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거물 브로커 윤상림의 막강 군·검찰 인맥

기무사령관에게 행패 부리고, 검찰 고위간부와 육탄전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6-03-03 14: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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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무사 간부들에게 떨어진 ‘윤상림 접촉 금지령’
    • 현 기무사령관, 윤상림의 ‘기무사 관련 사기행각’ 직후 군 골프장 회동
    • 윤상림, 국방장관들과 골프 치며 정권 실세와의 친분 과시
    • 국방장관에게 ‘윤상림 보고서’ 올린 기무사령관 봉변당한 사연
    • 수배 중인 윤상림 잡으러 간 검사, 검사장과 술 마시는 광경 보고 발길 돌려
    • 돈 거래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 윤씨 개입 사건 다수 수임
    거물 브로커 윤상림의 막강 군·검찰 인맥
    거물 브로커 윤상림(54·구속 중) 얘기로 세상이 시끄럽다.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 스캔들이라는 황우석 사태만큼은 아니지만, 화수분과 같은 검찰 수사내용은 끊임없이 국민의 귀를 잡아끌고 있다.

    윤씨가 구속된 것은 지난해 11월23일.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난 올 2월 현재 검찰(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김경수)은 모두 6차례 그를 기소했다. 한 사람에 대해 다섯 차례나 추가 기소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공소장만 해도 12개에 달한다(2005년 12월9일 1개, 2005년 12월21일 2개, 2005년 12월29일 2개, 2006년 1월5일 3개, 2006년 1월25일 1개, 2006년 1월26일 3개).

    공소장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죄명은 특가법상 알선수재.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공무원처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공무원의 직무에 관해 알선하고 돈을 받는 범죄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씨는 모두 8차례 이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다. 다음으로 6차례의 사기, 공갈(3회), 공갈미수(1회)가 뒤를 잇고 있다.

    브로커 윤씨의 최대 무기는 권력층에 형성된 두터운 인맥이다. 그래서인지 일반인에게 기소내용보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은 윤씨와 친분을 맺은 사람들의 면면이다. 군, 검찰, 법조계, 정치권 등 권력기관 주변에서 그는 ‘마당발’ ‘해결사’로 통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에 따르면, 그의 권력층 인맥 형성은 군-경찰-검찰-정치권 순으로 진행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이 군과 검찰 인맥이다.

    군사정권 시절 다져진 군 인맥은 그가 거물 브로커로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됐다. 군이 모든 권력기관에 앞서던 시절 그는 군 최고의 권력기관인 보안사(지금의 기무사)에 확실한 인맥 뿌리를 심었고 그 후광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편 문민정부 이후 최고의 권력기관으로 자리잡은 검찰 인사들과의 친분은 윤씨의 ‘브로커 지위’를 한층 더 높였다. 공소장에 기재된 그의 직업은 호텔업.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S관광호텔이 그의 소유인데 많은 검찰 간부가 그곳에 놀러가 그와 친교를 다졌다.

    윤씨의 군 인맥의 원천이자 보고(寶庫)는 기무사령부다. 윤씨와 친분이 있던 기무사 출신 모 예비역 장교는 “기무사 간부들 중에 윤씨와 친한 사람이 많았으며 일부는 지금도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또 군 골프장에 함께 드나드는 등 윤씨와 가까운 사이였던 검사장 출신 모 변호사는 “윤상림 군 인맥의 핵심은 기무사”라며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내가 잘 아는 기무사 소장이 있다. 군법무관 시절 우리 부대 기무부대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윤씨와 잘 아는 사이였다. 기무사 모 대령은 자신의 상관인 모 장군에게 ‘왜 윤상림같이 질이 안 좋은 사람을 만나냐’고 충고했다가 되레 혼났다는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기무사 이전 공사 따주겠다”

    기무사는 민간으로 치면 국가정보원과 비슷하다. 정보기관이면서도 제한적이나마 수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인도 맘대로 잡아가고 선거에도 개입하던 군사정권 시절에 비하면 그 위세가 많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군내에서 가장 막강한 기관으로 통한다.

