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호

“당분간 한국의 역할은 북미관계 개선 돕는 물밑작업이 전부”

  • 입력2009-01-0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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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는 이번 호부터 미래전략연구원(원장 박진)과 공동으로 새 연중기획 시리즈 ‘미래전략 토론’을 시작한다. 매달 시의성 있는 주제를 선정해 한국의 중·장기적인 미래발전 전략에 대한 모색을 전제로 한 심층 토론을 벌이고, 그 결과를 본지에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미래전략연구원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전문가·학자 70여 명이 포진해 ▲학제적 연구 ▲실천적 연구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중도적 연구를 표방하는 네트워크형 민간 싱크탱크다. ‘편집자’
    ● 일시 : 2008년 12월9일(수)

    ● 장소 : 미래전략연구원

    ● 사회 : 김준형 외교통일전략센터장(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

    ● 참석 : 김근식 외교통일전략센터 연구위원(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백승주 외교통일전략센터 연구위원(한국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



    이상현 외교통일전략센터 연구위원(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

    “당분간 한국의 역할은  북미관계 개선 돕는 물밑작업이 전부”
    ▼ 남북관계 경색, 어떻게 봐야 하나

    김준형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모였다. 사회자 역할을 맡았지만 동시에 패널로서 의견 개진도 할 생각이다. 먼저 경색 국면인 남북관계의 현 상황에 대한 평가로 얘기를 시작해보자.

    백승주 과거를 돌이켜보면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의 서해도발이나 2006년 핵실험 등 현재보다 더 어려운 상황도 많았다. 북한의 12·1 조치만 가지고 현실을 너무 비관적으로 평가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이전보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남북대화가 중단됐고 민간 교류도 제한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이 북측 내부의 걱정거리와 관련돼 있다고 볼 때, 우리가 전향적으로 나간다고 해서 상황이 급반전될 것 같지도 않다.

    김근식 안이한 인식이다. 군사적 도발의 정도와 긴장은 그때가 더 높았던 게 사실이나 남북관계 지속성이란 차원에서 보면 현재가 더 불안한 상황이다. 과거 군사적 도발상황에서도 남북 간 대화나 신뢰의 끈은 지속됐고, 나중에 관계가 복원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런 끈들이 모두 끊어진 상황이다. 현 정부 임기 초반의 ‘말 대 말’의 신경전과 기 싸움이 현재 ‘행동 대 행동’의 싸움으로 구조화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일종의 농성 전략으로 의연하게 기다리겠다는 태도인데, 남북관계가 중단될 경우 이를 돌이키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과 적극적인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

    김준형 지난 4월과 8월에도 유사한 토론을 했는데, 당시 ‘너무 조급하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마련될 때까지 시간을 두고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지금도 그 말이 유효한가.

    이상현 남북은 서로 생각의 차이가 큰 상대들이다.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다. 남북관계의 부침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경색 국면이 길어질 수 있다. 이전과 달리 김정일 건강이상설 등의 문제가 새롭게 불거져 나왔고, 북한 내부의 경제위기 또한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으로 볼 때 남북관계가 완전한 단절을 맞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이 시간틀(time frame)을 견딜 수 있는지다. 경색 국면이 길어지면 남북 모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비해 경색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심각하기 때문에 국면을 짧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김준형 과거 경색 국면들과의 차이나 심각성의 정도도 문제지만, 어렵게 쌓아온 상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 더 큰 문제다. 지난 10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순방향으로 진행되던 관계가 틀어진 터라 다시 좋아진다 하더라도 상처가 쉽게 아물기 어려울 것이고, 회복하기 위해 들여야 할 노력이 너무 크다는 점이 아쉽다.

    이상현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과거에는 경색국면에도 정경분리 원칙이 유지돼왔는데, 최근 북한의 개성공단 압박은 중요한 원칙을 깨고 있다는 점이다.

