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호

세계 금융위기에 주목받는 ‘베이징 컨센서스’

21세기 국제질서의 새 트렌드인가 ‘문제 국가’들의 면죄부인가

  • 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09-01-05 18: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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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징 컨센서스.’ 수년 동안 학계에서나 거론되던 이 용어가 현실세계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미국 중심의 ‘워싱턴 컨센서스’가 세계 금융위기의 유탄을 맞고 비틀거리자, 국가가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중국식 모델이 새삼 주목받고 있는 것. ‘민주주의를 강요하지 않는’ 중국의 제3세계 포섭전략은 곳곳에서 호응을 얻고 있지만, 독재국가들의 변명에 불과하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과연 베이징 컨센서스는 ‘팍스 시니카’의 전조일까.
    앞으로 15~20년간 전세계에서 중국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국가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중국은 2025년께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자 주요 군사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다.”

    미국 국가정보국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가 ‘글로벌 트렌드 2025 - 변화하는 세계’라는 제목의 120쪽짜리 보고서(2008년 11월20일자)에서 중국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차지할 위상을 전망한 내용이다. 보고서는 NIC가 지난 1년 동안 외교·국제문제 전문가 1000명의 의견을 수렴하고 30여 차례의 회의와 토론을 거쳐서 만든 것이다.

    중국이 NIC 보고서의 예측처럼 미국에 도전할 강대국으로 도약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NIC 보고서의 내용 중에서 한 대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미국은 2025년에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남겠지만 그 영향력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며, 이에 따라 많은 국가가 서방의 정치·경제 모델보다는 국가가 경제를 주도하는 중국식 발전모델을 따를 것”이라고 지적한 대목이다.

    보고서가 강조한 부분은 중국식 모델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바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뜻한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식 발전모델이란 최근 학계에서 화두로 떠오른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 sensus·北京共識)’를 가리킨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위기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용어는,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자문역과 중국 칭화대 강사를 지낸 조슈아 쿠퍼 라모 전 ‘타임’부편집장이 2004년 5월 영국 총리 산하 연구소인 외교정책센터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 ton Consensus)’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처음 사용했다. 베이징 컨센서스는 권위주의 체제와 정부가 시장경제를 주도하는 국가모델을 뜻한다.

    미국의 최고 정보자문기관인 NIC가 베이징 컨센서스를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워싱턴 컨센서스가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워싱턴 컨센서스란 민주주의 정부에 시장경제가 결합된 국가모델을 말한다. 존 윌리엄슨 미국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이 1989년 경제난국에 빠진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무역 및 투자 자유화, 탈(脫)규제 등 10가지 정책을 제시하면서 처음 사용한 이 용어는, 이후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의 입장을 대변하는‘신자유주의’의 대명사로 흔히 쓰여왔다.

    미국이나 IMF가 제시한 경제위기 해법은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노선 위에 서 있다. 실제로 미국과 IMF의 해법은 자본시장 자유화, 민영화, 정부규제 축소 등으로, 1990년대 후반 동구권 국가들과 아시아 각국의 주요 개혁정책에 그대로 적용됐다.

    미국은 또 경제위기에 빠진 국가들을 지원하면서 이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확산시키는 전략과 연계해온 것이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비판론자들은 그동안 미국의 이러한 태도가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면서 타국의 경제를 종속시키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자유무역, 시장개방은 국제사회의 세계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반박해왔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를 자신하던 미국은 스스로 제 발등에 도끼를 찍었다.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의 월스트리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에 따라 미국이 주도해온 탈규제와 민영화, 개방화로 상징되던 신자유주의도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로 미국식 자본주의의 쇠퇴론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도 힘을 잃고 말았다. NIC가 베이징 컨센서스의 부상을 지적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볼 수 있다.

    세계 금융위기에 주목받는 ‘베이징 컨센서스’

    2007년 10월 열린 제17기 중국 공산당 당대회. 이 회의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63차례나 강조했다.

