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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5·31 ‘大심판’ 이후

여권 정계개편 방향과 盧의 선택

‘거대여당 프리미엄’, 이 좋은 걸 왜 포기해?

  • 김동철 동아일보 정치 전문기자 eastphil@donga.com

여권 정계개편 방향과 盧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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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의 ‘학습효과’는 역시 컸다.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자마자 열린우리당에서는 빅뱅, 분당, 신당 창당, 정계개편 등 온갖 얘기가 난무했다. 하지만 열흘이 채 지나기 전에 이런 용어는 ‘잠복 현안’이 돼버렸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여권 정계개편 방향과 盧의 선택

5월31일 열린우리당 지방선거 출마자 사진에 붙일 당선축하 장미 송이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뒤 ‘대선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로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이길 수 없다’며 후보 교체를 요구한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일까. 후단협 멤버로 활동했던 여권 인사 대부분은 정치적으로 몰락하고 결국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데 따른 학습효과가 이번에도 작용했다.

5·31 지방선거는 여권에 엄청난 상처와 교훈을 남겼으나 당장 정치구도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듯하다. 물론 지방선거 참패로 ‘정치적 뇌사(腦死)상태’에 빠진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정계개편 모색과 함께 갈등과 균열의 조짐이 상존하겠지만, 그것이 대세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의미에서다. 즉, 큰 흐름으로 볼 때 200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계개편은 이뤄질 수밖에 없지만,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게 된 김근태 신임 당의장은 6월11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당이 단합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한 뒤에야 (범(汎)여권 통합을) 할 수 있다”며 “여전히 집권여당이기 때문에 대연합이니 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일로 적절치 않다. 지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평소 ‘평화개혁세력 대연합’을 주장해온 그였다. 그러나 그는 선거 참패 다음날 “이 상황에서 정계개편 문제를 제기하는 건 국민한테 도리가 아니다. 고심할 필요는 있지만 국민에게 회피하고 모면하는 것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건 뒷날로 미뤄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기자회견 내용과 똑같은 맥락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같은 날 “위기에 처했을 때 당의 참모습이 나오는 법이고 국민은 그 모습을 오래 기억한다. 멀리 보고 준비하며 인내할 줄 아는 지혜와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고 말했다. 우회적으로 즉각적인 정계개편 반대 의사를 밝혀 김 의장과 인식을 같이했다.

여권의 이 같은 흐름은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이 선거 사흘 뒤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 잘 정리돼 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과제는 질서정연한 수습과 조기 안정이다. 그리고 그 기초 위에서 끈질기게 전개해야 하는 ‘진지전’이다. 이 목표에 방해되는 어떠한 언행도 삼가는 것이 옳으며 조직인의 도리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전진을 향한 모색을 하고 그것이 국민신뢰의 단계적 회복으로 이어질 때 다음 행보를 할 수 있다. 즉 ‘유격전’을 펼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백가쟁명, 백화제방 식으로 제기되는 처방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즉 당명개정, 재창당, 정계개편, 민주개혁세력 대연합 등의 주장은 우리의 지금 처지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성급히 시도해서도 안 된다. ‘유격전’을 펼칠 수 있는 기력 회복이 선결조건이다.”

“섣불리 시도하다간 궤멸”

다시 말해 정치권을 합종연횡의 돌풍 속으로 몰아넣을 정계개편을 추진할 힘이나 동력을 집권세력이 갖지 못한 상황에서 어설픈 정계개편 논의나 시도는 논의의 주도권을 상대편에 넘겨주고 내부 분열만 부추겨 열린우리당을 궤멸시키는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열린우리당 의원 상당수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열린우리당에 변수가 없을 리는 없다.

이 당엔 안영근 의원 등 이미 고건 전 국무총리 쪽으로 줄을 선 인사들이 있다. 중도보수그룹과 개혁그룹 간 갈등도 잠시 잠복하고 있을 뿐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또 한 달여 뒤 실시되지만 여전히 전망이 어두운 7·26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서울 성북을, 송파갑, 경기 부천소사, 경남 마산갑) 결과도 당을 또 한 번 뒤흔들 요인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미 지방선거운동 기간 중 정동영 전 의장이 제기한 ‘민주개혁세력 대연합론’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친노(親盧) 그룹인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의 김두관 전 최고위원(전 경남도지사 후보)은 정 전 의장을 향해 “당을 떠나라”고 목청을 높일 정도였다. 그는 선거 참패 후 당내에서 자신의 발언이 선거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비판을 받자 참정연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민주당과의 통합 발언은 호남 유권자에게 열린우리당이 곧 없어질 정당으로 인식하게 기능했다. 열린우리당이 일시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또다시 지역주의 정당과 합당하는 것은 퇴보라고 봤다.”

선거기간 중 문재인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부산정권 발언’을 했다. 이 발언에 한나라당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인사들이 내심 더 불쾌해했다. 열린우리당 내에는 친노와 비노(非盧), 영남과 호남 출신 인사 간 미묘한 시각차가 존재한다.

민주개혁세력 대연합론은 호남 등 여권의 전통적 지지기반을 복원해 이른바 ‘서부 벨트’를 재구축하려는 의도다. 이런 계획의 섣부른 추진이 당에 가져올 분란과 파장은 불 보듯 뻔하다고 할 수 있다. 친노그룹측에선 “개혁 정체성 상실과 지역구도 극복 무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대연합 쪽으로 당이 방향을 잡는다면 분당(分黨)이 불가피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을 정도다.

대연합의 핵심은 고 전 총리의 영입이나 민주당과의 통합에 있다. 그러나 이 두 사안은 현 시점에서 가능성이 거의 0%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무망한 실정이다. 오히려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열린우리당 호남 출신 의원들을 향해 ‘백기투항’을 권고하는,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믿고 싶지 않은 장면마저 연출된 게 선거 참패 이후 정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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