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호

미국의 람보식 석유패권 전략

중동 질서 재편하고 중앙아시아 자원 확보 노린다

  • 글: 이준범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처 jld24@knoc.co.kr

    입력2004-05-31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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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프전에서 그루지야 정권교체, ‘제2의 베트남’이라는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개입하는 해외분쟁의 핵심에 석유가 있다는 분석은 이제 상식이다. 본토는 물론 알래스카에도 상당한 매장량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이 해외 석유에 그토록 집착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미국이 그리는 21세기 에너지지도와 국제세력관계의 청사진, 그로부터 유추해본 향후 20년 미국의 대외정책 방향.
    미국의 람보식 석유패권 전략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어느새 1년이 훌쩍 넘었다. 2001년 9·11 테러사태 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2002년 초에는 일부 국가들을 지목하여 테러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악의 축’ 국가라고 선언했다. 중동 산유국인 이라크와 이란이 이들 ‘악의 축’ 국가에 포함되었고 2003년 3월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을 단행했다. 이 군사공격은 공식적으로는 단 40일 만인 4월30일에 끝났지만, 이라크에서는 아직까지도 후세인 잔당으로 추정되는 세력과 정체가 불분명한 무장세력들이 미군과 여타 주둔군들을 상대로 테러식 공격을 가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 이들의 공격 양상은 우려할만한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라크내 다수파인 시아파와 미 군정 당국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고, 팔루자와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미 해병과 무장세력간 직접 교전이 발생하여 이라크가 ‘제2의 베트남’이 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사태로 인해 공식 전쟁기간보다 휠씬 더 많은 군인과 이라크인들이 희생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 이라크 포로에 대한 미군의 비인도적 행위가 잇따라 폭로되면서 미군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는 급전직하했고, 이는 세계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최근의 고유가 현상에 대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진행되면서 석유는 빠지지 않고 그 배경으로 거론되었다. 9·11 테러 직후 이슬람 국가가 테러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이 제기되자, 이슬람 국가에 대한 미국의 보복 가능성은 석유공급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란 분석으로 연결되었다. ‘악의 축’ 국가가 선포되었을 때 이에 포함된 2개국이 공교롭게도 중동의 영향력 있는 산유국이었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군사공격이 시작되었을 때도 이는 이라크 석유자원을 노리는 미국의 야만적인 행동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러한 시각이 어느 정도 정확한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석유가 이들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즉 석유는 미국으로 하여금 군사행동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으며 한 국가가 군사공격을 당해 그 운명이 바뀔 만큼 중요한 자원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미국에게 있어 석유가 무엇이기에 분석가들은 석유와 군사행동을 연결시키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석유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와 세계 경제질서의 유지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석유는 오늘날 세계경제의 주력 에너지원이다. 세계경제가 상업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는 연간 94억 석유환산톤(TOE ton of oil equivalent, 다양한 에너지원을 석유로 환산하여 톤으로 나타낸 단위)이다. 이 가운데 석유는 37%인 약 35억t이며, 석유와 같은 탄화수소 계통 연료인 천연가스가 24%인 22억t이다. 석유계통의 연료가 전체 에너지 소비의 61%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석유가 주력 에너지원으로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연코 미국이 노력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미국은 전후 안정적인 경제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국제경제의 핵심인 무역, 금융 및 에너지에 대해 근본적인 재편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무역 분야에서는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도입해 식민지 중심의 블록무역을 부정하고 자유무역질서를 관철시켰으며, 자유무역을 뒷받침하기 위해 달러를 국제통화로 정착시켰다.

    에너지의 경우에도 미국은 주요국인 유럽 국가들이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도록 유도했다. 2차대전 중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서 연합군 작전에 필요한 석유를 공급했고, 미국 기업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견한 대규모 유전을 보유하고 있어 유럽에 석유를 공급할 능력을 갖고 있었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주에너지원이던 석탄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냉전으로 인해 유럽의 주요 석탄 생산국인 폴란드가 공산화되었고, 유럽 각국에서 사회주의가 점차 힘을 얻으면서 석탄 노동자들의 파업이 잦아져 공급이 불안정해진 석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다. 특히 영국 런던에서는 스모그 현상으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해 석유로의 연료전환 요구가 거세졌다.

