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5~20년간 전세계에서 중국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국가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중국은 2025년께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자 주요 군사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다.”
미국 국가정보국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가 ‘글로벌 트렌드 2025 - 변화하는 세계’라는 제목의 120쪽짜리 보고서(2008년 11월20일자)에서 중국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차지할 위상을 전망한 내용이다. 보고서는 NIC가 지난 1년 동안 외교·국제문제 전문가 1000명의 의견을 수렴하고 30여 차례의 회의와 토론을 거쳐서 만든 것이다.
중국이 NIC 보고서의 예측처럼 미국에 도전할 강대국으로 도약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NIC 보고서의 내용 중에서 한 대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미국은 2025년에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남겠지만 그 영향력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며, 이에 따라 많은 국가가 서방의 정치·경제 모델보다는 국가가 경제를 주도하는 중국식 발전모델을 따를 것”이라고 지적한 대목이다.
보고서가 강조한 부분은 중국식 모델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바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뜻한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식 발전모델이란 최근 학계에서 화두로 떠오른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 sensus·北京共識)’를 가리킨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위기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용어는,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자문역과 중국 칭화대 강사를 지낸 조슈아 쿠퍼 라모 전 ‘타임’부편집장이 2004년 5월 영국 총리 산하 연구소인 외교정책센터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 ton Consensus)’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처음 사용했다. 베이징 컨센서스는 권위주의 체제와 정부가 시장경제를 주도하는 국가모델을 뜻한다.
미국의 최고 정보자문기관인 NIC가 베이징 컨센서스를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워싱턴 컨센서스가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워싱턴 컨센서스란 민주주의 정부에 시장경제가 결합된 국가모델을 말한다. 존 윌리엄슨 미국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이 1989년 경제난국에 빠진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무역 및 투자 자유화, 탈(脫)규제 등 10가지 정책을 제시하면서 처음 사용한 이 용어는, 이후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의 입장을 대변하는‘신자유주의’의 대명사로 흔히 쓰여왔다.
미국이나 IMF가 제시한 경제위기 해법은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노선 위에 서 있다. 실제로 미국과 IMF의 해법은 자본시장 자유화, 민영화, 정부규제 축소 등으로, 1990년대 후반 동구권 국가들과 아시아 각국의 주요 개혁정책에 그대로 적용됐다.
미국은 또 경제위기에 빠진 국가들을 지원하면서 이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확산시키는 전략과 연계해온 것이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비판론자들은 그동안 미국의 이러한 태도가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면서 타국의 경제를 종속시키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자유무역, 시장개방은 국제사회의 세계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반박해왔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를 자신하던 미국은 스스로 제 발등에 도끼를 찍었다.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의 월스트리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에 따라 미국이 주도해온 탈규제와 민영화, 개방화로 상징되던 신자유주의도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로 미국식 자본주의의 쇠퇴론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도 힘을 잃고 말았다. NIC가 베이징 컨센서스의 부상을 지적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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