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캐논|한 손엔 카메라, 한 손엔 복사기 들고 세계시장 석권한다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smiley@donga.com

    입력2004-03-02 10: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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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장기불황 속에서도 매해 흑자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해온 캐논. 지난해 4월 일본의 ‘간판’ 기업 소니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한 캐논의 신화 뒤에는 첨단기술과 인간존중의 경영이 있었다.
    캐논|한 손엔 카메라, 한 손엔 복사기 들고 세계시장 석권한다

    도쿄 외곽 서남부에 위치한 캐논 본사.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는 1990년대 이후 거품경제가 붕괴되면서 장기간 극심한 불황에 빠진 일본을 ‘잃어버린 10년’이라 표현했다. 실제로 이 시기에 NEC, 히타치, 도시바, 소니 등 일본의 간판 기업들은 과도한 부채와 손실의 늪에 빠져 허우적댔다.

    하지만 캐논은 이 ‘잃어버린 10년’을 기회로 해마다 최고 수익을 경신하며 승승장구해왔다. 그러다 마침내 지난해 4월9일에는 도쿄증시에서 첨단기업 소니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날 소니 주가는 4020엔으로 마감, 시가총액이 3조7203억엔으로 떨어진 반면 캐논의 주가는 전날과 같은 4260엔으로 마감해 시가총액 3조7451억엔을 기록하며 결국 순위가 바뀌게 된 것.

    이날 일본 언론은 “캐논이 소니를 제치고 일본 하이테크 업체의 간판으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이후 캐논의 호조와 소니의 부진이 맞물리면서 양사간 시가총액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올 1월29일 발표한 2003년 실적보고서를 보면 캐논은 2003년 2757억엔의 순이익을 냈다. 이는 2000년 이후 4년 연속 신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캐논은 지금 ‘불황을 모르는 기업’으로 통한다. 카메라와 복사기를 앞세워 디지털기기 시장을 평정한 캐논의 성공신화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캐논 본사는 도쿄 외곽 서남부, 전철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다. 본사에 들어서자 잘 가꿔진 정원과 인공호수가 눈에 띄었다. 1층 로비에서는 각국에서 몰려든 바이어들과 이들을 맞이하는 캐논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캐논의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인 ‘글로벌화’의 현장이었다.



    로비에서 만난 캐논의 홍보담당자는 “캐논의 역사를 보면 성공신화의 비결을 알 수 있다”며 먼저 본사 별관에 위치한 캐논 갤러리로 안내했다. 어릴 적부터 카메라를 좋아했던 요시다 고로가 1933년 도쿄 록본기에 정밀광학연구소를 차린 것이 오늘날 캐논의 시초다. 이듬해 일본에서 처음으로 35mm 카메라를 시작(試作)했고 1942년에는 창립 때부터 자금 지원을 해왔던 산부인과 의사 미타라이 다케시가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후 1947년 회사명을 정기광학공업에서 캐논 카메라로 바꾸었다.

    캐논|한 손엔 카메라, 한 손엔 복사기 들고 세계시장 석권한다

    캐논 성공신화를 이끈 미타라이 후지오 사장.

    ‘일본에 우수한 정밀광학을 구축하겠다’며 고급 카메라 제조에 매달려온 초창기 캐논은 1949년 전미국 카메라 전시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는 등 저력을 과시했다. 1961년에는 저가 카메라 캐노넷을 발매해 시장을 뒤흔든 후 라이벌 니콘과 경쟁하며 카메라 사업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카메라에만 의존하는 사업 형태로는 장래가 불안하다고 생각한 미타라이 다케시는 1967년 사원들 앞에서 선언을 한다.

    “오른손에 카메라, 왼손에 사무기기. 이 양쪽을 살려서 연간 매출 300억엔을 돌파하겠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캐논의 성공신화를 일군 기업모토다.