    기무사의 기능 중 민간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보안심사와 수사다. 보안심사란 군이 발주하는 각종 공사나 군납에 참여하는 민간업체에 대해 보안을 이유로 기무사가 관련 부서보다 먼저 여러 가지 사항을 점검하고 심사하는 일이다. 기무사는 또 민간인이라도 군사기밀법에 저촉되면 조사할 수 있다.

    윤씨의 범죄사실 중에는 기무사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기무사령관과의 친분을 내세워 기업체로부터 돈을 빼앗은 혐의(알선수재)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씨는 지난해 3월 H건설 대표 이모씨에게 접근해 “국방부 기무사령부를 과천으로 이전한다. 기무사령부 이전공사 비용이 1000억~1500억원에 이르는데 내가 기무사령관과 국방부 조달본부장을 알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부탁해 공사를 수주하게 해주겠다”며 활동비로 1억원을 요구했다. 이에 이씨는 윤씨의 차명계좌로 1억원을 송금했다.

    취재 결과 현 기무사령관 A중장과 친분이 있다는 윤씨의 주장엔 근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은 윤씨가 기무사 관련 사기행각을 벌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4월 모 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함께 쳤다. A중장이 기무사령관에 부임한 지 두 달쯤 지난 시점이었다. 이 골프장은 서울 시내에서 가까워 권력층 인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으며 접대 및 사교 골프장으로 유명하다.

    A사령관은 군수·방산(방위산업) 관련 업무에 오랫동안 종사해왔다. 김대중 정부 시절엔 국방부 획득실 사업조정관을 지내기도 했다. 획득이란 군납품 중 무기체계 등 특별한 통제가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것이고, 사업조정관은 각종 무기의 획득 시기를 조정하는 요직이다. 기무사 공보관은 A사령관의 일정을 확인한 결과 윤씨와 골프를 친 적이 없으며 친분도 없다고 부인했다.

    기무사 관계자 중 유난히 윤씨와 친분이 두터웠던 사람으로는 A사령관의 육사 동기인 B 예비역 장성이 꼽힌다. B씨는 전역 후 군 관련업체 사장을 맡기도 했다. 군 관계자의 표현에 따르면 두 사람은 한때 “무지하게 친했다”고 한다. B씨가 현역일 때 윤씨는 그가 근무하는 부대로 자주 찾아갔고 예편한 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B씨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윤씨는 한때 기무사 내에서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그와 어울리는 장교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기무사 고위관계자가 장교들에게 공개적으로 그를 만나지 말라고 경고했을 정도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국방대학교에 다니는 기무사 장교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한 적도 있다. 이처럼 주로 회식비를 대거나 인맥을 동원해 소개받는 수법으로 기무사 장교들에게 다가갔다.

    윤씨를 잘 아는 기무사 관계자는 그의 접대 방식에 대해 “식사 자리에 돈 있는 사람을 데리고 와 대신 내게 하고는 생색은 자기가 냈다”고 말했다. 기무사 출신 모 예비역 장성은 “(윤씨는) 사전 양해 없이 다른 사람을 데리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며 “식사하자고 해서 나가 보면 처음 보는 사람이 앉아 있어 난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기억했다.

    “‘뻥’이 세긴 했지만 …”

    윤씨의 기무사 인맥의 출발점으로 지목되는 사람은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 출신의 C 전 의원과 D 전 장군이다. 하나회 출신으로 보안사 요직을 지낸 C씨는 1979년 12·12 때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오른팔 노릇을 했다. 준장으로 예편한 후 5공 초기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으며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C씨가 윤씨와 어떻게 친해졌는지에 대해선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군 주변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져 있고, C씨가 총선에 출마할 무렵 윤씨가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그의 지역구에 내려가 살다시피 했다는 전언이 따른다. C씨에게 윤씨와의 관계에 대해 확인하고자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의 한 측근에 따르면 그는 현재 외국에 나가 있다고 한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직후 옷을 벗은 기무사 출신 예비역 준장 D씨는 최근까지 윤씨와 친분을 유지해왔다. 두 사람의 친분은 윤씨가 기무사 인맥을 넓히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D씨는 “(윤씨가) 주변에 과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나서서 움직인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D씨의 얘기로는, 윤씨를 처음 안 것은 보안사 과장(중령) 시절이었다. 업무와 관련해 소개를 받았는데, 윤씨가 그 방면에 아는 게 많지 않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친분을 맺게 됐다.

