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호

한국사회의 세대별 라이프스타일 연구

본때 나게 살고 싶은 20대, ‘끼리의식’강한 30대, 현실 추종형 40대

  • 글: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 swhang@yonsei.ac.kr

    입력2004-05-31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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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한국이 전세계에서 세대간 의식 격차가 가장 큰 국가로 나타났다. 이 같은 세대차는 사회분열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필자는 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해 각 세대별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했다. 한국사회의 고질이 되고 있는 ‘세대차’의 해법은 무엇일까.
    한국사회의 세대별 라이프스타일 연구

    전통을 지키려는 기성세대와 ‘촛불시위’에 나선 젊은이들, 여기에 ‘웰빙’붐까지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은 다양하다.

    우연히 김용옥씨의 TV강의를 보게 되었는데 조선시대 기(氣)철학자인 최한기가 서양의 우주관을 비판하는 대목이었다. 200년 전 조선 학자가 서양을 비판한 것을 특유의 목소리로 열강하는 김용옥씨의 모습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강의 제목이었다. ‘우리는 누구인가.’

    몇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현재의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을 줄 것이라는 믿음은 고전을 공부하는 모든 이의 희망이다.

    그러나 지금이 전국(戰國)시대나 왕조시대가 아닌 근대 시민사회라고 한다면, 시대에 따라 자신을 규정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이해하는 방식도 분명 달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현재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이 누구이며,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것인가.

    자신의 모습을 일관되게 보려는 인간의 ‘사고의 틀(frame of thought)’은 놀라울 정도로 견고하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가지기보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20년 전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같은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도 거의 대부분이 ‘같은 사람’이라고 응답한다. 스스로를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존재로 보려는 심리, 또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항상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이다. 이런 착각현상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특히 자신과 다른 시대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사람, 다른 세대에 속하는 사람을 평가하고 이해하려는 경우 더욱 그러하다.

    하나의 세대, 하나의 정체성은 착각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가치관은 시대에 따라 또는 개인의 경험에 따라 변화한다. 이런 변화는 개인의 특성으로 표현되기보다는 특정 연령집단이 가지는 동년배의 특성이다. 이렇다 보니 때로 ‘우리는 누구인가’ 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자신과 동년배가 경험하는 세대의 특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되기도 한다.

    10대, 20대, 386세대 등 연령에 의해 구분되는 동년배 집단은 사람을 범주화시키고, 그 범주에 대해 기존의 지식(즉, 고정관념)을 적용하는 과정으로 구체화된다. 이 고정관념은 다른 사람의 사회행동을 해석하고 심지어 타인의 가치관을 판단하는 데 사용된다.

    대표적인 예가 N세대, X세대, 386세대, 유신세대, 6·3세대, 4·19세대, 6·25세대, 해방세대 등이다. 이것은 어떤 연령대에 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경험한 대표적인 정치·사회·문화적 사건이나 현상으로 특정세대를 범주화시키는 일이다.

    이런 범주를 정해놓고 10대인 N세대는 다양성을 폭넓게 수용할 수 있고 호기심이 강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의존하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한다거나, 20대인 X세대는 언제든지 할말은 해야 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남과 다른 ‘나’를 추구하려 한다고 평가한다. 이에 비해 386세대는 사회의식이 강하고 기존세력에 대한 저항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년배 집단의 세대적 특성은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다양성을 폭넓게 수용할 줄 알았던 청소년들이 자신과 개성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주간한국, 2000.1.5). 뿐만 아니라 남과 다른 자신을 추구한다는 X세대는 불황이 지속되자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 안주하고 있다(동아일보, 2000.10.19). 심지어 기성세대의 부패한 정치판을 새로운 바람으로 개혁하겠다던 386세대 국회의원이 룸살롱 스캔들로 망신을 당하거나 정치인들의 구태를 되풀이할 때 저항정신이 투철하다는 386을 떠올리기 어렵다.

    세대차는 연령차가 아니다

    그래서 한국사회의 다양한 세대집단에 대해 다시금 정의하고, 또 이것을 제대로 인식하고자 한다. 이 작업의 일차적인 목적은 각기 다른 세대집단이 만들어내는 한국사회의 변화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다. 현재의 기성세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지배집단으로 등장하는 세대가 있다면 그 세대가 만들어내는 현재와 미래의 한국사회는 무엇이며 또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이해하고 예측할 필요도 있다.