    캐논은 사무기기 중에서도 복사기 분야를 특히 중요시했다. 소모품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당시 카메라 이상으로 필름의 수익성이 높았다. 카메라 보급률이 높아지면 카메라의 수요가 줄어들더라도 필름은 꾸준히 팔릴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미타라이 다케시는 ‘우리가 결국 필름 메이커에게만 돈을 벌어주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복사기는 토너, 복사용지 등 소모품이 큰 수익을 낳는 비즈니스. 다케시는 이것을 캐논이 직접 다룬다면 충분히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1968년 독자 방식의 복사기 개발에 성공한 캐논은 1969년 회사 명칭에서 카메라를 없애고 현재와 같은 ‘캐논’으로 변경했다.

    다각화의 쓴 잔

    그후 캐논은 계속적으로 획기적인 신상품을 개발하며 사업을 확대했다. 이렇듯 승승장구하던 캐논도 1990년대에 들어 그 여세가 꺾였다. 지나친 다각화 전략으로 채산이 맞지 않는 사업에까지 진출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여기저기 적자가 누적됐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1995년 캐논의 초대 회장 미타라이 다케시의 조카 미타라이 후지오(69)가 사장으로 취임한다. 그 후 캐논은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1961년 입사해 23년간 캐논USA에서 근무한 미타라이 후지오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모두 정리해버렸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과감한 연구개발과 수익 위주의 경영뿐”이라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것.

    캐논|한 손엔 카메라, 한 손엔 복사기 들고 세계시장 석권한다

    캐논은 카메라와 복사기를 앞세워 전세계 디지털기기 시장을 평정하고 있다.

    우선 컴퓨터 사업에서 철수했다. 물론 정보기술(IT) 산업의 핵심인 컴퓨터를 포기하기까지 내부 진통이 적지 않았지만, 캐논의 제품개발력이 경쟁사에 비해 떨어진다고 판단되자 과감히 버렸다. 액정 디스플레이 사업도 포기했다.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었지만 FLC라는 독자기술로 개발한 디스플레이 역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캐논은 12개 계열사를 프린터, 복사기, 카메라, 광학기기 등 4개 핵심계열로 재편했고 그 후 채산성이 높은 복사기를 비롯, 사무용 자동화기기와 디지털 카메라 부문에 집중투자했다. 그 결과 일본 국내시장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점유율 1∼2위를 차지하며 일본의 장기 불황도 견뎌낼 수 있는 체력을 갖게 됐다.

    “채산이 맞지 않는 사업에서는 과감하게 발을 빼고 잘할 수 있는 곳에 집중했다. 이익을 못 내는 사업, 지금은 흑자를 내고 있어도 장래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깨끗이 정리했다. 하지만 직원들까지 구조조정을 한 것은 아니다. 그 여력으로 다른 기업보다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주력했다.” 미타라이 후지오 사장의 이야기다.

    또 이익률이 높은 토너 등 프린터와 복사기 관련 소모품을 판매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캐논 홍보담당자는 “캐논은 경기를 타지 않는다. 사무기기가 수익의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서 복사기나 프린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토너, 복사용지 등 소모품의 수요는 경기와 상관없이 꾸준하다”고 밝혔다.

    또 카메라의 경우 최근 ‘디카’ 열풍 덕분에 수요가 급증, 2003년 6535억엔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2002년 매출액 4858억엔과 비교하면 35% 늘어난 액수다.

    실패한 기술도 버리지 않는다

    현재 캐논의 21세기 전략은 다각화(diversification)과 글로벌화(globalization)로 요약된다. 우선 다각화는 멀티미디어의 인풋(input)에서 아웃풋(output)까지 캐논만의 기술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제한적으로 다각화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에서 복사기, 프린터 등 각종 제품으로 다각화했지만 이는 전혀 다른 분야로의 확장이 아니라 캐논의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한 전문화라고 할 수 있다. 캐논의 핵심은 광학기술, 디지털 기술, 컬러 기술이다. 우리의 강점을 살릴 수 없는 쪽으로의 다각화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캐논 영상사무기기 상무이사 소마 이쿠오의 설명이다.

