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호

잿더미의 유산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

  • 김성곤 서울대 교수·미국문화/한국 아메리카학회 회장 sukim@snu.ac.kr

    입력2008-10-29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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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잿더미의 유산

    ‘잿더미의 유산’ : 팀 와이너 지음, 이경식 옮김, 랜덤하우스, 999쪽, 3만5000원

    미국은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50개의 각기 다른 나라의 연합체라고 할 수 있다. 각 주가 자치권을 갖고 있고 국가에 준하는 조직이 있으며, 주에 따라 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식으로 생각하고 미국에 대해 이야기하다가는 실수를 저지르기 십상이다. 예컨대 “미국은 사형제도가 시행되는 나라다”라는 문구는 아예 성립조차 되지 않는 표현이다. 사형제도를 폐지한 주도 있고 폐지하지 않은 주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보기관들

    만일 미국의 각 주가 하나의 국가와 같다면, 연방정부는 과연 무엇을 하는 곳인가? 미합중국 연방정부는 미국을 대표해 외교와 국방을, 그리고 나라 살림과 연방법을 관할하는 곳이다. 그래서 연방정부는 국무부와 국방부, 그리고 재무부와 법무부가 주축이 된다. 우리와 다른 것은 이 네 부서에 각기 수사권을 가진 정보기관들이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미 국무부는 미합중국의 외교를 담당하는 외교부로서 주로 외교관들이 근무하지만, 그 안에는 정보를 담당하는 조직과 요원들도 있다. 네 부서 중 가장 규모가 큰 국방부는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라는 거대한 정보기관을 갖고 있다. 세계 각지에 1만2000여 명의 요원을 거느리고 있는 이 조직의 목표는 세계 각국의 군사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지금은 독립기관처럼 운영되고 있지만, 국방부 산하에는 NSA(National Security Agency)라는 거대한 정보기관이 있다. 1951년에 창설되고 1952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NSA는 오늘날 CIA의 두 배 크기로 성장했으며, 철저히 베일에 둘러싸인 정보기관으로서 ‘No Such Agency’라는 별명도 얻었다.

    법무부에는 연방수사기관인 FBI가 있다. 1908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8명의 재무부 산하 시크릿 서비스(Secret Service) 요원 8명을 법무부에 파견했는데, 이들이 바로 FBI의 모태다. FBI는 1924년 J. 에드거 후버가 초대국장에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그 외에도 법무부 소속 수사기관으로는 1973년에 창설된 마약수사국(DEA·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이 있으며, 1789년에 창설된 연방보안관인 US 마셜(Marshal)이 있다. US 마셜은 증인보호 프로그램을 담당하며, 도망자(fugitive) 추적 및 연방 죄수 호송 등을 맡고 있다.



    재무부에는 주류/담배/총포 단속국인 AFT(Alcohol, Tobacco, and Firearms)와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시크릿 서비스(Secret Service)’가 있다. 시크릿 서비스는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한 1865년에 창설됐으며, 요원들은 대통령 및 국가요인 경호를 담당하지 않을 때는 위조지폐 및 위조수표 관련 수사를 하며, 1984년부터는 신용카드 사기, 2002년부터는 컴퓨터 인터넷 사기를 수사하고 있다. 1920년대 금주령시대에 밀주로 막대한 돈을 번 시카고의 유명한 갱 알 카폰(‘카포네’가 아니라 ‘카폰’임)을 체포한 엘리엇 네스도 바로 재무부 소속 수사관이었다. 9·11사태 이후 2003년에 국토안보국(Depart ment of Homeland Security)이 창설됨에 따라, FBI와 Secret Service의 수사업무 일부는 국토안보국으로 이관됐다.

    창립부터 최근의 위상 격하까지

    미 국방부의 검은 돈을 파헤친 저서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뉴욕타임스 기자 팀 와이너의 전미도서상 수상작 ‘잿더미의 유산(Legacy of Ashes)’은 그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정보기관이던 미국 중앙정보국(Central Intelligence Agency)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을 주축으로 하는 냉전시대가 시작되면서 미국은 전문적인 정보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그러나 CIA의 창설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CIA의 전신인 OSS(전략사령부·Office of Strategic Service s)를 이끈 윌리엄 도노반 장군(그는 전쟁 중의 활약 덕분에,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전설적인 총잡이 ‘와일드 빌’의 이름을 따서 ‘’와일드 빌 도노반’이라고 불렸다)은 전문 정보기관이 필요하다는 긴급제안을 하지만, 처음에는 대통령과 각료들, 그리고 동료 장성들로부터도 불신을 받았다. 그 조직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반민주주의적 기관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무부, 시민단체, 노동조합 및 할리우드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우려가 커지자 1947년 7월26일 트루먼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에 서명하고 9월18일 CIA가 탄생하게 됐다. 당시 미국은 이 국가보안법에 의거해 국가안보회의(NSC)를 만들었고, 국방부를 신설했으며 공군을 독립조직으로 승격시켰다(그전에는 해군부와 해군장관이 있었고, 육군은 ‘전쟁부(U.S. Department of War)’에 속해 있었으며, 공군은 육군에 속해 있었다).

