거쳐야만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각 부처 장관이 직접 혹은 담당 비서관을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하던 예전의 시스템 대신 NSC가 일괄적으로 모아 통합·가공·정리해 보고를 올리게 된 것.

    이 같은 NSC의 기능은 노 대통령이 여러 차례 힘을 실어줌으로써 더욱 강화됐다. NSC 강화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3월 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안보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부처 내 안보관련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밝혔다. NSC가 실무 부처들과 마찰을 빚는 징후가 감지되던 7월에는 “북핵이나 한미동맹 등 주요 외교안보정책은 반드시 NSC를 통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정보처리는 다시 상황을 24시간 감시하며 추이를 지켜보는 상황실 업무와 각 부처에서 올라오는 정보보고를 처리하는 정보관리 업무로 나뉜다. 전자는 위기관리센터가 담당하고 후자는 정보관리실의 업무다. 백악관 NSC와 거의 흡사한 청와대 NSC가 유일하게 ‘독창성’을 발휘한 곳이 바로 이 부분. 백악관 NSC는 정보관리실이 따로 없이 상황실에서 모든 정보를 통제한다.

    미국의 NSC 상황실은 백악관 서편 지하에 자리하고 있다. CIA, 국무부, 국방부, 에너지부, 환경부 등 각 부처에서 파견된 20여명의 근무요원들이 모니터를 통해 각지에서 수집되는 위성정보 등 데이터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하고, 각 부처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계속해서 취합한다. 접수된 정보는 두시간마다 한 페이지 안팎으로 요약되어 사무처장에게 전달되고 사무처장은 다시 이를 24시간마다 한 페이지짜리 보고서로 만들어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新權府’ NSC, 조정·통제 권한 막강한  ‘정보의 저수지’
    청와대 동 별관 지하실에 위치해 있는 NSC 상황실의 외양은 백악관 NSC와 거의 흡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가적 재난관리까지 업무에 포함되어 있어 각군은 물론 소방방재본부 등의 현황 시스템도 들어와 있다는 것뿐. 담당자들이 24시간 한반도를 둘러싼 바다와 하늘, 휴전선 인근을 비롯한 곳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것은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이나 국방부 통제실, 재난관리상황실 등과 연결되어 있어 수시로 현황정보를 공유한다. 그러나 NSC 상황실은 미국과는 달리 평상시에는 따로 보고를 하지 않는다. 특이사항이 발생할 경우에는 류희인 위기관리센터장의 결정에 따라 즉시 NSC 전체에 전파하고 권진호안보보좌관 및 노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보고 여부는 류 센터장과 이종석 사무차장의 상의를 거쳐 결정된다.

    국정원 및 국방 외교 통일부 등 4개 부처에서 올라오는 정보보고는 이와는 분리되어 정보관리실에서 처리한다. 외교부 재외공관의 전문, 국내·국외에서 국정원 요원들이 작성한 일상보고 및 이슈별 보고, 국방부와 합참의 안보위협 및 특이동향 분석, 통일부의 북한 정세변화 보고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들 보고서는 정보관리실의 정리·가공을 거쳐 대개 하루 한 차례씩 노 대통령과 권 보좌관에게 보고된다. 반드시 권 보좌관을 거쳐야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눈 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상적인 내용의 경우는 두툼한 보고서로 만들어 집무실 책상 위에 두지만, 주요내용을 간추려 이 사무차장이 아침 8시 회의자리에서 보고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 가운데 국정원과 외교부의 정보가 가장 양도 많고 속도도 빠르다는 것이 내부 관계자들의 중평이다. 외교부 전문만 해도 하루에 수백 페이지에 달한다는 것. NSC의 한 관계자는 “처음 들어왔을 때는 그 양이 너무 많아 놀랐다. 몇 개월이 지나 진행중인 현안들을 대부분 따라잡게 된 후에야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정보관리실은 취합한 정보를 NSC 내부에서 공유하고 필요한 경우 각 부처에 전파하기도 한다. 방대한 정보 가운데 무엇을 선별해 어느 선까지 보고·전파할지는 김만복 전 정보관리실장(국정원 기조실장 부임으로 현재 공석)과 이 사무차장이 상의해 결정했다.