    게다가 베이징 컨센서스는 부시 행정부의 ‘자유와 민주주의 확대’라는 독트린이 일방주의 때문에 훼손된 상황에서 더욱 세를 얻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반미주의가 베이징 컨센서스에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줄리아 스웨이그 미국 외교관계협의회(CFR) 선임연구원이 제시한 반미주의의 4가지 원인을 보면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스웨이그 연구원은 반미 확산의 원인으로 우선 냉전의 유산을 꼽았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은 물론 쿠바 등 세계 도처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다는 대의명분으로 정권 전복을 도모하는 등 각국의 내정에 간섭해왔다. 이런 냉전의 유산을 탈냉전시대에도 그대로 적용했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둘째, 미국은 힘이 없는 국가의 관점에서 힘을 구사하지 못해왔다는 것이 스웨이그의 지적이다. 중남미의 경우, 미국은 중남미 사람들이 미국의 이익을 자국의 이익으로 받아들일 것이라 착각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자국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셋째 원인은 세계화다. 미국은 세계화를 통해 모든 나라가 번영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그 결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났다. 넷째는 이중 기준이다.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존중 등을 중요한 인류의 가치로 강조했지만, 이를 국익에 따라 다른 기준으로 적용하곤 했다. 자신들의 국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부 독재국가의 인권 유린을 외면해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반미주의는 이처럼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켰고, 반대로 베이징 컨센서스가 국제사회에서 확산되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렇게 볼 때 베이징 컨센서스는 단순히 중국의 경제발전 모델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치와 사회를 포함하는 중국식 발전모델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에 가깝다. 이를테면 ‘중국식 사회주의’의 대명사인 셈이다.

    단계적·점진적 국가발전모델

    중국은 그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로부터 ‘비(非)민주국가’ ‘인권탄압국가’라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국제사회에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발전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선도국가’로 행세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중국의 베이징 컨센서스가 21세기 국제질서 변화의 새로운 중심 역할까지 맡을 가능성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베이징 컨센서스는 그간 어떤 내용으로 추진되어왔을까. 라모의 논문에 따르면 베이징 컨센서스는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국가 주도로 추진되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경제개혁 정책이다. 이는 구(舊)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추진했던 사유제, 가격 자유화, 국가통제의 해체 등 ‘충격요법(shock therapy)’이라는 급진적 경제 개혁조치와는 다르다.

    둘째, 지속가능성과 평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덩샤오핑(鄧小平)과 장쩌민(江澤民) 시대에 추진한 경제성장 우선 정책인 선부론(先富論)을 수정한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도시와 농촌, 연해지역과 내륙지역, 경제와 사회, 인간과 자연을 조화롭게 발전시킨다는 균형발전 전략을 제시했다.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후 주석은 이를 위해 ‘허셰(和諧·조화)사회’를 통치이념으로 제시했다(2006년 10월 중국 공산당 16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에서 당 공식 이념으로 채택). 조화사회는 개혁·개방 이후 심각해진 지역·계층·도농의 격차를 해소하고 모든 계층·계급의 이익이 화합할 수 있도록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공동부유론(共富論)’을 말한다.

    셋째, ‘평화롭게 국제사회의 강대국으로 우뚝 선다’는 ‘화평굴기(和平·#54366;起)’ 노선이다. ‘화평굴기’는 정비젠(鄭必堅) 전 중앙당교 부교장이 개발한 이론으로, 주변국들을 비롯해 각국과 평화적인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제기하는 ‘중국 위협론’에 대한 반대 논리이기도 하다.

    베이징 컨센서스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국제적 지위 상승에 따라 보다 강력한 노선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국가자본주의(State Capi- talism)의 대두다. 국가자본주의는 국가가 특정기업을 직접 관리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제도 속에서 발전하는 경제제도를 말한다. 과거 국가자본주의의 원조는 소련이었다. 소련은 1921년부터 신경제정책(NEP·New Economic Policy)을 추진했다. 당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에 국민경제를 사회주의의 방향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가자본주의를 채택한 것이었다.

    21세기 국가자본주의는 이와는 다르다. 중국 공산당은 시장경제체제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야말로 낡은 이데올로기가 됐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온 중국 공산당이 선택한 것이 바로 국가자본주의다.

    미국식 자본주의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를 구별하는 가장 큰 차이는 국가의 역할이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는 반면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는 국가 개입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미국식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상황에서 중국의 국가자본주의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중국의 국가자본주의가 향후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떤 형태의 자본주의보다도 클 수 있다.

