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이제 사정은 사뭇 달라졌다. 세태의 변화와 함께 뒤바뀐 남녀의 위상 때문일까. 이쁜이 수술보다 남성 성기 확대술의 수요가 훨씬 늘어났다. 세월은 몸에 걸친 의상이 헐렁한 이유를 몸체에 비해 큰 옷의 치수가 아니라 빈약한 몸집 자체에서 찾고 있다. 남성들의 물건이 갑자기 초췌해진 것일까. 아니면 잔뜩 주눅든 요즘 남자들의 거시기가 영양실조에라도 걸렸다는 이야기인가. 이 모두 정답이 아니다. 예전과 달리 여자의 끗발이 좋아져 凹의 축소보다는 凸의 확장을 통해 요철(凹凸)의 최적 맞춤을 추구하는 현상일 뿐이다.
‘명기(名器)’를 논할 때 남성들이 최고로 꼽는 덕목은 속 좁은(?) 여자다. 아무리 촉촉하고 따스하다 해도 턱없이 넓고 통 큰 여자는 남자의 좋은 품평을 기대할 수 없다. 속 좁은 여자가 단연 질 좋은 여자라는 뜻이다. 굿섹스(Good sex)의 요건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남자들은 놀랍게도 남성 물건의 크기와 여성의 죄는 힘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질 좋은 여자와 장대한 남자의 결합이 최상의 맞춤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속설은 고정관념이 되어 ‘이쁜이 수술’의 유행을 낳았고 오늘날 성기 확대 수술의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우람한 물건’ ‘속 좁은 여자’가 정말 최고 성적(成績)의 요건일까.
요철의 맞춤은 상대적인 것이다. 성기가 인위적 맞춤에 의해 생산된 규격 공산품이 아닌 이상 섹스를 볼트와 너트의 기계적 결합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자세다. 볼트와 너트의 완벽한 결합은 정교함과 정밀성이 전제되지만 자웅(雌雄)의 교합은 기계적 결합만으론 사랑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남성들은 명기 제1의 요건으로 ‘타이트한 느낌’을 꼽는다. 여성의 수축력이나 악력(握力)과 같은 물리력, 그리고 거대한 남성이 여전히 명기의 기준으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죄다 부질없는 성적 허영심에서 비롯된 오해일 뿐이다. 남녀 간의 결합은 신뢰와 애정의 바탕 위에서 편안한 쾌감을 창출하며 즐거운 육감을 따라가는 비빔의 기량이다. 명기란 타고난 생김새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의 실력이나 기량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상적 성구(性具)는 하드웨어의 품질이 아니다. 남성을 격려하는 여자의 마음 씀씀이와 헌신적 ‘질 바라지’를 아끼지 않는 남자의 노력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남성의 거포화와 여성의 협소화를 성취하려고 안간힘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아직도 병원을 찾아 헤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