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호

‘금융위기의 핵’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부동산시장 침체” “과도한 무한경쟁이 부른 화”

  • 최호열│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09-01-07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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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위기의 핵’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금융권이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위기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몇몇 저축은행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말도 들린다.

    부동산 PF 대출은 총 80조원 규모로 전체 금융권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다. 하지만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위기를 해소하지 못하면 저축은행이 무너질 수밖에 없고, 이럴 경우 건설사와 제1금융권까지 도미노처럼 쓰러질 공산이 크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한국 경제를 파국으로 내몰 수 있다.

    정부는 서둘러 1조3000억원을 긴급 투입해 저축은행권의 부실 부동산 PF 대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금융기관 부실채권을 인수하는 준(準)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은 2003년 카드채 사태 이후 5년여 만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것으로 위기가 해소될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부동산 PF’가 뭔지, 이게 왜 한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는지 살펴보자.

    대박 신화

    “프로젝트파이낸싱이요? 간단하게 말해 은행이 그 회사의 신용이나 담보가 아니라 사업수익성을 보고 대출해주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부동산 개발사업에 이용하는데, 잘만 하면 금융사, 건설사, 시행사 모두 큰 수익을 내는 윈윈(Win-win) 사업입니다. 물론 그만큼 리스크도 크고요.”



    10년째 시행사를 운영하는 이태병씨의 설명이다. 그는 현재의 부동산 PF 대출 부실 문제를 이해하려면 흔히 ‘디벨로퍼(Developer)’라 불리는 시행사의 특성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시행사가 처음 생겨난 것은 외환위기를 전후한 1997년경이다. 당시 건설사(시공사)들은 초기자본이 들어가는 부지 매입을 시행사에 맡겼다. 부지 매입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기도 어려웠지만 대출받더라도 자신들의 부채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시공사에서 보증을 섰기 때문에 은행권에서는 시행사에 돈을 빌려줄 수 있었다.

    ‘금융위기의 핵’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이렇게 생겨난 시행사는 이후 부지 확보, 자금 조달, 분양 마케팅까지 개발 전 과정을 책임지는 부동산개발 전문 업종으로 성장했다. 시행사업은 부동산 개발 아이템만 확실하면 금융사와 시공사를 끌어들여 무일푼으로도 ‘대박신화’를 창출할 수 있었다. (주)신영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물론 사업이 잘못돼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전락한 시행업자들도 생겨났다.

    부동산 PF 대출은 크게 ‘브리지론(Bridge Loan)’과 ‘본 PF’로 나눌 수 있다. 시행사가 개발 사업을 진행하려면 먼저 대상 지역의 땅을 구입해야 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돈이 들어간다. 예를 들어 개발부지 전체 땅값이 1000억원이라면 최소 그 10%인 100억원의 계약금이 있어야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또한 사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최소 경비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시행사는 회사 신용이 낮고 담보로 내놓을 땅도 없다. 기존 대출 방식으로는 돈을 빌리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이것을 해결해주는 게 제2 금융권에서 만들어낸 ‘브리지론’이다. 시행사는 사업계획서와 시공사가 사업 참여 의사를 확인하는 ‘의향서’, 그리고 땅을 팔겠다는 땅 주인의 약정서를 함께 내면서 대출을 신청한다. 제2 금융권에서는 사업 타당성을 심사해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때 계약금과 약간의 사업비를 대출해준다. 시행사는 이 돈으로 땅 주인들과 매매계약을 한다.

    시행사는 다시 사업계획서와 함께 토지매매 계약서, 시공사로부터 받은 공사도급 계약서를 첨부해 제1 금융권에 땅값 1000억원과 약간의 사업비를 신청한다. 제1 금융권 역시 사업 타당성을 심사해 대출을 결정한다. 이게 ‘본 PF’다. 이 자금으로 제2 금융권에서 빌린 ‘브리지론’을 정리하고, 땅 주인들에게 땅값을 정산한다. ‘본 PF’를 제2 금융권에서 빌릴 수도 있지만 대출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제1 금융권을 선호한다.

