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브레이크 없는 한국영화, 과식· 편식 유혹 뿌리쳐라!

  • 글: 장병원 Film2.0 취재팀장 jangping@film2.co.kr

    입력2004-03-02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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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관객 2명 중 1명은 봤다. 단일 문화상품 사상 최초로 1000만명의 소비자를 확보한 영화 ‘실미도’. ‘684주석궁폭파부대’가 육지로 몰고온 것은 1998년 ‘쉬리’ 이후 다시 찾아온 한국영화의 황금기다. 초대박 시대, 실미도의 힘인가 한국영화의 힘인가.
    브레이크 없는 한국영화, 과식· 편식 유혹 뿌리쳐라!
    ‘실미도’가 단일 영화 최초로 전국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하며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갈아치웠다. 2001년 ‘친구’가 820만여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의 역사를 다시 썼을 때만 해도 영화계는 ‘향후 몇 년간 깨지기 힘든 대기록’이라며 흥분했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친구’의 기록은 여지없이 깨졌다. 관객 1000만명 돌파는 대한민국 인구 4700만 중 실질적인 영화 관람 인구를 고려한다면 영화 관객 두 명 중 한 명이 ‘실미도’를 봤다는 의미다.

    불황기 한국영화의 예외적인 성공은 충무로 영화인들에게조차 경이로운 현상이다. 관객 1000만명 시대란 ‘욱일승천(旭日昇天) 하는 한국영화의 기운을 증거한다’는 영화 내적 의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문화지형 안에서 영화가 지니는 위상에 대한 반증인 동시에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흥미로운 사건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세계 지배가 날이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는 마당에 한국영화의 득의양양한 기세는 국제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현상이다. 아직 공식 집계 되지는 않았지만 2003년 한국영화 점유율은 이미 5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000만 관객 시대의 개막에 고무된 일부 영화인들은 ‘실미도’에 이어 얼마 전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도 관객 1000만명의 고지를 밟을 것이라는 성급한 예상까지 내놓고 있다. 무엇이 이러한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가능하게 했는가?

    멀티플렉스로 관객 유입

    우선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영화 산업구조의 토대 변화를 꼽을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와이드 릴리즈(wide release)’라는 대규모 개봉방식과 공격적 마케팅이 흥행을 좌우하는 요소로 굳어지고 있다. ‘실미도’가 전국 300여개 스크린, ‘태극기 휘날리며’가 400여개 스크린을 확보하며 흥행 몰이에 나섰다는 점만 봐도 와이드 릴리즈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 ‘극장 잡기’는 사활을 건 전쟁에 가깝다.



    이러한 배급 환경의 변화는 1990년대 말부터 등장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가져왔다. 1998년 최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CGV강변’이 설립된 이후 극장 수와 스크린 수의 변화 추이는 퍽 흥미롭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극장은 507개에서 311개로 대폭 줄어든 반면, 스크린 수는 507개에서 977개로 증가했다. 4년 사이에 스크린 수가 무려 92.7%의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같은 기간 총 영화 관객수는 5000만명에서 1억명으로 껑충 뛰었다. 지역 거점형 극장체인인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영화산업의 토대인 관객수 증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즉, 스크린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는 1000만 관객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원동력이 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영화 내적 요인들도 관객 폭증에 한몫을 했다. 특히 한국영화의 질적 성장은 외적인 추인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힘이 됐다. ‘살인의 추억’ ‘동갑내기 과외하기’ ‘스캔들’ ‘올드 보이’ 등 2003년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웰 메이드’ 영화들의 흥행 행진은 한국영화 대세론을 굳혔다. 여기에 주5일 근무제 확산으로 여가 시간 증대, 인터넷 매체 발달로 인한 영화 정보의 홍수, 문화생활의 중심에 선 영화의 위상 등이 영화시장 확대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외형이 팽창했다고 해서 할리우드 영화가 위축된 것은 아니다. 할리우드 직배사들이 본사로 송금하는 로열티 총액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즉, 할리우드 영화가 체면 치레하는 동안 한국영화가 영화시장의 확대를 주도한 셈이다.

    흥행 한계선 500만명

    충무로에서는 통상 한국시장에서 단일 영화의 흥행 한계를 관객 500만명으로 추정한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평균 영화관람 횟수, 습관적 영화관람 인구를 토대로 추정한 수치다. 관객 500만명을 넘어가면 이미 ‘영화의 운명’을 벗어난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2003년 최고 흥행작인 ‘살인의 추억’(525만여명), ‘동갑내기 과외하기’(493만여명) 등도 흥행 한계선 근처에서 인기몰이를 마감했다.