    윤씨는 D씨를 만날 때 경찰이나 검찰 간부를 데리고 나와 소개히곤 했다. 그가 자신이 데리고 나온 제3자에게 밥값을 대신 내게 했다는 사실은 D씨의 증언으로도 확인됐다. 다음은 윤씨에 대한 D씨의 기억.

    “윤씨와 자주 연락하고 지낸 건 사실이지만 자주 만나지는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윤씨는 청계천에서 기름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후 오락기기 관련 사업을 한다고 들었다. ‘뻥’이 좀 세고 ‘오버’를 하기는 했지만 사기꾼이거나 인간성이 나쁜 사람이라는 인상은 받지 않았다. 늘 바쁘게 움직였고 열심히 사는 것 같았다. 군부대를 방문해 위문 격려비니 장교들 회식비니 하면서 돈봉투를 내놓기에 내가 뭐라 한 적이 있다.”

    D씨는 윤씨와 이따금씩 골프도 쳤는데, 2004년 군 골프장에서 회동한 뒤로는 더 친 적이 없다고 한다. 그가 윤씨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지난해 5월이라고 한다. 그 자리에서 윤씨는 “(경기도) 하남에서 아파트사업을 하는데, 잘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윤씨와 어떠한 금전 거래도 없었다고 강조한 D씨는 “윤씨가 도박에 빠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왜 나를 욕하고 다니느냐”

    윤씨와 전 기무사령관 E씨의 충돌은 윤씨의 ‘파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E씨는 기무사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군 실력자로 통하던 인물. 군과 검찰의 여러 증언자에 따르면 몇 해 전 두 사람은 서울 인근의 군 골프장 목욕실 라커룸에서 마주쳤다. 당시 E씨는 참모장 시절부터 육군참모총장보다 더 힘이 세다는 평을 듣던 실세 기무사령관이었다. 이날 윤씨는 E사령관에게 달려가 대뜸 손찌검을 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요지는 “너 왜 나를 욕하고 다니느냐”는 것이었다. 윤씨는 벼르고 별렀던 듯 거칠게 E사령관을 몰아붙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얼결에 당한 E사령관은 아무런 반격을 하지 못한 채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당시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히 이뤄진 것이었다. 골프 일행도 따로 있었다. 윤씨의 일행에는 검찰 고위간부가, E씨 쪽에는 예비역 장성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윤씨의 군 인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목격자’를 통해 두 사람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에게 이 얘기를 직접 들었다는 군 관계자에 따르면, 윤씨는 이 일을 자랑스레 떠벌였는데, 심지어 E씨의 일행 중 한 명으로부터 “잘했다”는 ‘격려’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는 것.

    이에 대해 E씨는 조금 다른 주장을 폈다. 군 골프장 목욕실 라커룸에서 윤씨와 말다툼한 적은 있지만 맞은 적은 없다는 것. 다음은 그날 사건에 대한 E씨의 주장이다.

    “나는 목욕탕에 들어가는 순간이었고 그 친구는 (목욕을) 끝내고 나오던 참이었다. 나는 팬티만 걸친 상태였다. 내게 다가오더니 ‘형님, 내게 이럴 수 있습니까. 왜 나를 욕하고 다닙니까. 사람도 못 만나게 하고…’ 하면서 한 5분 동안 퍼부어댔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러느냐’고 하자 계속 따지며 덤벼들기에 더 상대하기 싫어 자리를 떠났다. 그게 전부다.”

    윤씨는 왜 그렇게 E씨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을까. 이어지는 E씨의 설명.

    “내가 알아보니 윤상림은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주변에 그를 아는 사람이 많았다. 검찰 모 간부와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윤상림을 잘 아느냐’고 묻더라. 또 기무사 간부들 중에도 그와 어울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람을 왜 만나느냐’고 나무란 적도 있다. 1처장 시절 군 동향을 살펴보니, F국방장관이 윤씨와 골프를 치고 있었다. 그래서 장관에게 ‘윤상림을 만나지 말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렸다. 참모장 시절엔 G국방장관이 윤씨와 골프를 치는 게 포착돼 역시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올렸다. 나중에 G장관은 내게 ‘너 아니면 개망신당할 뻔했다’고 고마워하기도 했다. 또 감찰실장을 통해 사령부 내 간부들에게 ‘윤상림을 만나지 말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윤상림이 자신과 가까운 기무사 간부들한테 이 얘기를 전해 듣고는 그날 그렇게 대들었던 것이다.”

