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노무현 대통령 모시고 베트남 호치민시에 갔더니 삼성 광고 간판이 여기저기 서 있었습니다. 노 대통령이 그걸 보고 ‘잘한다’고 하더군요. 러시아 모스크바에 가면 ‘LG 브리지’가 있습니다. 온통 LG 광고로 둘러싸여 그런 이름이 붙었죠. 기업들이 그렇게 수출해서 돈을 벌어들이고 해외에 한국의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그걸 보면 자랑스럽잖아요. 기업이 그렇게 애국하는데 반(反)기업 정서가 확산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요. 미국에 체류 중이던 이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 막내따님의 불행한 일을 재계를 대표해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건강진단이 끝나면 귀국해 최대 기업의 주인으로서 한국 경제를 위해 일하자고 했죠.”
그는 이 회장에게 보낸 편지를 보여줬다.
‘갑작스러운 여식의 불행한 일에 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저의 마음만 안타까웠을 뿐 회장님의 슬픔만 더해드릴 것 같아 즉시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중략) 회장님을 비롯해 우리 재계가 힘을 모으면 반드시 잘사는 나라,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서울은 혹한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회복하시고 회장님의 건강한 모습을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이희범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이 “이 회장이 귀국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은 있지만, 자신이 보낸 편지는 정부의 심부름을 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시녀’ 될 필요도, 싸울 이유도 없다
-김대중 정부 때 이뤄진 대표적인 ‘빅딜’이 LG그룹의 반도체를 현대 하이닉스에 준 것이죠. 빅딜은 시장경제 원칙에도 반하고, 실패한 경제정책이라는 평가가 내려졌습니다. 전경련이 그 빅딜에 협조했다고 해서 LG 구본무 회장이 그 뒤로 전경련 회의에 일절 참석하지 않는다지요.
“구 회장으로서는 기분 나빴을 거예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오히려 잘됐지 않나 하는 얘기도 있죠. LG반도체 인수 후 하이닉스가 굉장히 어려워졌지 않습니까. 하여튼 구 회장이 빅딜 때문에 ‘꽁’ 했습니다. 그래서 전경련에 안 나온다는 얘기도 있죠. 하지만 두 번째 큰 기업체의 회장인데 몇 년씩 꽁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간은 LG필립스 등 사업확장 때문에 바빴겠지만 앞으로는 전경련 활동을 지원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대우그룹은 공중 분해됐고 김우중 회장은 병든 몸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전경련 회장도 지냈는데 귀국한 뒤에 만나봤습니까.
“이번에 오셨을 땐 못 만나봤습니다. 사실은 제가 그분을 전경련 회장 시켰습니다. 그분이 처음에 자기 사업이 바빠 안 하겠다고 했죠. 제가 젊은 부회장단 8, 9명을 저녁에 초대해 ‘전경련 맡을 사람이 김우중 회장밖에 없지 않느냐’고 분위기를 잡아 김 회장을 추대했죠.
대우에 아까운 기업체가 많았어요. 베트남과 폴란드의 자동차 공장을 비롯해 해외에 사업을 크게 벌렸지 않습니까. 대우가 죽지 않고 계속 작동했더라면 여전히 4대 그룹으로 남아 있겠죠. 대우그룹 같은 기업이 10개만 있으면 저소득층을 다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대우가 저렇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죠.”
-현명관 전 전경련 부회장이 한나라당 공천으로 제주지사에 출마한다지요. 그분이 강 회장 밑에서 부회장을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난해 3월 퇴임하면서 ‘정부에 무조건 박수만 치는 게 재계 역할이 아니다. 정부의 실수에 대해서 정정당당하게 비판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더군요.
“전경련이 정부의 시녀가 될 필요는 없겠죠. 정부 사람들의 실무경험이 부족해 국가경제발전 계획이 현장 상황과 맞지 않아 차질이 생길 수 있죠. 그럴 때 우리가 ‘그런 게 아니다’고 설명하는 거죠. 대안도 내놓고요. 실리주의로 하죠. 정부하고 밤낮 싸운다고 되겠습니까. 실무자끼리 만나 납득을 시켜 우리가 원하고 시장경제에 맞는 방향으로 끌고가는 게 중요합니다.”
-목소리 큰 게 ‘장땡’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목청만 돋우면 뭐해요. 싸움할 거야? 그러면 정부 사람들이 들어줍니까.”
전경련이 왜 정치자금 못 주나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불법 대선자금 제공과 관련해 재계 총수들이 검찰에 불려다니며 수사를 받느라 곤욕을 치렀다. 과거 전경련은 재계의 정치자금을 모아 여당에 전달하는 창구 노릇을 한 게 사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때부터 전경련이 그 일을 안 하게 되면서 재벌들이 각개 플레이로 여당과 야당에 자금을 전달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쪽에 더 가게 되지만 세상 일을 미리 알 수 없으니 양쪽에 다 보험료를 냈다. 이 모두 1997년과 2002년에 벌어진 일들이다. 강 회장은 대선자금 수사 때 기업인들이 마음 놓고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수사를 조속히 종결해달라고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을 세 차례나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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