    현재 한국영화 시장 규모에 비춰봤을 때 500만명이라는 흥행 한계선은 순전히 ‘영화의 힘’으로만 끌어 모을 수 있는 관객의 포화량을 뜻한다. 여기서 영화의 힘이란 드라마나 스타일, 영상적인 완성도 등 영화 내적 요소를 총체적으로 일컫는다. 시나리오와 영상의 완성도가 빼어난 영화, 이른바 ‘웰 메이드’라고 불리는 작품 대부분이 흥행 한계선 500만명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면 흥행한계선을 훌쩍 넘어서서 800만, 1000만 관객을 끌어 모은 이른바 ‘초대박’ 영화가 출현한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초대박 영화의 흥행에는 ‘영화의 힘’ 이외의 요소가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 ‘실미도’의 예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대중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사회·문화적인 힘이 관객 몰이에 가속 페달을 밟게 만든다. 영화가 스크린이라는 자장(磁場)을 벗어나 바깥으로 확장되어 갈 때, 즉 영화적 완성도를 넘어 영화가 환기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찾아낼 때 영화는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게 된다. 이 때부터 영화는 사회적, 문화적인 신드롬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친구’도 그러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IMF체제로 상징되는 경제위기는 ‘세속적 이익을 따지지 않던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복고 정서를 부추기는 ‘친구’의 센티멘털한 감상주의는, 이 영화가 무정한 시대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근본적 가치에 접근해 있다는 집단적 무의식을 설파한 것이다.

    ‘실미도’의 흥행 성공도 마찬가지로 영화 외적인 관점에서 분석의 도마에 오른다. 엄격한 현실인식과 역사의식의 소산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실미도’는 그간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국민을 기만해왔던 위정자들에 대한 환멸, 숨겨진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무의식적 저항심리를 건드렸다. 가려진 진실, 밝혀지지 않은 허다한 미제(未濟) 사건의 보고(寶庫)인 한국 현대사에 대한 국민들의 원죄의식도 ‘실미도’ 신드롬과 연관성이 깊다.

    ‘실미도’가 낳은 한국영화 1000만 관객 시대는 지금까지 통용돼 왔던 한국영화 흥행지표 자체를 끌어올릴 것을 요구한다. 1000만 관객이란 1990년대 이후 급속하게 변화해온 한국영화산업이 또 하나의 문턱을 넘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영토를 획득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1000만 관객 시대가 한국영화의 투자, 제작 환경에 변화를 동반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충무로의 영화전문가들은 ‘앞으로 한국영화 시장의 규모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안정적 투자 재원을 마련하고 제작 시스템의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제작사간 인수합병 움직임은 그 단초를 엿볼 수 있는 징후이다.

    떠났던 투자 자본 돌아오다

    한국영화 1000만 관객 시대 이후 한국영화 상황에 대해서는 낙관적 입장과 유보적 입장으로 나뉜다. 일각에서는 ‘큰 영화’에 대한 무비판적인 강박증을 낳아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를 빼앗길 수 있음을 우려한다. 그런 의미에서 1998년 ‘쉬리’의 대박 신화가 가져온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쉬리’의 등장은 한국영화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전환기적 사건이었다. 대박신화를 노린 벤처자본의 투자가 물밀듯이 밀려와 충무로 자본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덩치 영화’의 기획이 붐을 이뤘다.

    그러나 안정적인 제작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맞이한 ‘얼떨떨한 황금기’는 허다한 실패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좌충우돌 끝에 실패를 맛 본 벤처 자본은 자신들의 과오를 확인하고 대부분 발을 빼고 말았다.

    ‘실미도’의 강우석 감독은 1000만 관객 시대 이후에 대해 “빠져나간 자본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최근 조심스럽게 한국영화에 대한 투자 가능성을 타진하는 투자자들이 다시 늘고 있는 현상이 강 감독의 말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실미도’ 이후 불어오게 될 골드 러시는 ‘쉬리’ 이후의 그것과 사뭇 양상이 다를 것이다. 이미 활황이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영화로의 ‘컴백’을 꿈꾸는 자본들은 ‘쉬리’ 이후 영화판을 찾아왔던 ‘들뜬 자본’과는 성격이 다르다. 투자사들의 제작관리 체계는 한층 엄격해졌고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다. 대규모 펀드 위주로 투자사들이 이합집산하던 수년 전과 달리, 최근에는 소규모 자본이 연합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강 감독은 “새로운 투자를 바탕으로 한국영화 제작 편수가 안정세에 접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영화투자가 활발해지는 와중에도 제작 편수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다.

