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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업실’ 2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이유

먼지처럼 가벼운 디지털 세상에‘똥침’ 날리고 싶어!

  • 김갑수 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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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별일! 유폐된 느낌, 벗어난 기분을 느끼기에 나의 음악실 ‘줄라이홀’만한 곳도 드물 것이다. 외부의 빛과 소음이 전혀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이곳에는 시계도 달력도 없다. 실제의 현실을 일깨워주는 물품은 일절 배제하는 것이 이 작업실의 원칙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꽤 오래전부터 클래식 음악만 듣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생에 걸쳐 별별 장르를 다 섭렵해온 편이건만 이제는 오매불망 중세 교회음악에서 현대음악까지 클래식 족보에만 매달린다. 암만해도 아무런 별일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 듣고 있는 음악 장르와 관계가 있을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은, 생각건대, ‘나를’ 돌아오게 만든다. 내가 오랫동안 동일시하고 싶어했던 페르소나, 그것이 나라고 확신하고 싶었던 어떤 면모, 클래식 음악은 그것 자체의 음악학적 본령과는 상관없이 한 인간의 다면 다층성을 하나의 단일한 층위로 정립시키는 데 기여한다. 삶은 괴롭고 존재는 늘 고달프다는 원점의 감회, 그것 말이다.

‘외롭고 춥고 배가 고프면 쾌적한 느낌이 안 든다. 사람에 시달리고 공해에 시달리고 돈에 시달리고 명예에 시달리고 병마에 시달리고 심지어 사랑에 시달리는 사람은 절대로 쾌적한 느낌을 맛볼 수가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음악이다. 단호하게 말하건대 미술과 음악은 우리의 쾌적하고 윤택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

‘굿바이 클래식’

가수 조영남이 쓴 예술 에세이의 한 구절이다. 그럴까? 그랬나? 삶의 쾌적함이나 윤택함에 대해 생래적인 저항감을 지니고 살아온 나에게는 적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의견이다. 하지만 그는 뮤지션이고 아티스트다. 본인이 그렇게 느낀다는 데 토를 달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토를 달아야 할 일이 생겼다.



‘TV, 책을 말하다’라는 서평 프로그램에서 조영남과 마주쳤다. 그는 조우석 기자가 쓴 책의 추천자로, 나는 그 책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출판동네에서 조우석이라면 ‘껌뻑’ 알아주는 그 분야 전문기자다. 하지만 사적으로 조우석을 안다면 그의 빛나는 서평들은 차라리 부업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는 클래식 광팬, 오랜 세월 미칠 듯이 열광해온 클래식 ‘귀명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놀라운 배신을 때렸다. 그의 신간 제목이 ‘굿바이 클래식’인 것이다.

책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그토록 좋아하던 클래식 음악하고 영영 ‘굿바이’하게 된 내력을 담았다. 저자의 주장인즉, 어째서 저 지구 반대편 쪽 서구의 몇 백년 전 음악에 우리가 주눅 들어야 하는가. 그쪽 본토박이 전문가들에게서조차 이미 낡은 유산으로 버림받은 장르가 클래식인데 한국, 일본 같은 주변국에서 신주단지처럼 떠받드는 건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닌가. 클래식의 안으로 들어가봐라. 생각보다 별것 아니다. J. S. 바흐는 19세기쯤에 재창조된 서양음악사에서 일종의 얼굴마담 노릇을 하는 것뿐이고, 모차르트는 업자들이 만든 천재 마케팅의 산물일 뿐이다. 슈베르트 음악이란 유치한 센티멘털리즘의 발로이며….

저자가 씹어 발기는 클래식 음악의 맹점 가운데 두드러지게 기억나는 언급이 두 가지 있다. 인용해보자면 먼저 ‘클래식은 맹물 음악이다. 그것도 산간 약수가 아니라서 맛도 없고 영양소도 죽어 있는 맹탕 증류수…. 나는 살균된 음악 클래식을 들을 때면 마치 내가 머리통만 덜렁 달린 목석 같은 사람으로 느껴진다.’ 또 하나 언급은 서구 근대의 지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진단한 것으로 클래식 음악은 속성 자체가 독선과 사디즘이라는 병리현상을 발톱으로 감추고 있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와우!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이유

현대인에게 클래식 음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클래식 음악의 바다를 만든 모차르트, 브람스, 바흐(왼쪽부터).

음대 성악과 출신인 조영남은 저자와 무지하게 친한 사이라는 걸 먼저 고백했다. 역시 조영남표 솔직성이다. 그러면서 추천의 변인즉, 조우석의 막말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무지막지한 애정의 역설적 표현이라고 했다. 친분과 변호 사이에 흐르는 눈물겨운 불일치. 나는 뭐라고 맞섰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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