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호

‘장쩌민-주룽지’ 경제라인 숙청 시작됐다

중앙파 vs 지방파·유학파의 파워게임

  • 글: 강현구 홍익대 동북아기업경영연구소 연구위원 beha@nate.com

    입력2004-05-31 1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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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경제정책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그간 중국경제를 주도해온 ‘콴쑹학파’에 대한 지방파와 유학파의 도전이 시작된 것.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등 4세대 지도부는 이들의 힘을 바탕으로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고 있는데…
    ‘장쩌민-주룽지’ 경제라인 숙청 시작됐다

    중국 4세대 지도부인 쩡칭훙 부주석과 후진타오 주석, 원자바오 총리(왼쪽부터). 배경은 중국 경제성장의 상징인 상하이시.

    2004년 4월28일 유럽 순방을 앞둔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강력한 성장세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중국은 물론 전세계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같은 날 중국 금융감독위원회는 자국내 민영은행의 신규대출을 5월1일까지 한시적으로 중지시키며 원자바오의 발언에 대해 발 빠르게 대응했다. 그 파장은 실로 엄청났다.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주식시장은 급락을 면치 못하며 이른바 ‘차이나 쇼크’의 서막을 알렸다.

    그러나 세계 실물경제시장의 이런 즉각적인 반응과 달리 중국의 경제학계는 원자바오의 발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부 정책에 즉각 지지논평을 쏟아내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중국경제가 ‘과열’이라는 평가에 대해 그들 내부의 입장 차이가 컸던 것이다.

    원자바오의 이날 발언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급격한 성장세에 있는 중국경제에 처방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중국 안팎에서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원자바오 발언의 모체가 된 것은 4월9일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발표된 ‘1분기 경제운영과 추세에 대한 결과보고’였다.

    당시 회의에서 원자바오는 최근의 과열현상에 대해 “거시조절 기능을 강화해 투자과열을 억제하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하면서 다음 두 부분에 대해 적극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먼저 경제효율성 강화, 농업생산 지원, 무역 강화와 재정수입 확대, 소득 확대, 개방가속화, 지속적인 사회복지사업 등을 지시했다. 이어 “신규사업항목이 과도하게 많고 규모도 크며 투자구조가 불합리한 상황에서 일부 지역의 맹목적인 투자로 투자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신규사업뿐 아니라 금융대출관리와 엄격한 토지관리를 통해 위법적인 경제상황 전반에 대해 관리를 강화할 것을 시달했다.

    이런 원자바오의 시각은 4월26일 보아오포럼에서 나온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발언에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후진타오는 이날 포럼의 문답시간을 통해 “고정자산의 과잉투자, 지방정부의 ‘묻지마’ 투자 및 중복투자 등이 중국경제의 새로운 문제점들이다”라며 “결과적으로 석탄, 전기, 석유 및 운송에 부족현상을 겪고 있고 대출도 과잉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후진타오는 이어 “이러한 문제들이 중국경제의 발전과정에서 발생했으며 시의적절하게 다루어지지 않을 경우 건전한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원자바오의 4·28 발언은 중국경제 과열의 원인이 ‘과잉투자’에 있다고 본 중국 지도부의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고, 중국이 경제의 흐름을 바꾸기 위한 장정(長征)에 오를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과잉투자’에 대한 처방을 내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동안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중국이 인플레이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었지만, 중국 경제학계 내부에서는 이미 ‘인플레이션 상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세였다.

    중국경제 과열 원인은 과잉투자

    그동안 중국의 실물경제는 ‘경제가 과열돼 있으며 그것이 중국경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방해한다’는 경고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다. 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경기예측보고서인 중국사회과학원의 ‘2004년 중국경제 발전 및 추세보고’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GDP) 8.7%로 여전히 고성장을 구가할 것이며, 그중 중공업과 경공업의 부가가치 총액 증가율은 각각 11.6%, 10.2%나 돼 여전히 2차산업이 중국경제의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사회고정자산 투자규모가 6조6420억위안으로 중국의 거시경제 성장을 이끄는 주요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실질성장률 15%, 명목성장률 20.5%로 잡아 투자증가 속도는 지난해에 비해 다소 둔화될 것으로 보았다.

