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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회 2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우수작

그들이 내 아내를 살리기까지

  • 김상순 / 일러스트레이션·박진영

그들이 내 아내를 살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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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의 기대에 부풀었던 아내는 당황한 의사와 간호사의 재촉에 놀라 두려움에 휩싸인 채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서둘러 옮겨졌다.

초산 때는 진통 한 시간 만에 건강한 아들을 순산해서 가족 친지로부터 칭찬과 부러움을 샀던 아내였다. 그런데 두 번째 출산을 앞두고 맥박이 40 이하로 떨어졌다. 건강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하는 서맥을 발견한 것이다.

이미 연락을 받은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산모의 위험에 대비해 심실재세동기를 준비하는 한편 의사 여덟 명이 대기했다. 긴장된 주시가 이어졌지만, 아내는 별다른 이상 없이 건강한 딸을 순산한다. 퇴원하는 아내에게 담당의사는 “산후조리가 끝나는 대로 이응구 박사에게 심장 정밀진단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아내는 딸을 낳고부터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일이 잦아졌고 복통의 강도도 심해졌다.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저녁식사 후면 배가 아프다며 데굴데굴 굴렀다.

“어이구 아파 죽겠다….”



통증을 표현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말 중에서 가장 절실한 어조로 아파 죽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통증으로 얼굴이 일그러지고 배를 움켜쥔 채 어쩔 줄 모른다. 복통이란 무엇인가. 복부의 이상상태에서 오는 일종의 경고다. 살려면 이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치료해서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이 시간이면 아파트 근처의 병원은 문을 닫아 종합병원 응급실이나 약국을 찾아야 한다. 급한 마음에 우선 상비한 소화제를 먹지만 통증은 걷잡을 수가 없다.

아내의 비방이 시작된다. 왼손 장지를 훑어 실로 묶고 피가 통하지 못해 검붉어지면 바늘로 손톱 바로 위를 찔러 피를 터뜨리는 것이다. 의료 혜택이나 별다른 소화제가 없던 시절 배탈이 나면 할머니가 하시던 방법이다. 고통이 수반되는 저런 원시적인 방법이 무슨 효험이 있을까. 내게는 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했지만, 별수 없이 바늘을 촛불에 빨갛게 달구어 소독해준다. 그렇게 흘러나오는 피의 양과 색깔 농도에 따라 배탈의 심각성을 가늠했다. 이런 소동을 한바탕 치르고 나면 배를 움켜쥐고 나뒹굴던 아내는 희한하게 고비를 넘겼다.

“저녁 먹은 것이 단단히 체했나 봐.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언제부턴가 아내는 음식 먹기에 겁을 먹고 조심스러워했다.

새파란 나이에 찾아온 서맥

인간은 심장이 멎으면 죽는다. 생명의 시작과 죽음의 판정이 심장 박동에 완벽하게 연결돼 있다. 정상적인 심장이라면 1분에 90~120번을 뛰면서 5.6ℓ의 피를 1분에 세 번씩 전신에 순환시켜야 한다. 그러나 성인의 평균치 맥박이 72번보다 느리면 서맥으로 분류된다. 피는 순환하면서 산소와 영양을 세포에 공급하고 동시에 몸속의 노폐물과 탄산가스를 제거한다. 서맥은 혈액순환을 원활하지 못하게 해 정상생활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각종 혈관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내는 심장이 1분에 겨우 38번 뛰는 서맥 환자였다. 이응구 박사는 서맥 환자가 쉽게 직면하는 피곤이나 숨가쁨, 현기증, 졸도 같은 증상 외에도, 아내처럼 심한 환자는 수면 중 심장이 소리 없이 멈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의사의 지시로 딸에게는 처음부터 모유를 먹이지 않았다. 그러나 눈앞에서 어미를 필요로 하는 자식이 보채고 있으니 서맥의 후유증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늘 숨이 차고 피곤했지만 눕거나 쉴 형편이 아니었다. 출산 후유증과 육아의 분주함에 휩싸인 채 ‘이 정도 피로는 누구나 겪는다’며 애써 위로할 뿐이었다. 아내는 겨우 31세, 두 아이의 엄마였다.

딸이 세상에 나온 지 7년 후, 38세의 아내는 하루하루 더욱 견디기 힘들어했다. 먹은 것도 없이 복통으로 자지러지는 일이 빈번했다. 소화제나 바늘로 손톱 밑을 따는 방법은 더 이상 효험이 없었다. 시도 때도 없는 복통으로 근처 의원과 세브란스 병원을 전전했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이뤄지지 않았다. 혈압은 정상이지만 맥박은 여전히 느릿느릿 불뚝불뚝 뛰었다. 이응구 박사는 페이스메이커의 필요성을 절실히 강조했다. 심장에 칼을 대는 일은 두려울 수밖에 없었지만, 아내와 나는 마침내 수술하기로 결정했다. 수술만 마치면 태어난 후부터 줄곧 괴롭혀온 원인 모를 복통은 씻은 듯 사라질 것이라는 확고한 희망에 부풀어서.

페이스메이커는 맥박이 분당 60 이하의 서맥 환자에게 시술되는 심박 조절장치다. 전기 회로판과 배터리를 케이스에 밀봉해 살갗 속에 장치한다. 선이 두 개인 경우 우심실과 우심방에 각각 연결해 심방과 심실의 전기적 작용을 감지하고 조절 여부를 결정한다. 동시에 심방과 심실의 잇따른 수축을 확인한다. 상부 하부 심방의 박동을 도와 심장이 자연상태의 박동을 흉내내게 만드는 것이다.

전기기계 엔지니어인 나는 페이스메이커의 메커니즘을 보면서 과학과 의학의 절묘한 접목에 감탄한다. 오늘날 의학의 발전은 과학 발전과 더불어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첨단 검사기기의 발달로 진단의 정밀도와 정확도가 한층 더 높아진 것도 마찬가지다. 인위적인 전기신호로 심장박동을 일으키고, 자체 박동과 비교하여 서맥이나 부정맥의 경우 정상상태로 보완해주는 페이스메이커의 메커니즘이야말로 과학과 의학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하나의 현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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