    브레이크 없는 한국영화, 과식· 편식 유혹 뿌리쳐라!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실미도’는 한국영화에 제2의 황금기를 가져왔다. 요즘 극장가에서는 ‘실미도’를 보기 위해 온 가족 단위 관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영화 1000만 관객 시대는 한편으로는 ‘크기’에 대한 믿음을 재확인해주었다. 따라서 주춤했던 블록버스터를 향한 열망이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이 있다. 큰 영화가 돈을 움직이고 시장을 움직인다’는 믿음은 여전히 영화인들 사이에서 확고하기 때문이다.

    사실 흥행 돌풍을 주도하고 있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제작비가 기십 억대를 호가하는 블록버스터이다. 강우석 감독은 “‘실패한 블록버스터도 많았지만, 좋은 작품을 골라서 잘 찍으면 되는구나’라는 긍정적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한다. 2004년 한 해만 해도 곽경택 감독의 ‘태풍’, 임필성 감독의 ‘남극일기’, 정윤수 감독의 ‘기운생동’, 그리고 송해성 감독의 ‘역도산’ 등 제작비 50억원이 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속속 개봉할 것으로 보인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숱한 실패에도 그러한 영화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몸소 웅변했다. 투자를 견인하고 시장을 활성화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대한 한국 영화인들의 집념은 당분간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1000만 관객 시대는 또한 얼마간 소강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던 스크린 수의 증가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극장 업계에서는 향후 2~3년 안에 전국의 스크린 수가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최근 스크린 수의 증가세가 다소 둔화됐다.

    그러나 시장의 확대는 새로운 관객층을 발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다. 지금처럼 한국영화가 계속 선전할 경우 영화시장의 파이가 커진다는 것이다. 대도시 위주로 운영됐던 멀티플렉스 영화관 체인들이 서울 외곽이나 지역 소도시로 거점을 넓혀갈 수 있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기존 멀티플렉스 체인뿐만 아니라 시네마서비스 계열사인 프리머스시네마를 비롯 단성사, 피카디리 등 재래식 전통 극장들의 재개관, 군소 복합관 등이 가세할 경우 수용할 수 있는 영화 관객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1000만 관객 시대에 영화의 경제적 가치는 어떻게 환산할 수 있을까? ‘실미도’가 거둘 유·무형의 경제적 가치를 어림하기는 쉽지 않다. 먼저 산술적인 계산을 해보자. 관객 1인당 입장료를 7000원으로 계산하면 극장 수입료만 700억원이다. 이외에 비디오와 DVD, 공중파 및 케이블 TV 판권 등 부가 수입도 있다. 통상 영화의 부가 판권 수입을 극장 흥행 수입의 30%로 잡는 정설을 따르면 ‘실미도’는 200억원에 달하는 부가 수익을 올릴 것이다. 여기에 해외시장에서의 수익을 합해야 한다. 얼마 전 한국은행은 ‘실미도’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생산 유발액 1350억원, 부가가치 유발액 590억원 등 총 3400억원으로 분석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또한 ‘실미도’에 3000억~4000억원 정도의 경제적 가치를 매겼다.

    ‘실미도’ 이후 영화에서 발생할 경제적 가치는 어떻게 따져볼 수 있을까? 먼저 규모의 측면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영화 제작비의 증가다. 물론 제작비 증가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다. 배우 기근과 편당 제작비 증가로 인해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는 대형 영화들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이런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1996년까지만 해도 한 편당 제작비는 평균 10억원이었지만, 2002년에는 37억2000만원으로 6년 만에 3배 이상 급등했다. 이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형 투자를 당연시했던 분위기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과 투자 대기자본 등의 여건이 1990년대 초반과 비교해 상당히 좋아졌음에도 한국영화의 수익성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딜레마다. 2002년부터 한국영화의 수익성은 마이너스로 전환되어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는 편당 평균 4억3000만원씩 손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영화사들이 와이드 릴리즈를 통해 단기간에 최대한의 수익을 올리겠다는 경쟁적 마케팅을 벌인 결과로, 급변하는 시장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뤄진 측면도 있다. 또한 스태프 임금의 구조 개선, 제작 환경 개선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투자 확대 등도 제작비 상승을 부추겼다.