    한편 GDP에 대한 고정자산 투자 비중은 50%에 달해 2003년 상승국면으로 전환된 물가와 함께 중국경제가 과열국면에 들어서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2004년 투자급증, 식량수급상황의 변화, 국제 원유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물가가 오를 것으로 예측하고, 같은 해 소매가격지수와 소비가격지수는 각각 1.6%, 3.5% 올라 인플레이션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내다봤다. 과열국면의 심화를 예고한 것이다.

    주목되는 대목은 이 보고서가 과열상황을 예측하면서도 중국 정부가 올해에도 일정 수량의 국채발행을 계속하는, 이른바 확대재정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할 것임을 시사했다는 점이다.

    올해 예상되는 중국의 재정수입은 2조4920억위안인데 비해 재정지출은 2조8120억위안에 달한다. 단순 재정적자만 약 3200억위안이나 되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 확대재정정책에 따라 예정돼 있는 2조9350억위안 규모의 신규대출이 이뤄질 경우 중국경제는 자칫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더욱이 중국경제에 디딤돌 역할을 하던 대외무역의 증가속도가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감안하면 그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 수입 증가율은 21.3%인데 반해 수출 증가율은 16.2%에 그쳐 무역흑자 규모가 90억달러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위기의식이 ‘인플레이션 및 투자 억제를 통해 중국경제의 과열을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표명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중국 지도부의 확고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중국 경제학계 내부에 원인과 처방은 물론이고 ‘과열’ 자체에 대한 시각 차이가 현격하다는 점이다. 이는 경제문제에 대한 중국의 전통적인 의사소통구조를 고려할 때 특기할 만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경제문제에 대한 당과 정, 지도부와 싱크탱크 간의 전통적인 역할 분담은 이른바 당-정 ‘소조(小組)’를 통한 쌍방향의 상호 작용을 통해 이뤄져왔다(신동아 2002년 9월호 ‘중국경제의 힘’참조). 각 사안에 대한 세부 프로젝트가 당-정의 책임 소조로 집중되고 여기서 마련된 당-정의 공식입장이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단일한 입장으로 결정되는 것이 중국 경제정책 형성의 일반적인 형태였다.

    이런 의미에서 당 소조의 실질 내용을 책임지는 중국사회과학원의 보고서나 정(政)의 공식입장을 책임지는 국가계획위원회의 문건이 공신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문화혁명 이전에 기틀이 잡혀 개혁, 개방 이후 덩샤오핑 시대를 거쳐 장쩌민-주룽지 체제에 이르러 완성됐다.

    후진타오-원자바오 시대의 경제정책도 여기에서 출발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런 의사소통 구조에는 허점이 많다. 2003년 경제처방을 둘러싸고 당-정 구도가 아닌 국가기관 내 7개 연구기관이 서로 다른 처방을 내놓았던 일은 기존의 의사소통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원자바오의 발언은 이런 구조에 변화가 일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가 앞서 언급한 중국사회과학원의 경제예측 보고와 처방의 불일치다.

    ‘2004년 중국경제 발전 및 추세보고서’는 중국 최고의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 내에서도 핵심연구기구인 ‘경제연구소’ 프로젝트팀이 수행한 경제예측 및 분석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中 지도부와 싱크탱크 균열 조짐

    이 보고서는 류궈광(劉國光), 왕뤄린(王洛林) 등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주편(책임편집)을 맡고 류수청(劉樹成), 왕퉁싼(汪同三) 등 중국사회과학원의 현역 소장들이 실무책임을 지며, 중국사회과학원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대거 참가해 수없는 토론과 논쟁을 거쳐 작성된다. 때문에 이 보고서는 그 규모에서뿐 아니라 정확도에 있어 중국 최고를 자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경제정책의 실제 입안자들이 중국에서 가장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만든 것이고, 결국 당의 입장과도 큰 차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보고서의 예측과 분석에 중국 지도부가 동의하면서도 다른 처방을 내놓는다는 것은 그동안 중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 보고서의 책임 편집자이자 중국사회과학원 부원장인 왕뤄린의 다음 발언은 현재 중국 지도부와 핵심 싱크탱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있음을 시사한다.