    중국의 국가자본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작업은 앞으로 중국의 발전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중국에는 ‘양치(央企)’라는 말이 있다. 국무원 산하 국유(국영)기업을 뜻하는 ‘중양치예(中央企業)’의 약자로 모두 146개에 달하는데, 이들 기업이 중국경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국가의 지원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국가자본주의에 교묘하게 민족주의를 혼합시켰다. 중국 공산당은 1997년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의 귀속을 계기로 ‘중화(中華·Middle King- dom) 민족주의’ 혹은 ‘중화주의’가 인민에게 어필하자 이를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삼기 시작했다. 국가 경쟁력 향상을 통해 ‘중화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국유기업들은 자국 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수익을 올린 뒤 해외에서 인수·합병(M&A)을 통해 글로벌 기업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중국 거대 국유기업의 출현으로 민간 부문이 주도하던 국제경제에서 게임의 룰까지 바뀌고 있다. 중국은 이와 함께 세계 1위인 외환보유액(1조9000억달러)을 활용하기 위해 2007년 9월 2000억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도 만들어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하고 있다. 중국의 국부펀드는 앞으로 국가자본주의 체제에서 갈수록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수단 짐바브웨 앙골라 나이지리아

    중국은 이와 함께 베이징 컨센서스를 대외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중국이 베이징 컨센서스를 강조할 때 항상 내세우는 말이 타국에 정치적 민주화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좀 더 확대해 ‘타국의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이라는 외교노선으로 발전시켰다.

    베이징 컨센서스가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개발도상국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것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제로 중국의 대(對)아프리카 진출 전략을 보면 철저하게 베이징 컨센서스를 따르고 있다. 인권 탄압이나 독재로 낙인찍힌 아프리카 국가들과 ‘정치적 조건’을 달지 않고 실리 차원에서 교류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행보에 깔린 중국의 의도는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고 동시에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도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거부권을 이용해 다르푸르 학살과 관련한 수단에 대한 제재를 저지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 정유공장을 건설해 석유 개발과 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수단은 중국 석유 수입분 가운데 7%를 공급하는 국가다.

    이와 함께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독재자로 악명 높은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에게 900만달러짜리 저택을 지어주었다. 짐바브웨에 대한 유엔 제재를 막아준 것도 중국이다. 짐바브웨는 산유국은 아니지만 세계 2위의 백금 생산국이다. 백금은 자동차 부품의 핵심 원자재로 중국 자동차산업의 육성을 위해 안정적인 확보가 중요하다. 무가베는 “우리는 더 이상 해가 지는 서쪽(서방)을 보지 않고 해가 뜨는 동쪽(중국)을 바라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집권층의 만성적인 부정부패로 악명 높은 앙골라에도 중국은 엄청난 지원을 하고 있다. 중국 노동자들은 수도 르완다를 비롯해 앙골라 곳곳에서 주택, 공항, 철도, 도로, 병원 등을 건설하고 있다. 중국 최대기업이자 국영 석유회사인 시노펙(Sinopec·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은 앙골라에 30억달러 규모의 정유공장을 세우고 있다. 앙골라는 중국이 전세계 국가 중 가장 많은 원유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다.

    인권 문제와 부정부패로 악명 높은 나이지리아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세계 8위 산유국인 나이지리아 정부가 무장 반군의 은신처인 니제르 델타 지역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함정을 제공했다. 중국과 아프리카는 지난 2006년 11월 수교 50주년을 맞아 제 1회 중국-아프리카 정상회의를 베이징에서 성대하게 개최하기도 했다.

    “우리는 강요하지 않는다”

    이 같은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는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중국의 ‘신식민지’ 전략이다. 과거 서구열강들이 중국, 인도, 남미, 동남아 등을 식민지로 삼아 강대국으로 부상했듯, 중국도 아프리카를 자국의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이 아프리카의 자원을‘싹쓸이’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구열강의 식민 지배를 겪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최근 서방국가보다 중국과의 교류를 선호하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이 소프트파워(soft power·연성 권력)를 교묘하게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아프리카 백서’에 따르면 중국은 아프리카 각국과 협력을 모색할 때 정치적 동등, 경제적 상호협력, 신뢰구축 등 3대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백서는 아프리카의 군사인재 육성, 유학생 교환, 중국어 교육 지원, 중국기업의 투자 장려, 채무 경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매년 3000여 명의 아프리카 학생과 전문직, 공무원을 국비유학생으로 초청했고, 앞으로 이 숫자를 10배로 늘릴 계획이다. 유학생들은 대부분 아프리카 각국 정치인과 고위관리의 자녀들이다. 중국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국제 라디오방송국을 개국하기도 했다. 이 방송국은 영어와 중국어로 세계 뉴스뿐 아니라 중국의 발전상과 문화를 전하고 있다. 중국은 탄자니아에도 같은 방송국을 열 계획이다. 소프트파워를 통한 신뢰구축 전략의 일환이다.