    정보관리실이 맡고 있는 또 한 가지 주요업무는 ‘정세평가회의’의 운영. 각 부처 차관급 인사가 자기 부처에서 수집된 주요정보를 들고 참석해 주요현안의 진행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자리다. 출범 초기에는 매일 열리다시피 했다는 이 회의는 최근에는 1~2주에 한번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

    회의 준비는 정보관리실에서 하지만 이 사무차장이 주재하는 이 회의에서 각 부처 참석자들은 다른 부처의 정보보고나 분석, 평가를 들으며 상황을 공유한다. 수행원으로 이 회의에 참석해 보았다는 한 정부 관계자는 “각 부처는 주로 자기 정보만 읽어보고 오는 데 비해 NSC는 모든 부처의 정보를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주로 NSC측이 ‘큰 그림’을 제시하며 회의를 주도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보생산부서가 대통령에게 일대일로 직접 보고하던 시절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이 회의는 한 가지 사안에 대해 각 부처별 분석이 자유롭게 교환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영변 핵시설에서 연기가 감지됐다면 미국으로부터 위성정보를 받은 국방부와 국정원, 통일부의 북한 의중 분석, 재외공관에서 수집한 간접정보 등이 모두 동원되어 사태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토론을 벌인다. 회의의 결론은 NSC 전략기획실이나 정책조정실로 연결되어 정책에 반영된다.

    각 부처의 정보를 모아 NSC가 유통을 담당하는 이런 시스템은 예전 시스템에 비해 상당히 진일보한 것이다. 이는 국정원에서 생산한 정보도 예외일 수 없다. 매일 아침 국정원장이 대통령과 독대하던 관행이 참여정부 들어 사라진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여서 CIA 국장도 ‘공식적으로’ 별도의 파일을 만들어 대통령과 독대하는 일은 없다. 백악관 NSC 상황실 정보담당자를 만난 적이 있다는 한 학계인사는 “이 정보담당자는 ‘한국에선 이런 시스템이 불가능할 것이다. KCIA가 그걸 감내할 수 있을까’ 하며 의구심을 표하더라”고 말한다.

    사실 이러한 의구심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정부 초기 몇몇 부처들은 장관의 직접보고가 ‘공식적으로’ 불가능해진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특히 국정원측 인사들은 “NSC가 손을 대기 시작하면 국정원 보고가 정치적으로 훼손될 우려가 있다”거나 “대통령과 정보기관 총수 사이에 핫라인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국정원의 위상이 약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깔린 목소리였다.

    NSC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의 또 한 축은 각 부처가 추진하는 정책의 조정이다. 이 가운데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한 주요 정책과제의 경우는 전략기획실이 주도하고, 상황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실행단계에 이르면 정책조정실이 넘겨받아 관리한다. 이라크 파병의 경우 논란이 거셌던 파병 여부 결정, 규모와 성격 등은 서주석 전략기획실장의 주도하에 외교부와 국방부가 협의해 결정했다. 이후 추진방법과 절차, 예산 등 구체적인 문제는 이봉조 정책조정실장이 논의를 주도했다.

    대통령이 안보관련 지시사항을 내리면 이를 정책으로 추진하는 기능 역시 1차적으로는 전략기획실과 정책조정실이 맡는다. NSC 차원에서 바로 처리할 사안인지, 부처에 전달할 것인지, TF를 구성해야 할 문제인지 등은 NSC 간부회의나 담당실장이 이 사무차장과 상의해 결정된다. 물론 노 대통령이 각 부처에 직접 지시를 내리는 경우도 있고, 각 부처에서 직접 정책을 기획해 노 대통령에게 상신하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의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살피고, 개별 부처가 상신한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과 지시사항을 피드백하는 것도 정책조정실의 몫이다.

    그렇다고 NSC가 부처간 정책집행을 ‘조율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용산기지 이전, 이라크 파병 등 주요이슈에 관한 핵심지침을 NSC에서 작성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전략기획실의 경우 장기전략과 주요현안의 처리방향에 대해 자체적으로 보고서를 만든다. 이렇게 작성된 보고서를 어느 선까지 공유할 것인지는 담당실장이 간부회의나 사무차장과의 상의를 통해 결정한다.

    관련 부처간 정책조정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은 이종석 사무차장이 운영하고 이수혁 외교부 차관보,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 등 차관급 인사들이 참석하는 ‘실무조정회의’다. 이는 NSC 상임위에서 방침이 정해지면 이를 실무적으로 조율하는 회의체. 정책조정실이 주관하며 주 1회 개최가 원칙이다.

    실무조정회의에서도 다루지 못한 일상적인 부처간 업무조정은 NSC에 파견 나와 있는 각 부처 출신 4~5급 행정관들의 몫. 전략기획실에는 행정관이 부처별로 한 사람씩 나와 있는데 대부분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학자 출신이다. 이에 비해 정책조정실에는 민간 출신은 거의 없고 대부분 파견 공무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간략한 사항에 대한 정책조율은 NSC에 와 있는 파견 공무원들 간의 협의로 마무리되기도 하는데, 이를 위해 주요 부처와 NSC 사이에는 도청이 불가능한 통신수단이 설치돼 있다고 한다.