    김근식 개성공단을 압박하는 것이 정경분리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은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지난 7월 금강산 피격사건 이후 우리 정부도 관광을 금지했다. 지금 북한의 개성공단에 대한 압박을 보면, 공단 폐쇄까지 상정하고 시나리오를 짜겠지만, 입주업체에 대해서는 상당히 완화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개성공단이 완전히 문 닫는 데까지 가기 전에 최대한 시간을 벌어보려는 것 같다.

    백승주 정경분리 원칙을 금강산에 맞춰 설명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도 처음에는 민간 차원의 선교문제였지만 우리 국민이 인질이 된 순간부터는 국가의 책임이 됐다. 무고한 관광객이 살해됐는데 관광을 유지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라고 할 수 있을까? 재발 방지에 대한 확고한 조치 없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인질로 잡고 남한을 협박하는 것은 좋지 않다.

    김근식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금강산 피격사건을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같은 수준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 같다. 사망사건을 그렇게 비유해 국가개입의 논리를 편다면, 금강산 내에서 우리 측의 음주운전으로 북한 사람이 사망한 사건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북한은 이 문제를 가지고 금강산 관광을 막지 않았다. 우발적인 총격사건에 대한 현명한 해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상현 교통사고 등 비의도적인 사고에 견주어 비무장 민간인을 총으로 사살했다는 것은 상징하는 의미가 다르다고 본다.

    김근식 금강산 피격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살해사건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북한이 개성공단으로 협박하는 것은 정경분리 위반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문제는 있다. 2006년 당시 한나라당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데 무슨 개성공단이냐고 이야기했다. 사실 남북문제를 긍정적으로 풀고 관계를 복원하려 한다면, 이런 식의 태도는 남북을 막론하고 옳지 않다.

    ▼ 남북관계 경색, 누구 책임이 더 큰가

    김준형 자연스럽게 남북경색 국면에 대한 원인 분석으로 넘어가보자. 한국 정부가 과거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계승하지 않고 총리급이 서명한 남북기본합의서로 돌아가자고 한 것은 북한 권력구조의 본질상 용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현 정부 출범 전 인수위 시절부터 북한에 대한 진정성이 담긴 포용의 메시지가 없었다. 대화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말은 했지만, 그런 정도는 과거 노태우 김영삼은 물론이고 전두환 박정희 정권에서도 했던 말이다. 반면에 합참의장의 선제 공격발언, 김정일 건강이상에 대한 온갖 억측, 이상희 국방장관의 발언들, 그리고 삐라사건 등 말과 행동이 달랐던 측면에서 우리 정부의 문제는 과연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이상현 남북관계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일방이 잘못한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구조적 특성이 있다. 한국 정부의 잘못이 있었다면, 북한은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봐야 한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책이란 상대적인 것인데,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다가 이젠 서로가 물러날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사실 한 정부의 정책은 일정한 철학과 가치관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과거 정부가 가진 철학이 있었고, 이명박 정부도 나름의 철학이 있다. 대북정책이 없다는 비판은 잘못된 지적이다. 현재의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백승주 남북관계가 잘 안 풀리면 정부가 이에 대한 포괄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세간에는 지난 1년간 대북정책이 없었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없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우리 정부의 진정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측면이 크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들여다보면 지난 정부와 공통점이 많다. 그러나 차별성을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에 국민을 이해시키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총선으로 연속성보다는 차별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 논리도 있었다. 전면대화를 하겠다고 하는데 한 박자씩 늦었던 것은 사실이다. 현 정부는 인내와 관용으로 북한 문제를 다뤄야 한다. 반대로, 걱정 때문이겠지만, 현 정부가 남북관계의 파탄을 작정하고 있다는 인식은 문제다.

    김준형 홍보나 북한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무정책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본다. 부시가 비난받은 것과 똑같다. 부시 행정부는 2000년 정권 초기 강경책을 내놓으면서 전제조건을 내걸었는데, 결국 6년간 아무런 정책도 없는 결과를 낳았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권은 북한이 변하기 전에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전제를 내세울수록 운신의 폭은 좁아지게 마련이다.