    금융권의 금맥

    부동산 PF 대출은 2000년 이후 급성장했다. 부동산경기 활황과 주택가격 상승을 배경으로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높은 이자 수익과 함께 각종 리베이트를 챙길 수 있는 것도 매력이었다.

    제2 금융권은 ‘브리지론’을 통해 약정이자 이외에 선(先)이자와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상당한 금액을 챙겼다. 예를 들어 위험 부담을 줄이려고 3~4개 금융사를 끌어들여 대출액을 분담하는데, 이때 주간사는 수수료로 총 대출금의 2~6%를 챙겼다.

    저축은행은 브리지론을 통한 연간 수익률을 20~50%로 잡는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언뜻 들으면 고리(高利)라고 하겠지만 브리지론은 대출 기간이 보통 6개월이고, 본 PF보다 리스크가 훨씬 높은 점을 감안하면 결코 높은 편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제1 금융권의 본 PF도 마찬가지였다. 약정이자 외에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높은 수익을 챙겼다. 특히 대출금을 분담하려고 다른 은행을 끌어들이는 주간사가 되면 수수료를 챙길 수 있었다. 여기에 아파트 분양 집단대출 우선권까지 확보하는 등 부가수익을 얻었다. 부동산 PF 대출이 금융권의 금맥이었던 셈이다. 한 시행업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얘기했다.

    “은행이 예·적금 이자보다 1~2%포인트 높은 일반 대출로 얼마나 수익을 낼 수 있었겠나. 부동산 PF 대출이 돈이 되니까 은행마다 앞다퉈 PF사업단이니 기업금융팀이니 하는 걸 만들었다. 그게 지금의 IB사업단이다.”

    부동산 PF는 부동산 개발 붐을 더욱 확산시켰다. 시행사들은 수도권에서 더는 개발할 곳이 없자 지방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2006년 하반기부터 부동산 경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면서 분양 대금이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은행권은 이를 눈치 채고 본 PF 대출을 강화했다. 그러다 보니 브리지론에서 본 PF로 갈아탈 수 없어 사업이 늦어지는 사업가들이 생겨났고, 이는 브리지론을 빌려준 저축은행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시행사들은 살아나기 위해 대출 청탁과 시공사 로비에 더 많은 비자금을 쏟아부었다.

    사업 기획에서 시공까지 보통 2~3년 걸린다. 이 때문에 2006년 하반기 부동산 개발 사업 막차를 탄 사업자들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지방에서 타격이 컸다. 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2008년 6월 기준으로 은행권 전체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이 0.64%인 데 비해 강원지역 8.65%, 경북 8.31%로 전체 평균보다 10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부동산업계는 현재 시행사를 3만여 개로 추산한다. 그러나 2개 이상의 개발사업을 추진한 시행사는 1000여 업체에 불과하고, 그중에서 꾸준히 이익을 남기는 곳은 100개사도 안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관행화된 ‘뽀찌’

    돈이 몰리는 곳에 비리가 없을 수 없다. 대형 시행사 관계자는 “부동산 PF 대출에 대해 “대부분 정상으로 이뤄지지만 10% 정도는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반면 저축은행 관계자는 “사기대출, 부실대출은 없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아무리 정치권 등 외부에서 압력이 들어오고, 뇌물 청탁을 한다고 해도 사기당할 줄 뻔히 알면서 돈을 빌려주는 회사는 없지 않은가. 대출은 금융사 사장도 함부로 해줄 수 없다. 각 부서 책임자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대출이 결정된다. 물론 ‘빽’이 있으면 대출 총액이 더 늘어난다든지, 이자가 더 저렴해질 수는 있겠지만 불가능한 대출을 가능하게 할 수는 없다.”

    ‘금융위기의 핵’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하지만 정치권 압력을 통한 대출이나 뇌물을 이용한 부실 대출 사례가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노무현 정부 시절 일어난 부산 민락동 재개발과 부산자원의 PF 불법대출사건이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시공사의 보증이나 적절한 토지감정 절차 없이 은행권으로부터 수천억원의 PF 대출을 받았다는 점이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정치권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했다. 또한 수억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은행 관계자를 구속하기도 했다.