    “정책조정실장은 우리가…”

    노무현 정부 NSC 운영방식의 또 한가지 특징은 TF제도의 활용이다. 각 부처의 과장급 실무자도 참석이 가능한 TF회의는 각 층위별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한미동맹 조정 등 잠깐 운영되다가 사라진 것까지 포함하면 부지기수라는 설명이다. TF의 운영 또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큰 주제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전략기획실이 맡다가 이행단계에 이르면 정책조정실로 넘어간다고 한다.

    NSC 안에서 정책조정이 이뤄지는 간단한 사안의 경우, 실장은 1급인 데 비해 파견 공무원들은 4~5급이 많으므로 이봉조 정책조정실장이나 서주석 전략기획실장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견해도 있다. 이 때문에 NSC 구성 당시 안보 부처들은 정책조정실장과 전략기획실장에 누가 임명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불만의 기색을 내비쳤던 것은 NSC 실장 가운데 자기부처 출신이 한 사람도 없었던 외교부. 당시 이봉조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이 NSC 정책조정실장에 임명되자 “외교안보 중심부서인 외교부 출신이 정책조정실장을 맡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한편 지난 1월 ‘부적절한 발언’ 파문으로 자리를 떠난 위성락 전 외교부 북미국장이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정책조정실. 공식직함은 정책조정관이다. 외교부 주변에서는 이 인사조치를 비판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정작 NSC 관계자들은 “그 방에 실장을 제외하고 국장급이 와 있는 부서는 외교부뿐이다. 이는 외교부의 의견을 배려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장점과 단점

    이제까지 살펴본 청와대 안보관련업무 프로세스를 2차 6차회담 준비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대략 이렇다. 우선 NSC 전략기획실 담당자가 주무부서인 외교부 북미국과 협의하여 기초적인 상황판단 보고서를 만든다. 정세평가회의에서는 회담 참가국들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북한의 동향은 어떤지 등에 대해 각 부처에서 수집된 정보를 검토해 회담 분위기와 전망을 예측한다.

    이러한 정세판단을 바탕으로 실무조정회의에 이종석 사무차장과 이수혁 차관보 등이 모여 부처별로 어떻게 회담을 지원할 것인지 실무플랜을 협의한다. 그 결과 마련된 실무플랜과 회담에서 취할 우리 정부의 입장, 회담전략, 가이드라인 등은 반기문 외교부 장관, 고영구 국정원장 등이 참석하고 권진호 안보보좌관이 위원장인 상임위에 상정된다. 이와는 별도로 국·과장급 실무자들로 구성된 6자회담 TF는 정세평가회의와 실무조정회의에서 논의하지 못한 세부사항을 협의한다.

    상임위에서 의결된 회담전략은 노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대통령의 재가가 떨어지면 외교부 등은 실무플랜 실행에 들어간다. 2차 6자회담이 열리면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이수혁 차관보는 확정된 방침에 따라 회담에 나가 우리측 입장을 밝힌다. 회담이 끝나면 외교부가 당초 대통령이 승인한 회담전략과 가이드라인에 맞게 회담에 임했는지 등을 NSC 정책조정실에서 확인하는 절차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업무 프로세스는 이전과 비교해볼 때 발전된 형태임에 틀림없다. 예전 같았으면 거의 외교부 장관에게 일임되었을 회담준비가 공개됨으로써 외교부는 국정원 등 다른 부처의 정보를 활용해 전략을 짜게 되고, 다른 부처들은 6자회담이 어떻게 진행될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통일부 담당인 남북 장관급회담 전략과 외교부 담당인 6자회담 전략을 조율하는 과정도 실무조정회의 등 공식석상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몇 가지 문제점도 있다. 우선 의사결정과정이 복잡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이 있고, 회담전략 같은 중요정보를 담당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공유함으로써 보안유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NSC가 기자 통화내역 조사 등 보안문제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자신들이 주도한 ‘열린 협의체계’ 때문에 보안성이 떨어졌다는 소리가 나올까 염려해서인 것 같다”고 평한다.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정보공유체계가 흔들리는 상황에 대한 경계심리라는 분석이다.