    세대차와 관련하여 산업화된 43개 국가를 조사한 한 연구(Inglehart, 1997)는 한국이 ‘가장 세대차가 큰 사회’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한국사회는 동일한 문화 속에서 ‘세대(혹은 나이)’에 따라 다른 행동양식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무수히 제기되었다. 결국 이것은 세대차를 특정 사회에서 특정 동년배 집단이 가지는 대표적인 심리적, 행동적 차이로 분석하고 해석해야 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세대차는 연령차에 의한 구분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 가지는 자신들의 삶에 대한 가치와 다른 동년배 집단들에 대한 이미지의 차이다. 개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따라 정리된 가치체계(value system) 속에 놓여 있으며, 이런 가치체계는 개인마다 다르다. 사람들은 그런 가치체계에 의존해서 자신의 갈등을 해소하고 또 개인의 자존심을 유지하고 향상시킨다. 개인은 삶 속에서 학교, 거주지, 직업, 배우자, 종교를 선택하는 큰 문제부터 쇼핑을 비롯한 사소한 문제를 결정하기까지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을 경험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개인만의 독특한 정체감,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낸 정체감이다. 이런 정체감은 때로 개인이 속한 동년배 집단의 특성이 된다.

    사람들이 이것을 특정 세대집단의 특성이라 쉽게 수용하는 이유도 바로 이들의 보편적인 특성들-공적인 의미, 가치, 태도, 신념, 행동양식 등-이 그 개인의 자아 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아의 특성을 동년배 집단과 동일시하면 ‘세대’라고 부를 수 있지만, 개인의 특성으로 취급하면 이것은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이 된다.

    한국사회의 세대집단을 심리적 특성을 기준으로 구분하려는 시도는 필자가 이끌고 있는 연세대 ‘인간발달 소비자 광고심리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심리적 세대모형’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됐다.

    다음 쪽 〈표1〉에 나타난 세대 구분은 개인이 속한 동년배 집단의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기초로 한 것이다. ‘해방전후복구세대’와 ‘근대화세대’는 전통가치에 기반을 둔 모습이고, ‘경제부흥기세대’는 물질주의적 성공과 사회적 성공에 전념하는 특성을 나타낸다. ‘민주화세대’는 개혁세대로서, ‘자율화세대’는 새로운 것을 감각적으로 수용하는 세대로서 각기 개방적 성향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신인류세대’는 자기를 마음껏, 뚜렷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의 행동특성을 반영하는 이미지이다.

    이들을 흔히 말하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로 나누어 보면 ‘근대화세대’ ‘경제부흥기세대’는 ‘기성세대’라 부르고, 민주화세대 이후는 ‘젊은 세대’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근대화세대’와 ‘경제부흥기세대’의 정체감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한국정치는 ‘3김’으로 대표되던 ‘해방전후 복구세대’에 의해 주도되었으나, 9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민주화세대’ 집단으로 그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 그 사이에 낀 ‘근대화세대’와 ‘경제부흥기세대’는 사회의 주도권을 쥐어보지도 못하고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었다는 상실감과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이들 세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대한민국의 경제 번영으로 과시할 수 있었지만, 그 경제적 성과가 사회 지배층의 가치나 규범으로 정착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연령집단을 중심에 놓고 세대를 분석하면 ‘신세대는 000다’식의 ‘단순화’ ‘도식화’에 빠지기 쉽다. 오히려 개인이 지닌 가치와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에 놓고 각 세대를 분석하면 동일연령집단 안에서 나타나는 이질적이고도 새로운 모습이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현재 한국인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5가지 라이프스타일은 물질적 신(新)봉건형, 개인주의적 보보스형, 공동체적 개방형, 현실적 동조형, 전통적 보수형(표2 참조)이다.

    물질적 신봉건형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배경이나 연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유형이다. 개인주의적 보보스형은 철저하게 ‘나’ 중심적으로 사고한다. 자기계발이 삶의 목표이며 남과는 다른 나만의 개성을 중시한다. 현실적 동조형은 한마디로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유형이다. 물질적 성공이나 자기계발에 큰 가치를 두지 않으며 현실이나 사이버공간 어디에서도 자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아 정체성이 모호하다. 공동체적 개방형은 일단 사람을 좋아하는 유형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이 잘되면 나도 잘 된다고 생각한다. 전통적 보수형은 시대가 바뀌어도 전통적 가르침은 변함이 없으며 인간관계의 상하서열이 사회의 기본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비판적이다.

