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협영화를 보면 주인공의 일합 공격에 죽어 나자빠지는 측은 항상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버럭버럭 화를 내면서 큰소리치는 스타일의 사람이다. 주인공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부리며 오히려 주변 사람을 걱정한다. 골프와 경영이라고 뭐가 다를 게 있겠는가. 항상 망가지는 쪽은 힘주고, 주변 여건을 탓하며 화를 내는 사람이다. 이런 부류는 친구 아니면 라운드할 사람도 없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의 가와치 이치로 박사가 42~77세의 남성 직업인 2만8369명을 대상으로 10년간 사교와 사망, 심장병에 관해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연구기간 중 1365명이 심장병, 암 등으로 사망했는데, 비사교적인 그룹의 사망률이 사교적 그룹보다 20% 이상 높았다고 한다. 그리고 비사교 그룹은 사교활동이 가장 왕성한 사람에 비해 심장 관련 질병으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59%나 높았고 사고사나 자살도 두 배가 많았다.
결론은 사교적인 사람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보다 더 건강하고 장수한다는 것이다. 아마추어 골퍼들 중에는 늘 동년배 친구들과 라운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년, 20년씩 차이가 나는 선후배와 어울려 라운드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후자가 훨씬 사교적인 사람들이고 장수의 가능성도 높다. 게다가 연장자는 젊은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변화와 감각을 느낄 수 있고 젊은 사람은 인생 선배로부터 경험과 지혜를 배우는 기회가 된다.
이것이 바로 급변하는 사회의 대응전략이기도 하다. 기업에서도 이사회가 나이 든 사람들로만 구성되거나 젊은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보다 30대에서 60대까지 골고루 섞인 경우가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
경험의 힘
세계 일류기업인 독일 지멘스는 이사회 구성을 30대에서 60대까지 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젊음의 패기와 도전정신을 살리되 경험과 원숙한 지혜를 함께 반영하여 의사결정을 하려는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벤처기업이 큰 붐을 이루다가 한꺼번에 거품이 꺼진 적이 있다. 30세 안팎의 젊은이들이 기술만 믿고 달려들었다가 쓴맛을 본 것이다.
이때도 대기업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사람을 CEO나 경영고문으로 영입한 곳은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나는 기업경영이든 사교활동이든 ‘또래끼리’ 몰려다니는 것은 손해라고 생각한다. 젊어서 공군장교 시절에는 부관을 하면서 20년 차이 나는 장군을 모셨고, 10년 이상 된 영관급 참모들과 함께 근무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젊은 나이에 경영 컨설팅업계와 방송계에 뛰어들다 보니 나이 든 분들과 교류가 많았고 이분들로부터 소중한 경험과 지혜를 많이 전수받을 수 있었다. 요즘은 오히려 10년쯤 젊은 후배들이나 20년 이상 젊은 제자들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활력을 얻고 있다.
오바마와 오세훈의 공통점
얼마 전 동기생 골프모임에 나갔더니 그동안 자주 안 나왔다는 핀잔이 대단하다. 이미 반 이상이 은퇴한 친구들이라 현실경제를 벗어나 유유자적한 모습이었다. 자연히 이날의 화제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 이야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이, 나는 1년에 두 번만 나올 게 좀 봐줘라! 바빠서 미치겠다.”
“너무 그렇게 살지 마라. 너 없다고 세상이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잖아.”
“아, 나도 여유 있게 살고 싶지.”
“너는 항상 시(時)테크 떠들고 다니면서 여유시간 창조는 언제 할거야? 어쨌든 오랜만에 나왔으니 시사특강이나 한번 해봐라.”
나는 이 친구들에게 나름대로 오바마 정권이 탄생하게 된 정치사회적 배경을 설명했다. 흑인이며 젊은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21세기 들어 가장 큰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고 2009년부터는 ‘오바마 이펙트’가 지구촌을 강타할 것이라고 의도적으로 강조했다.
“우리보다 딱 10년 젊은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됐으니까 우리는 정신 바짝 차려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 떠내려갈지도 모른다고. 앞으로 골프도 동기생끼리 치지 말고 한 10년쯤 젊은 후배들 불러서 함께 치자고! ”
“그러고 보니까 오세훈 서울시장도 우리보다 10년 젊잖아. 어느새 젊은 리더십이 우리 사회에도 들어와 있었구먼.”
“지난 정권도 젊은 386들이 다 끌고 다녔잖아.”
“야, 그 386은 더 이상 얘기하지 말자. 스트레스 받는다.”
이날 재미있는 것은 맥주를 한잔씩 마신 김에 젊은 리더십 이야기를 하다가 오바마 당선인과 오세훈 시장의 닮은 점 10가지를 찾아냈다는 점이다.
