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6월7일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운데)를 사이에 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표정과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메드베데프 부총리는 푸틴 대통령의 고향(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 후배이자 대학(상트페테르부르크대 법학부) 후배이며 크렘린 행정실장(한국의 청와대 비서실장)을 거친 오른팔이다. 일부의 예상처럼 푸틴 대통령이 국가지도자로 남아 수렴청정을 하든 그렇지 않든, 푸틴의 노선을 충실히 승계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이렇게 볼 때 2009년 이후 워싱턴의 대내외 정책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예상되지만, 잃어버린 초강대국의 위상을 되찾고 위대한 러시아를 재건하겠다는 푸틴 정부의 노선은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최근 외신과 이를 옮긴 국내 언론의 보도를 보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의 파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옛 소련 붕괴 후 경제난에 허덕이던 러시아가 푸틴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지도자를 만나고 고(高)유가에 힘입어 ‘오일 머니’를 벌어들이기 시작한 후의 일이다.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국제사회에서 점차 목소리를 높이면서 미국(서방)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 뒤에는 푸틴 대통령이 장기 집권과 절대권력 유지를 꾀하면서 러시아의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가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빠짐없이 덧붙여진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러시아 위험론’까지 떠오르고 있다. 이런 인식은 정말 오랜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냉전 시절에야 ‘악의 제국’인 소련이 서방세계의 가장 큰 적으로 인식됐지만,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냉전이 끝난 후부터는 러시아를 위협적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러시아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경제난과 사회적 혼란까지 겪자 서방의 경계심은 더 약해졌다. 오히려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중국의 영향력을 두려워하는 황화(黃禍)론이 더욱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철의 장막’을 열어젖힌 소련의 마지막 최고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혹은 소련을 해체하고 새로운 러시아를 세운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시대에는 서방과 러시아가 전에 없는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냉전시대는 진정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두 지도자는 러시아 국내에서는 ‘국가를 망친 원흉’ 취급을 받을 정도로 인기가 없었지만, 서방에서는 역사를 바꾼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을 받았다.
이런 상황은 분명 2000년 푸틴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달라졌다. 그렇다면 현재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은 푸틴 정권이 등장하면서 생긴 것일까. 푸틴 정권이 물러난다면 서방과의 관계는 회복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