    이는 매년 매출의 10%(2002년의 경우 2374억엔에 육박했다) 정도를 연구개발에 투자할 만큼 기술력을 중요시하는 캐논의 전통과도 일맥상통한다. 강해야 성공할 수 있고, 강해지려면 첨단 기술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 이는 캐논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재 캐논은 5만여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특허수입만 연간 200억엔에 달한다. 1994년 이래 미국 내 특허권 취득건수에서 꾸준히 2∼3위를 달리고 있고 2002년에는 1893건으로 IBM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또 캐논은 남들이 포기한 기술, 한번 실패한 기술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시 살려낸다. 복사기에 들어가는 감광드럼과 토너를 일체화한 카트리지가 대표적인 사례. 현재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사무기기를 만들게 된 것도 한번의 실패가 낳은 결과였다.

    캐논 갤러리 한가운데에는 싱크로리더(synchroreader)라는 다소 낯선 기계가 전시돼 있다. 1959년 개발된 싱크로리더는 자기(磁氣)를 이용해 소리를 녹음 및 재생하는 장치로, 재생된 음을 들으면서 표면의 인쇄물을 보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미디어 매체였다. 캐논으로서도 종래의 광학기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이었다. 제품화를 결정한 후 많은 인원을 투입해 집중 개발해서 2년 만에 발매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제품은 시장에서 수익을 내지 못해 곧바로 생산을 거뒀다.

    사업으로는 실패했지만 싱크로리더는 캐논에 커다란 유산을 남겼다. 바로 싱크로리더 개발에 따라 새로 채용된 전기, 자기 관련 기술자들과 개발 도중 획득한 각종 기술과 노하우였다. 이런 유산을 바탕으로 캐논은 1968년 독자 방식의 복사기 개발에 성공했다. 당시는 복사기 부문 대부분의 특허를 미국의 제록스가 가지고 있는 상태여서 대단한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캐논|한 손엔 카메라, 한 손엔 복사기 들고 세계시장 석권한다

    최근 ‘디카’ 열풍이 불면서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는 물론 잉크젯 프린터의 수요도 급증했다. 사진은 캐논의 최신형 디지털 카메라와 잉크젯 프린터.

    2002년부터 도시바와 제휴해 개발하고 있는 액정 디스플레이 역시 한번 접었던 사업을 다시 시작한 경우다. SED라는 신기술로 개발하고 있는 액정 디스플레이 개발팀에는 FLC 개발에 참여했던 사람이 100명 이상 포함돼 있다. 실패했던 기술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없애 좀더 발전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캐논 관계자들은 SED가 기존 디스플레이에 비해 화질이 깨끗하고 전송속도가 빨라 멀티미디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다른 21세기 전략 중 하나인 글로벌화는 균형 잡힌 판매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실제로 일본, 미주, 유럽 지역의 판매가 각각 3분의 1씩 차지하고 있어 한 지역의 시장이 좋지 않으면 다른 지역에서 보전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잡아왔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캐논이 이익을 늘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다품종 소량생산에 유리한 셀 방식

    또 하나 캐논의 저력은 생산라인의 효율성이다. 도쿄 근교 이바라키현에 위치한 캐논 아미공장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없다. 캐논은 1999년 2649m에 이르는 컨베이어 벨트 라인을 철거했다. 컨베이어 생산은 근로자들이 특정 부분을 나눠 맡아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방식. 각자의 업무능력과 상관없이 천편일률적으로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유능한 숙련공의 능력발휘를 방해한다는 것이 철거 이유였다. 대신 4∼6명씩 팀을 짜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셀(cell·세포) 방식을 도입했다.

    공장 근로자들은 셀 방식에 대해 “기능공들이 각자의 능률에 맞춰 일을 하고 시간이 남으면 일이 더딘 동료를 도와줄 수도 있다. 따라서 생산효율성이 컨베이어 벨트 공정에 비해 3배 이상 높다”고 말한다.

    개혁으로 생산라인의 작업자 수가 줄어드는 것을 캐논에서는 활인(活人)이라고 부른다. 셀 방식을 도입한 후 캐논 그룹 전체의 활인 수는 1998년에 212명, 1999년 280명, 2000년 728명으로 늘어났고 이들을 생산 이외의 다른 업무에 투입할 수 있었다.

