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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러시아-서구 끝 모를 갈등

“그게 민주주의냐?” vs “제 앞가림이나 하시지!”

  • 김기현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전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

점입가경, 러시아-서구 끝 모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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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러시아-서구 끝 모를 갈등

2007년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집을 방문해 그에게 국가공로상 상패를 건네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을 계기로 전세계에 민주주의와 자유를 확산시키겠다고 나섰다. 이에 자극받은 러시아의 주변국인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 키르기스탄에서 ‘색깔 혁명’이 일어나 친서방 정권이 수립됐다. 아제르바이잔과 우즈베키스탄 등에서도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 국가는 러시아에는 앞마당과 같은 중요한 지역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005년 초 외교전문지 ‘세계 현안과 러시아’에 기고한 글에서 “민주주의는 외부에 의해 강요돼선 안 되며 체제를 힘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그 지역의 정세만 불안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러시아에 미국이 얘기하는 ‘민주주의의 확산’은 러시아와 동맹국들의 내정에 개입하고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일 뿐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러시아는 미군이 이라크의 아브그라이브 수용소와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알카에다 용의자와 전쟁포로를 대상으로 자행한 고문 등 가혹행위를 예로 들어가며 미국이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간섭할 자격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물론 서방측에서 보면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이런 인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미국의 리처드 란 세계경제성장연구소 소장이 보수적 일간지인 ‘워싱턴타임스’에 기고한 ‘푸틴주의(Putinism)’라는 글이다. 란 소장은 “푸틴 대통령이 공산주의보다 전체주의에 가까운 새로운 독재 체제의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외교관계회의(Council on Foreign Relations)는 2006년 3월 ‘러시아의 잘못된 방향, 미국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나?’라는 보고서까지 발표했다.

솔제니친의 변호



정말 푸틴의 러시아는 서방이 생각하는 대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에 대한 러시아 국내의 인식은 사뭇 다르다. 이제야 겨우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뿐이다. 대다수 국민은 푸틴 정권에 대한 서방의 비판이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푸틴 대통령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일간지 ‘이즈베스티야’의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러시아 국민은 여전히 푸틴 대통령을 ‘에너지가 넘치고, 권위와 능력이 있으면서,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러시아 지식인 사회의 인식도 일반 국민과 큰 차이가 없다. 소련 체제에 저항해 7년 동안 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었고 그 후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한 러시아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국내외에서 존경받는 러시아 문단의 원로이며 행동하는 지성(知性)의 상징으로 꼽힌다. 이런 그가 2007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을 적극 변호하고 나섰다.

솔제니친은 “옛 소련 몰락 후 많은 러시아인이 서방세계를 찬양했지만, 곧 미망(迷妄)에서 깨어났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주의의 기사(騎士)’로 인식됐던 서방 국가들도 결국은 이기적인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국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방측이 고르바초프와 옐친 치하의 15년간에 걸친 혼란 상태를 지켜보면서 러시아를 ‘제3세계 국가’로 보는 데 익숙해졌으며, (푸틴 정권 이후) 러시아가 경제와 국가체제를 재건하기 시작하자 거의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경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방측의 러시아 비판이 불공정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역대 러시아 지도자 중 가장 친서방적인 인물로 꼽히는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역시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1990년대의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권위주의 통치는 불가피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아직 러시아가 민주주의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로) 가는 길에 있다”며 푸틴 대통령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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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전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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