    검찰은 또 2007년 7월 정당한 심사도 하지 않고 시행사에 399억원을 부실대출해준 지방의 상호저축은행 대표를 구속하기도 했다.

    시행사 관계자는 “부동산 PF 대출 과정에서 시공사와 은행권, 공무원에게 일명 ‘뽀찌’를 주는 것은 일상화돼 있다”고 실토했다. 물론 어느 곳도 먼저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시공사에는 알아서 ‘인사’를 해야 의향서가 쉽게 나온다. 공사도급 계약서를 받을 때는 건설회사 본부장에게 분양가가 10억~20억원 하는 대형 아파트 한 채를 주기도 한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특히 은행에서 대출을 해줄 수도 안 해줄 수도 있는 애매모호한 사업은 커미션이 크게 들어간다. 아쉬운 곳은 시행사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에게 촌지를 주는 것도 불가피한 일이다. 개발을 하기 위해선 인허가를 받아야 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인허가가 늦게 나올수록 공사가 늦어져 그만큼 대출이자가 늘어난다. 공무원에게 주는 촌지가 대출금보다는 훨씬 싸기 때문에 시행사로서는 인사를 할 수밖에 없다.”

    시행사가 암묵적으로 써야 할 돈 중엔 금융권 소개 수수료도 있다. 금융권을 연결해준 사람은 정치권 인사일 수도, 금융권 인사일 수도 있다. 이를 전문으로 하는 대출모집 업체일 수도 있다. 총 대출금의 최소 0.5% 에서 많으면 그 10배까지 줘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사기사건까지 발생했다. 2008년 7월, 전·현직 제2금융기관 간부들이 결탁해 유령 대출모집업체를 설립한 뒤 저축은행에 접수된 부동산 PF 대출신청들을 자신들이 모집한 것처럼 조작해 수십억원의 대출모집 수수료를 챙겼다 구속된 사건이다.

    시행사 관계자는 이렇게 나가는 사례금과 각종 로비자금이 평균 공사비의 3~5%는 된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경기가 좋고 분양이 잘 될 때에는 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양이 안 되거나 사업이 중단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행사로서는 제일 먼저 이런 돈을 회수하려 하고, 그 과정에 법적 소송까지 가게 된다.

    2007년 9월 한 시행사가 정치인과 은행직원을 고발한 일이 있었다. 정치인은 그 시행사가 진행한 사업의 인·허가를 도와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았고, 은행직원 역시 대출알선 대가로 수수료를 받았다. 경기불황으로 사업이 무산되자 시행업자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다 여의치 않자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2008년 11월에도 9개 저축은행으로부터 198억원의 부동산 PF 대출을 알선해주고 5억원을 챙긴 대출 브로커를 검찰이 구속했다. 그 역시 사업에 실패한 시행사가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행사로서는 앞에서 얘기한 음성적인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돈은 금융권에서 합법적으로 빌릴 수 없다. 그래서 불법이 동원된다. 초기엔 ‘땅값 부풀리기’를 이용했다. 예를 들어 땅값이 평당 100만원이면 땅주인에게 10만원씩 더 주기로 하고 150만원에 산 걸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렇게 하면 평당 40만원의 비자금을 챙길 수 있었다. 1만평을 개발하면 40억원이나 된다.

    2005년 대구에서 아파트 시행 사업을 하면서 땅값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18억원의 PF 대출금을 빼돌린 시행사가 사기 및 업무상 횡령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엔 탄현지역을 개발하던 시행업체가 토지매입비를 부풀려 PF자금 수십억원을 횡령하고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알게 된 국회의원 보좌관이 회사 대표를 협박해 2억원을 갈취했다. 이 사실을 밝혀낸 검찰은 결국 그를 구속했다.

    다음으로 등장한 수법이 속칭 ‘알박기’다. 개발예정지 안에 미리 친인척이나 지인 명의로 땅을 사고, 그보다 훨씬 비싼 값에 계약하는 것이다. 그 땅을 사지 않으면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PF 대출을 해주는 은행권에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지금은 개발지역 토지 소유주의 80%가 동의하면 나머지는 강제 수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알박기가 불가능하다.

