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 등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도서관과 박물관이 많다는 보스턴에서 느낀 것은 같은 아시아인인 중국과 일본의 정체성은 세계인에게 분명하게 인식되어 있는 데 반해, 한국인의 정체성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남바린 엥흐바야르 몽골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2008년 2월 한·몽골 정상회담.
그러다가 2004년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차세대 지도자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였다. 미국의 여러 싱크탱크를 둘러보다 초청자 측 요청으로 샌프란시스코 어느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다.
고민 끝에 이야기의 핵심 줄기로 삼은 게 칭기즈 칸과 활에 대한 것이었다. 코리아는 몽골족인 칭기즈 칸과 역사적으로 형제 또는 사촌형제적인 민족관계라는 것이었다. 고구려 등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올림픽 양궁에서 거의 모든 금메달을 휩쓰는 활 잘 쏘는 민족이라는 특성 등도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저런 사색을 하다 보니 어느덧 칭기즈칸 공항과 주변 초원이 눈앞에 다가왔다.
칭기즈 칸과 세종
이번 여행은 한국과 몽골의 고대사 연구학자들이 한국과 몽골 고대사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교류하는 공동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칭기즈 칸과 고구려의 유적이 공존하는 동몽골의 유적탐사에 참여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필자는 고대사 연구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통일전략으로 ‘남·북·몽골 3자 연방국가’ 방안을 주장한 바 있다. 구체적인 추진전략으로 우선 한국과 몽골 간의 FTA와 비자면제협정을 제안했을 뿐 아니라, 이번 세미나에 참석하는 고대사 연구학자 상당수와 친분이 있어 동참하게 됐다. 특히 우리나라의 몽골학과 칭기즈 칸 연구의 권위자이며 이번 행사를 이끈 박원길 박사와는 평소 의기투합해온 터라 참가 권유에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의 심정으로 참여한 것이다.

한국과 몽골의 고대사 연구 학자들이 모여 중국의 동북공정과 북방공정의 허구성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1990년 3월26일 한국과 몽골의 국교가 수립됐는데, 그해 7월에 상명대 국어교육학과 최기호 교수는 몽골 동양학연구소의 하이산다이 소장 등과 협의해 동양학연구소에 한국어 강좌를 열었다. 이후 사립 울란바토르 대학이 1993년 한국어학교라는 명칭으로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다. 1995년 정식 대학인가 이후에는 한국어학부가 개설되는 등 몽골에서 한글교육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어와 몽골어는 자음·모음 구조가 비슷하고 어순이 같은 까닭에 몽골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속도가 빨라 2~3년 공부하면 한글강의를 이해할 정도가 된다고 한다. 특히 한류 바람 때문에 한국어, 한국문화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 2004부터 해마다 울란바토르 대학과 울란바토르 시가 공동 주최하는 ‘몽골 한글날 큰잔치’가 열린다고 한다. 한국어 말하기·쓰기대회, 노래대회, 컴퓨터 빨리치기대회 등을 하는데 수천명이 참여할 정도라고 한다.
칭기즈 칸은 세계에서 가장 넓고 거대한 몽골제국을 세웠고, 세종대왕은 언어학자들로부터 세계 최고의 글자로 인정받는 한글을 창제했다.
칭기즈 칸이 세계 제국을 건설하는 데 핵심적인 동력이 된 것은 정보통신망의 획기적인 혁신이다. 역참제도를 도입해 세계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관리하며 그것을 기반으로 제국을 경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