    셀 방식은 또 주문 상황에 따라 생산량을 쉽게 조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컨베이어 벨트 공정에서 최소 생산단위가 40대라면 주문이 10대만 들어와도 어쩔 수 없이 40대를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30대는 팔릴 때까지 재고로 남는다. 하지만 셀 방식을 이용하면 정확히 주문량 만큼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구매자들의 요구가 다양해져 다품종 소량생산이 주를 이루는 요즘 셀 방식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생산제품이 달라지면 예전에는 라인을 통째로 바꿔야 했지만 셀 방식에선 조립부품만 바꾸면 된다. 따라서 재고가 거의 없고 생산제품에 따라 대규모 시설 투자를 할 필요도 없다. 덕분에 아미공장에서 7개의 대형 재고창고가 사라졌고 캐논 전체로는 총 2만207m의 컨베이어 벨트와 45개의 재고창고가 없어졌다.

    아미공장에는 혼자서 수백점에 이르는 부품을 조립해 복사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능공이 22명 있다. 회사에서는 이들을 ‘슈퍼 마이스터’라고 부르며 특별대우를 한다. 또한 다른 기능공들이 슈퍼 마이스터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교육도 시킨다.

    나라별로 소비자 성향 철저분석

    캐논|한 손엔 카메라, 한 손엔 복사기 들고 세계시장 석권한다
    카메라와 복사기로 대표되는 기업 캐논. 이 두 대표 상품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소비자가 직접 사용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제대로 포착하고 이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도쿄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캐논판매주식회사 1층에는 일반인 대상의 거대한 쇼룸이 있다. 캐논의 역사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제품들과 다양한 신상품들을 전시하는 이 쇼룸에는 매일 200여명이 관람하러 찾아온다. 도우미들이 제품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원하는 사람에게는 무료로 최신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최신 잉크젯프린터로 출력해준다. 캐논의 쇼룸은 도쿄에 3곳, 오사카에 1곳이 있다. 쇼룸에는 수리센터도 있어서 웬만한 고장은 바로 고쳐준다.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A/S까지도 책임지고 있다.

    “요즘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가 합쳐져 사진과 동영상을 함께 찍을 수 있는 카메라 모델과 복사기, 팩시밀리, 스캐너, 프린터 등이 복합된 사무기기 등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곳은 캐논의 상품을 홍보하는 동시에 소비자 성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곳이다.” 캐논판매주식회사 쇼룸 담당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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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논 영상사무기기 상무이사 소마 이쿠오는 “소비자의 욕구는 나라마다 다르다. 일본의 경우 국내 판매와 홍보를 담당하는 캐논판매주식회사로부터 소비자 성향에 대한 자료를 받는다. 미국의 경우 캐논USA 직원들이 1년에 네 차례 정도 일본에 와서 소비자 성향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상품기획회의를 한다. 소비자들에게 직접 설문조사를 벌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캐논의 해외시장 공략 전략은 무엇일까. 소마 이쿠오 상무이사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지역을 나눠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정보기술이 매우 발달했다. 특히 복사기 사업 분야에서 미국의 제록스는 캐논의 유일한 경쟁자라고 할 만큼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지난 40년 동안 제록스와 캐논은 특허경쟁을 해왔고 양사의 경쟁으로 복사기 기술은 빠르게 발달했다. 따라서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제품으로 나서야 한다. 이에 비해 최근 무서울 정도로 시장이 커지고 있는 중국의 경우 가격이 싼 상품이 잘 팔리기 때문에 저렴한 상품을 대량 판매하는 전략을 세운다. 판매에 대한 투자는 중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선 사무기기와 카메라 부문 사업을 따로 진행하고 있다. 우선 사무기기 부문은 1985년 롯데와 캐논이 각각 50%씩 자본금을 투자해 만든 롯데캐논에서 담당한다. 롯데캐논은 안산공장에서 복사기, 프린터와 같은 사무기기를 직접 생산하고 판매·홍보를 책임진다. 1999년 일본 내 캐논 공장들과 마찬가지로 셀 방식을 도입한 안산공장은 1인당 생산성 20% 향상, 제품 재고 70% 절감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롯데캐논 김천주 해외사업담당이사는 “캐논 본사와 수시로 한국 시장의 동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연구개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고 말했다. 롯데캐논의 대표이사이기도 한 소마 이쿠오 상무이사는 “롯데캐논의 안산공장은 캐논 공장 중에서 수위를 차지할 만큼 훌륭하다”면서 “특히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카메라 부문은 LG상사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최첨단 기술로 사업분야를 다각화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캐논. 하지만 캐논 성공신화의 비결은 첨단 기술력이나 현금을 중시하는 재무전략만이 아니었다. ‘인간존중의 경영’이야말로 오늘의 캐논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미타라이 후지오 사장은 23년간 미국에서 근무해왔지만 ‘종신고용’ ‘애사심’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경영의 장점을 살려야한다고 강조한다. 즉 기술개발, 재무전략 같은 세계 공통의 영역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야 하지만 사람과 관련된 분야는 문화적, 정서적 특성에 맞춘 로컬화가 필수라는 것. 그는 회사 전체가 운명공동체 의식으로 단결한 것이 캐논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신념하에 종신고용제를 유지하고 있다.

