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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 목사의 체험 한국 현대사 ④

12·12 직후 만난 DJ, “군인들은 내게 충성할 것”

  • 대담: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학 tgpark@snu.ac.kr

12·12 직후 만난 DJ, “군인들은 내게 충성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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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윤보선씨가 한일협정에 대해 줄곧 강경한 반대 입장을 밝힌 부분입니다. 국회의원 사퇴를 불사하면서 한일협정에 반대했는데, 윤보선씨의 집안 내력을 보면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집안 어른들 중에 지금도 친일 경력 때문에 논란을 빚는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강 : 그 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윤보선씨와 5·16을 전후한 상황에 대해서입니다. 윤보선씨는 장면의 민주당 정부에 커다란 반감을 갖고 있었어요. 윤보선씨는 학생들의 데모가 끊이지 않고, 학생들이 이북 학생들을 만나러 판문점엘 간다고 나서는 등 혼란이 계속되자 북한이 도발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저를 만날 때면 “이러다 나라가 무사하겠냐”고 착잡해했죠.

그러다 보니 5·16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좀 애매했던 겁니다. ‘장면 정부가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박 : 매그루더 유엔군 사령관과 그린 미국 대리대사가 미 정부에 보고한 문서를 보면 5·16 직후 자기들이 쿠데타를 진압하겠으니 허락해달라고 했지만 윤보선 당시 대통령이 이를 만류하며 본인이 거국내각을 만들겠다고 제안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윤보선씨는 3선개헌 직후 박기출씨와 국민당을 만들어 신민당에서 갈라져 나왔거든요. 이를 두고 한 신문은 윤보선씨의 정치적 감각이 번뜩였다는 식으로 썼고, 또 다른 신문은 유진산씨와의 갈등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해석했더군요.



강 : 그 얘기는 1971년 대통령선거와 관련됩니다. 그때 비로소 3김정치가 들어섰거든요. 야당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 40대 3명이 후보로 나왔는데, 윤보선씨는 세 후보 중에서 김영삼씨와 가장 가까웠죠. 그럼에도 윤보선씨는 이 사람들로는 수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박기출 등과 함께 국민당을 만들고 박기출씨를 대선 후보로 내세웠습니다.

김영삼, “미국은 나를 지지”

박 : 목사님과 김대중씨의 관계도 궁금하군요.

강 : 그 얘기를 하자면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특히 ‘40대 기수론’과 관련해서요. 그러니까 40대 세 사람이 후보로 부상했는데, 당에서는 이들이 영 미더워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너무 젊다는 거죠. 때문에 양일동, 윤길중, 윤재술 같은 사람들은 저를 끌어내(후보를) 시키려고 했고, 유진산 등은 김상협씨를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윤길중, 양일동씨가 우리집을 몇 번 찾아왔는데 그들의 요청에 대해 저는 “신라, 백제가 싸우는데 고구려 사람이 왜 끼어드느냐”고 퇴짜를 놨어요.

박 : 목사님이 이북 출신이라서요?

강 : 말은 그렇게 했습니다. “남북통일이 되면 몰라도 지금은 이민 온 고구려 사람이 끼어들 수가 없다”고. 그랬더니 김영삼씨가 이명하(전 진보당 간부)씨를 통해 저를 만나고자 해서 만났는데, 미국의 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무렵 김영삼씨가 미국 국무성에 다녀오고 나서 미국대사가 성조기를 단 차를 타고 김영삼씨 집을 찾아간 일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YS는 “미국은 나를 지지한다”고 했습니다. 이철승씨도 절더러 ‘선배님’이라고 부르면서 찾아왔는데, 그 양반한테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그 다음에는 김대중씨도 만나자고 했는데,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 저는 김대중씨를 선동 정치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와 친한 목사 한 분이 회현동의 한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어요. 그 분은 김영삼씨를 장택상한테 소개한 사람이에요. 김대중씨가 서울에 올라와 노동문제연구소를 차렸을 때 자기가 소장을 하고 그 사람을 부소장에 앉혔습니다. 그래서 제가 식당에 가 앉아 있는데 김대중씨가 쑥 들어오더군요.

“내 시체를 밟고 가라”

박 : 그 자리에서 어떤 말씀을 나눴습니까.

강 : 저더러 그러더군요. “당은 외부에서 명망있는 인사를 영입해 대통령후보로 추천하려 하는데, 목사님과 김상협씨 두 분이 대상으로 떠올랐다. 내가 전라도 사람이니 김상협씨를 지지해야 하지만, 나는 목사님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목사님의 뜻을 들어보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지지운동을 하려 한다”고. 역시 머리가 좋더군요. 제가 “당신, 속으로는 ‘나와 신민당을 도와달라’고 하고 싶으면서 왜 그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느냐”고 했더니 “아, 역시 목사님 앞에서는 꼼짝 못하겠네요” 하더라고.

그래서 제가 다짜고짜 “저 사람들이 총칼 들고 빼앗은 정권을 투표로 내주리라고 생각하는가. 윤보선씨가 정말 투표에서 졌겠나. 당신이 그걸 모를 만큼 어리석지 않을 텐데 어떻게 저들을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하고 물었어요. 김대중씨는 “지금은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민중의 힘으로 해야 한다. 총칼 앞에 빼앗긴 정권은 민중의 힘으로 빼앗와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민중의 힘으로 어떻게 정권을 빼앗겠다는 거냐고 물었더니 DJ는 1967년 제7대 국회의원선거 때 목포에서 있었던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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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학 tgpa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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