    왕뤄린은 “현 중국경제는 악성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경제가 한동안 과열되었다가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전망하면서 거시경제 조절상의 세 가지 어려움을 토로했다.

    ‘첫째, 이익 다원화 현상이 점점 뚜렷해짐에 따라 중앙정부의 정책이 지방에서 제대로 시행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상업은행과 중앙은행간 시각차가 크고, 그 배후에 이익집단이 도사리고 있으며, 심지어 경제학자들의 분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화폐 부문에선 적절히 긴축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으나 재정부문은 여전히 확장일로이다. 국채 발행량을 예로 들면, 올해 1100억위안의 국채를 발행할 예정인데 작년에 발행한 450억위안의 국채를 합하면 총 1550억위안에 달한다. 화폐정책은 총량적 조절이며 재정정책은 구조적 조절인데, 현재 중국경제는 구조적 비합리성에 대한 조절이 요구되는 바, 재정정책은 내버려두고 화폐정책에만 의존하고 있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셋째, 세계경제와의 관계가 밀접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금리조정시 국내적 요소뿐만 아니라 중·미간 적자에 따른 핫머니가 대량 유입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왕뤄린의 발언에 따르면 올해 중국경제의 과열현상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며 오히려 중장기적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으로, 원자바오의 처방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참고로 이 발언은 원자바오의 긴축발언과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왕뤄린의 발언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다름아닌 ‘외압’이라는 표현. 특히 이익단체가 경제학자들의 분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장관급인 중국사회과학원 부원장이 외압을 언급한다는 것은 과거와 달라진 중국 경제학계의 풍토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 경제학계의 지형

    현재 중국의 경제학계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기존 중국의 경제학계는 당-정 라인의 조장을 중심으로 하는 학맥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쑨예팡(孫冶方)-쉐무차오(薛暮橋)로부터 시작된 인적관계 중심의 구도는 이른바 쑨예팡의 8대 신위와 중국경제의 체제개혁 모형을 중심으로 7개학파가 분화되면서 더욱 고착됐다.

    중국사회과학원과 베이징대, 칭화대, 런민대 등 베이징의 주요대학 교수 혹은 졸업자들이 학맥과 인맥을 기반으로 중앙과의 소통을 독점하면서 자신들의 이론적 입장을 큰 어려움 없이 정책에 반영시키던 중국 경제학계의 황금기가 이 시기였다.

    ‘장쩌민-주룽지’ 경제라인 숙청 시작됐다

    2004년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폐회식에서 연설중인 원자바오 총리.

    특히 장쩌민-주룽지 체제에 이르러 덩샤오핑의 경제참모들이 초기 경제정책에 문외한이던 장쩌민(江澤民)을 적극 견인하면서 경제정책의 실질적인 조정자 역할을 했다. 그들의 영향력은 중국경제의 영향력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런 지형은 장쩌민-주룽지 시대가 끝나가면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경제의 외적 팽창이다. 중국경제의 급속한 발전은 중국경제의 외형뿐 아니라 중국 경제학계 자체에 폭발적인 양적 팽창을 가져왔다. 이런 구도는 지방학계의 약진과 해외파의 급증에서 시작됐다.