    애초 E씨는 그 사건의 발생시기를 다르게 얘기했다. 기자가 알고 있는 시점보다 몇 년 전의 일이며, 그때는 직책도 사령관이 아니라 참모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자가 여러 정황을 들이대며 ‘사실과 다른 것 같다’고 지적하자 나중엔 “연도가 뭐 중요하고 직책이 뭐 중요하냐”면서 기자의 취재 의도를 문제 삼았다.

    E씨는 모 사단 보안부대장(중령) 재직시 윤씨를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일요일에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왔는데, 동기생인 D중령(앞서 언급된 D준장)한테 소개를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D중령에게 물어보니 소개한 적이 없다고 하기에 윤씨가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후 OO부대장과 △△부대장을 지낼 때 윤씨의 연락으로 한 차례씩 만났다. 그리고 그날 골프장 라커룸에서 만난 게 마지막이었다.”

    E씨는 윤씨를 고소할 생각은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길 가다가 봉변당한 꼴인데 무슨 고소를 하겠느냐”며 “그 일 이후 (윤상림과의 관계를) 딱 끊었다.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기무사 관계자는 “E사령관이 재직시 공식석상에서 기무사 간부들에게 윤씨를 만나는 것에 대해 경고한 것은 사실”이라고 확인해줬다. 또 다른 기무사 관계자도 “기무사에서는 오래 전부터 윤씨가 문제 인물이라는 걸 알고 간부들에게 접촉 금지령을 내렸는데, 특히 E사령관의 경우 그 문제로 윤씨에게 망신스러운 일을 당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천하의 E기무사령관이 윤씨에게 그런 일을 당하고도 끙끙 앓기만 한 것은 윤씨의 배경이 워낙 막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씨가 전·현직 국방부 장관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 데다 군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당시 정권 실세 H씨와도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H씨측은 “골프장에서 우연히 한 번 마주쳤을 뿐”이라며 윤씨와의 친분을 부인했다. H씨 측근의 설명.

    “2000년인가 광주 인근 골프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날 H고문과 함께 골프를 치기로 했던 민주당 의원 한 명이 무슨 이유에선가 일행에서 빠졌는데, 그 자리를 윤씨가 치고 들어왔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체를 하기에 H고문의 후배 의원들이 야단을 쳐 돌려보냈다. 그게 다다.”

    하지만 군과 검찰 주변에서는 윤씨가 H씨와 실제로 가까웠다는 얘기가 나돈다. 윤씨가 H씨, 전 국방부 장관 F씨와 함께 골프장에서 찍은 사진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윤씨를 잘 아는 군 관계자는 “윤씨가 김대중 정부 시절 H고문 밑에서 일한다고 과시하고 다녔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윤씨는 또 ‘경선(競選) 불복’으로 유명한 정치인 I씨가 대통령이 될 경우 자신이 경호실장을 맡게 될 것이라고도 떠벌였다고 한다.

    군 골프장에서 어울린 국방장관·차관

    윤씨 사건이 터진 후 군과 검찰, 정치권에서는 ‘군 골프장 명단’이 화제다. 지난 몇 년간 서울 인근에 있는 네 군데 군 골프장에서 윤씨와 골프를 친, 군 고위층을 비롯한 권력층 인사들의 명단이다. 골프 친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인맥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그 인맥이 사기행각과 로비력에 중요한 배경이 된 점을 감안하면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F 전 국방부 장관은 2000년 8월 윤씨와 골프를 쳤다. 당시 그는 국회 국방위원장이었다. 그는 장성 시절부터 윤씨와 친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뒷날 윤씨와 거리를 둔 탓에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와 관련, 윤씨를 잘 아는 검사장 출신 모 변호사는 “몇 년 전부터 윤씨가 F 전 장관을 무지하게 씹고 다녔다”고 전했다. F씨측은 기자의 확인 요청에 응하지 않고, 답변하지 않는 데 대해 제3자를 통해 양해를 구했다.