    이렇듯 중국 정부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고 철저하게 개발과 투자가 공존하는 새로운 협력모델에 따라 아프리카에 진출하고 있다. 중국은 이 모델이 아프리카의 발전을 지원해 자립 기반을 마련해주면서 자국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도 개발하는 이른바 윈-윈(Win-Win) 전략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공자학원과 소프트파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소프트파워는 군사력이나 경제력 등 물리적으로 표현되는 하드파워(hard power·강성 권력)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위협이 아니라 설득과 호소로 타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의 힘을 뜻한다. 소프트파워의 개념을 처음 주창한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한 지 30년 만에 경제대국이 되면서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에 베이징 컨센서스 모델을 제시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국이 최근 들어 소프트파워를 통해 얻고 있는 성과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는 것이다.

    중국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소프트파워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중국어학원이자 문화센터인 ‘공자학원’이다. 중국 정부는 2004년 서울에 세계 최초로 공자학원을 세운 이래 지금까지 69개국에 238개를 설립했다. 이를 위해 매년 약 2억위안(한화 300억원)을 투입하고 있으며, 2010년까지 500개를 설립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기도 했다. 프랑스가 알리앙스 프랑세즈(Alliance Fransaise)를 120년간 1100개, 영국이 영국문화위원회(British Council for Relations with Other Country)를 70년간 230개, 독일이 괴테 인스티튜트(Goethe-Institut)를 50년간 128개 설립한 것과 비교해볼 때 단기간에 엄청난 규모를 이뤄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어를 사용하는 전세계 인구는 13억여 명으로 수치상로만 보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지만 아직 그 영향력은 낮다. 중국이 공자학원을 세워 전세계에 중국어 붐을 일으키려는 것도 소프트파워를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언어는 문화를 전파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2008년 중국 외교백서는 “소프트파워 없이는 상대국을 설득하거나 중국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어려운 만큼 소프트파워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백서는 이를 위해 해외에 공자문화원을 계속 지어야 하고, 중국어 교사를 더 많이 파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의 소프트파워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었다. 당시 개막식의 입장 순서는 중국 한자(漢字)의 간체자(簡體字) 획수에 따라 정해졌다. 과거 올림픽 개최국이 참가국 선수단의 입장 순서를 현지 발음의 영어 알파벳 순으로 정했던 관행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한자와 한어를 알파벳이나 영어에 버금가는 세계의 표준언어로 내세우려는 속셈이었다. 중국이 개막식에서 화약, 종이, 나침반, 인쇄술 등 세계 4대 발명품을 화려하게 형상화하면서 5000년 ‘중화문화’를 전세계에 자랑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소프트파워를 통한 베이징 컨센서스의 강화.’ 후 주석이 “문화는 국가 성장동력이며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은 문화 번영과 함께 와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자국의 표준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만들려는 의도까지 내비친다. 차세대 이동통신 분야에서 자국이 주도해 만든 제3세대(3G) 이동통신기술 표준인 TD-SCDMA 서비스를 확산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그간 세계 3G 이동통신의 주류는 미국식 CDMA 2000과 유럽식 W-CDMA로 양분돼 있다. 중국은 이 두 기술의 수용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3G 방식인 TD-SCDMA를 도입한 것이다. 이 기술은 이미 세계 공인을 얻었으며 중국은 설비 구축에만 150억위안(약 2조2250억원)을 투입했다. 중국이 미국과 서방이 주도하던 글로벌 스탠더드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은 베이징 컨센서스에 이어 ‘차이나 스탠더드(China Standard)’를 세계의 표준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의 예기(禮記)에 나오는 ‘세계 모든 곳에 들어맞는 표준(放之四海皆準)’을 세우라는 대목과 일맥상통한다.

    세계 금융위기에 주목받는 ‘베이징 컨센서스’

    2007년 8월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합동 군사훈련에 참가한 러시아군 병사가 중국 국기를 뒤로한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 훈련에는 러시아, 중국,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이 참여했다.