    과거 중국 경제학계에서 중앙과 연줄 이 닿지 않는 지방학계는 힘이 매우 약했다. 상하이 일원을 제외하고는 지방 경제학계가 설 자리가 없었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경제학 박사급 지도교수의 3분의 2가 중국사회과학원에 집중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사회과학원의 정책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오히려 체제개혁 모형을 둘러싸고 7개 학파로 분파한 데서 보여지듯이 중국경제의 논쟁은 중국사회과학원 내부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경제의 발전으로 중국 경제학계가 양적으로 팽창하고 실력이 향상되면서 지방에도 우수한 대학들이 등장했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프로젝트가 지방으로 광범위하게 분배되자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할 조짐을 보였다. 지방의 경제학자들이 대학의 본격적인 지원을 받는 동시에 지방정부 및 중앙정부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경제적인 풍요는 물론이고 중앙의 고급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공식 통로를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조건이 완숙된 1990년대 후반에 지방의 경제학자들은 베이징 소재 주요대학의 박사과정에 대규모로 지원하면서 학문적 깊이를 중앙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과거 중앙에 집중되었던 해외유학의 기회가 지방으로 확대되면서 이들이 중국경제학계의 새로운 그룹으로 등장하게 된다.

    특히 중앙의 경제학자들이 기업 진출을 선호하고, 일부는 지방대학의 우대정책에 따라 지방으로 빠져나가면서 생긴 빈틈과 양적으로 급격히 팽창한 연구기관의 연구인력 수요를 지방 출신 경제학자가 메우면서 지방세력의 입김이 강해진 근본요인으로 작용했다.

    제3세력으로 부상한 해외파

    ‘지방파’라고 불리는 이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실용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지방의 척박한 여건 속에서 실력을 키우고 그 지방의 정책에 참여하면서 현실감을 기른 만큼 정책 자체가 실용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들의 강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들은 왕뤄린의 지적처럼 지방정부, 지방대학, 나아가 지방의 기업에 약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을 끊임없이 지원해준 지방세력으로부터 결코 독립적이지 못한 것이 이들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이다. 물론 중앙에 아직 이렇다 할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 이들에게 지방은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왕뤄린의 외압에 대한 언급은 이들 지방파와 해외파를 동시에 노린 것으로 판단된다. 지방파가 지연(地緣)에 근거해 빚을 지고 있다면 미국 중심의 해외파는 서방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그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의 해외파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정통 중앙파의 일원으로 중앙의 지원을 받아 서구 유수의 대학원에서 포스트닥터(博士後·Post-Doctor) 과정을 밟은 사람들이다.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의 경우 하버드 이코노미스쿨과 결연을 맺고 매년 1~2명을 국비로 우수박사과정에 수학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은 해외유학을 했으나 당연히 중앙파로 분류된다.

    또 다른 해외파는 국비로 유학을 했으나 그 시기와 지원정도에 따라 미국 쪽에 경도됐다고 평가받는 그룹이다. 흔히 체제변혁파로 분류되는 이들은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나 포스트닥터 과정을 밟고 귀국해 미국의 지원하에 연구활동을 벌이면서 중국내 급진적 자본주의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전통적인 해외파 학자들은 사실상 중앙파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2000년도 들어 해외유학생, 특히 자비유학생이 대거 귀국하면서 해외파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초기 닷컴 창립 붐을 주도하던 해외파가 중국 정부기관으로 눈을 돌리면서 해외파는 명실상부한 중국 경제학계의 제3세력으로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도전받는 콴쑹학파

    지방파와 해외파의 직접적인 도전 대상은 그간 중국경제를 주도해온 ‘경제개혁 콴쑹(寬松)학파’ 또는 콴쑹적 관점이다(콴쑹학파의 정책에 대해서는 ‘신동아’ 2002년 10, 11월호에 자세하게 다루어져 있으므로 생략한다). 이들은 1995년 중국경제의 연착륙을 주도하면서 중국 경제정책 결정과정의 핵심을 장악한 콴쑹학파에 도전함으로서 자신들의 입지를 쌓으려 하는 것이다.