    예비역 대장으로 공기업 사장을 지낸 J씨도 윤씨와 친분이 두텁다. 윤씨의 비(非)기무사 인맥 중에서는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공기업 사장이 된 후에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장소에서 윤씨를 본 적은 있으나 개별 접촉한 적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확인 결과 J씨는 2003년 9월 공기업 사장 재직시 윤씨와 함께 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그의 골프 일행에는 이번 검찰 수사과정에 윤씨와 매우 가까운 사이로 확인된 검찰 고위직 출신 모 변호사가 끼여 있었다. J씨도 윤씨와 관련된 질의에 답변하기를 거부했다.

    하나회 출신으로 현 정부에서 국방차관을 지낸 예비역 소장 K씨. 그는 차관 재임 중이던 지난해 1월 윤씨와 골프를 쳤다. 그는 윤씨와의 관계에 대해 “알고 지낸 사이지만 그런 친구인 줄은 이번에 알았다”고 했다. 다음은 그의 설명.

    “1992년 사단장을 지낼 때 아는 선배 소개로 (윤씨를) 알게 됐다. 부대를 위문 방문했는데, 사업가라고 했다. 그후 가끔 통화하고 운동도 함께 했다. 잊을 만하면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나한테 뭘 부탁한 적은 전혀 없다. 그다지 신뢰가 가는 사람은 아니어서 그의 얘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전 국방부 장관 G씨는 장관 시절 윤씨와 가깝게 지냈으나 E기무사령관의 ‘충고’를 받은 이후 윤씨를 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를 잘 아는 군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한번은 군 골프장에서 두 사람이 우연히 맞닥뜨렸다. 그런데 G씨가 아는 체를 하지 않자 윤씨가 거친 말투로 “형, 왜 나를 피해? 다 불어버릴까?” 하며 망신을 줬다는 것. 당시 윤씨의 일행 중에는 검찰 고위간부가 있었다고 한다. G씨는 기자에게 “윤상림 사건과 관련해선 할 얘기가 없다”고만 했다.

    “사건 소개료 아니라 빌려준 돈”

    한편 윤씨의 검찰 인맥은 호남 쪽에 치중돼 있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2003년 이후 윤씨와 돈 거래를 한 것으로 확인된 변호사는 모두 11명인데, 그중 3명이 검사장급 이상의 검찰 고위직 출신이다. 그밖에 돈 거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윤씨와의 친분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검사장급 출신 변호사가 2명 더 있다.

    먼저 김대중 정부에서 검찰 고위직을 두루 거친 L변호사. 검찰은 계좌추적을 통해 L변호사가 윤씨에게 1억여 원을 건넨 사실을 확인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씨는 L변호사 사무실에서 모 건설업체 관계자로부터 이 업체의 공사 수주 비리에 대한 경찰 수사 확대를 막아주겠다는 명목으로 2억5000만원을 받았다. 검찰이 윤씨와 L변호사 간의 돈 거래를 예사롭게 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1억여 원이, 윤씨가 L변호사에게 사건을 소개하고 그 대가로 받은 돈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이에 대해 L변호사는 “윤씨에게 빌려줬다가 떼인 돈”이라며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윤씨가 관련된 몇몇 건설업체 관련 사건을 모두 L변호사가 수임한 것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검사들 사이에서는 L변호사가 검찰 재직시에도 윤씨와 친분이 두터웠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예비역 대장 J씨가 2003년 9월 윤씨와 골프를 칠 때 일행 중에 있었던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가 바로 L변호사다. L변호사는 이를 포함해 2000년 이후 군 골프장에서 윤씨와 세 차례 골프를 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취재내용에 대한 확인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거물 브로커 윤상림의 막강 군·검찰 인맥

    서울 시내에서 가까운 군 골프장 남성대. 권력층 인사들 사이에서 접대 및 사교 골프장으로 인기가 높다.