첫째, 나이가 같다(1961년생). 둘째, 둘 다 변호사다. 셋째, 좋은 정규교육을 받았다(하버드 법대, 고대 법대). 넷째, 드림 패밀리(Dream Family)를 가지고 있다. 다섯째, 여자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여섯째, 얼짱에 몸짱이다. 일곱째, 스피치의 달인들이다(오바마는 웅변가, 오 시장은 방송인 경험). 여덟째, 소프트 파워형 리더십을 발휘한다. 아홉째, 포용력이 있다. 열째, 둘 다 ‘오(Oh)’씨다.
“그런데 오세훈 시장이 골프는 하나?”
“골프한다는 이야기는 못들어 봤는데.”
“난지도 골프장 없애고 시민공원 만드는 거 보니까 골프를 싫어하는지도 모르지.”
“골프를 싫어한다기보다 더 많은 시민이 이용할 친환경 공간을 만들겠다는 거겠지.”
“오바마는 한 90타쯤 친다고 신문에 났던데 오세훈 시장은 골프 얼만큼 치는지 당신이 알아봐. 그래야 열한째 공통점이 나올 거 아냐! ”
“자 어쨌든 오늘의 포인트는 더 젊게 살자는 거야, 다 함께 건배! ”
힘 빼는 방법
세상은 하드파워의 시대에서 소프트파워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21세기 들어 와서는 뭐든지 부드러운 게 좋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힘 빼고 부드러운 스윙을 하라.”
골프장에 나가면 늘 듣는 소리인데 사실 실천이 어렵다. 고수들은 부드럽게 스윙을 하는데도 장타가 나는 반면 하수들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가 하면 어금니를 꽉 깨물어서 얼굴 근육이 뭉치는데도 거리도 짧고 사고도 많이 낸다. 어깨나 팔의 긴장을 풀고 그립을 잡을 때는 달걀을 쥐듯이 가볍게 잡아야 임팩트 때 파워를 실을 수 있는데 이걸 자꾸 까먹는 것이다.
최근 함께 라운드한 한 동반자는 골프채를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지휘봉 잡듯이 부드럽게 휘둘렀다. 마치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TV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나오는 ‘강마에’ 같았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전체적으로 부드럽다가 필요한 곳에서만 힘이 들어가는 아름다운 스윙이었다. 원 포인트 레슨을 부탁했더니 특이한 이야기가 나왔다. 드라이버를 풀스윙해서 150m 지점에 떨어뜨리는 연습을 꾸준히 하라는 것이다.
이게 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드라이버로 250m 이상 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원피스로 풀스윙을 해서 150m에 딱 떨어뜨리려니 골프채를 마치 새털 잡듯이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내친김에 ‘힘 빼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첫째, 어깨와 목의 근육을 수시로 풀어주라. 스트레칭과 맨손 체조를 활용하라. 인간은 긴장하거나 집중하면 근육이 뭉치게 되어 있다. 뭉친 근육으로는 부드러운 스윙을 할 수 없다.
둘째, 심상훈련을 활용하라. 눈을 감고 머릿속에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장소를 떠올려본다. 고향 뒷동산도 좋고 단풍이 물든 가을 산사도 좋다. 또는 잔잔한 호수에 비친 뭉게구름을 그려보는 것도 좋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몸에 힘이 빠지게 된다.
셋째, 행복어를 구사하라. “나는 지금 기분이 좋다”“나는 행복하다”“나는 지금 상쾌하다”“나는 점점 부드러워진다” 등. 일종의 자기 최면인 것이다.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행복한 의미의 단어를 외우면 몸의 신경세포와 호르몬 체계가 부드러워진다는 얘기다.
넷째, 웃음을 활용한다. 눈을 감고 1분간 웃고 눈을 뜨고 1분간 웃고를 반복한다. 이때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면 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냥 웃기만 해도 우리 몸은 부드럽게 변한다. 모두 즉석에서 따라 해보았더니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딱 한 명만 예외였다.
화를 부르는 화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데 어떻게 하지?”
이때 동반자 중 한 명인 의사 친구가 처방을 내놓았다.
“골프장 가기 전에 우리 병원에 들러, 내가 힘 빼는 주사 놔줄게!”
심리처방을 받든 주사를 맞든 어쨌든 부드러워져야 골프는 좋은 성과가 나온다. 대인관계도 부드러울수록 좋다. 이 부드러움과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지나치게 강한 것이고 이 강한 것이 잘못 분출되면 화(火)로 바뀐다. 골프장에서든 사회생활에서든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스스로 망가지게 되어 있다.
화란 무엇일까. 화는 불쾌감에 의해 유발되는 강한 감정으로 짜증이나 신경질에서 격노상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표출된다. 화는 억지로 참으면 화병이 되기 쉽고 폭발시키면 대인관계에 악영향이 오고 자칫 사고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리고 화는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장애를 불러온다.
화를 내면 우울해지거나 불안해지고 신체적으로도 근육 긴장이나 자율신경계의 기능 이상이 나타나게 된다. 후회하면서도 사람들은 화를 낸다. 그 이유는 순간적인 해소감을 느낄 수 있고 중독성(습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화를 억지로 참거나 터뜨리기보다는 잘 조절하라고 조언한다. 종교인인 틱낫한 스님은 화를 잘 다스리라고 말한다.