    정보의 연결고리, 사무차장

    시스템상의 또 다른 약점은 노무현 정부 들어 1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된 사무차장에게 너무 많은 권한과 업무가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무차장은 조직상 국가안보회의부터 상임위, 정세평가회의와 실무조정회의까지 NSC의 공식회의에 모두 참석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안보회의와 상임위에는 ‘회의록 작성을 위한 배석자’로 참석할 수 있고, 정세평가회의와 실무조정회의에 대해서는 소집·운영권을 갖고 있다. 더욱이 이종석 사무차장은 주요현안 TF 회의에 참석하는가 하면 NSC 자문위원회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관리와 정책조정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각 부처에서 올라오는 정보보고와 특이징후의 대통령 보고 여부도 사무차장과 ‘상의해’ 결정된다. 정책건의나 대통령 지시사항을 어디까지,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의 결정도 마찬가지다. NSC 운영규정에 나와 있는 것처럼 ‘사무처장을 보조’하는 역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무차장은 위아래를 오가는 모든 정보의 흐름과 정책조정의 프로세스가 반드시 거치도록 설계되어 있는 연결고리다. 이종석 사무차장에 대해 ‘실세 중의 실세’라고 말하는 세간의 평가는 공연한 것이 아니다. 현안이 한꺼번에 쏟아질 경우 ‘병목현상’이 빚어질 공산이 크고, 사무차장 개인의 성향이나 관심에 따라 정보흐름이 달라질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더욱이 이 사무차장처럼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인사가 사무차장에 있을 경우, 공식적으로 NSC 사무처의 수장을 겸하고 있는 외교안보좌관의 역할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업무처리가 상당부분 보좌관을 거치지 않고서도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라종일 전 보좌관이 청와대 내에서 분명한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없었던 것에는 이러한 한계가 일정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업무처리 프로세스를 들여다보고 나면 지난해 NSC와 외교·국방부 사이에서 불거졌던 크고 작은 마찰음은 구조적인 것, 다시 말해 불가피한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간 주요 정책사항을 독자적으로 진행해왔던 부처들이 권한의 상당부분을 NSC에게 넘겨준 셈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정책결정은 모두 NSC와의 협의하에, 주요결정의 경우는 NSC의 지침을 받아 진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한 NSC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전에는 각 부처 사람이 보좌관실에 올라와 조정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현재의 NSC에는 학계출신 인사, 발탁된 인사가 적지 않다. 예전에는 대등한 위치였거나 오히려 직급이 낮았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들을 통할하는 위치에 왔으니, 출범 초기에는 인적인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처음 수 개월동안 이런 이유로 분위기가 안 좋을 수 밖에 없었다”며 “지금은 직책에 의한 조정에 대해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코드’도 많이 일치됐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NSC 체계를 연구한 한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어느 정권이든 집권 초기 대통령부와 부처 실무자들 사이에는 긴장이 형성되게 마련이다. 특히 이번에는 시스템이 갑자기 바뀐 데다, NSC와 집행부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차이가 겹쳐져 더 쓰라렸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의 NSC는 단순한 정책조정의 기능을 넘어 정책결정 수준까지 맡고 있지 않은가. 정책이 실패하면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부처에게 돌아가게 돼 있으니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를 일부 언론들처럼 단순히 사람의 문제로만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었다 해도, 이종석 사무차장이 아니었다 해도,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도입되는 과정에서는 마찰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국가안보전략 마련으로 풀어야

    일각에서는 이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안보전략’의 작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무 부처들이 정책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는 명문화된 지침이 없기 때문에 청와대와의 혼선이 증폭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각 부처에서 나오는 정책 문서들에 통일된 방향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국가안보전략은 자국의 안보상황 분석과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향이 무엇인지 그 비전을 주요내용으로 한다. 1986년부터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의회에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 이 안보전략에 따라 국방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근거해 국방예산을 배정하는 국방기획관리제도(PPBS)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국방부와 외교부가 각각 백서를 발간해왔지만 정작 그 상위개념인 안보전략은 한번도 수립된 적이 없다. 1998년 DJ정부가 출범하면서 작업을 추진했지만 결과물을 공개하지는 못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초기부터 안보전략 발간을 공언해왔으나 출범 1년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 완성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안보전략 발간에 간여하고 있는 NSC 관계자는 “사실 거의 완성되었고 곧 발간될 예정이다. 그 동안 정책을 조정하면서 만든 개념들을 집대성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국방백서의 ‘주적’ 논란과 같은 문제를 염려해 철저히 검토하느라 늦어졌을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를 통해 개념혼란을 빚고 있는 ‘자주국방’의 구체적인 3단계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안보전략을 통해 참여정부의 입장이 각 부처에 명문화된 지침으로 자리잡으면 초기에 NSC와 실무부처들 사이에 빚어졌던 혼선은 상당부분 정리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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