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5 총선은 열린우리당에 과반 의석을, 한나라당에 개헌 저지선을, 민주노동당에 원내 교두보를 각각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의미에 걸맞지 않게 선거과정은 낙제점수를 면하기 어려웠다. 우선 선거과정에서 정당의 정체성은 말할 것도 없고, 정책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총선은 국정 운영이나 각당이 내건 정강정책에 대한 심판이 아니었다. 정책의 빈자리에는 대신 감성이 들어앉았다. 말이 좋아 감성이지 울고, 절하고, 기고, 굶고, 머리 깎고, 붕대 감고, 무릎 꿇고, 사퇴한 것이 전부다. 현대사회가 내세우는 유연성이니 감성이니 하는 것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낙후된 전근대성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총선의 결과는 절묘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는 과반수 확보, 한나라당에는 개헌 저지선 확보, 민주노동당에는 교두보 확보라는 결과를 각각 안겨주었다. 그리고 3당은 각각 책임정치, 견제정치, 의회정치라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승자에게는 ‘불안한 우위’를, 패자에게는 ‘해볼 만한 열위’를 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만할 수도 없고, 낙담할 것도 없는 절묘한 판이 만들어졌다.
이번 총선 결과는 어느 당이 과반수를 얻고, 약진하고, 퇴조하는 정치적 화젯거리나 뜬금없이 불어닥친 진보·보수의 담론 이전에 한국사회의 전체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주의깊게 보아야 한다. 4·15 총선은 세계화 정보화 등 지구적 규모로 변화하는 세계사적인 거대전환의 흐름에 동반하여 나타난 1990년대 한국 민주화의 기반구조 구축과 1997년 외환위기를 극점으로 전개되는 한국사회의 재구조화 측면에서 독해를 해보아야 한다.
외환위기는 우리의 과거를 부인하게 만들었다. IMF의 구조조정 교본은 한국사회로 하여금 과거와의 절연을 강요했다. 이들의 처방은 외환위기와 관련된 경제변수 몇 개에 손대는 정도가 아니었다. 정부, 기업, 금융, 노동은 물론이고 일상의 관행마저 과감히 버릴 것을 요구했다. 한국인의 가치와 태도마저 변화시킬 것을 강요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사회 해체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한국인은 자신의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이면 그것이 민족이든, 전통이든, 국가든, 정치든, 조직이든 상관 없이 훌훌 털어버리겠다는 탈민족, 탈전통, 탈국가, 탈조직, 탈권위의 원리를 빠르게 학습해갔다.
이 과정에서 종래의 권위주의 질서는 급속하게 해체되었다. 그러나 해체된 권위주의를 대체할 합리적이고 새로운 권위의 패러다임은 제시되지 못했다. 민주화를 경험하면서 억압적이고 일방적인 권위주의 정치를 완전히 청산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사회갈등을 조율할 조정기제로서 합리적 제도와 권위에는 합의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그 어떤 시기보다 혼란과 갈등이 크게 드러나고 있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기업, 조직, 지식세계, 학교, 가정 등 모든 영역에서 한국사회가 크게 요동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탄핵정국 역시 권위구조의 패러다임적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탄핵정국을 단순히 전근대적인 정쟁과 사회구조의 산물로 보는 것은 대단히 일면적인 분석이다. 탄핵정국은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의회의 도전인 동시에 제도권 정치에 대한 시민사회의 도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자가 대의민주주의에서 의회가 가진 절차상의 권리였다면 후자는 참여민주주의에서 시민사회가 지닌 실질적 권리였다. 탄핵을 둘러싸고 의회의 권위와 시민의 권위가 부딪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보수는 한 번도 자신들이 주류에서 밀려난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보수는 기존 권위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세력이 돼버렸고, 진보는 거기에 맞서는 대안 권위로 받아들여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