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1611년, 캔버스에 유채, 180x150cm, 파리 루브르박물관(좌) ‘안드로메다’ 1869년, 캔버스에 유채, 51x35cm, 런던 마스갤러리(우)
남자의 성적 환상 중에서 최고는 아마도 묶여 있는 여자와 나누는 사랑일 것이다. 가죽이나 쇠사슬에 묶여 있거나 나무, 침대, 기둥 등에 포박된 여인은 시대에 상관없이 남자의 성적 환상을 자극하는 소재다. 묶여 있는 여인을 구출하는 것은 정의의 사도로서 남자다움을 나타내는 일이며, 다른 한편 묶여 있는 여자는 남자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묶여 있는 여인을 묘사한 전형적인 작품이 밀레이의 ‘기사 에란트’다. 큰 나무에 묶여 있는 벌거벗은 여인. 여인을 묶은 밧줄을 갑옷 입은 기사가 칼로 끊고 있는 이 작품에서 큰 나무는 남근(男根)을 암시한다. 여인의 발 밑에는 옷가지가 흐트러져 있고, 화면 오른쪽에 칼에 맞아 쓰러진 남자, 화면 맨 위에 조그맣게 보이는 도망가는 남자 두 명은 여인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피 묻은 칼은 싸움도 상징하지만 여성과의 섹스도 암시한다.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는 ‘기사 에란트’를 테마로 3개의 작품을 그렸는데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에서 여성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작품은 너무 적나라해서 도덕성을 강조하는 빅토리아 시대에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이 작품은 여자의 얼굴을 전혀 보이지 않게 그렸다.
묶여 있는 여인을 묘사한 작품이 즐겨 소재로 삼는 것은 고대 신화 안드로메다 이야기다. 신화는 에로티시즘으로 비난받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들이 선호했다.
요하임 우테웰(1566~1638)의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는 신화의 장면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안드로메다를 남자를 유혹하는 여인으로 묘사했다. 화면 왼쪽, 사슬로 바위에 묶여 있는 안드로메다는 오른손을 들고 자신을 구출하러 온 페르세우스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자세는 고대 그리스 조각을 연상시키듯 우아하고 사랑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을 암시하듯 뺨은 붉다.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 1819년, 캔버스에 유채, 147x190cm, 파리 루브르박물관(좌) ‘기사 에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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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윳빛 살결의 안드로메다와 검은색 바위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안드로메다의 나체를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 안드로메다의 벗겨진 옷자락은 페르세우스를 암시하며 성난 파도는 괴물을 상징한다.
고대 신화 안드로메다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 앵그르의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다. 이 작품은 아리오스토의 서사시 ‘성난 오를란도’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데, 안젤리카는 파도에 휩싸인 바위에 두 팔이 결박당해 있고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민 채 서 있다.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는 서사시의 에피소드보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부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