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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宗家|尹善道 古宅

남인의 예술혼 깃든 ‘유교적 만다라’의 고향

  • 글: 박재광 parkjaekwang@yahoo.co.kr 사진: 정경택 기자

남인의 예술혼 깃든 ‘유교적 만다라’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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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흡사 비오는 소리 같다고 하여 ‘녹우당(綠雨堂)’이라 한 윤선도 고택은 호남 예술정신의 요람이다. 윤씨들은 16세기 초 어초은(漁焦隱) 윤효정(尹孝貞·1476∼1543) 때부터 이곳에 자리잡았다. 윤효정은 고기나 잡고 나무나 하며 은둔하겠다는 호의 뜻 그대로 도가적 취향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윤씨 일가는 윤효정의 5대손 윤선도에 이르기까지 내리 과거급제자를 배출하면서 부와 명예를 지닌 명문가로 화려하게 부상했다. 그러다 고산 윤선도에 이르러서 은둔 생활이 시작됐다. 정치적으로 남인 계보에 속했던 고산은 노론에 밀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해남으로 귀거래사했다.

윤선도의 예술혼은 그의 종손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가 이어받았다. 그는 사실주의적 기법의 초상화가로 유명하다.

이 집안은 실학의 요람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 실학은 주로 남인들에 의해 발전했는데, 해남 윤씨 집안이 전라도 남인의 중심이었던 까닭이다. 실학의 완성자라 일컬어지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윤두서의 외증손이다.



사신사에 둘러싸인 녹우당의 만다라가 동서남북으로 미·중·일·러에 둘러싸인 한반도에 적용될 날도 멀리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신동아 200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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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재광 parkjaekwang@yahoo.co.kr 사진: 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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