    김근식 현 상황은 서로 간에 부정적인 상승작용이 일어난 결과다. 북측이 왜 이렇게 초강경 압박전술을 구사하는지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북한은 자신의 체제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남한 정부의 강경한 자세나 삐라문제는 북한 처지에서 보면 정권의 붕괴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남쪽의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을 보면 이전 정부의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언명된 대북정책과 달리 언행들이 불일치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못 줘서 이렇게 된 것 아닌가.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입장을 밝히고 국면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상현 보수층의 정서를 보면 우리가 북한에 대해 지원을 해주면 등가적인 상호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한 호의를 보여야 하는데, 그조차도 안 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백승주 노무현 정부 역시 북한 핵이 폐기되지 않으면 한반도평화체제를 위해 한발도 나아갈 수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 핵실험을 한 상황에서도 평화체제를 논의했다. 정책을 중간에 바꾼 것이다. 새 정부가 북한핵 폐기와 관계없이 포용정책을 하겠다고 할 수 있는가? 북한핵 폐기를 통해 한반도가 비핵화돼야 하고,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야 한다는 대북정책의 본질적 방향은 당위적인 차원에서 바꿀 필요도 없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 로드맵은 이전 정부의 내용을 계승하고 있다. ‘비핵·개방·3000’ 역시 엄격한 상호주의를 상정한 것이 아니었으나 총선 등을 앞두고 정치화된 것이 문제였다.

    김근식 이성적으로 보면 현 정부가 내걸고 있는 상생공영 외에는 답이 없다. 그러나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게 아니다. 논리적, 이성적 정책은 뒤로 가고 감정만 남아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 남북관계 왜 풀어야 하나

    김준형 이러한 경색국면을 탈출하기 위한 해법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 대북특사 파견, 미·중 등을 통한 막후작업 등 몇 가지가 거론되는 것 같다. 아니면 오바마 정부가 새 대북정책을 확립하고 움직이기를 기다려야 할 것인가.

    백승주 현재 악화된 남북관계는 남한의 포지션을 조정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지금 북한은 중국 기업들도 나가라고 하고 있다. 내부 안정이 최대 목표다. 지금 우리가 자세를 바꾸면 오히려 국내외적 신뢰가 하락하고 북한도 무시당할 것이다.

    하나의 방안으로 미국의 직접 대화를 적극 지원해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병행 발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테러지원국 해제 이후 북한이 얻은 실질적인 이득이 없다. 주변국들의 대북정책을 점검하면서 우리 정부가 진정성을 갖고 간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지금 우리 정부를 압박하여 포지션을 바꾸라는 것은 내과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감기약을 사주라는 것과 같다.

    이상현 남북 자체에서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통령이 어떤 발언을 하더라도 북한은 무시하려 할 것이다. 대북특사를 파견하더라도 건강이상설 이후 외부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김정일을 만나지 못할 확률이 높다. 남은 것은 미국 카드다.

    김준형 최근 워싱턴을 방문해 대북정책 관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미국이 나서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오바마 자신의 코가 석자라는 점. 당면한 경제문제가 급박한데다 대외정책에서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보다 북한의 우선순위가 낮다. 둘째, 미국에서 정권 이양기의 정책 변화는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오래 걸린다. 마지막으로 남북관계가 어렵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 섣불리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상현 오바마 정부의 전체적인 어젠다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더라도 미국 내 대북정책 담당자의 역할은 다르다. 국무부 한반도 담당자들은 빨리 움직이게 될 것이다. 현 상황에서 막힌 남북관계만 봐서는 해답이 안 나온다. 우회로가 필요하다. 오바마 정부에 우리가 선제적으로 제안을 한다거나 북한에 있는 중국기업을 활용할 필요도 있다.

