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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의 마술사’, 스타 CF 감독 ‘5대 천왕’

“자알 만들었네, 사람들이 반할 만하나?”

  • 강두필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 dpkang@handong.edu

‘15초의 마술사’, 스타 CF 감독 ‘5대 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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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의 마술사’, 스타 CF 감독 ‘5대 천왕’
박 감독은 ‘몰려다니면 죽는다’는 자신의 신조에 충실해 한번 시도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홀연히 또 다른 문법을 찾아 떠난다. 1993년 ‘광고인’ 프로덕션의 조감독으로 입문한 그는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촬영한 청바지 NIX 광고로 자신의 이름을 ‘주목할 신인’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NIX 광고 제작 당시 파리엔 계속 비가 내려 어쩔 수 없이 침침한 상태에서 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파리의 눅눅한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촬영본이 광고의 톤을 오히려 더욱 깊이 있게 만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컴퓨터로 무려 24가지의 편집본을 혼자 만들어보고 나서야 광고를 ‘온에어’시켰다. 결과는 대성공. NIX가 국산 청바지 시장에서 고급화 이미지를 얻게 된 것은 온전히 이 광고 덕분이다.

이후 그의 행보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1997년에 몰아닥친 외환위기의 파도는 광고계 전체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광고 제작 물량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고, 어려운 살림에 힘겨워하는 국민에게 웃음을 주는 재미난 광고들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포스트모던에서 超리얼리즘까지

전원주라는 무명에 가깝던 ‘아줌마 탤런트’가 지붕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유학 간 딸에게 싼값에 전화하려 애쓰는 국제전화 002 데이콤 광고가 그 대표작. 모든 설정이 새롭고 낯설었다. 배우도, 그 배우가 뛰다 못해 텀블링을 하는 것도(그 뒤에선 생뚱맞게 캥거루가 깡충거린다). 그리고 배경음악으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하는 만화영화 ‘짱가’ 주제곡이 흘러나오는 것, 자막 사용의 내리닫이(극장에서 보는 영화의 자막 같은)도 낯설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신기한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해 유심히 보고 폭소를 터뜨렸으며 열광했다.

이어 TTL 시리즈를 제작하며 성가를 드높인다. 이동통신의 선두주자로 노후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SK 011은 타깃 세그멘테이션(구매층의 세분화)을 원했고, 젊은층에 어울릴 만한 새로운 브랜드 TTL을 론칭하면서 그에게 전폭적인 재량권을 주며 작품 제작을 맡겼다.



똑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얼굴을 물속에 집어넣는 소녀. 나뭇가지를 움켜잡는 손가락, 손안에 잠깐 있다 사라지는 올챙이, 굴을 입안에 밀어 넣는 소녀, 그 소녀의 얼굴 위로 새겨지는 TTL 로고. 내러티브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미지 덩어리들이 그냥 느낌만을 강요하는, 국내 최초의 포스트모던 광고였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녀 모델(임은경)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커졌는데, 당시 임은경의 모델 계약서에는 이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일절 인터뷰를 하거나 광고 내용을 암시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명시돼 있었다고 한다. 국내 광고에선 보기 드문 ‘신비화 전략’이었다.

이 광고에 대한 광고계의 반응은 ‘어리둥절’ 바로 그것이었다. 제품과 표현에 그처럼 상관성이 없는데도 시장에서 제품이 움직이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기에 반대도 찬성도 못하고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이미지 시대의 표현 방법에 눈을 뜬 후속 광고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로테스크한 가면(박 감독의 독특한 취미 중 하나가 가면 모으기다)을 뒤집어 쓴 ‘한화의 마이크로 아이’, 파란 피가 흐른다는 ‘나우누리’ 등 설명하기 어려운 광고들이 TV 광고의 주류를 이루자, 그는 이번에도 몰려다니길 거부하고 슬그머니 빠져나와 한미은행의 초(超)리얼리즘 광고를 시도했다.

햇빛이 따사롭게 들어오는 아파트 방에서 발톱을 툭툭 깎던 남편이 던지는 무심한 말. “우리는 한미은행이니까 걱정 없지?” 후속편의 주인공도 귀지를 파주는 아내와 남편, 근처에 능청스럽게 돌아다니는 고양이였다. 도대체 이것도 광고야?…하는 사이에 신생 한미은행의 브랜드 인지도는 무섭게 올라가 예탁고가 크게 늘어났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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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두필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 dpkang@handong.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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