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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맞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인맥과 파워

‘國富 축적의 주역’ 자부하는 ‘국가대표 秀才집단’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전성기 맞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인맥과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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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산업의 외연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면서 전자 분야로 진출하는 전기공학도들이 늘어난 데다, 최근에는 약전에 비해 강전 분야의 커리큘럼이 많이 줄어들어 ‘3당 통합’은 매우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한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들은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다. 1960∼70년대에 서울대 공대에 다니던 학생들은 선망의 대상인 서울대 배지를 마다하고 ‘S’자 좌우에 각각 ‘工’ ‘大’라고 써넣은 공대 배지를 만들어 달고 다니며 차별화를 겨냥했다. 이 배지가 당시 서울공고 배지와 디자인이 비슷해 “너희가 공대생이냐, 공고생이냐”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하지만 전자공학과 학생들은 한술 더 떴다. 서울대 배지에는 펼쳐놓은 책 양면에 ‘VERI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 글 대신 ‘전’자와 ‘자’자를 써넣은 사제(私製) 배지를 달고 다님으로써 한 차원 더 높은 차별화를 기도한 것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학생들은 대부분 산업현장이나 대학, 연구소 등에 진출해 주로 R&D(연구·개발) 업무에 종사했다. 그들은 자본, 기술, 숙련인력 등이 태부족해 황무지와도 같았던 산업여건에서 한국을 세계적인 전자산업 강국으로 키워낸 주역이라 자처한다. 자신들의 두뇌와 근면으로 가전, 반도체, 정보통신 등 국가 생존전략과 직결된 첨단 전자산업 발전을 견인, 막대한 국부(國富)를 창출한 공적을 제대로 평가받고 싶어 한다. 전자공학과 출신의 한 기업인은 “서울대 전자공학과가 지금까지 배출한 인력은 2000명 남짓하지만, 1900억 달러에 달하는 우리나라 수출실적 가운데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은 부분은 드물다”고 했다.



최근에는 이들의 자부심을 또 한번 고양시킬 만한 일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개각에서 두 명의 전자공학과 출신 장관이 탄생한 것. 오명(吳明·64·62학번) 과학기술부 장관과 이희범(李熙範·55·67학번) 산업자원부 장관이 그 주인공. 이로써 진대제(陳大濟·52·70학번) 정보통신부 장관과 함께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85% 이상을 쓰는 세 부처 수장을 모두 전자공학과 동문들이 차지했다.

오명 과기부 장관은 육군사관학교(18기)를 졸업한 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두환 정부와 노태우 정부에서 체신부 장관, 김영삼 정부에서 교통부 장관을 지내 이번에 네번째 입각이다. 1981년부터 8년간 체신부 차·장관을 지내면서 정보화 시대에 대비한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하고 통신산업 재편을 주도했다.

이희범 산자부 장관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이듬해인 1972년 제12회 행정고시에 수석 합격, 상공부 사무관으로 공직의 길에 들어섰다. 대학시절의 전공을 살려 정보기기과장, 전자정보공업국장 등을 지낸 후 산업정책국장, 자원정책실장, 차관 등 요직을 차례로 거치면서 무역, 산업정책, 통상, 자원 분야를 폭넓게 경험했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별명이 ‘미스터 디지털’이다. 미국 메사추세츠주립대에서 석사,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휴렛팩커드와 IBM에서 일하다 1985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16메가·64메가·256메가·1기가D램 개발에 잇따라 성공, 한국을 반도체 선진국으로 끌어올렸다.

삼성전자에서 그의 직위는 그가 개발한 반도체 용량만큼이나 수직 상승했다. 40세에 상무, 41세에 전무, 44세에 부사장을 거쳐 48세 때인 2000년 정보가전총괄담당 사장에 올랐다. 2002년 12월 디지털미디어네트워크총괄 사장으로 발령난 지 두 달 만에 노무현 정부의 초대 정통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지난해 12월 개각에서는 이들 말고도 또 한 사람의 전자공학과 출신 장관이 나와 4명의 동문 장관이 함께 재임할 뻔했다. 김재창(金在昌·64·62학번)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유력한 국방부 장관 후보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명 장관과 육사 및 서울대 전자공학과 동기인 김 전 부사령관은 합참 작전기획국장, 6군단장, 국방부 정책실장을 거쳐 1993년 김영삼 정부 시절 연합사 부사령관에 올랐으나 하나회 회원을 지낸 전력 때문에 옷을 벗었다. 당시 미군측은 군내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알려진 그의 전역을 적극 만류했다는 후문이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국방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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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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