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한 부분이 실종됐다. 그가 부통령이 되기 직전 큰돈을 벌었던 5년 동안(1995~2000년)의 행적이다. 그의 개인 이력서에는 단지 ‘경영자(businessman)’로 간단히 기록되어 있지만, 이 시기 그는 미 텍사스주(州) 휴스턴에 본부를 둔 세계적인 석유가스 회사 핼리버튼(Halliburton)의 경영책임자였다. 체니는 정경유착을 통해 기업 매출액을 늘렸고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부(富)를 쌓았다.
1800만달러 스톡옵션
체니는 핼리버튼에서 5년 동안 일하면서 무려 4400만달러를 벌었다. 체니는 “현재는 핼리버튼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은 상태”고 주장하지만, 그는 부통령을 그만둔 뒤에 핼리버튼으로부터 해마다 15만달러씩 받기로 돼있다. 그뿐 아니다. 체니는 무려 1800만달러 어치 핼리버튼 스톡옵션을 갖고 있다. 체니는 이 스톡옵션에 대해 “언젠가 자선기관에 기부할 작정”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딕 체니와 핼리버튼을 둘러싼 의혹이 잠재워지는 것은 아니다.
핼리버튼은 미 민주당을 비롯한 부시 행정부 비판자들로부터 걸핏하면 공격의 과녁이 됐다. 핼리버튼은 현재 이라크 전후 재건사업에서 미국 기업으로는 가장 큰 규모인 110억달러 어치의 계약을 맺고 이라크 특수(特需)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그 다음은 28억달러 어치를 계약한 벡텔).
때문에 반전론자들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한 숨어있는 동기를 핼리버튼이 받고있는 특혜와 관련짓는다. 마치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 당시 ‘베트남 특수’로 떼돈을 벌었던 다우 케미컬(Dow Chemical)처럼, 핼리버튼은 반(反)부시전선에 선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이를테면 민주당 대선후보 선두주자 존 케리는 아이오와주(州) 예비선거에서 승리하던 날 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재건사업에서 핼리버튼에 준 특혜를 세차게 비난했다.
지금까지 체니는 “나는 이라크 전후 재건사업 계약을 둘러싼 미 행정부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9월 미 NBC의 간판프로인 ‘언론과의 만남(Meet the Press)’에서도 체니는 “(핼리버튼의 이라크 특혜와 관련해) 나는 절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고 개입하지 않았을 뿐더러, 계약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조차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체니는 “핼리버튼은 매우 독특한 회사다. 핼리버튼만큼 대규모 엔지니어링 건설능력과 유전지대 작업능력을 갖춘 회사는 드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체니는 핼리버튼과의 ‘특수관계’에 대한 기자의 질문 공세에는 구체적으로 답변하길 거부해왔다. 그는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을 뿌리치면서 대변인 케빈 켈름스로 하여금 읽어보나마나 한 형식적인 답변을 이메일로 보내게 했다.
캘리포니아주 출신으로 하원 정부 개혁위 소속 의원인 헨리 왁스먼(민주당)도 의혹을 제기한다. 그는 “부시 행정부가 핼리버튼에 대한 여러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있다”며 목청을 높인다.
이라크 침공 직후 부시 행정부는 파괴된 석유산업 관련시설을 다시 짓기 위해 핼리버튼과 70억달러 규모의 공사 계약을 독점적으로 맺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 계약은 ‘부시 행정부의 윗선(high level)에서 최종 결정된 것’이라고 한다. 왁스먼 의원은 다시 묻는다. “그것은 누구의 결정인가? 무슨 이유로 핼리버튼에 특혜가 주어졌나?” 그러나 아직까지 납득할 만한 답변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잇단 바가지 시비로 말썽
핼리버튼은 이라크 재건사업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쿠웨이트에서 사들인 석유를 이라크로 넘기면서 미 정부에 6100만달러를 바가지 씌운 일도 벌어졌다. 핼리버튼은 석유 1갤런당 2.38달러로 가격을 매겼지만, 펜타곤(미 국방부) 회계감사원은 핼리버튼이 1갤런당 1달러씩 바가지를 씌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펜타곤 감사관은 조사위 구성을 고려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