    하지만 영화계에서는 ‘최근 몇 년은 제작비의 적정 수준을 찾는 모색기이자 한국영화가 완전한 산업화로 이행하는 과도기였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1000만 관객 시대’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그 노하우를 얻었으며, 이는 영화제작 시스템의 성숙을 앞당길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를 염두에 둘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영화 관객층의 변화이다. 관객 1000만이라는 수치는 계층과 연령, 성별의 벽을 허문 광범위한 관객의 지지가 아니고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누누이 언급됐듯 ‘실미도’의 흥행 폭풍 뒤에는 감춰진 역사의 실체를 궁금해하는 중장년층 관객이 있었다.

    중장년층 관객이 성장한 자녀들과 함께 ‘실미도’를 보러 오는 기현상을 두고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는 새로운 개념의 가족 영화”라고 말했다. ‘가족영화’의 통념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가족 단위 관람은 2년 전 흥행에 성공한 ‘집으로…’와 흡사한 측면이 있지만 ‘실미도’의 경우 성인 관객들로부터 ‘자발적 영화보기’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한국영화 시장에서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못했던 40~50대가 움직였다는 것은 잠재적 관객 개발의 꿈이 망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국영화의 주요 관객으로 새롭게 포획할 수 있는 미개척지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사건인 것이다.

    이를 두고 벌써부터 올해를 기점으로 한국영화의 관객 연령대가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이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러나 새로운 관객층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제작비 상승에 따라 필수적인 시장의 확대가 이뤄질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한국영화 산업이 거쳐야 할 또 하나의 관문임에 틀림없다.

    1000만 관객 시대는 문화예술계에서의 영화의 지위에 대한 기왕의 가설들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시네마서비스의 심재만 이사는 “전체 국민의 4분의 1인 1000만명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기록적 의미만 갖지 않는다. 영화는 앞으로 문화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큰 축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미도’가 1000만 관객 시대를 열기 전까지 단일한 문화상품이 1000만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전례는 없다.

    더군다나 사회 전반적인 불황과 맞물려 책, 음반, 연극, 공연 등 타 문화장르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영화의 독주는 문화 전체적으로 보면 바람직한 현상만은 아니다. 영화의 ‘독점적’ 지위가 심화될 경우 문화 전반의 균형적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를 통한 영화의 파급효과를 논하기는 시기상조다. 한국영화는 여전히 인접 문화의 콘텐츠와 긴밀히 결속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영화가 해외 시장에서 문화의 첨병으로 활동하는 등 그 위상의 변화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방안이 모색되어 한국영화의 수익 구조도 다소간 변화할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영화의 수출액은 해마다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2003년 한국영화 수출액은 2500만달러 규모로 2002년의 1043만달러보다 70% 이상 증가했다.

    강우석 감독은 “해외시장에서 한국영화 세일즈 방식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며 “좋은 영화를 단매로 넘겨 더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에서 양질의 영화 콘텐츠가 나올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면 해외에서도 직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실제 ‘실미도’는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현지 배급사와 배급대행 계약을 맺어 개봉하는 방식으로 공격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이를 위해 강 감독은 2월초 일본을 직접 방문했으며 아메리칸 필름 마켓(AFM)에도 참가해 해외 진출을 모색할 예정이다.

    잠재력이 무궁한 중국도 공략 대상 지역 중 하나다.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기획 초기부터 해외시장을 겨냥한 다양한 행보를 보여왔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오는 6월경 일본에서 250여개 스크린에 개봉할 예정인데 제작사측은 5년 전 ‘쉬리’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1000만 관객 시대는 바다 건너 시장을 넓히려는 도전에도 자신감을 심어줄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인들이 언감생심 도전하지 못했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아무래도 한국영화 수출의 주무대는 아시아가 될 것이다. 가요와 TV드라마를 중심으로 일었던 한류(韓流)의 열풍을 영화가 이어받을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의 한류 열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뜨겁다. 양국 합작 및 로케이션 붐, 아시아 네트워크를 통한 문화산업의 공조 흐름에서 영화는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월 중순 부산에서는 ‘아시아 필름커미션 네트워크(AFCN)’ 결성을 위한 준비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8개국 14개 필름커미션(영화 제작의 제반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한 단체)이 참가해 아시아 지역 필름커미션들의 연대를 통한 국가별 정보 교류, 서로 다른 환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 해결, 신생 필름커미션 설립 및 활동 지원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렇듯 국경을 초월한 문화 교류를 기반으로 다방면의 협력 시스템이 구축될 경우 장기적으로 아시아가 하나의 문화 권역으로 탈바꿈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영화를 통해 아시아 문화 공동체의 싹이 트고 있는 셈이다.

