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7월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G8 정상회담 당시의 사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친근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모습 때문에 화제가 됐다.
라이스 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추진해온 6자회담이 현재 교착상태에 빠지기는 했지만, 만약 앞으로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미일동맹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그에 대해 이미 역사적인 경험을 갖고 있다. 20세기 벽두에 체결됐던 영일동맹은 1922년 워싱턴 군축회의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4개국 조약으로 대체됐다. 미일동맹이 6자회담으로 대체될 가능성은 현 단계로서는 기우에 지나지 않지만, 6자회담의 향방에 따라 미국과 일본이 상대에 대해 갖는 중요성의 비중에는 큰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미국의 6자회담 발전구상
일본 국내 언론에는 부각되지 않았지만, 라이스 장관은 ‘포린어페어스’ 7·8월호에 기고한 ‘새로운 미국의 현실주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6자회담은 검증 가능한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협력과 조정의 장이 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지난해 핵실험을 강행했을 당시 5개국은 재빨리 연대행동에 나서 유엔안보리를 통해 북한에 압박을 가함으로써 북한이 결국 6자회담의 틀 안으로 복귀해 영변 원자로의 폐쇄를 결정하게 했다. 미국은 NAPSM의 설립을 통해 지금까지 추진돼온 6자회담의 협력을 제도화하고자 한다.”
이전에도 라이스 장관을 비롯한 미국의 고위 관료들은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북미, 북일관계가 정상화된 이후에도 6자회담을 해산하지 않고 ‘동아시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같은 지속적인 기구의 틀을 유지하는 데 대해 아이디어 차원의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이를 좀 더 구체화한 NAPSM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와 함께, 대북유화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6자회담의 틀을 강력히 추진해온 힐 차관보는 7월31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중국에 대해 높이 평가한 바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2002년 10월 부시 대통령과 장쩌민 국가주석이 북한 핵문제를 다루기 위한 기구로서 6자회담의 창설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후 6년 동안 양국은 북핵문제뿐 아니라 보다 넓은 동북아시아 전반의 문제를 토의하는 6자회담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 6자회담 의장을 맡은 중국 정부의 결정적 역할과 미중 간의 밀접한 협력은 한반도와 동북아를 뛰어넘는 의미를 갖게 됐다. 이는 동북아 내에서 책임 있는 이해공유자(stakeholder)로 등장한 중국에도 플러스가 됐다.”
최근 미중관계가 호전됐는지 악화됐는지에 대해 근거가 충분치 않은 전망이 난무하지만, 분명한 것은 군사, 인권, 민주화라는 가치를 별도로 하면 두 나라의 정치적 관계가 상당한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2002년 10월25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부부가 미국 텍사스 주 크로포드의 부시 대통령 별장에서 엄청난 환대를 받은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2003년 5월23일 크로포드 별장에 초대받아 떠들썩하게 보도된 바 있지만, 이는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지 7개월이나 지난 뒤의 일이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공격이 임박한 상황에서 중국을 이용해 한반도를 안정화할 필요가 있었고, 장 주석은 부시의 강력한 요청을 수락하는 대신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을 삼가달라고 주문했다. 북한을 중국에 맡기는 대신 미국은 대만에 과도한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보스끼리의 교환’이었다. 이는 1905년 ‘가쓰라-태프트조약’에서 미국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에 이견을 달지 않기로 한 약속과 흡사하다.
이처럼 6자회담에 있어 두 나라의 관계는 시작단계부터 견고했으며, 앞으로 NAPSM이 제대로 기능을 할지도 두 나라 간의 협력 여부에 달려 있다. 동북아 지역에서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과시하면서 미국과의 공고한 연대까지 구가하고 있는 중국과 비교해볼 때, 일본이 주력하고 있는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소프트파워 외교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지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