    “종신고용을 하면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회사의 경영방침이나 기업 풍토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스스로 브랜드를 지키려 하고 단결해 위기에 맞서려는 애사정신도 강해진다. 기업 간 경쟁은 단체전이기 때문에 이 무형의 재산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풍토에 맞고 글로벌 시장을 뚫고 나가는 데 필요한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캐논|한 손엔 카메라, 한 손엔 복사기 들고 세계시장 석권한다

    캐논 공장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없다. 대신 4~6명씩 팀을 짜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완성품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종신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연공서열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학력, 연령, 성별에 관계없이 실력에 따른 인사, 보상제도를 정착시켰다. 실제 젊은 과장과 나이 든 대리가 업무를 논하는 모습은 캐논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캐논에는 해마다 10월이면 정기 승진시험이 있다. 이것을 통과하지 않으면 관리직 등용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 고졸사원으로 입사하면 7년, 대졸자는 3년이 지난 후(대략 25세 전후) 시험자격이 주어진다. 남녀 구별 없이 100% 시험결과에 따라 승진이 결정된다. 관리직이 되려면 2회 이상 시험을 봐서 합격해야 하며, 2회 모두 시험에 통과한 사람과 1회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연봉에서 20%의 차이가 난다. 성과급은 철저히 실적에 따라 지급한다.

    종신고용 보장하되 연공서열 배제

    미국식 사외이사제도가 없는 것도 특징이다. 이사회와 집행부가 일체화된 일본 기업에서 굳이 외부인사를 초빙해 이사를 맡길 이유가 없다는 것. 다음은 미타라이 후지오 사장의 말.

    “일본에서는 이사에 취임하기까지 20∼30년 걸린다. 그 사이 인품에서 실력까지 위, 아래에서 계속 체크하기 때문에 사외에서 경영자를 초대하는 미국식보다 훨씬 안전하다. 회사에 상주하지 않는 사외이사가 어떻게 업무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겠는가.”

    대신 캐논은 유럽식 감사역 제도를 도입해 법률상 독립성을 갖고 있는 감사들이 경영을 체크하도록 했다.

    캐논 기업을 취재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개술 개발에 대한 의지가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기자가 만난 캐논 관계자는 “대다수 연구직원들이 ‘논문 쓸 시간이 있으면 특허 제안서를 쓰고 문헌을 읽으려면 특허공보를 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이런 의지는 ‘우리가 최고 기술을 보유했다’는 자부심으로 드러났다. 소마 이쿠오 상무이사만 해도 “핵심기술에 관해서는 우리가 세계 최고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매출의 10% 이상을 기술개발비로 투자하는 회사가 아니라면 이런 자부심이 생길 수 있을까.

    ‘첨단기술’이라는 수족과 ‘인간존중 경영’이라는 심장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캐논. 부족한 자원, 높은 인건비, 장기 불황 등 여러모로 일본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에서 경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캐논의 성공신화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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