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작은형에게도 강조한 바지만 중요한 건 지식이나 사회적 지위나 명성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사람다움’ ‘인간성의 바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리를 옳게 분별하고 그 옳은 판단에 따라서 행동하는 일, 세상을 얕보지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으면서 용기를 가지고 즐겁게 살아가는 일이 우리들의 삶을 평범한 가운데 영웅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계를, 그리고 모든 사물을 자기 나름으로 관찰하고 판단할 수 있기 전에 너무 종교에 매달리고 의존해서 보다 큰 자기발전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시켜버려서는 안 된다. 자기완성을 향한 도정인 우리들의 삶이 너의 말처럼 반드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 완성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어떤 고정되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불변의 도식으로서의 길이나 방법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어떤 상황 하에서 보다 효과적인 태도라고 믿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가끔 빼먹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예배에 참석하고 그것이 너의 성장 발전을 위한 동력의 전부가 아니라 다양한 인간의 한 국면을 이해하겠다는 마음가짐이라면 나의 우려는 노파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아직도 미숙하고 불완전하고 약점투성이인 것을 전제하고 우리들 서로의 성장 발전을 위해 무언가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말할 필요도 없이 그런 관계는 서로간의 깊은 사랑과 이해의 바탕 위에서 세워질 수 있을 테니 어떤 문제라도 공통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서로의 잘잘못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충고도 거기서부터 나올 수가 있을 것이다. 내가 무언가 너를 도와줄 수 있다면 그건 오직 평범함, 불완전함, 연약함 속에서 살아온 내 삶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일 뿐이다. 행여라도 너는 나를 지나친 기대라든가 너무 이상적인 인간상을 염두에 두고 바라보지 말기 바란다. 자기보다 월등하게 훌륭한 인간이란 존경심보다는 터무니없는 환상이나 불필요한 격의를 만들 우려가 더 크기 때문이다. (살아가다 보면)우리들에게 반드시 찬란한 빛만 주어지는 게 아니고 어둡고 험난하고 때로 견디기 힘든 고통도 주어진다는 것을 알아야겠지. 우리들 모두가 네가 지금 겪고 있는 마음의 고통 저항 열등감 외로움 등을 통해서 성장했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란다. 너의 주위에는 너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수 있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과 우리 모두가 고귀하고 강한 사랑의 힘으로 묶여 있다는 걸 잊지 말길. |
옥중에서 동생에게 쓴 편지다. 깨알같이 빼곡하게 박힌 글씨. 침착하고 고요한 어투, 성찰적이면서 열정에 찬 생각, ‘감옥에서 보낸 편지’의 주인공 신영복 선생과 흡사한 분위기의 또 다른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읽는다. 편지를 쓴 사람은 신영복 선생과 동시대에 비슷한 죄목으로 같은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김판수(金判洙·65) 선생이다.
덴마크의 영화 청년
편지는 1970~73년에 걸쳐 씌어졌고 남동생과 여동생, 부모님을 향한 확고하고도 애틋한 사랑과 염려를 담고 있다. 수소문해서 그를 만났지만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웃기만 했다. 출소 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고 지난해 광주 문화방송에서 ‘1969년 국회 간첩단 사건’이란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밖으로 알려지게 된 것일 뿐이라고 민망해했다.
‘간첩.’ 한때 우리에게 본능적 공포를 안겨주던 이름! 인사동 골목 안 밥집에서 만난 그 옛 간첩(?)은 맑고 내성적인 눈빛으로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을지 말지를 망설였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를 자꾸만 되물었다.
우리 현대사는 이력이 복잡한 개인들을 만들어냈다. 언뜻 볼 때 그건 불운이겠지만 한 인간의 정신 영역을 확장하고 자유의 소중함을 확인하고 역사에 깊이와 무게를 부여하는 순기능도 없었다고 할 수 없다. 무조건 덮고 넘어가기보다 되짚어 음미해보는 것만으로 꽤나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나는 그를 설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