    ‘흥행 강박증’

    1000만 관객 시대가 열렸다고 해서 충무로가 만사형통인 것은 아니다. 한국영화에 쏟아지는 요란한 갈채의 이면에는 몇 가지 경계할 점들이 존재한다.

    먼저 1000만 관객 시대의 상찬(賞讚)은 한국영화계에 만연한 모종의 집단의식과 연결돼 있다. 이 무의식의 핵심은 균형과 견제가 사라진 시장 논리이다. 와이드 릴리즈가 영화 흥행에 필수 조건으로 자리잡은 배후에는 멀티플렉스의 증설, 단기간에 최대 수익을 얻는 배급전략의 확산 등의 원인도 있지만, 동시에 상영기간 단축, 마케팅 비용의 급격한 상승, 배급 라인업 구축을 위한 물량 확보 경쟁 심화, 배급사의 대형화, 영화산업의 독점화, 틈새시장 축소 같은 측면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영화산업의 일면적 확대 뒤에 오는 부작용을 암시한다.

    한국영화 관객 폭증현상은 벌써부터 ‘흥행 강박증’으로 연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흥행 강박증의 첫 번째 폐단은 스크린 독점이다. 어지간히 큰 영화가 200~300개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된 지 오래다. 판세를 좌우할 거대 영화를 피해 개봉일을 옮기는 영화가 늘어나고 있고, 평가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사라지는 군소 영화도 부지기수이다. 적자생존이 경쟁의 제1원칙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자본주의 시장도 독과점을 견제하는 시스템이 건재할 때 건강한 법이다. 강자의 논리만이 통하는 시장은 곧 스스로의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시장 장악으로 해묵은 스크린쿼터의 축소·폐지 논란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미국이 한미투자협정(BIT)의 선결 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축소·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일 것은 자명하며, 이에 대한 충무로 영화인들의 대응도 주목된다.

    다양성 무너진 영화 시장

    이쯤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한국영화계에는 영화의 정체성을 두고 교묘한 이중 잣대가 만연해 있다. ‘스크린쿼터 수호’의 중심 논리는, 영화란 상품이기 전에 한 나라의 정신세계를 좌우하는 문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스크린쿼터 유지를 위한 수사로만 동원되는 것 같다. 영화시장에서 문화 논리가 종적을 감추고 시장 논리만이 관철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다. 흥행 성공은 지상 최대의 가치이며, 무한경쟁은 그 어떤 문화적인 요구로도 침범할 수 없는 시장의 법칙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모순된 이중 잣대 속에서 건강한 영화문화의 바탕이 되는 다양성도 심각하게 손상되고 있다. 영진위가 매년 발표하는 ‘한국영화 시장 지표 분석’을 보면 해가 거듭될수록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상승하고 있지만 지역 편중성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2003년만 봐도 전체 영화시장에서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93%나 됐다.

    이 정도라면 한국에서는 한국과 미국, 두 나라 영화만 존재한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시장의 절반이 한 나라의 영화만으로 채워졌다는 점은 반드시 경축해야만 할 상황은 아니다. 설사 그것이 보호하고 육성해야 마땅할 자국 영화라 할지라도 다양성이 무너진 영화의 획일화는 경계해야 한다.

    한 나라의 영화 구조가 산업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은 한 두 개가 아니다. 1000만 관객 시대의 달성은 첩첩이 놓인 고비들 중 하나일 따름이다. 그러나 동시에 1000만 관객 시대는 한국영화 산업의 호기이자 갈림길이다. ‘쉬리’ 이후 다시 찾아온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경험 미숙과 시행착오로 허송했던 과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1000만 관객 시대. 개막보다 그 이후의 행보가 더욱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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