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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0년 특별연재/책으로 본 한국 현대인물사⑥

현대사의 감옥에서 발신한 ‘더불어삶’의 메시지 신영복

  • 윤무한│언론인, 현대사연구가 ymh6874@naver.com │

현대사의 감옥에서 발신한 ‘더불어삶’의 메시지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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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학시절’

한 권의 책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울림을, 그것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면, 그 책은 곧 ‘현대의 고전’ 반열에 오를 수 있다. ‘동아일보’는 창간 80주년인 2005년 ‘책 읽는 대한민국’ 시리즈 중 두 번째로 ‘21세기 신(新)고전 50권’을 소개했다. 다양한 장르의 전문가가 추천한 책들에 신영복의 ‘사색’이 당당히 신고전의 하나로 꼽혔다.

신영복은 우리 사회 지성사에서 ‘지연된’ 희망이었다. 오랜 세월 야적장에 방치됐던 돌이 고통의 정으로 자신의 모난 부분을 쳐내려나가 마침내 주춧돌로 쓰이게 된 것이다. 신영복 개인에게는 시련의 세월이었을지 모르지만 역사는 그를 요긴하게 쓰기 위해 긴 세월 가두어두었는지 모르겠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감옥은 최악의 상황일 것이다. 감옥에서 사람을 만나고 같이 지낸다는 것은 바깥세상에서 악수하고 헤어지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징역살이에서 도덕적 가식을 부리거나 실상을 은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알몸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스스로 낮출 수 있는 데까지 낮춰 더 낮아질 수 없게 되고, 마침내 깊어진 그의 사유는 읽는 이로 하여금 부끄러움과 경이를 느끼게 만든다. 그것이 ‘밑바닥 철학’이다.

“지독한 ‘지식의 사유욕’에, 어설픈 ‘관념의 야적(野積)’에 놀랐습니다. 그것은 늦게 깨달은 저의 치부였습니다. 사물이나 인식을 더 복잡하게 하는 지식, 실천의 지침도, 실천과 더불어 발전하지도 않는 이론은 분명 질곡이었습니다.”(‘사색’, 1977년 6월8일 엽서 중에서)



“독서가 남의 사고를 반복하는 낭비일 뿐이라는 극언을 수긍할 수야 없지만, 대신 책과 책을 쓰는 모든 ‘창백한 손’들의 한계와 타당성은 수시로 상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사색’, 1981년 10월6일 엽서 중에서)

감옥은 책이나 교실에서 인식한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인식을 할 수 있게 한 또 다른 ‘교실’이었다. 가령 “목수가 집을 지을 때는 지붕부터 그리는 게 아니라 일하는 순서대로 주춧돌부터 그리는 깨달음”에 이른 것이다. 신영복의 ‘사색’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바탕은 수행자의 철학과 많이 닮아 있다. 감방에서 보낸 시간을 신영복 자신은 ‘나의 대학시절’이라고 했다.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을 틔우고, 수많은 ‘하층민’과 부대끼면서 그는 민중을 몸으로 익혔다. 게다가 양화, 봉제, 목공, 영선, 페인트칠까지 익히고 나왔으니 그야말로 ‘인생대학’이었는지 모른다.

혁명적 인간상에 대한 성찰

‘사색’을 대했을 때 관심이 가는 분야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또 변할 수 있다.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혁명적 인간’으로서의 신영복에 주목했다. 검열을 통과해야 하는 편지 모음이니만큼 그런 부분은 대단히 절제되거나 은폐되어 있지만, 그 절제와 은폐 뒤에 정서적 울림이 깊게 드리워져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라면서 김명인은 다음의 구절을 들었다.

“증오는 있는 모순을 유화(宥和)하거나 은폐함이 없기 때문에 피차의 입장과 차이를 선명히 드러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증오의 안받침이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증오는 ‘사랑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사색’, 1983년 7월29일 엽서 중에서)

혁명가란 아파하는 사람, 역사의 질긴 부채를 떠안은 사람이다. ‘사색’에는 분노와 연민을 미덕으로 느끼게 만드는 대목이 있다.

“잔디밭의 잡초를 뽑으며 아리안의 영광과 아우슈비츠를 생각한다. 잔디만 남기고 잔디 외의 풀은 싸그리 뽑으며 남아연방을 생각한다. 육군사관학교를 생각한다. 그리고 운디드니의 인디안을 생각한다. 순화교육시간에 인내훈련 대신 잡초를 뽑는다.”(‘사색’, 1984년 9월14일 엽서 중에서)

순화교육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수인들 옆에서 잔디밭의 잡초를 뽑으며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들, 운디드니의 인디언들을 생각하고, 그러면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응시하는 장면 역시 혁명적 인간의 시선과 무관할 수 없다고 김명인은 보았다. ‘사색’에서 이런 혁명적 인간상에 대한 성찰을 빼버린다면 자칫 ‘공자님 말씀’과 ‘산중문답(山中問答)’에 불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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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무한│언론인, 현대사연구가 ymh6874@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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