    김근식 오바마를 통해 돌파구를 찾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YS 때처럼 북미관계가 진전되는 것을 막으면서 개입하는 것과 북미관계 개선에 적극 개입하면서 선제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문제가 많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인식의 동굴’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변하기 전에는 절대 손을 내밀지 않겠다’ ‘결국 손해 보는 것은 북’이라는 인식이다. 감내할 만한 수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판단을 하기에는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 버티면 이긴다는 인식의 동굴에 갇혀 있으면 오바마가 나서도 안 될 것이라는 논리와 맞물려 가게 된다. 자신의 정치적 기조와 입장을 확대하기 위해 감정을 대입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자리는 늘 그렇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하는 위치다.

    이상현 민주정부의 속성상 임기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5년이라는 한계를 지니는 반면,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그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조건이 같다면 시간벌기 싸움에서 북한이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백승주 대통령이 되면 밖에서 볼 때와 달리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난 정부에서도 핵문제가 안 풀리면 평화체제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남북관계 개선에 올인했다. 5년 임기 틀 속에서 그래도 발전시키고 진전시키려 할 것으로 본다.

    ▼ 美 오바마 정부 출범과 남북관계

    김준형 세 분 모두 미국과 같은 외생변수 외에는 돌파구가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그러나 오바마 진영 내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세 가지 기류가 섞여 있는 것 같다. 우선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앞의 6년 강경노선과 뒤의 2년 협상노선으로 나눌 때 후자를 계승하되 점진적으로 하자는 입장, 둘째는 북미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 같은 급격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입장, 마지막으로 과거 공화당보다 더 철저한 비핵주의자도 소수 있다. 그동안 화가 나있던 공화당원들(angry republicans)이 셋째 소수 그룹과 동조해 이번 기회에 확실히 비핵화하자고 오바마를 압박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백승주 북미 간 직접대화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직접대화에서 미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다. 북한에 대해 양보하는 대화를 할 것인가, 아니면 핵문제 해결을 요구하면서 거칠게 갈 것인가. 개인적인 견해로는 후자라고 본다. 클린턴 정부 시절 영변핵시설 정밀폭격을 준비한 안보전문가들이 오바마 정부 인수팀과 새 안보팀에 참가하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권과 북한문제 해결 로드맵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따르지 않으면 통상국가처럼 거칠게 다룰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한미관계 수준이라면 통미봉남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북미 수교를 적극 지원하여 고착된 긴장관계에 충격을 줄 필요가 있다.

    이상현 직접외교라는 형식보다는 어젠다가 더 중요하다. 핵무기 비확산만 놓고 보면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더 강경하다. 직접외교가 비확산 기준의 완화를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북한이 이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북미 간 직접대화 시 첫째 어젠다로 비핵화가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이미 검증을 위한 시료채취를 거부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부딪치는 상황이 예상되는데 북한이 순순히 나올지는 회의적이다.

    김근식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비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목표에서는 단호하다. 그와 동시에 미국은 목표달성을 위해 상당히 유연한 자세를 취할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의지가 있다면 북한 역시 북미관계를 풀기 위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나올 가능성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2012년 강성대국을 완성해야 하는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 후계구도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번 협상이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풀려고 할 것이다. 앞서 북미관계 개선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는 백 박사의 말에 적극 동의한다. 겁내지 말고 김정일이 오바마의 대북정책에 대해 오판하지 않도록 남북 간의 설득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상현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을 통해 북한을 설득하는 것도 가능하다. 김정일 후계구도와 관련하여 2012년 이전에 김정일이 실각하게 된다면 누가 권력을 승계할 것인가. 온건파보다는 강경파가 잡을 확률이 높다. 오바마의 기본 입장은 기회를 제공하고 받으면 인센티브를, 받지 않으면 페널티를 주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살라미 전술을 펴지 못하도록 대타협을 할 가능성이 크다. 2003년에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과 마이크 모치즈키가 저술한 ‘Crisis on the Korean Peninsula’라는 책에서 필자들은 핵 포기와 재래식 군축을 경제지원 패키지와 맞바꾸는 대타협을 제안했다. 대타협의 본질은 북한에 대해서는 과거에 써온 ‘당근과 채찍’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스테이크와 해머(steaks and sledge-hammer)’의 방식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즉, 크게 주고 크게 받겠다는 것인데, 크게 주겠다는 데도 북한이 받지 않으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김근식 크리티컬한 국면이다. 북한이 미국의 제안을 받도록 해야 한반도의 장래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청와대는 북미관계가 잘 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북한이 다시 남한에 머리를 숙이고 나올 거라는 인식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백승주 오바마의 북미 간 직접대화는 한반도의 흐름에 하나의 변곡점을 만들 것 같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에 대해 엄격한 레드라인(red line)과 사탕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부시처럼 실질적 레드라인 없이 다루어서는 안 된다.

