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경제를 분석하는 어느 이코노미스트의 ‘참회록’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유럽경제를 족집게로 집어내듯 정확하게 예측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의 전망에 깔린 기본 가정이 문제였다. 국제유가가 안정되고 유로화 가치는 하락한다고 가정했는데, 이는 실제와 전혀 달랐다. 만일 그가 가정을 달리했다면 예측결과는 오히려 크게 빗나갔을지 모른다.
이와 달리 가정을 정확하게 설정했지만 경제변수들의 작용과 반작용이 달라지면서 전혀 예기치 못한 화학반응이 일어나 예측결과가 실제와 크게 어긋나는 사례도 많다. 이처럼 경제예측이란 과학적인 듯하면서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듯하면서도 합리적인, 난해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황당한, 성급한, 허망한
주가나 금리를 제대로 예측하려면 시장의 기초여건을 정확히 판단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경기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전제돼야 한다. 그 다음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전망을 내놓아야 한다. 잘못된 상황 진단, 엉뚱한 가정, 도식적인 상관관계 설정…. 그 결과는 물론 부끄러운 예측이다.
지금도 많은 이코노미스트가 경제예측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은 끊이질 않는다. 물론 필자처럼 지식과 역량이 일천한 사람은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말이다. 필자도 빗나간 경기예측으로 주가와 금리의 흐름을 잘못 짚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최근 세계 경제 이슈들 가운데 경제전문가들이 정확히 예측한 것은 얼마나 될까. 샅샅이 조사해 평가할 수는 없지만 대략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50점도 안 될 것이다. 독자의 기억 범위 안에 있는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의 상황을 살펴보더라도 실수는 많았다. 당시 한국 등 아시아의 외환위기를 제대로 예측한 경우도 드물었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그 이후의 잘못된 전망들이었다.
적지 않은 전문가가 아시아는 오랜 기간,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 단언했다. 이 지역의 달러대비 환율은 폭등해 물가가 사정없이 오르고 도시가 폐허화할 것이라고도 했다. 어떤 이는 한국의 이자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주식이 휴짓조각이 되는 등 국민경제는 회복불능, 아니 완전 마비상태에 빠질 것이란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외환위기를 치유하는 방식으로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고금리 처방전도 객관적으로 보면 적절치 않았다. 그들은 남미의 외환위기 상황을 아시아의 위기와 일치시키는 데 급급했다. 분석가들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빠져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세월이 걸릴 것이며 그 후유증 또한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았다.
“우린 주술에 빠졌다”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한국의 기업들이 비록 과잉투자로 큰 어려움에 직면했고 국가 전체가 단기 유동성의 부족상태에 빠졌다 하더라도 경제의 본질인 국제경쟁력과 경제체력은 양호했다. 정부의 부패성도 매우 낮았으며 무엇보다도 기업자산의 내재가치가 양호하다는 사실을 경제 전문가들조차 간과했던 것이다.
결국 한국의 쓸 만한 자산은 외국자본에 손쉽게 매각돼 외환 부족분이 빠르게 메워졌고 현대화한 공장에서 생산되는 고부가 재화들은 환율폭등을 등에 업고 엄청난 무역흑자를 만들어냈다. 그 덕분에 국민경제의 위기탈출은 예상보다 빨랐다.
그로부터 수년 후 이른바 밀레니엄 특수(特需)로 부르던 2000년 경기상황에서 사람들은 또 한 번 다른 유형의 예측함정에 빠졌다. 이번에는 ‘신기술, 신경제’라는 주술에 걸리고 말았다. 인터넷 확산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전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뀔 것이란 확신이 일시적이나마 온 세상을 지배했다.
놀라운 생산성 향상과 역사적으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경이적인 수익개선, 그리고 신기술에서 파생되는 환상적인 비즈니스들, 아무도 막지 못할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 등 신경제 예찬론은 신앙에 가까울 정도였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