    미래가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은 유럽 경제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Marshall Plan)에 따른 현금차관 대부분을 유럽국가들이 미국 기업으로부터 석유를 구매하는 데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유럽이 에너지를 석유로 전환하도록 유도했다. 한편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 사령부가 태평양전쟁의 원인이었던 일본 재벌을 해체하면서 이들이 보유한 정유회사지분을 메이저 석유회사들에 넘기도록 하여, 미국이 세계 에너지를 석유로 재편하는 출발점을 마련했다.

    미국이 세계 석유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미국의 현재 석유매장량은 304억배럴로 전세계 매장량 1조477억배럴의 2.9%에 해당한다. 세계 7위에 해당하는 매장량으로 전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결코 작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하루에 전세계 석유소비량의 26%에 달하는 1970만 배럴을 소비하는 세계 제1의 소비국이다. 하루 76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세계 2위의 산유국이라고는 하지만 소비량을 감안하면 충분한 물량이라고 할 수 없는 것. 더욱이 미국의 현 석유매장량은 향후 11년간 생산할 물량에 불과하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미국의 석유는 11년 후면 고갈되고 마는 것이다.

    미국이 석유를 본격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한 1960년대 석유 자급률은 76%였지만, 1987년 50%대, 1993년 40%대, 1999년 30%대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미국의 해외석유에 대한 의존도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최근 발표된 주요 에너지정책 보고서에 그대로 나타난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 직후 체니 부통령 책임하에 국무부, 내무부 등 에너지 관련 정부부처와 백악관을 총망라한 ‘국가에너지정책 개발연구단(National Energy Policy Development Group)’을 구성하여 ‘국가에너지정책’을 수립했다. 2001년 5월에 완성되어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된 이 보고서는 ‘미국의 석유 생산은 2020년에 하루 510만배럴, 소비는 2580만배럴, 자급률은 20%로 전망되며 현재보다 공급여건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미국의 에너지 장래가 극히 불투명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 내에는 알래스카와 멕시코만 등 유망한 석유매장지가 있다. 그러나 이들 유전 또한 미국의 증가하는 소비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규모는 아니다. 미국의 평균 석유생산비는 배럴당 10달러 이상으로, 중동 산유국의 4~5달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신흥 유전 발견지로 부각되고 있는 멕시코만은 수심 수천 미터 아래에 있는 심해 유전이라 채굴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까닭에 생산비 역시 매우 높다. 알래스카의 경우에는 유망 유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지역과 송유관 건설예정 지역이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유전은 1980년대에 발견됐으면서도 아직까지 개발관련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석유를 대체할 만한 에너지원이 아직까지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한 미국이 해외 석유를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는 요인이다. 태양광, 조력 및 풍력과 같은 에너지원은 아직까지 석유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한때 석유를 대체할 만한 에너지원으로 거론되던 원자력의 경우, 미국은 1979년 이후 신규 발전소를 건설하지 않고 있다. 핵무기 개발기술을 확산시킬 우려가 있고 원전 방사능 누출사고를 막는 안전기술이 아직 완벽하지 않으며 방사능폐기물 처리와 같은 환경상의 제약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버드대와 MIT대 공동연구팀이 2003년 9월 발표한 종합보고서도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며 ‘원자력은 아직까지 경제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1950년대 석유 순수입국이 된 이래 미국은 대외 석유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크게 세 가지 원칙을 유지해왔다. 먼저 세계 석유자원이 특정국 혹은 정치 세력에 의해 장악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가 석유를 기초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석유의 생산 및 공급이 미국과 정치적으로 반대관계에 있는 국가 혹은 정치세력하에 놓일 경우 국제정치관계도 그 국가에 의해 좌지우지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다. 이 경우 미국의 영향력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1973년의 제1차 석유위기는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가장 극명한 사례다. 당시 미국은 아랍의 석유금수조치 대응방안을 놓고 유럽 동맹국들과 심각한 정치적 갈등을 겪었으며, 무기력하다고만 여겼던 제3세계 산유국들이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음으로써 이들 국가에 대한 미국의 정치력도 현격히 떨어졌다.