    2049년 세계 일등국가

    베이징 컨센서스가 다른 국가들의 발전모델이 되고 있는 것에 중국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음도 엿볼 수 있다.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내세우는 미국의 외교적 압박에 시달려온 국가들이 베이징 컨센서스에 일종의 매력을 느끼고 있는 현실이 역으로 중국의 자신감을 강화시켜주는 모양새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비롯해 이란 베네수엘라 짐바브웨 수단 등이 베이징 컨센서스에 적극 동조하고 있고, 쿠바와 미얀마 등 독재국가들도 중국식 발전 모델을 추진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호응을 바탕으로 중국은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반미주의를 틈타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수준까지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심지어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미국을 배제했으며 상하이협력기구(SCO)를 일종의 반미 동맹체로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의 대외정책도 개입을 통해 국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후 주석은 내치(內治) 분야의 국정이념으로 내세웠던 ‘허셰사회’ 개념을 대외전략으로 확장해 ‘허셰세계’ 건설을 강조하고 있다. 이 노선은 서로 다른 문명과 다양한 발전경로를 상호 인정하면서 경쟁과 공존이 함께하는 국제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이 국제질서를 좌우하는 것에 제동을 걸고 국제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잡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선궈팡(瀋國放) 외교부 직속 세계지식출판사 총편집인은 후 주석의 노선을 가리켜 ‘적극적인 다변(다자) 외교’ 전략이라고 규정했다. 선 총편집인은 “중국이 대국의 일원으로 조화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세계 정치경제의 게임 법칙 제정에 주동(主動)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에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는 세계의 일등 국가가 된다는 청사진을 세워놓고 있다. 영국 왕립국제관계연구소(RIIA)의 빅터 불머토머스 소장은 “지난 1842년(아편전쟁 패배 후 불평등조약 체결)부터 1949년(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의 ‘굴욕의 한 세기’를 바꿔보겠다는 중국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고 분석했다.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까닭

    하지만 베이징 컨센서스가 앞으로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일당 독재체제다. 중국이 강대국이 되고 영향력이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국제사회에서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이런 독재체제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이 그 동안 베이징 컨센서스를 폄하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점을 인식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도 항상 민주주의를 강조해왔다. 지난 2007년 10월 열린 제17기 공산당대회에서 후 주석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무려 63차례나 언급했다. 중국 정부가 사상 최초로 발표한 백서(2007년 11월15일자)에서 자신들의 정당제도는 공산당이 이끄는 다당 협력체제이며 이는 서방국가의 양당 또는 다당제와 다르며 일부 국가의 일당제와도 다르다고 밝힌 것도 ‘중국식 민주주의’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중국 정부가 백서에서 밝힌 내용은 사실상 공산당 일당독재를 인정한 것이다. 실제로 중국이 개혁·개방을 추진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덩샤오핑이 주창한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오쩌둥(毛澤東) 사상, 사회주의 노선, 프롤레타리아 독재, 공산당 영도 등 4개 항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후 주석도 “중국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정치발전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물론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정치민주화는 정비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1인당 GDP가 3000~ 5000달러가 됐을 때 국민이 정치민주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1인당 GDP는 2007년 현재 2360달러를 기록해 30년 전인 1978년 190달러에서 무려 12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중국은 조만간 1인당 GDP 3000달러 시대를 맞게 된다.

    이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해 나름대로 민주화를 실험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첫 실험장이었던 경제특구 선전시가 시장과 구청장 경선제를 도입키로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공산당이 지정한 단일 후보를 형식적인 선거로 뽑던 과거 방식을 바꾼 것이다. 중국이 선전과 같은 대도시에서 경선제를 도입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선전시의 이 같은 실험은 일본 자민당의 파벌정치를 원용해, 공산당 내부에서 성향이 다른 세력들이 제한적 경쟁을 통해 계파 정치 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도 있다. 이처럼 나름의 ‘중국식 민주주의’를 도입하려는 것은 베이징 컨센서스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두 개의 태양은 없다

    물론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시각은 비판적이다. ‘중국식 민주주의’는 단지 공산당의 내부개혁이나 제도개혁 밖에 되지 않는다는 논지다. 중국 공산당과 후 주석이 추진하는 정치개혁은 서방이 주장하고 있는 다당제·직접선거·삼권분립 등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방국가들은 또 중국식 모델을 지지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국내정치의 불안정, 내전, 인권 탄압, 경제적 실패, 극심한 빈곤 등의 ‘문제’가 있는 국가들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이 주장하는 민주와 미국이 주장하는 민주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세계를 주도하는 세력과 이에 도전하는 신흥세력 간에는 이와 같은 갈등과 대립이 항상 벌어졌다. 이렇게 볼 때 앞으로 양국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양국 관계의 미래에서 확실한 점은 불확실하다는 것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중국이 나름대로 자국의 길을 계속 갈 것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목표는 21세기를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에 의한 세계평화)의 시대로 만드는 것이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없듯 땅에도 두 명의 황제는 없다고 말한 것은 다름 아닌 공자다. 물론 한동안 위세를 구가하던 워싱턴 컨센서스가 엄청난 비판에 맞닥뜨렸듯, 베이징 컨센서스 역시 명실상부한 새로운 국가발전 모델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중국이 역사적 교훈을 얼마나 타산지석으로 삼고 있느냐가 그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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