    콴쑹학파의 관점은 그간 중국경제의 고속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했지만 많은 도전을 받았다. 사실 콴쑹학파 정책의 핵심인 ‘느슨한 재정정책’에 대해 중앙파는 물론이고 콴쑹의 입장에 동의하는 사람들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장쩌민-주룽지 체제하에서, 이 두 지도자가 ‘느슨한 재정정책’에 의한 거시 조절을 중국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고, 특히 당의 정책라인을 콴쑹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파나 해외파의 비판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파는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하며 반격을 노리게 된다. 이중 가장 특출난 그룹이 ‘경제학이론도보(經濟學理論導報)’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경제학자들이다. 지역적으로는 쓰촨성 일대를 중심으로, 정책적으로는 ‘느슨한 재정정책’을 ‘확대 재정정책’으로 규정하며 그 위험성을 끊임없이 지적하던 이 그룹은 콴쑹적 입장에 노골적인 반격을 가하는 첫 번째 그룹으로 기록된다.

    이들뿐 아니라 상하이 지역의 경제학자들도 경제성장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른 상하이를 배경으로 공세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상하이시가 의욕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대외서비스의 개선이 바로 이들의 입장에 근거한 것이다. 특히 해외파가 대거 유입된 상하이의 이런 변화는 상하이를 실용경제학의 중심지로 변모시키고 있다.

    지방파와 해외파의 부상은 장쩌민-주룽지 체제가 후진타오-원자바오 시대로 넘어가면서 중국의 지도부가 콴쑹학파의 독주를 견제한 데 힘입은 바 크다. 중앙의 경제정책에 혼선이 생기고 노골적인 반대 주장이 나온다는 것은 장쩌민 시대에는 감히 상상도 못한 일이다.

    이야말로 후진타오 시대의 달라진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이번 원자바오의 발언은 경제학의 백가쟁명시대를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과열인가, 아닌가

    앞서 원자바오의 발언을 금기에 대한 도전이라고 표현한 것은 ‘느슨한 재정정책’이라는 중국경제의 오랜 기조를 돌리는 듯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경제가 과열상태라는 점에 동의하는 경제학자들조차도 ‘느슨한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반기를 들지 못하는 것이 현재 중국의 상황이다.

    중국경제의 과열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중국 경제학계에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먼저 중앙파에서 과열을 주장하는 그룹은 과거 주룽지(朱鎔基)의 핵심 경제브레인이었던 우징롄(吳敬璉)과 체제변혁파 경제학자들, 그리고 칭화대의 후안강(胡鞍鋼) 등이다.

    체제변혁파의 핵심인물인 판강(樊鋼)은 “과잉투자로 인한 과잉생산 능력이 2005년 이후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면서 섬유 및 철강 산업 분야의 생산과잉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체제변혁파의 한 사람인 린이푸(林毅夫)는 “국부적 투자과열이 존재한다. 이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향후 통화긴축까지 발생해 설상가상이 될 것이다. 중국은 통화긴축이라는 기본 형세 불변하에 2003년 국민경제 성장률이 갑작스럽게 높아졌다. 그 원인은 고정자산투자성장률이 1998~2002년 평균 11.8%에서 28.4%로 급상승했고 부동산, 자동차에 대한 투자 증가가 철강, 건자재 투자 열기를 유발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주장했다.

    후안강도 중국경제에 투자·대출 등 전반적인 과열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하며 정부차원의 경기안정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우징롄은 “중국경제에는 과열문제가 존재하며, 현재 경제과열은 총량적 과열이자 총체적 과열”이라고 주장해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중앙파의 다수는 현재의 과열상태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는 데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한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인 마카이(馬凱)는 “경제과열 여부를 쉽게 말하지 말라. 현재 중국경제의 상황은 ‘과열’만으로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 지난해과열논쟁 당시에는 통화팽창 문제를 거론하지 않아도 되었다. 통화긴축 추세가 뚜렷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1·4분기에는 통화팽창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과열 여부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경계했다. 국가통계국 부국장인 츄샤오화(邱小華) 역시 중국경제는 현재 과열이 아니며 올 성장률 예상치는 과거 20년간 연평균 성장률 9.4%보다 낮은 8%대임을 강조했다.