    고검장을 지낸 M변호사도 윤씨와의 친분으로 구설에 올랐다. 검찰 주변에선 두 사람의 친분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얘기가 들린다. 윤씨는 1997년 변호사법위반, 사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적이 있다. 1996년에 수배됐다가 1년 만에 검거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엔 사연이 있다. 1996년 12월 광주지검 순천지청 양부남 검사는 폭력조직 양은이파의 일원인 순천시민파 우두머리 오모씨 등 5명을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하면서 윤씨를 공범으로 수배했다. 당시 윤씨의 직함은 유니콘전자 회장. 애초 검찰은 윤씨도 체포했었다. 그런데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당하는 바람에 윤씨는 곧 풀려났다. 검찰은 한 달 뒤 영장을 재청구했고 이번엔 영장이 발부됐다. 하지만 수사팀은 윤씨를 구속하는 데 또 실패했다. 사전에 정보를 얻은 윤씨가 영장 집행 직전 달아나버렸던 것.

    윤씨의 혐의는 모 육류도매업자에게 접근해 “군 장성에게 부탁해 군납권을 따주겠다”며 교제비로 6000여 만원을 챙긴 것이다. 또 모 구속자의 가족에게 “잘 알고 지내는 판·검사들에게 부탁해 석방시켜주겠다”며 7차례에 걸쳐 8700만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았다.

    당시 수사팀은 윤씨가 1990년대 초 민간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군 주요 부대를 드나들며 군 인사들에게 군납업자를 소개하고 고액이 오가는 도박을 벌이며 친분을 유지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수사팀에 따르면 윤씨는 그동안 친분을 맺어온 현역 법조인들을 동원해 수사팀에 압력을 넣고 심지어 검사를 협박하기까지 했다는 것.

    “여기 오면 형님 만날 수 있다고…”

    수사팀은 모 검사장을 윤씨의 비호세력으로 보고 내사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고검 차장검사이던 M변호사가 바로 그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어느 날 윤씨가 모처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주임검사가 현장에 가보니 M검사장이 경찰 고위간부 2명과 함께 윤씨와 술을 마시고 있더라는 것. 당시 윤씨는 기소중지자로 수배된 상태였다. 주임검사는 그 자리에서는 윤씨를 체포할 수 없어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그후 주임검사와 부장검사는 M검사장을 참고인 조사 명목으로 방문했는데, 그로부터 “밥이나 먹고 가라”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일부 와전된 내용이 있다”면서도 “할 얘기는 많지만 말하지 않겠다”고 입을 다물었다. 또 다른 관계자도 M변호사 관련 여부에 대해 “말하기 곤란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당시 수사과정에서 윤씨와 친분이 두터운 검찰 인맥 일부를 확인했다”며 “수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은 사실”이라고 수사과정에 ‘외압’이 작용했음을 내비쳤다. 그에 따르면 당시 확인된 윤씨의 검찰 인맥 중에는 이번에 이름이 나오지 않은 사람도 여럿 있었다는 것.

    M변호사는 2002년 7월을 비롯해 2000년 이후 군 골프장에서 윤씨와 세 차례 골프를 친 것으로 확인됐다. M변호사 또한 비서를 통해 취재내용을 전달받았음에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역시 고검장 출신인 N변호사. 그는 한때 윤씨와 친분이 두터웠으나 한번 크게 다툰 후 사이가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은 N변호사가 지청장이던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N지청장은 퇴근 후 후배 검사 대여섯 명을 데리고 고깃집으로 갔다. 회식자리에 나타난 ‘스폰서’는 N검사장과 잘 아는 사이였다. 그가 바로 윤씨였다.

    그런데 윤씨의 옆에는 불청객인 영관장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늘 그렇듯이 사전에 양해도 구하지 않고 밥값을 대신 내게 하기 위해 데리고 온 것이다. N지청장이 윤씨를 밖으로 불러내 불청객을 돌려보내라고 화를 내는 바람에 영관장교는 곧 자리를 떴다.

    식사자리가 끝난 후 2차로 클럽에 술을 마시러 갔다. 그런데 거기엔 또 다른 불청객이 N지청장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 사학재단 이사장으로 N지청장과 아는 사이였다. N지청장이 “어떻게 왔느냐”고 묻자 그는 “윤 회장이 여기 오면 형님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왔다”고 대답했다.