    물론 이 5가지 유형은 특정연령집단만이 아니라 각 연령집단마다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다만 연령집단마다 주류를 이루는 유형이 있으며 그것이 그 집단을 대표하는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이제부터 이 유형이 각 세대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신세대의 복잡한 정체성

    한국사회에서 신세대 젊은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물질적 신봉건형이다. 이들은 “비싼 만큼 값어치를 한다” “내용 못지않게 포장도 중요하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지 한다”는 생활모토를 가지고 있다. 또 “믿을 건 나하고 가족뿐이야! 그리고 돈 벌고 출세해야 제대로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젊은이답지 않게 상하서열적 위계질서도 어느 정도 지키면서 남아선호 사상까지 보인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또 그 돈이 자신의 즐거운 삶을 위해 쓰일 때 가치 있다고 여긴다. 특히 성공하기 위해서 집안, 학벌, 연줄 등의 전통적인 도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 이외의 공공의 문제, 즉 사회나 정치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명품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면서 본때 나게 잘살고 싶어하는 한국인 다수의 심리를 대변한다.

    이에 비해 개인주의적 보보스형의 인생관은 한마디로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다”이다. 이 유형은 항상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려는 성취지향적인 사람들이다. 자신만의 개성을 마음껏 자유롭게 표현하려고 한다.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자기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주변사람은 모두 경쟁 대상이고 성공이 이들의 이념이다.

    또 이들은 재미있게 살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돈을 벌고, 물질적인 풍요 못지않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인기 있는 직업을 갖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 고등교육은 필수적이다. 타고난 배경이나 연줄을 이용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기성세대가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요즘 젊은이들’ 또는 ‘N세대’ ‘신세대’로 뭉뚱그려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가 물질적 신봉건형과 개인주의적 보보스형이다. 이들은 풍요의 사회 속에 성장했기에 물질적 안정과 성취성향이 강한 반면 정치적, 사회적 관심은 비교적 적다.



    한편으로 정치활동이나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젊은이도 많다. 이들이 바로 공동체적 개방형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젊은이들이다. 소위 386세대라고 지칭되면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기성세대와 상당한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는 젊은이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공동체적 개방형은 다른 집단에 비해 개방성과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다. 그리고 이들은 미미한 정도의 가부장적 태도와 남아선호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위계질서에 강한 저항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잘 협력한다. 인간관계의 특성이 유유상종(類類相從)이며,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는 스스로 만든 울타리 내에서 맘껏 서로의 개성을 발휘한다. 소위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고 우리 편이라고 하면 웬만큼 튀어도 용서한다.

    그러나 비슷하지 않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강한 적대감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의 생활은 동료나 또래 중심적이다. 동료의 성공이 나의 발전이며 또 기뻐할 일이다. 반면 이들은 위계적인 상하서열과 권위적이거나 전통적인 가족중심적인 것에는 별로 가치를 두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거나 우월성을 드러내는 것에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노사모’가 이런 성향을 대표한다. 그러나 노사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 중엔 30대뿐 아니라 40대, 심지어 50대 연령에 속하는 인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꼭 특정 연령집단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열린 우리’와 ‘닫힌 그들’ 사이에서

    ‘공동체적 개방형’ 젊은이들의 행동은 분명 한국사회에서 흥미로운 성향이다. 한국사회에서 기성세대의 공동체란 내가 아닌 무엇을 위해 내가 희생하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의 의미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로 상징됐다. 따라서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공동체성이란 불우이웃돕기 성금부터 외환위기 극복 금 모으기, 평화의 댐 성금으로 나타난다. 이런 공동체는 젊은 연령층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공동체적 개방성향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젊은이들의 공동체는 호기심으로 한번 참여할 수 있는 무엇이다. 그것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참가한 동아리, 혹은 동호회일 수도 있고 또 재미있는 파티 모임일 수도 있다. 즐거움이 있으면 내가 속하는 것이고, 서로 통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사람들이 모인 것은 바로 나를 위한 것이며, 공동체의 유지도 나를 빛내면서 우리가 같이 어울리기 위한 것이다.



