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연평해전 2개월 전 “체제대결 유발할 전술안 통 크고 대담하게 작성하라” ● 김정일, 연평해전 사흘 전 “이번에 해군사령부에서 영웅이 몇 명 배출돼야” ● 3호청사 ‘두뇌진’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 ‘43조’의 실체 ● 김정일, 연평해전 직후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경비함에 장갑철벽을 설치해주라” ● 김정일, 2001년 12월30일 오극렬에게 “서울에서 월드컵 하는데 당 작전부는 뭘 하나” ● 북방한계선 월선하며 자극한 어선은 인민무력부 정찰국 위장선 ● 쏟아지는 파열탄, 귀청찢는 포성…승조원 몸에 박힌 파편 240개 ● “남조선이 ‘우발사태’로 모니, 우리도 해군사령부 책임으로 몹시다” ● 김정일, 2002년 7월 “연평해전은 졌으나 서해교전은 사실상 이긴 전쟁” ● 사망 함장 1년 뒤 ‘공화국 영웅’ 칭호, 해임됐다던 8전대장은 1년 만에 복직 |

1999년 6월 연평해전 직전에 발생한 해군 고속정(오른쪽)과 북한 경비정의 충돌 순간. 국방부
북한의 고위간부 자녀들은 망명을 우려해 원칙적으로 해외출장이 허가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들은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하는 대신, 함경북도 청진항에서 몰래 배를 타고 공해상으로 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공해상에 나와 있던 미 해군 잠수함을 타고 일본을 경유해 태평양을 가로질러 미 본토로 왔다는 설명이다.
이들의 망명소식은 이듬해인 2004년 11월 일본 NHK 방송을 통해 처음 보도됐다. 이때의 언론보도는 망명한 이들이 ‘수십명 규모’라고 전하거나 오세욱씨가 친위대의 일원이었다고 전하는 등, 일부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었다. 올해 41세인 오세욱씨는 탈북 당시 인민군 중좌 계급이었으며, 무기개선에 관여하는 인민무력부 장비국 등에서 근무했다. 탈북 전에도 정치범 수용소를 두 차례 다녀오는 등 ‘체제부적응 인사’로 낙인 찍혀 친위대 근무는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한다.
2004년에는 조선노동당 대외·대남부서가 집중돼 있는 3호청사 소속 과장급 간부와 책임지도원 한 사람이 중국으로 빠져 나와 곧바로 제3국으로 망명했다. 올해 57세인 이 과장급 간부는 20대이던 1970~80년대 남파되어 대학을 다니며 공작활동을 벌인 경력을 갖고 있다. 이후 북한으로 돌아간 그는 남조선문제연구소 등 전문직책을 거쳐 통일전선사업부에서 근무하다 부하직원과 함께 망명을 결심했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직 북한 고위관료나 핵심기관 구성원, 공훈가족 자녀 등에 대해 치밀한 망명공작을 진행하고 있다.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담당비서가 망명한 1990년대 중반 이후 남한으로의 귀순은 이들에게 ‘메리트’를 상실한 상황. 이 때문에 탈출을 결심하는 당국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미 정보당국 등과 접촉해 이들 나라로의 망명을 택하고 있다. 미 정보당국은 장차 김정일 체제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이들을 규합해 망명정부 혹은 대체정부를 수립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치밀한 ‘체제전환 사전준비’인 셈이다.
최근 수년 사이 평양의 핵심 권력기관에서 일하던 간부들이 빠져 나옴에 따라, 북한의 내부상황에 대한 정보는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신동아’는 우연한 기회에 이들 중 일부와 접촉할 수 있었고 이들의 증언과 기록을 바탕으로 몇 차례의 특종보도를 했다(그러나 최근 이들의 소재나 생활이 안정되면서, 외신을 비롯한 다른 언론에 노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들의 증언으로 2000년대 이후 벌어진 남북간의 주요사건을 둘러싼 ‘평양 내부의 움직임’이 확인되는 시점 역시 최근 2~3년 전까지 소급됐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1999년 6월15일 발발한 연평해전과 2002년 6월29일 발발한 서해교전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이 비극적인 사건을 놓고, 이후 서울에서는 과연 이들 교전이 북한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인지 우발적인 사건인지에 대한 논쟁이 심각했다. 상당수 전문가 및 정부당국자들은 ‘우발 사건론’ 혹은 ‘군부 독자행동론’에 무게를 실었다. 김정일 위원장 본인이 그러한 취지의 발언을 남측 관계자들에게 한 적도 있다.
‘신동아’는 연평해전 7주년 및 서해교전 4주년을 앞두고, 이러한 견해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그 구체적인 실체를 재확인하는 특별취재를 기획했다. 이를 위해 우리의 국방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와 대남·대외공작을 담당하는 노동당 3호청사 등 주요기관에서 과장급 이상 간부로 재직하다가 망명한 전직 당국자들의 증언을 수집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연평해전과 서해교전은 모두 김정일 위원장의 사전 특별지시에 따라 기획, 실행된 의도적인 군사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