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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리포트

‘카리스마 망령’이 한국축구 망친다

포르투갈의 名將이 왜 한국에선 안 통할까

  • 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차장 mars@donga.com

‘카리스마 망령’이 한국축구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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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초기 히딩크는 10개 국내 프로축구팀 감독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1시간이나 늦게 나타나고서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 강심장을 자랑했다. 그러나 쿠엘류는 부임하자마자 각 프로축구팀의 훈련장을 직접 찾아 개별적으로 감독들을 만나 간곡히 협조를 요청하고 조언을 구했다.

허정무 전 국가대표감독은 “히딩크는 자신이 정한 틀에 따라 대화를 진행한다. 적극적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편이다. 그러나 쿠엘류는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면서 얘기를 진지하게 듣는다. 그런 다음에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고 조용하게 말한다. 히딩크에게서는 강한 자부심과 고집 같은 것이 느껴지지만 쿠엘류에게서는 밝고 온화한 성품이 엿보인다. 물론 자신의 축구철학과 지도방식에 대한 확신이 강하고 유머감각이 풍부하다는 점에서는 두 사람 모두 같다”고 말했다.

카리스마형 감독은 대체로 독단적이고 주입식이다. 자신의 틀에 선수들을 짜맞춘다. 자칫 선수들을 ‘공차는 로봇’으로 만들 수도 있다. 영국의 유명한 축구칼럼니스트 랍 휴스의 말을 들어보자.

“2001년 히딩크 당시 감독과 피지컬 트레이너가 한국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장면을 지켜본 적이 있다. 히딩크는 최전선에 투입될 군인들을 조련하듯 선수들을 몰아붙였다. 그는 ‘선수들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결코 월드컵에서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을 대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난 그 말을 듣고 ‘당신은 인간의 본성을 바꾸려고 한다. 하지만 선수들의 경기 방식과 삶의 스타일, 본능까지 바꾸는 것은 정말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가정교사는 당장 성적이 안오르더라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의 실력이 탄탄해지고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쿠엘류에게는 히딩크보다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어야 했다. 더구나 쿠엘류가 가르치는 대상은 시험을 코앞에 둔 ‘고3’이 아니다. 어쩌다 시험한번 잘 치러(월드컵 4강) ‘머리가 커질 대로 커진 아이들’이다. 그 전처럼 죽자살자 뛰지도 않는다.



카리스마란 원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신의 은총’ ‘신이 준 재능’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카리스마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카리스마란 원래부터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간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히딩크가 제아무리 카리스마적이라 해도 그가 재임했던 500일 동안 훈련시간이 겨우 일주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면 진작 경질됐을 것이다. 축구협회 자료에 따르면 쿠엘류 감독 부임이후 대표선수들을 소집한 기간은 총 65일. 보통 A매치경기 3~4일 전에 소집해서 하루 이틀 몸을 풀고 하루쯤 훈련하는 시늉을 했다가 마지막 날 경기에 임하는 식이었다. 따라서 훈련장 이동, 취침, 휴식, 전체회의, 개별면담, 상대팀 비디오 분석 시간 등을 빼고 나면 실제로 운동장에서 선수들과 훈련한 시간은 쿠엘류의 주장대로 72시간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겉멋 든 한국대표팀 선수들

쿠엘류는 현역시절 포르투갈에서 한국의 홍명보 만큼이나 유명한 선수였다. 세계적 명문 벤피카의 주장으로 14시즌 동안 무려 8번이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포르투갈대표팀 주장으로서 A매치에 64경기나 출전했다. 중앙수비수였지만 A매치 13경기에서 6골을 넣은 적이 있을 정도로 ‘골 넣는 수비수’로도 이름을 날렸다. 포르투갈대표팀 감독 시절 그는 2000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잉글랜드와 독일을 꺾고 포르투갈을 3위에 올려놓았다. 그 유명한 피구, 콘세이상, 후이코스타도 쿠엘류 앞에서는 꼼짝 못했다. 그는 부드럽고 온화했지만 선수 장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국 축구계는 흔히 말한다. 조직 장악엔 강한 리더가 필요하고 강한 리더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고. 과연 그럴까. 꼭 카리스마가 있어야만 선수 장악을 할 수 있는 걸까.

물론 능력 있는 축구감독이라면 일단 선수 장악에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축구철학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리스마가 없다고 해서 선수 장악력이 모자란다고는 할 수 없다. 있든 없든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세계 수많은 감독들 중에는 카리스마형보다는 쿠엘류 같은 자율형이 더 많다. 카리스마란 선수 장악을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 있는 송종국은 “쿠엘류 감독은 선수들에 대해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일단 맡기고 지켜보는 스타일이다. 유럽 감독들도 대부분 쿠엘류 감독 스타일이다. 그러나 유럽선수들은 감독이 간섭을 안해도 훈련 때는 죽기 살기로 뛴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한국 선수들은 시켜야만 움직인다. 어릴 때부터 강압적인 지도자 밑에서 선수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그만큼 자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아인트호벤의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과 쿠엘류 감독은 용장과 덕장으로 구별될 뿐이다. 쿠엘류 감독이 나쁜 지도자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쿠엘류 감독이 일찍 떠나게 된 것에는 선수들의 책임도 크다”고 말한다. 같은 팀의 이영표도 “쿠엘류 감독은 자상하면서도 자율을 중시하는 지도자였다. 선수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히딩크 감독의 카리스마와 쿠엘류 감독의 자율성이 반반 섞인 지도자가 다음 감독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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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차장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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