    이런 입장과는 조금 다르지만 자오룽(趙龍)과 저우샤오촨(周小川)은 현재 중국경제가 소비의 냉각, 투자의 과열현상에 처해 있으며, 통화팽창 추세가 뚜렷하나 물가는 이미 상승기조(upstream)에서 하강기조(downstream)로 가고 있다며 과열에 대한 일방적인 판단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중국 경제학계에는 과열에 대한 이런 소극적인 반대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현재 중국경제가 과열의 위험이 아닌 ‘냉각’의 위험에 처해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베이징대의 저명한 교수인 리이닝(以寧)은 “현재 중국경제는 냉각을 염려해야지 과열을 염려할 시기가 아니다. 다소 과열경향이 있는 것은 상관없다. 오히려 냉각되는 게 더 큰 문제다. 따라서 중국경제는 적당한 열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야오징위안(姚景源)은 “중국경제는 통화팽창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들의 입장은 베이징대 샤오줘지(蕭灼基)의 주장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올해 중국경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다음 근거를 제시했다.

    ‘주민소비가격지수(CPI)는 2001년 11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이래 14개월 동안 내림세를 보여 심각한 디플레이션 국면이 나타났음. CPI는 작년에 비로소 플러스로 전환되어 1.2% 상승하였음. 이는 오랜 디플레이션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재의 물가상승은 정상적인 현상임. CPI는 식품(30%), 서비스(20%), 공업 소비재(50%)로 구성됨. 식품 가격이 다소 상승하더라도 서비스 가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공업 소비재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음.’

    결론적으로 샤오줘지는 현재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며 이는 그동안 안정됐던 농·수산물 가격이 정상화되면서 나타나는 체감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중앙파 내부에서도 상반된 견해

    이런 입장은 중국 경제정책에서 전통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콴쑹적 입장과도 일면 동떨어진 것이다. 콴쑹학파의 대표 인물인 장쭤위안(張卓元)은 “중국경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되, 과열 조짐이 다소 보이고 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콴쑹적 관점 내에서도 계속해서 ‘확대 재정정책’의 위험성을 지적해오던 중국사회과학원 수량연구소의 왕퉁싼 역시 “두 자릿수의 성장률과 30~60%의 투자증가율, 20%대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199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과열이라 할 수 없으며 투자에만 붐이 있을 뿐이다”며 그간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섰다.

    이러한 콴쑹학파의 입장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거시경제연구원 천둥치(陳東琪)의 주장에도 잘 나타난다. 그는 “현재 물가가 상승하고 있지만 이를 전형적인 인플레로 보기는 어렵다”며 “2004년 1·4분기(1~3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대비 2.8% 상승했고, 상승폭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3% 웃돌아 2003년 4·4분기(10~12월)에 이어 현저한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개혁 개방이 진행된 지난 20년간의 물가변동 경향으로 판단해볼 때, 중국에 있어 0~3%의 소비자 물가지수 변동은 적당한 범위로 볼 수 있으나 6개월 연속으로 0%를 밑도는 것은 전형적인 디플레이션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확실히 억누르기 위해 각 기관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제대로 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미 여러 번 겪어온 인플레이션 경험을 살려 거시조절 정책을 실시하면 인플레이션 압력을 경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에서 보듯이 현재 중국 경제학계의 중앙파는 과열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문제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견지하고 있다. 이는 지방파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확대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경제학이론도보’의 입장에서는 과열에, 상대적으로 중앙의 혜택을 많이 보고 있는 상하이에서는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부정하는 데 논의의 중심을 두고 있다.

    경제학계의 다양한 진단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중국경제가 과열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특히 인플레이션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것이 중국 국가기관의 그간 공식 입장이었다.