    둘째, 미국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유가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나치게 높은 석유가격은 미국과 같은 석유 소비국으로부터 산유국으로 ‘부의 이전(transfer of wealth)’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석유구매 결제통화인 달러가 지나치게 산유국에 몰리게 되어 국제 금융질서도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미국이 합리적인 국제유가를 구체적이고 공개적으로 제시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미국의 외교 및 에너지 정책당국자와 주요 산유국이 수시로 유가에 대한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국제유가 형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원칙은 석유를 미국 대외정책 수단의 하나로 적절히 활용한다는 것이다. 석유는 상징적이며 실질적인 효과를 갖는 경제제재 수단이다. 또한 해상 수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석유의 특성은 주요 해역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해상봉쇄를 통해 효율적으로 금수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다. 석유금수 조치는 수입국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군사장비 가동을 멈추게 하여 군사적 방어력도 약화시킨다. 산유국의 경우 석유금수는 국가재정 타격으로 연결되어 정권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

    석유를 기초로 세계 경제질서를 창출한 미국은, 단순히 자국경제의 필요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세계질서를 주도하기 위해 세계 여러 곳에서 석유자원 확보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이 해외 석유자원 개발을 위해 최초로 진출한 곳은 이라크.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패전국 터키의 식민지였던 이라크 유전개발에 프랑스 및 영국과 공동으로 참여했다. 이후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 식민지였던 사우디아라비아 유전개발 참여, 1953년 왕정타도 쿠데타 진압 대가로 얻어낸 이란 석유산업 참여 등 전세계 주요 산유국에서 석유자원을 확보해갔다.

    그러나 1990년대 냉전이 종식되면서 미국의 대외 석유전략에 일대 변화가 일게 된다. 냉전 종식으로 미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가 되면서 과거 소련 영향권 아래에 있던 석유자원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 러시아 연방, 소련으로부터 이탈한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 연안, 그리고 친소(親蘇) 지역이었던 서부아프리카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가운데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 연안은 미국이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구소련 시절 주요 석유생산지였지만 냉전이 시작되면서 버려진 곳이었다. 미국 세력권인 터키 및 이란과 지리적으로 지나치게 가깝다는 이유로 소련이 석유생산 중심지를 내륙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현재 이 지역의 최종 매장량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미국 의회는 세계 매장량의 30%에 해당하는 약 3000억배럴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는 북해유전을 대체할 수 있는 지역으로 평가된다. 이 지역 유망 산유국인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이 본격적으로 석유생산을 시작하면, 현재 석유공급을 좌우하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대항할 수 있는 지역이 될 가능성도 있어서 국제유가 안정에도 기여하게 된다.

    또한 석유는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갖고 있는 영향력의 감소를 바라는 미국의 의도를 실현해줄 수단이기도 하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구소련 시절 철저히 러시아에 종속되도록 구조화되었다. 미국은 석유개발을 통해 이 지역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함으로써 러시아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종국에는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미국은 중앙아시아의 석유수출을 위한 송유관 건설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이 지역은 내륙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석유를 해상 수출할 수 있는 항구가 없다. 때문에 아제르바이잔 및 카자흐스탄의 석유개발에 참여한 서방 석유기업들은 송유관을 건설하기로 결정했고, 인접한 러시아는 이 지역을 계속 자국의 영향력하에 두기 위해 송유관이 러시아 영토를 통과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이에 대응하는 조치로 미국은 1996년 클린턴 대통령이 이 지역 석유개발 참여회사 CEO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미국의 우방인 터키 영토를 관통하는 형태로 송유관을 건설할 것을 직접 설득했다. 그 방안이 자국의 석유공급 안보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근거한 작업이었다.

