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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교수의 ‘재미학’ 강의 ⑨

감탄할 일 많아질수록 더 행복해진다!

  • 김정운│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entebrust@naver.com│

감탄할 일 많아질수록 더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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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아기의 상호작용에 관한 분석이 내 박사학위 논문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도대체 인간 문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의 거대한 주제를 나는 어머니-아기의 초기 상호작용에서 풀고자 했다. 15년 전, 베를린 자유대학의 지하 연구실에서 나는 단조롭기 그지없는 이 어머니-아기의 놀이 장면만 수천번도 더 봤다. 백인이 아기를 키우는 장면, 흑인이 아기를 키우는 장면, 한국사람이 아기를 키우는 장면을 비디오로 녹화해, 적어도 3년은 더 들여다봤던 것 같다. 미칠 것 같았다. 초단위로 나눠 분석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한국사람이나 모두 똑 같았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하루 종일 “그랬어?”“어이구”“까꿍”같은 말을 하며 어수룩한 표정놀이를 한도 끝도 없이 반복할 뿐이었다. 도대체 인간 문명의 기원은 어디인가?

엄마는 거짓말쟁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기가 어머니의 말을 흉내 내며 언어가 발달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머니가 아기를 훨씬 더 많이 흉내 낸다. 오히려 결정적 순간에 아기는 자신을 흉내 내는 어머니가 더 이상 자신의 이전 언어, 표정 등을 흉내 내는 것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내 비디오 자료의 어머니들은 하루 종일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를 흉내 내며 감탄을 연발할 뿐이었다.

바로 그거였다. 감탄! 인간의 어머니는 하루 종일 아이의 세밀한 변화에 감탄할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 감탄과 감탄으로 비롯되는 다양한 정서적 상호작용이 원숭이를 비롯한 다른 포유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는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아기를 처음 키우는 모든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회사를 다녀오니 아기엄마는 흥분하며 “오늘 아기가 걸었다”고 한다. 그러면 아빠는 기대에 가득 차 아기의 손을 잡고 걸어보라고 한다. 이런, 아기는 전혀 걷질 못한다. 어제와 전혀 다를 바 없다. 어색해진 아기엄마는 머리를 긁적이며 “나하고 있었을 때는 분명히 걸었는데…” 한다.



그 다음날 아기엄마는 아빠의 회사에 전화를 걸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 우리 아기가 “엄마”라고 분명한 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아기 목소리를 들려준다며 수화기를 아기 입에 댄다. 아빠는 “엄마 해봐, 엄마, 어엄~마! ”하며 애타게 아기의 ‘엄마’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그러나 수화기 건너에선 아기가 씩씩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러다 엄마가 “야, 빨아먹으면 안 돼”하며 갑자기 아기에게서 수화기를 뺏어 말한다. 그러고는 말한다. “어, 조금 전에는 분명히 했는데….”

아기의 변화에 흥분한 엄마와 실망한 아빠의 툴툴거림은 첫아기를 가진 젊은 부부에게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엄마를 웃기는 거짓말쟁이로 만든 아기는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면 걷기 시작한다. 일주일이 지나면 “엄마, 엄마” 한다. 아기엄마는 그 변화의 시작을 본 것이다. 아기에게서 아주 섬세한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 엄마는 어쩔 줄 모르며 감탄한다. “어머, 얘 봐, 얘 봐! ”

감탄할 일 많아질수록 더 행복해진다!

원숭이 어미는 새끼를 보고 감탄할 수 있을까.

나도 그랬다. 나도 첫아이를 내가 직접 기저귀 갈고, 아내가 젖을 짜 냉장고에 넣어둔 것을 먹이며 그 초짜 엄마들의 흥분을 직접 겪어봤다. 큰아이를 낳자마자, 아내는 베를린 필하모니 합창단의 연습지휘자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 자리에서 일하려면 갓 태어난 우리 아기를 두고 밤마다 일하러 나가야 한다. 모든 연주회는 밤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도교수가 추천해준 최고의 일자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자리는 아무한테나 오지 않는 기회였다. 아무리 연습지휘자라지만, 베를린 필하모니 아닌가, 베를린 필하모니! 나는 아내에게 그 일자리를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아기는 내가 보겠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나는 남녀가 가사분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아기 양육에 아빠도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땐’정말 그랬다!

낮에는 내가 학교에서 공부할 동안 아내가 아기를 보고, 밤에는 아내가 베를린 필하모니로 출근하며 아기를 내게 ‘바통터치’했다. 그러나 함부로 갓난아이를 보겠다고 하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아내가 없는 저녁 내내, 아기와 혼자 있는 일은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혹시라도 아기가 아프기라도 하면, 이건 정말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기를 달래는 일이라고는 팔로 안아 흔들어주는 것밖에 모르니, 저녁 내내 아기를 안고 흔들어댈 뿐이었다. 팔이 빠지는 것 같았다.

나의 고통스러운 육아

잠시라도 내려놓으면 아기는 울고 또 울었다. 그 아기를 달래다 지쳐 나도 울었다. 아기가 불쌍해서 운 게 아니다. 정말 팔이 빠지도록 힘들어서 울었다. 참다못해 아기에게 소리를 질렀다. 놀란 아기는 더 크게 울었다. 나중에 보니 토한 젖이 귀로 들어가 염증이 생겨 그렇게 운 것이었다. 아, 난 그 고통스러운 아기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낸 것이다. 그 갓난아이에게. 지금도 가끔 그 기억이 나면, 고등학교 다니는 내 큰아들 놈에게 속으로 참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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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entebru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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