    중국 정부는 경기 과열을 염두에 두고 통화증가율 목표를 18%에서 17%로 하향조정하고 기준율을 인상하는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해왔다. 하지만 이런 소극적인 조치로는 투자의 과열을 막기 어렵다는 판단이 원자바오의 발언을 가져온 직접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원자바오가 극단적인 표현을 내포한 발언을 한 배경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특히 원자바오의 후속조치가 특정지역과 산업을 염두에 두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표적은 주룽지 라인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톄번(鐵本)철강과 그곳이 위치해 있는 장쑤(江蘇)성 지역은 상하이 일대와 더불어 장쩌민-주룽지식 개발정책, 특히 주룽지의 해외자본에 의한 개발을 상징하는 곳이다. 싱가포르 자본에 의한 촉발된 장쑤성 일대의 첨단산업단지는 푸둥(浦東)과 함께 주룽지의 자랑이기도 했다.

    이번 원자바오의 발언이 경제적인 것 같으면서도 정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가 한 목소리로 중국경제의 과열을 주장하고, 싱크탱크는 훨씬 더 나아간 개혁을 주문하고 나선 데에는 분명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현재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원자바오가 투자 과열의 원인을 ‘확대 재정’에 두고 기존 중국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했던 그룹을 표적으로 삼아 무언의 경고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즉 원자바오의 화살이 콴쑹학파 혹은 그들이 주도해 시행한 덩샤오핑에서 장쩌민에 이르는 개발시대의 논리를 겨누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자바오가 콴송학파와 명백한 선을 그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은 없는 듯하다. 중앙파는 물론이고 지방파 역시 기존 콴쑹학파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더 나아가 중국경제의 과열이 아닌 침체를 언급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원자바오의 발언으로 중국 경제학계의 분화가 가속화될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특히 장쩌민-주룽지의 경제성과에 대해 매서운 평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은 결국 화살은 콴쑹학파를 겨누되 표적은 실제 성장의 동력이 되었던 관료와 생산부문이 될 것임을 보여준다.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는 이미 자신들의 성장전략을 정하면서, 철저한 평가와 책임에 따른 인적청산이 있을 것임을 분명히 했었다(‘신동아’ 2003년 4월호 참조). 이런 변화는 정부조직 개편과 이에 따른 인사조치에서 이미 현실화됐다.

    성장경제학에서 안정경제학으로

    2003년도 정부조직개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의 전쟁, 부패와의 전쟁을 통해 상층부의 장쩌민 라인을 무력화시킨 후진타오-원자바오가 이제 경제정책을 화두로 칼을 빼어 들었다. 경제정책의 방향에 대한 논란은 과거 경제발전방식에 대한 평가의 연장선상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직접적인 대상은 현재의 정책입안자보다는 과거의 실행자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번 발언은 결국 투자과열의 책임문제와 연결돼, 지방정부 및 지방기업의 실무라인에 타격을 주게 될 것이고, 현재의 지역적 특성상 초점은 주룽지 라인에 맞춰질 것이다. 원자바오의 화살이 주룽지를 표적으로 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정치적 요인과는 별개로 이번 일련의 사태는 중국 경제학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지방파와 해외파는 부상하고 중앙파의 입지는 축소될 것이다. 이는 양적으로 팽창하는 중국경제에서 불가피한 일이다.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에서 개인의 인맥보다 제도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또 기존의 경제주류에 대한 현 지도부의 견제가 강해지면서 지방파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의 지도자들이 과거에 대한 평가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할 경우, 과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지방파가 중국 경제학계 주류의 한 축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성장의 경제학과 안정의 경제학이 공존할 것임을 의미한다. 이런 면에서 해외파의 부상 가능성도 상존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정책을 둘러싼 전면전으로 비화할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현재의 중국 지도부가 기존 성장의 성과를 전면 부정하지 않는 한 기존 경제학계 주류와의 교감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고, 또 이들의 도움 없이는 경제 자체를 이끌어가기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자바오의 발언이 나온 이상 지방파의 중앙파에 대한 압력은 거세질 것이고, 결국 중국경제는 과열에 따른 긴축보다는 인플레이션 억제에 중심을 두는 방향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원자바오의 발언이 경제학계에는 작은 바람에 그치겠지만, 현장에는 과잉투자에 따른 광범위한 책임의 광풍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인적청산과 정책개선이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급박하게 진행될 것이다. 중국경제의 균형점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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