    한국사회의 세대별 라이프스타일 연구

    <그림 1> 10대에서 50대까지의 동년배 집단에서 나타난 라이프스타일과 비율(2002년 4월 조사)

    그러나 공동체적 개방형의 젊은이들은 끼리끼리는 개방적이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 개방성이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동체적 개방형이 주장하는 개혁과 새로운 세상은 자기들만이 동의하는 개혁이자 자기들만이 바라는 세상처럼 보인다. 전통적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보기에 공동체적 개방형의 젊은이들은 ‘열린 우리’가 아니라 ‘닫힌 그들’일 뿐이다.

    사실 공동체적 특성은 한국인이 쉽게 보이는 ‘끼리의식’이나 ‘패거리문화’의 또 다른 표현이다. 혼자 하기에는 불안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끼리끼리가 된다. 그리고 이런 집단 성향은 기성세대나 젊은이 모두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기성세대는 이것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라고 표현하고, 젊은이들은 이제 국가 대신에 ‘공동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공동체의 심리,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기성세대와 젊은이를 구분하는 또 다른 심리적 코드다.

    붉은악마 응원이나 촛불시위는 공동체적 개방형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참여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사회참여에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시민단체를 만들거나 참여하며 또 상황에 따라 정치적인 조직으로 발전시킨다. 비교적 사회참여 의식이 낮은 물질적 신봉건형과 개인주의적 보보스형에 비해 공동체 지향 젊은이들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하고 참여한다.

    이 점에서 ‘공동체적 개방형’은 전통적 보수형 집단과 유사성을 보인다.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다르지만 둘 다 정지치향적이기 때문에 충돌하고 서로 적대시할 개연성이 높다. 이들은 자신이 어떤 대의(大義)를 위해 노력한다고 믿는다. ‘공동체적 개방형’ 젊은이들이 권위와 위계질서를 부정하고, 규범을 무시하려고 하고 이를 ‘개혁’ 혹은 ‘혁신’이라고 부른다면 그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 ‘전통적 보수형’이다. ‘전통적 보수형’의 기성세대는 ‘공동체적 개방형’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통적 보수형’ 사람들이 절대시하거나 두려워하는 어떤 가치(반공, 사유재산 보장 등)를 거부하는 집단으로 인식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안타까운 사실은 대다수 현실적 동조형에 속하는 40대와 50대의 한국인들이다. 이들은 가능한 한 자신의 개인적인 특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대세를 따르려고 한다. 사회 지배적인 가치나 라이프스타일이 있다면 그것을 그냥 자기의 성향이라 생각하고 조용히 따른다.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역할을 다하는 이 유형의 사람들은 ‘공동체적 개방형’과 ‘전통적 보수형’이 대립하며 팽팽한 갈등노선을 형성할 때 자신의 삶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

    우왕좌왕 40대

    이와 같은 틀을 가지고 2002년 4월 연세대 ‘인간발달 소비자 광고심리 연구실’이 실시한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 연구’ 결과는 각 연령별 주류 유형을 보여준다(그림1).

    10대에는 ‘개인주의적 보보스형’(약 38%-이하 ‘약’ 생략)과 ‘공동체적 개방형’(36%)이 다수를 차지한다. 20대는 ‘물질적 신봉건형’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고(35%), 개인주의적 보보스형(24%)과 공동체적 개방형(24%)이 같은 비율이다. 30대는 ‘공동체적 개방형’(38%)이 주류고 나머지 ‘현실적 동조형’(21%), ‘물질주의적 봉건형’(17%), ‘개인주의적 보보스형’(15%), ‘전통주의적 보수형’(10%)이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인다.

    반면 40대와 50대에서는 ‘현실적 동조형’이 각각 43%, 57%로 다른 유형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 동조형’은 자신의 가치나 성향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의 라이프스타일을 내세우기 보다는 동년배 집단에서 우세한 다른 유형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즉 50대의 현실적 동조형(57%)은 전통주의적 보수형(38%)을 따라가 이들 세대의 전형적인 유형은 전통주의적 보수형으로 나타난다.