    미국은 또한 이 지역에서 석유자원을 개발하고 수송하는 데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국가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군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조치했다.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우즈베키스탄 등 산유국 혹은 송유관 통과 국가들을 나토의 ‘유럽-대서양 협력위원회(Euro-Atlantic Cooperation Council)’ 협력국가로 편입시킴으로써, 러시아의 군사안보적 영향력을 배제시키고 석유공급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한 것이다. 실제 미국은 지난해 11월 그루지야의 무혈혁명을 배후 지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송유관이 통과하는 그루지야의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지나치게 러시아와 가까워지자, 그루지야 내의 대통령 퇴진운동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실패

    그런가 하면 미국은 러시아 석유를 수입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2001년 9·11 테러사태 이후 러시아는 다시 미국의 중요한 석유공급 가능 국가로 등장했다. 20세기 말 냉전 종식 후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전통적으로 석유를 수출해온 유럽에 대한 석유공급에 치중했을 뿐 미국에는 석유를 거의 공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과 러시아는 석유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비이슬람권 국가로부터의 석유공급 증가가 절실한 미국의 이해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는 1998년 외환위기의 여파를 국제적인 고유가를 통해 완전히 극복했다. 이에 고무된 러시아는 현재 일일 약 850만배럴인 산유량을 5년 후 하루 1000만배럴로 늘려 세계 제1위의 산유국이 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냉전 이후 국내 자본이 빈약했던 러시아는 석유수출과 관련된 기반 투자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현재는 송유관이 포화상태에 도달해 증산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획기적인 투자 없이는 증산계획도 불가능한 것이다.

    2002년 미국과 러시아는 에너지 정상회담을 통해 석유와 세계 테러문제에 긴밀히 협의하기로 했다. 이 협의에 근거해 미국은 러시아 서시베리아산 원유를 도입하기 위해 서시베리아로부터 북극해 부동항(不凍港) 무르만스크까지 송유관을 건설하려는 러시아의 사업계획에 투자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이제 석유를 자급할 수 없는 국가이며 해외 석유에 대한 의존을 계속 확대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등에서 석유를 확보하려는 미국의 노력도 그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중동은 여전히 미국이 전체 석유수입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는 의미 있는 공급원이다. 게다가 미국이 정치적으로 가장 신뢰하는 공급원인 캐나다, 멕시코, 북해 지역의 석유 장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미국은 이들 지역으로부터 전체 수입의 41%인 463만배럴을 도입하고 있지만 이지역 매장량은 고작 향후 8~10년 버틸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이 기대를 걸고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경우 석유 매장량이 확인되지도 않았다.