    N지청장은 다시 윤씨를 밖으로 불러냈다. 이어 ‘퍽, 퍽’ 하는 소리와 더불어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놀란 검사들이 쫓아가보니 두 사람이 주먹다짐을 벌이고 있었다. 한두 대 맞은 듯 윤씨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였다. 현장 목격자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와이셔츠를 찢으며 “형님, 나를 구속하려면 하라!”면서 N지청장에게 대들었다. 이어 N지청장이 윤씨의 얼굴에 박치기를 했고, 윤씨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검사들이 말리는 바람에 싸움은 그쳤지만 술자리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목격자는 당시 윤씨의 행동에 대해 “완전히 양아치였다”고 회고했다.

    이에 대해 N변호사는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주먹다짐을 한 것이 아니라 말다툼 끝에 일어난 해프닝”이라며 “내가 왜 사람을 팼겠는가. 윤상림도 덩치가 있는데 그냥 맞았겠느냐”고 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말다툼한 이유에 대해서는 윤씨가 사전에 아무런 말도 없이 회식 때 이상한 사람을 데리고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N변호사는 윤씨와의 친분에 대해 “(고향이) 같은 전라도라고 해서 다른 사람 소개로 그전에 한두 번 만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그 사건 이후 윤씨와 관계를 완전히 끊었는데, 윤씨가 가는 데마다 자신을 욕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

    N변호사는 또 ‘한때 윤씨와 어떤 사업에 공동 투자한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런 게 있었다면 그렇게 관계를 딱 끊을 수 있었겠느냐”고 부인했다. 검찰 주변에선 그가 검찰 재직시 한때 윤씨의 주선으로 어떤 사업에 투자했다가 윤씨와의 관계가 나빠졌다는 소문이 돈다. 그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그는 억대의 손해를 봤는데, 윤씨는 그 전에 자기 몫을 챙겨 아무런 탈이 없었다는 것.

    “절대 돈 주고 청탁 안 한다”

    검사장 출신인 O변호사는 윤씨에게 검사장 재직시 5000만원, 개업 후인 지난해 5000만원 모두 1억원을 건넸다. 검찰은 L변호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돈이 사건 소개료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지만, O변호사는 “빌려줬다 떼인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씨는 그에게 돈을 빌릴 당시 “하남 풍산지구 아파트 시공 건을 따냈으니 이자까지 쳐 두 배로 갚아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O변호사는 “순수하게 빌려준 돈”이라며 “지금 생각하면 당시 카지노에 흠뻑 빠진 윤상림이 도박비를 마련하기 위해 돈을 빌렸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씨는 2003년 6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21개월 동안 강원랜드에 1263회나 출입했다(하루 평균 2회). 그 기간에 5만3000여 회의 바카라 게임을 즐겼는데(하루 평균 84회), 약 39억원을 잃고도 계속 도박장에 출입하는 중독 증세를 보였다. O변호사는 이 점을 들어 “나를 비롯해 일부 변호사들이 윤씨에게 건넨 돈은 사건 소개료가 아니다. 이 돈이 윤씨의 도박비로 쓰였다는 점은 누구보다도 검찰이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수사팀을 비난했다.

    O변호사도 2002년 3월 윤씨와 함께 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 그는 윤씨와의 친분에 대해 “2001년 친구 소개로 알게 됐다”고 밝혔다.

    “윤씨는 처음 만나는 사람을 ‘껌벅 가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틀도 좋고 점잖게 보여 호감이 갔다. 윤씨는 결코 공무원한테 돈 갖다 주고 청탁할 사람이 아니다. 평소 다져놓은 친분을 바탕으로 돈 거래 없이 편한 분위기에서 부탁을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을 사귀지 못했을 것이다.”

    그밖에 윤씨에게 돈을 준 검사장 출신 변호사 중엔 P씨가 있다. P변호사는 검사장 재직시 윤씨에게 2000만원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았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빌려줄 때는 윤씨의 계좌로 입금했는데, 받을 때는 현금 보따리로 받았다는 것. 검찰 관계자는 “지금까지 드러난 윤씨의 인맥은 극히 일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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