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시킵니다. 안 시켜요. 아니, 하겠다고 발 벗고 나서도 뜯어말려요. 이 바닥이 어떤지 뻔히 아는데. 돈이요? 톱스타 몇 명은 많이 벌겠죠. 샐러리맨의 기를 팍 죽일 만큼.”
지난 1월초. 한 방송국의 PD와 나눈 대화 중 일부다.
요즘 연예가는 탁 치면 ‘억’ 소리가 난다. 조금 떴다 싶으면 신인도 부르는 게 값이다. MBC 드라마 ‘대장금’에 출연중인 이영애(33)는 회당 출연료 1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송혜교(22)는 2월 말부터 방영되는 SBS 드라마 스페셜 ‘햇빛 쏟아지다’(극본 정영선·연출 김종혁)에 출연하면서 회당 1500만원의 출연료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드라마 출연료 못지않게 광고모델료도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2002년 말 성현아가 불을 지핀 여자 연예인의 누드 프로젝트 또한 권민중(28)이 50억원을, 이혜영(31)이 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주장해 절정을 이뤘다. 연예가에 나도는 ‘수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연예인의 손에 쥐어지는 ‘실수령액’은 또 얼마나 될까.
송혜교, 회당 1500만원 요구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기자는 1∼18등급으로 나뉜다. 1∼5등급은 아역연기자, 성인연기자는 6∼18등급으로 분류된다. 연기자들의 등급은 각 방송사가 해마다 연기자가 출연한 드라마의 시청률과 인기도 등을 반영해 조정한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이하 연기자노조)과 방송 3사가 매년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 연기자의 출연료는 60분물 미니시리즈의 경우 18등급이 100여만원(세전·2003년 기준), 6등급은 30여만원이다. 그러나 주연급 연기자의 경우 등급분류에 따른 출연료의 지급체계가 무너진 지 오래다. 연기자가 고액출연료를 받게 된 데는 등급분류에 따르지 않는 ‘자유계약제도’가 한몫을 했다.
2002년 말 KBS 대하사극 ‘장희빈’에 출연한 김혜수가 회당 700만원의 출연료를 받은 것을 계기로 고액출연료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방송가의 정설이다. 연기자와 매니지먼트사 간의 수익 배분비율은 대부분 7(연기자): 3(매니지먼트사). 방송사는 3.3%의 세금을 원천 징수한 후 출연료를 지급한다. 출연료에 대한 세금은 연기자의 몫. 김혜수는 회당 470여만원을 손에 쥔 셈이다.
방송 3사의 드라마 제작 담당자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SBS 제작국의 고위간부는 “톱스타가 요구하는 고액출연료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털어놓는다.

몸값이 가장 비싼 배우 중 한 명인 송혜교가 출연한 드라마 ‘올인’의 한 장면.
-이유는요.
“고액출연료는 어찌 보면 외주제작 정책이 낳은 폐해라고 봐요. 외주제작사도 방송사와 맺은 계약상 금액으로는 고액의 출연료를 지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외주제작사는 3개의 협찬 유치가 가능해요. 드라마가 끝날 때 ‘협찬’이라는 3개의 기업체 명을 자막 처리하는 것을 조건으로, 협찬사 한 곳 당 2억∼3억 정도를 받을 수 있어요. 협찬 유치를 통해 6∼9억원의 제작비를 더 확보하는 셈이죠.
그렇다 하더라도 1500만원의 출연료를 지급하기는 어렵다고 봐야죠. 본사에서 드라마 제작을 맡고 있는 PD들은 외주제작사가 올려놓은 출연료 때문에 울상이에요. 주연급 연기자는 상대적으로 출연료가 싼 본사 제작 드라마의 출연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죠. 톱스타의 고액출연료 요구 배경에는 방송사 측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