    미국의 람보식 석유패권 전략
    여기에 중동의 석유잠재력을 감안하면 중동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는 높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동은 현재 전세계 매장량의 65%인 685억배럴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약 92년간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이다. 중동 산유국들은 풍부한 매장량을 바탕으로 전세계 석유생산량의 28%인 하루 2098만배럴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중 86%인 1806만배럴을 수출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 석유교역의 41%를 차지하는 규모이며 세계 어느 석유생산 지역보다 수출 비율이 높은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석유를 둘러싼 미국의 중동정책은 매우 수동적이었다. 전임 부시 행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중동지역은 역내(域內) 정치불안과 국내 정치불안이 병존했다. 즉 걸프전을 통해 이라크의 쿠웨이트 공격을 목격한 역내 친미 국가들은 아랍 형제국으로부터 언제든 군사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심각한 안보 불안에 직면해 있었다. 대내적으로도 이란의 이슬람혁명 성공에 고무된 국내 정치세력들이 친미 산유국의 전제왕정타도와 이슬람 공화정 수립을 요구하는 반체제 목소리가 높아가던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지역 패권국가(regional hegemon)인 이란과 이라크를 정치 경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친미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및 아랍에미리트(UAE) 등을 보호하려는 ‘이원 봉쇄정책(dual containment policy)’을 취했다. 즉 석유공급 불안 요인을 제거하기보다 이들의 활동을 억제하는 정책을 채택했던 것이다. 한편 온건 친미 산유국과는 ‘석유-안보 교환관계’를 구축했다. 이 관계의 핵심은 탈냉전 유일 패권국인 미국이 이들 온건 중동 산유국들에 군사 정치적 안보를 제공하는 대신 이들 산유국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논리였다. 그 가장 구체적인 실례가 바로 ‘미국-사우디 동맹’이다. 국제정치의 유일 초강대국과 세계최대 산유국이 협력하여 석유공급과 중동지역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미국의 이원 봉쇄정책과 석유-안보 교환정책은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원 봉쇄정책의 경우, 초기에는 이라크의 활동이 UN의 경제제재와 미국의 군사활동으로 봉쇄되는 듯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1996년 국제유가가 강세를 보이자 미국은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이라크 석유수출을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그러나 석유수출 대금을 UN이 직접 관리함에 따라 재정주권을 상실한 후세인 정권은 석유 구매회사들로부터 비자금을 거두려는 목적으로 수시로 수출을 중단시켰다. 그 결과 국제유가는 오히려 불안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 미국의 중동 산유국 보호 정책과 일부 아랍 국가의 친미 정책은 오히려 이들 국가의 정통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성지가 있는 자국에 이교도인 미군 주둔을 허용해 전아랍권은 물론 자국 내에서도 심한 반발에 부딪혔다. 즉 1920년대 알 사우드 왕가의 정치적 독립운동과 이슬람 원리주의운동인 와하비주의의 결합에 근거해 탄생한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보호를 받음으로써, 와하비주의 이념이 퇴색하고 있다는 국민의 비판이 고조된 것이다. 이런 비판 여론은 사우디 지배계층 내에서도 형성됨으로써 사우디 왕가에 부담이 되었고 알 카에다와 같은 반미-반사우디왕정 세력의 형성에도 기여했다.

    부시, 인정 대신 제거

    조시 W. 부시 행정부의 중동 정책은 이러한 전임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원 봉쇄정책이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본 부시 행정부는 이들 지역 패권국가를 인정하기보다는 와해시키는 것을 정책목표로 추구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악의 축’ 리스트에 이라크와 이란이 동시에 포함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첫 와해대상이 된 이라크는 국제적인 절차마저 무시한 미국의 군사공격을 받았다.

    미국 입장에서 이라크는 중동의 석유공급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존재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이란과 전쟁을 일으켜 세계 석유공급에 혼란을 일으켰으며, 1990년에는 쿠웨이트를 침공해 온건 친미 산유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했고, 클린턴 행정부 때는 수시로 수출을 중단, 국제유가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라크가 변화하지 않는 한 이라크 석유자원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판단이었다. 이라크는 1125억배럴의 매장량을 보유한 세계 2위의 석유자원 보유국이므로 언젠가는 UN의 이라크 석유금수 조치도 해제될 수밖에 없다. 금수조치가 해제되면 이라크는 막대한 수입을 확보하게 될 것이며 이 재원은 군사력 증강에 사용되거나 미국이 우려하는 대량살상무기 구입에 이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예방적 차원에서 이라크를 공격한다는 것이 미국의 논리였다.

    또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중동 석유산업 구조 변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중동 산유국 대부분은 석유자산을 국유화하여 외국자본의 석유자원개발 투자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이들 산유국에 시장원리가 도입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미국의 람보식 석유패권 전략

    노르웨이 부근 북해의 한 유전. 미국의 안정적 석유공급지였던 북해 유전은 그 수명이 10년도 남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폴 월포위츠, 제임스 켈리 등 부시 행정부내 주요 외교정책 결정자들은’세계 시장과 국익(Global Market and National Interest)’이라는 저서를 통해’국제석유산업은 시장원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하며 이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중동 산유국이 석유산업을 개방하도록 미국이 유도해야 한다고 천명한 부시 행정부의 ‘국가에너지정책’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이 이라크 석유산업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이 이라크 석유산업을 외국자본에 개방하게 되면 투자개방에 주저하고 있는 주변 산유국들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란의 변화?