    같은 맥락에서 뚜렷하게 부각되는 라이프스타일이 없는 40대는 30대의 ‘공동체적 개방형’과 50대의 ‘전통적 보수형’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40대는 연령집단으로 보면, 한국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하는 집단임에도, 자신들만의 동년배를 특징 지우는 주된 라이프스타일 유형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30대와 50대의 세대 싸움에 끼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2002년 대선 결과를 두고 흔히 386세대의 승리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뚜렷하게 표현하지 않았던 40대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라고 해석한다면 어떨까.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 수가 가장 많은 연령집단이지만 지지 성향을 뚜렷이 부각시키지 못했던 한국의 40대는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에게 거의 비슷한 비율로 지지성향을 보였다. 이런 40대의 성향은 2004년 총선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한국사회의 세대별 라이프스타일 연구

    최근 한국사회 전 세대에 걸쳐 ‘대박을 터뜨려 잘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하고 있다.

    요약하면 젊은 세대의 대표적인 성향은 ‘개인주의적 보보스형’(10대), ‘물질적 신봉건형’(20대), ‘공동체적 개방형’(30대)으로 나타나며, 기성세대로 가면 50대 이상은 ‘전통적 보수형’이 뚜렷하다. 그러나 40대 한국인은 가능한 한 자신의 성향을 숨기려는 특성을 보인다.

    라이프스타일은 개인이 살아가는 시대의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바로 라이프스타일이 각 시대에 따라 또는 급격한 사회 문화적인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음을 반영한다. 2002년 대통령선거 이후 1년 동안 한국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거쳐 왔다. 이것은 1년 내내 계속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공격과 기성언론에 대한 청와대의 대립으로 뚜렷이 부각되었다. 동시에 경제 상황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놀라운 수출신장과 해외 호황, 하지만 뚜렷한 내수침체와 소비심리 하락 속에 부동산 가격의 이상 급등과 ‘10억 만들기’같은 새로운 조어가 탄생했다.

    2003년 11월에 발표된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 연구결과(그림2)는 이런 변화를 그대로 드러내어 주었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물질적 신봉건형’이 늘어났고 대부분의 연령집단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2003년 내내 대한민국 사회가 ‘돈 많이 벌어 본때 있게 잘살아야 한다’는 라이프스타일이 지배했음을 보여준다.

    2003년 초부터 로또 열풍이 전국을 흔들었다. 정부는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라는 1970~80년대 개발시대의 구호를 부활시켰다. 초등학생에게도 경제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1000만원 모은 어린이’처럼 돈 많이 모으는 어린이를 우상화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동안 부(富)의 축적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제 부에 대해 거의 노골적으로 신봉하는 생활태도를 보여준다.

    한국사회의 세대별 라이프스타일 연구

    <그림 2> 20대에서 60대까지의 동년배 집단에서 나타난 라이프스타일과 비율(2003년 11월 조사)

    에서 보듯이 신봉건형이 전 연령대에 뚜렷하게 나타난 ‘잘살아 보세’가 아닌 ‘떼부자 되세’ ‘대박을 터뜨리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성향을 나타낸다.

    2003년의 또 다른 주요 정치 사회적 분위기는 새로 등장한 노무현 정부와 기성세대(혹은 우익보수)의 대립이었다. 라이프스타일 유형의 분포는 바로 이런 대립이 왜 호각수를 이루었는지 말해준다.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공동체적 개방형’과 ‘전통적 보수형’이 바로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와 50대 이상의 동년배집단에서 비슷한 비율로 서로 팽팽히 대치하는 형국인 것이다.

    세대는 더 이상 ‘연령집단’과 동의어가 아니다. 이제 우리는 동일한 사회 속에서 각기 다른 사회 문화적 경험을 가진 다양한 심리적 세대가 있음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세대차를 논할 때에는 단순히 연령집단에 따른 차이를 논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가치와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심리적 세대유형의 차이를 논하는 것이 훨씬 더 명확하고 설득력 있다.

    예를 들어, 패스트푸드를 즐겨먹고 할리우드 영화에 울고 웃으면서도 반미운동에 참여하는 10대의 모습과 행동은 연령적으로 구분한 세대개념보다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에 기초한 심리적 세대유형에 의해 더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각기 다른 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장난감으로 삼고 인터넷 공간을 놀이공간으로 삼고 즐기는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의 어린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고 자란다. 자연히 이들과 기성세대는 중시하는 가치나 라이프스타일도 다르다. 마치 농경시절에 지혜의 보고로써 존경받던 노인세대가 산업사회에 들어오면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변한 것같이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영향을 받는 것이다.