골프를 하다 보면 유난히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다. 공이 안 맞으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온갖 대상을 찾아서 화풀이를 한다.
“이 골프채는 가격만 비싸지 엉터리야.”
“골프장이 왜 이 모양이야.”
“벙커 턱은 뭐 하러 이렇게 높게 만들어 놨어.”
“그린 경사가 너무 심하잖아! ”
이런 소릴 하면서 골프채로 땅을 두드리고 다니는가 하면 급기야 캐디나 동반자에게까지 화풀이를 하는 사람이 있다. 공이 안 맞으니까 골프채를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집어던지는 사람도 있다.
“저 사람 제정신이 아니군! ”
“아냐, 정신은 멀쩡한데 성질이 고약한 거지. 어떤 때는 연못으로 집어던지더라고.”
화를 다스리려면 우선 화의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고통 기반→분노 유발 상황→촉발적 사고→행동→결과의 과정이 그것이다. 고통은 생활 속에 내재된 불안감, 외로움, 스트레스 등을 말하며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화가 날 만한 자극이 들어오면 분노의 역동성이 생긴다. 누가 새치기를 한다거나 째려본다거나 부하가 말대꾸를 심하게 한다거나 하는 게 그것이다.
내공이 쌓이면 웃는다
골프장에서는 결정적 순간에 공이 나무에 맞거나 짧은 퍼팅을 실수하는 행동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면 휘발유를 끼얹는 일이 바로 촉발적 사고다.
2007년 6월 치러진 US오픈 연장전에서 18번 홀 버디피트에 실패한 타이거 우즈가 클럽을 내던지고 아쉬워하고 있다.
“사회질서가 엉망이잖아.”
“이러다간 결국 나라가 망한다고.”
이렇게 휘발유를 자꾸 끼얹다 보면 결국 상대방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삿대질을 하면서 화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난투극이 되거나, 상대방이 얄밉게 빠져나가면 허탈감을 느끼거나 우울해진다.
화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촉발적 사고를 하는 대신 발상을 바꾸는 것이다. 새치기하는 사람을 보면 ‘진짜 급한 모양이지’ ‘차라리 양보하고 안전하게 가는 게 상책이다.’ 이처럼 휘발유를 끼얹는 대신 소화제를 뿌리면 폭발적 행동은 나오지 않는다.
사실 심리학에서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을 에너지가 있는 사람으로 본다. 화도 마음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이 에너지를 화를 내서 인간관계를 망가뜨리게 하지 말고 좋은 곳에 써야 한다. 화 잘 내는 사람이 방향을 틀어서 독서를 열심히 하거나 달리기를 열심히 하면 화력발전소가 될 수 있다. 1년에 열 번 화를 내는 사람은 대인관계가 좋은 사람이고 한 달에 열 번 화를 내는 사람은 보통사람이고 일주일에 열 번 화를 내는 사람은 인간관계가 무너진다. 하루에 열 번 화를 내는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내가 골프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 중 아무리 화를 돋우어도 꿈쩍도 안 하는 부드러운 사람이 있다. 신아주그룹 문재영 회장이다. OB를 내도 웃고 뒤땅을 때려도 그냥 웃는다.
“기왕 사고 난 건데 웃어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하.”
물론 이분하고 라운드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KBS 라디오에서 ‘이영권의 경제포커스’를 진행하는 이영권 박사도 항상 웃는다. 토핑이 되어서 공이 30야드밖에 안 나가자 대뜸 하는 말이 “어쨌든 앞으로 나갔으니 고맙지 뭐!” 하더니 세컨드샷을 한다. 견고한 싱글 핸디캐퍼인데 그만큼 내공이 쌓인 결과다. 친구들이 일부러 신경을 긁어도 늘 웃고 만다. 늘 웃는 비결을 물어보았더니 묘한 이야기가 나왔다.
“종합무역상사 홍보팀 임원으로 근무할 때 접대골프 담당이었는데 하늘 같은 고객들을 모시고 늘 웃는 얼굴로 골프를 하다 보니 습관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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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는 웃고, 하수는 화내고 그런데 이렇게 늘 웃다 보니 좋은 인상을 주게 되고 인간관계도 좋아져서 분사해서 차린 회사도 잘되고 방송도 하게 되고 인생이 잘 풀려가더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골프장에서는 잘 웃는 사람이 최고 고수다. OB 내고도 웃는 사람은 더 무서운 고수다. 반면에 수시로 화내는 사람은 하수다. 화낼 일도 아닌데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은 하수 중 하수다. 이게 어디 골프뿐이겠는가, 경영에서도 웃는 사람이 고수고 화 잘 내는 사람은 하수다.
요즘 경제가 최악의 상황이다 보니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는 보도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필드에서든 웃는 게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