    미국은 이라크 공격의 여세를 몰아 또 다른 지역 패권국가인 이란과의 관계 변화에도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1979년 이래 이란에 취해온 경제제재조치의 결과 미국 석유기업들은 이란의 석유사업 참여가 금지되어 있는 상태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석유기업들은 이란의 석유이권이 유럽 및 일본 기업에 넘어가고 있다며 미국 정부를 비난하고 있고, 미 정부 또한 동맹국들의 이란 석유사업 참여를 막기 위해 불필요한 마찰을 빚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실례로 2003년 미국은 일본이 이란 아자데간 유전 개발에 참여하려 하자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위한 자금원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일본을 막은 적이 있다.

    2004년 들어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 보유 포기선언을 한 데 이어 이란도 핵무기 보유의사가 없음을 밝혀 미국과 타협의 여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금년으로 예정되어 있어 이러한 움직임은 상당히 가변적이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대선을 앞두고 이란과의 관계변화를 추진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며, 이란도 이 점을 의식하고 단순한 시간 벌기로 방향을 잡은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와 같은 지역 패권국가를 와해시킨 후에도 미국은 중동 석유정책의 중심을 이라크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둘 가능성이 크다. 군사공격에 성공한 미국이 다른 어느 국가보다 이라크 석유자원에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라크 석유에 의존하기에는 미흡한 요인이 다수 있다.

    우선 생산능력이 문제다. 이라크 석유산업이 완전 복구될 경우 최대 일일 600만배럴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더욱이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서는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요성은 당분간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는 공급위기가 발생할 경우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 산유국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하루 약 350만배럴 이상의 잉여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중동의 주요산유국 두 나라가 생산을 중단해도 충격을 흡수하기에 충분한 양이다. 더불어 사우디아라비아는 지상시설에 대규모 석유를 비축하고 있다. 이러한 능력 덕분에 사우디아라비아는 9·11 테러 직후와 미국의 이라크 공격기간 중에 국제 석유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른 한편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믿을 만한 공급원인 캐나다, 멕시코, 북해 지역의 장래가 불투명한 까닭에 대체 공급원을 확보해야 하지만 그 대상이 중동지역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는 이른바 ‘문명 충돌론’적 시각을 전제로 깔고 있다. 기독교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의 갈등 개연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슬람권에 석유를 의존할 수는 없다는 전망이다.

    거꾸로 해석하면 이는 같은 기독교 문명권인 러시아 혹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해석으로 연결된다. 특히 중앙아시아의 석유잠재력이 구체화되어 대규모 생산이 가능해질 경우 이 지역은 중동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석유 둘러싸고 美·中 갈등 고조

    한편 문명 충돌론적 시각과 관련하여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이 중동 산유국과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선 눈여겨볼 대상은 중국. 세계에서 석유소비 증가율이 가장 높은 중국은 국내 원유생산 침체로 인해 해외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가고 있다. 그런데 중국이 의존할 수 있는 지역으로는 중동이 가장 유망하다.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이 중동 산유국과 석유를 통해 전략적으로 강력한 유대를 형성할 경우 자국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군사강국으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는 중국이 중동 산유국들과 전략적 유대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분명히 미국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의 대중동 접근은 이미 구체화되고 있다. 5월 중에 중국은 중동 주요 석유생산 왕국들의 협의체인 걸프만 협력기구(GCC)와 경제협력조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미국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중국과 이른바 ‘악의 축’ 국가간의 관계강화다. 중국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에 이라크에서 대형유전을 확보한 바 있다. 더욱이 미국이 아직까지 적대국으로서 경제금수조치를 취하고 있는 이란과 중국의 긴밀화는 큰 우려거리가 될 것이다. 즉 중국이 원유를 도입하는 대가로 이란에 군사지원을 시도하면 미국의 중동정책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다.



    미국이 이라크 전후 처리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할 경우, 중동을 두고 중국과 경쟁자 관계에 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영향력은현재보다 위축되는 반면 중국의 활동공간이 상대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까닭이다. 이 경우 석유는 양대 강국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소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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