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명화의 삶과 죽음을 다룬 ‘삼천리’ 1935년 8월호의 ‘사랑은 길고 인생은 짧다던 강명화’.(작은사진) 자살한 강명화의 사연을 보도한 ‘동아일보’ 1923년 6월16일자 기사.
인력거가 용산역에 도착하자, 먼저 나와 기다리던 장병천이 반갑게 강명화를 맞았다. 그날 아침 장병천은 창신동 본가에서 택시를 타고 용산역으로 나왔다. 부처님 앞에서 부부의 연을 맺기로 맹세한 지 5년이 지났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부부가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지내면서도 한집에 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지난밤 장병천이 양사동 집에 들렀을 때, 강명화가 자기 어깨를 두드리며 청했다.
“나리, 어쩐 일인지 몸이 구석구석 쑤시지 않은 곳이 없어요. 바람도 쐴 겸 온양온천에 다녀옵시다.”
“마침 아버님께서 집을 비우셨으니 내일이라도 당장 내려갑시다. 한 며칠 푹 쉬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가뿐해질 것이오.”
용산역에서 만난 부부는 장항선 첫차를 타고 온양온천으로 떠났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초여름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지만, 강명화는 풍경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차창에 기대 졸고 있는 장병천의 얼굴만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크고 검은 눈동자에 눈물이 글썽였다.
“세상 사람 중에 가장 사랑하는 파건…”
녹음이 우거진 온양온천에서 두 사람은 온천욕도 하고 산보도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집안의 반대와 사회의 따가운 시선 같은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오랜만에 자유를 만끽했다. 6월10일, 온양온천에 온 지도 나흘이 지났다. 두 사람은 도시락을 싸 들고 언덕에 올라가 소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앉았다. 피부를 스치는 상쾌한 바람. 두 사람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달콤한 사랑을 속삭였다. 뉘엿뉘엿 땅거미가 깔릴 때, 강명화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리, 어찌 된 셈인지 요즘 자꾸만 죽을 듯한 생각이 나요.”
“그런 불길한 말은 하지 말게.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 게지. 그렇다고 죽기야 할까.”
“아니에요. 이상해요…. 제가 비록 모진 목숨 이어간들 무슨 영광을 보오리까. 나리의 앞길만 그르치게 되지요. 저는 사랑하는 나리를 위해 죽어도 좋아요. 제가 죽은 뒤에라도 나리는 행여 제 생각일랑 말고 아무쪼록 좋은 사업을 많이 하세요, 응? 나리 댁으로 말하자면 조선에서 내로라 하는 갑부지만 남의 원망을 많이 듣고 봉변까지 당하지 않았소. 나리는 아무쪼록 공부를 잘하시고 재산을 풀어서 공익사업에 힘쓰세요. 그러면 사회에서 신용도 회복되고 장차 위대한 인물이 되실 겁니다. 그리하시면 제가 비록 죽어 혼이 될지라도 구천에서 기뻐할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