    김준형 타이밍도 중요할 것이다. 오바마의 특성상 힐러리나 대북담당자들에게 상당한 자율성을 줄 것 같다.

    이상현 미국이 북한문제를 외교문제로 볼 것인지 아니면 비확산문제로 볼 것인지가 관건이다. 현재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북핵문제를 전담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면 국무부 내 비확산팀의 입김이 세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입지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김준형 부시의 마지막 2년을 승계하겠다고 하는데 일단 외교로 보겠다는 것 아닌가.

    김근식 북한이 북미관계를 결딴내지 않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6자회담에서 보듯이 우리가 문제해결에 부담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상현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 최근 미 합동군사령부에서 발간한 보고서에서 북한을 핵국가로 명기했다. 미 정부의 공식입장은 아니라고 하나 핵보유국으로 인정되면 한국 입장에서는 핵을 가진 북한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된다. 우리 정부가 입을 다물고 있기 어렵다.

    백승주 애매한 시점에 미국이 북한의 핵을 인정하는 대신 비확산만 강조하는 태도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가야 한다.

    김근식 6자회담의 9·19성명에서도 핵 폐기를 명시했다. 미국도 선거를 치러야 하는 나라이고 비핵화에 대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경우 낮은 수준의 합의라도 도출하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다. 9·19 본래의 정신을 강조해야 한다. 핵폐기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북미관계 정상화와 패키지로 묶어나가야 한다.

    백승주 정부가 기다린다는 것을 소극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야구에서도 ‘기다리는 작전’이 있는데, 투수가 콘트롤이 나쁠 때 자주 사용한다. 그래도 타자가 공을 그냥 기다리지 않는다. 정부가 손놓고 기다리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지금은 북한이 만들어놓은 틀이 있어서 우리가 먼저 움직이기 어려운 측면도 헤아려야 한다. 다만 지난 1년간 소통구조가 부족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상현 청와대 내 북한문제 담당팀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세 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경직된 철학으로 인한 비핵·개방· 3000이나 상생공영 정책의 후속 구체화 미흡, 외교관료 출신 중심의 인적구성 문제, NSC나 국정상황실 같은 컨트롤타워 부재 등 시스템의 문제가 그것이다.

    김준형 세계 금융위기가 남북 및 북미관계에 미칠 파장도 짚어보자. 북한을 도와주는 것이 경제적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닐지라도 국민 여론상 북한을 도와줄 수 있는 여지를 약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김근식 금융위기가 미국의 일방주의를 제약하고 있다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인해 한미 모두 북한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해주기가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일부 시민단체에 계신 분들이 어려운 경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북한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하는데,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 점도 부정적 요인이다.

    백승주 남북경제협력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 금융위기로 인해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게 형성될 것 같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 문제는 원칙을 갖고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지속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준형 최근 북한의 식량난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이상현 세계식량계획(WFP) 발표로는 전체 수요량의 20%에 달하는 84만t 정도가 부족하다고 한다.

    ▼ 김정일 건강과 남북관계의 함수관계

    김준형 김정일 건강이상설이 최근 다시 대두되고 있다. 어떻게 판단하고 계시는지 말씀해달라.

    이상현 대략적인 예측이 3~5년이다. 언제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지만,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은 분명하다.

    김준형 오히려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이 내민 손을 잡을 가능성은 없는가.

    이상현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리스크를 피하는 게 일반적인 대응방식이다.