    초기에 CIA는 영국의 정보기관인 MI5(군사정보국)와 MI6(군사작전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이언 플레밍의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 소설에 보면, MI6 소속의 노련한 스파이 제임스 본드 중령의 친구인 CIA 요원 펠릭스는 서투른 아마추어 첩보원으로 등장한다. CIA가 영국에 요원을 파견해 영국 정보기관을 벤치마킹하던 당시 상황은 로버트 드니로가 감독하고 맷 데이먼이 주연한 최근 영화 ‘굿 셰퍼드(The Good Shepherds)’에 잘 나와 있다. CIA는 초기에 200명의 요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1만7000명의 요원을 거느린 거대조직이 됐다.

    저자 팀 와이너는 ‘잿더미의 유산’에서 CIA가 창설될 당시 상황부터 시작해 최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평가 절하되어 대통령 독대의 권한과 독립성을 상실하고, 드디어 국가정보국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이 관할하는 여러 정보기관 중 하나로 전락하기까지 CIA가 겪어온 60년 영욕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와이너에 의하면, CIA는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멋지거나 무소부재의 권력을 가진 기관도 아니었고 정확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기관도 아니었다. 우선 CIA는 적국의 현지 사정을 잘 몰랐으며, 현장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지역 전문가들로 넘쳐났다. 더욱이 그들은 적국에 반정부 게릴라를 투입하면, 현지 국민이 성조기를 흔들며 열렬히 환영해줄 것이라는 미국인 특유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이 훈련시켜 적지에 투입한 현지인 요원들이 체포되어 보내는 거짓정보를 그대로 믿었다. 더구나 소련이 몰락하고 냉전이 끝나자 예산과 요원수가 대폭 삭감됐고, 수천개나 되는 일자리가 ‘아웃소싱’으로 바뀌었으며 노련한 고위급 요원들은 훨씬 보수가 높은 민간 정보회사에 스카우트되어 조직을 떠났다. 그 결과는 9·11사태 예견 및 방지 실패,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잘못된 정보 같은 일련의 치명적 실수로 나타났다.

    ‘잿더미의 유산’에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단연 6·25전쟁에 관한 부분이다. 와이너에 의하면 CIA는 6·25전쟁에서도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CIA가 우방으로 관계를 맺었던 것은 “부패하고 믿을 수 없는 이승만과 장개석의 정보기관”이었으며, CIA가 훈련시킨 한국인 대원들은 CIA 공작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을 위해 일했고, 그들이 보내온 정보는 모두 공산주의자들이 만들어준 허위 역(逆)정보였기 때문이다.

    공개된 한국 관련 일급 비밀문서

    CIA는 또 전쟁 중에 수천명의 한국인과 중국인을 훈련시켜 북한과 중국에 고공침투시켰는데 단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으며, 그들이 보낸 정보는 모두 그들을 체포한 북한과 중국의 정보기관이 조작한 허위정보였다. 그 과정에서 CIA가 북한과 중국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유령 게릴라부대에 무기구입 자금으로 보내서 날린 자금만도 무려 1억5200만달러나 됐다. 이 책에 수록돼 있는 ‘한국전쟁관련 CIA 1급비밀문서’는 한국에 대해 무지했던 CIA가 최초로 겪은 전쟁인 6·25전쟁에서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한 가지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CIA가 이승만은 남한의 지도자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그를 대체할 사람을 찾았지만, 이 역시 실패했다는 점이다.

    CIA는 또 정보기관을 불신하거나 관심이 없는 대통령을 만나는 불운을 겪었다. 와이너에 의하면, 국제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클린턴은 CIA를 철저히 불신했으며, 조지 W 부시는 알 카에다의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CIA의 경고를 매번 무시했다. 영국의 소설가 프레드릭 포사이트가 ‘어벤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9·11사태의 일부 책임은 CIA로 하여금 범법자나 적 또는 나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을 정보원으로 고용하지 못하도록 한, 첩보전과 세상사에 어두운 도덕주의자 클린턴과 그 각료들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악의 핵심에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는 정확한 정보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때 CIA는 다른 나라의 정권을 바꿀 만큼 막강한 존재로 군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IA는 붕괴와 몰락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와이너는 CIA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사실 CIA는 그동안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쿠바 미사일 위기 때처럼 대통령에게 현명한 조언(터키의 미국 미사일 철수와 쿠바의 소련 미사일 철수를 맞교환하는 것)을 해서 전쟁을 피하는 데 공헌하기도 했다. 와이너는 이 책에서 역사상 그 어느 강대국도 300년 이상 지속되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만일 CIA가 원래 수행했어야 할 임무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미국이 강대국의 자리에서 밀려날 날은 더 빨리 다가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CIA는 이제 냉전시대의 유물에서 벗어나 정보테크놀로지시대의 첨병으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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