    ‘달라야 한다’는 강박

    ‘세대차’라고 하는 사건을 일으킨 집단은 분명 신세대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와중에서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집단은 기성세대다. 세대차라는 말 속에 저물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회적 역할이나 삶을 막연히 부정하는 상실감도 가지게 된다.

    신세대 집단이 그 성격을 명확하게 드러내면 낼수록 세대차는 뚜렷해진다. 뚜렷한 성격을 지닌 어떤 집단이 새롭게 등장하면 이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불편하다. 과거의 역사를 만든 기성세대와 달리 신세대는 이전에 해 보지 않았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신세대는 자신들이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분명한 틀을 가지지 못하면서 단지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적인 사고를 보이기에 세대차는 더욱 부각된다.

    신세대의 등장, 세대차의 인식은 급격한 사회 발전과 경제적 성장에 기인한다. 이로 인해 부모 세대와는 다른 경험을 한 젊은 세대가 생겨난 것이다.

    부모세대가 절대적 빈곤과 급속한 경제발전 속에서 경제적 성장을 경험한 것과 달리 풍요로운 환경이 이들의 성장 배경이다.

    하지만 사회에 진입하면서 이들 또한 부모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경제침체와 불안한 미래를 떠안아야만 했다. 6·25전쟁의 아픔도 겪지 않았고 보릿고개의 배고픔도 잘 모르지만, 한편으론 불확실한 미래를 보면서 살아야 하는 세대다. 서로 다른 삶의 조건은 결국 한국 사회에서 세대차, 세대갈등이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게 된 이유다.

    기성세대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신세대적 삶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그저 살기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멋있게’ 살려는 데 있다. 기성세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잘사는 길인가’라는 질문에 ‘잘사는 사람(부자)이 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신세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생활’로 삶의 목표를 쉽게 설명한다. 부모세대와 달리 이들에게 삶의 기본적인 가치는 ‘양’보다 ‘질’에 있다.

    그리고 육체적 편안함보다 정신적 안정을, 기존의 틀과 규범을 따르기보다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하는 게 이들의 성향이다.

    신세대의 경우 자신의 생활을 위해 일을 하는 것조차 그 가장 중요한 동기로 ‘재미’를 언급한다. 그러나 왜 재미있는지, 재미가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것이 그리 자연스럽지 않다. 단지 부모세대와 다르게 살고 싶고, 또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할 뿐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젊은이로 표현되는 사람들이 가지는 심리적 코드다.

    이런 생각의 차이는 한국의 신세대가 사이버공간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활공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현실세계가 진짜이고 사이버세계는 가짜라고 하지만 정작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짜인가?’라는 의문보다는 ‘무엇을 경험했는가’이기 때문이다.

    다른 세대에 대한 거부감 버려야

    라이프스타일 연구의 가장 큰 의의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즉, 서로 다른 집단에 대한 ‘이해의 틀’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2003년 3월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공개토론은 서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이 공개적으로 표현된 흥미로운 예였다. 어떤 사람은 검사들이 대통령한테 대드는 것을 보면서 기성질서에 대한 도전이나 파괴라고 보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할 만큼 그들을 권위주의적이라고 보았다.

    ‘다른 것’에 대해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가지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어렵다. 서로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되기가 쉬우며 이런 상황에서 그 ‘다름’을 수용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어른들은 ‘인생’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고 정해진 규범과 틀에 맞추어 어떻게 하면 가장 잘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하지만 신세대가 가진 삶의 방식은 일종의 게임이다. 인생이라는 게임은 정해진 규칙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게임의 규칙은 내가 정한다’는 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인생이라는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차이는 결국 삶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이자 라이프스타일의 차이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차이를 확인하는 것뿐 아니라, 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말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대에 있다. 마치 부모와 자녀 관계처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것에 대해 의사소통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는 10년이란 짧은 기간을 기준으로 라이프스타일이 나뉘어지고 있다. 각기 다른 라이프스타일은 특정 동년배의 정체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미셸 푸코는 ‘계몽(enlightment)’이란 정체성의 경계선을 뛰어넘음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기획’이라고 정의했다. 계몽은 낡은 정체성으로부터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은 분명해진다.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집단이나 전통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 집단 모두 먼저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 다음 각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특성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계몽된 수준에서 우리가 누군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동년배집단의 라이프스타일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줄 뿐 아니라, 나의 정체성을 넘어서는 또 다른 차원의 자기 발견을 할 수 있는 계몽의 토대를 마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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