    백승주 개성공단 육로통행 차단과 관련한 북한의 조치 뒤에는 국방위원회 정책실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김영철 중장이 11월6일 현장을 방문하고, 11월12일 결심한 과정이 있었다. 군부 강경파의 충성경쟁이 일어날 경우 경색국면이 강화될 것이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로 갈 경우 연성화보다는 경성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상현 김정일 실각을 앞두고 권력투쟁이 일어날 것이다. 강경론자들이 우선 잡았다가 문제가 심각해지면 사회적 타협을 통해 선거로 갈수도 있다. 변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김근식 미국이 1994년 경수로 합의를 할 때 경수로가 지어질 때까지 북한이 존재할 것이냐에 대한 회의가 바탕에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런 경험들을 놓고 볼 때 김정일의 건강이상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한 자의적 상황인식과 판단이 문제를 그르칠 수 있다. 물론 급변사태에 대한 철저한 대비는 필요하지만 이것을 기정사실로 가정하고 대북정책을 추진해선 곤란하다. 급변사태시 우리가 주도하는 힘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남한의 북에 대한 지렛대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 남북경색, 어떻게 풀 것인가

    김준형 마지막으로 남북관계 경색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해법과 전망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상현 미국은 국무부 인선이 이루어지고 나서도 최소한 6개월은 되어야 정책 리뷰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전까지는 남북관계의 공황 상태가 계속될 것 같다. 그러나 그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찾아봐야 한다. 중국을 동원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스스로 자신의 정책을 리뷰할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지난 1년간 남북관계가 경색된 원인을 한 번쯤 되돌아볼 시점이 됐다. 한미 전략동맹과 상생공영을 구체화, 현실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현 정부는 대북문제에 있어 전문가 집단과 커뮤니케이션이 너무 부족하다. 전문가 의견을 들어야 한다. 반대로 정부 입장을 설득하기 위해서도 전문가 집단과의 교류가 필요하다.

    백승주 대북정책이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도 있고 주변국도 있다. 북한을 상대로 한 대북정책은 소강상태인 상황에서 나머지 대북정책을 해야 한다. 특히 남북 경제협력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겠다. 대북정책을 위한 주변 여건을 만드는 외교적 노력도 필요하다. 전문가 소통구조도 확실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김근식 지난 10년 동안 쌓아왔던 남북관계가 불과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무력화된 상황이다. 지금 정부는 포용 기조를 유지하되 바꿔보겠다는 생각과 포용 자체가 필요 없다는 입장이 혼재되어 있다. 포용에 대한 효과적인 장치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포용 자체를 폐기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변화가 미흡하고 상호주의가 잘 지켜지지 않고 북핵문제가 미진하다고 해서 포용기조를 버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세 가지가 해결될 수 있도록 자기 색깔에 맞는 포용정책을 잘 다듬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준형 홍보의 잘못이냐 정책 본질의 잘못이냐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비핵화나 평화정착 등 대북정책의 큰 그림에는 동의하더라도 중요한 차이는 결국 어떻게 목적지에 도달할 거냐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바마 당선자와 철학적 기조가 같다고 하는데 글쎄다. 그것이 진정이라면, 철학은 뒤로 숨기고 우선 실용의 선에서 같은 것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당분간은 기다리는 국면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물밑작업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통미봉남이 되지 않도록 미·중 등을 잘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결코 두려움 때문에 협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코 협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오바마가 캠페인에 자주 인용했던 케네디의 문구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과학자로서는 결격 사유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남북관계가 어려워서 얼마 전에는 이런 생각까지 해봤다. 금성과 목성, 달이 만나 저녁하늘에 ‘Smile Face’를 연출했는데 내년 남북관계에 좋은 일이 있을 징조였다면 좋겠다고 말이다. 함께 해주신 세 분께 감사드린다.

    토론에 참석한 김근식, 이상현, 김준형, 백승주 박사 (왼쪽부터).

    김근식

    이상현

    백승주

    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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