    요즘은 감리비나 설계비 등을 높게 책정한 후 하청업체에서 그 비용을 미리 받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다고 한다.

    부실폭탄

    부동산시장 침체는 부동산 PF 대출에 직격탄이 됐다. 그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금융권 전체의 부동산 PF 대출은 2008년 6월 말 기준으로 은행 47조9000억원, 저축은행 12조2000억원, 보험사 5조3000억원, 증권사 3조원, 여신전문사 4조3000억원, 부동산펀드 8조원 등 총 80조7000억원 규모다. 여기에 AB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 등 PF 연관 대출을 더하면 96조원 이상이라고 금융권은 추정한다.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규모(잔액 기준)는 2004년 말 3조4800억원에서 2006년 말 21조2700억원으로 급증했다. 금융감독원이 2007년 하반기부터 저축은행 PF 대출을 규제하면서 12조2000억원으로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 대출액 65조원 중 19%라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연체율이 계속 상승한다는 점이다.

    2006년 6월 말까지만 해도 5.8%였던 연체율은 2007년 12월 말 11.4%, 2008년 6월 말 14.3%, 2008년 9월 말 17.0%로 급상승하고 있다. 여기에 영업정지된 저축은행(홍익, 경북)의 PF 대출과 워크아웃 프로그램이 편입한 연체 PF 대출을 포함하면 실질적으로는 20%에 달한다고 금융권은 추정한다. 금융감독원은 상장 저축은행 중 PF 대출 연체율이 30%가 넘는 곳은 2곳이라고 밝혔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연체율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에서 최근 저축은행이 부동산 PF 대출을 해준 899곳 사업장을 직접 조사했다. 그 결과 이 가운데 12%인 1조5000억원 정도가 사업성이 없어 부실 소지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도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2006년 말 25조8608억원이던 부동산 PF 대출이 2008년 6월 말 47조90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총 대출액이 23.9% 늘어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세다. 연체율도 2008년 6월 0.64%였으나 9월엔 1%에 육박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저축은행이 부실 PF 대출을 감춘다는 점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재무제표를 꾸미거나 금융감독원에 부실 규모를 제출할 때 문제가 없는 대출인 것처럼 허위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부실이 크다는 게 밝혀지면 생존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살아남으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저축은행 부동산 PF 부실 규모는 현실과 다르다”면서 “앞으로 숨어 있는 부실이 드러나면 지금보다 사태가 훨씬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융위기의 핵’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은행의 부실 PF 대출 ‘돌려 막기’도 문제라고 한다. 부동산 PF 대출을 받은 미분양 아파트 등을 다른 은행이 가치를 평가해 담보대출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은행끼리 ‘부실폭탄’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일부 건설사가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한 것처럼 속여 금융기관으로부터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자금을 대출받은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검찰이 2008년 11월 브로커를 고용해 200여 명의 바지 계약자를 동원, 금융권으로부터 220여억원의 중도금 대출을 받은 한 중견 건설사를 적발한 것.

    건설사 관계자는 “계약률이 떨어지고, 금융권 등으로부터 부동산 PF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지자 공사비 조달을 위해 벌인 것으로 보인다”며 “다른 건설사도 대부분 사정이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부동산 PF에서 대규모 부실이 터지고, 이로 인해 대그룹 중 한두 곳이 부도사태에 휘말리는 상황이 오면서 종합지수가 700까지 떨어질 것”이란 절망적인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저축은행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부실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항변한다. 이들은 사업장의 땅값이나 토지 매입률, 분양 사업성 등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부실 규모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언론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크지는 않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도 “부동산 PF에 참여한 저축은행이 전체 106개 가운데 30여 곳에 불과하고, 부실 사업장도 알려진 것만큼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예외적인 사례를 근거로 전체 저축은행을 위험하다고 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얘기다.

    우량 PF 채권만 사겠다는 캠코

    실제 건전한 저축은행도 많다. “자체 건설사 심사시스템(CRS)을 통해 건설사 재무제표와 시공 이력 등을 철저히 평가해왔다”는 저축은행은 연체율이 한 자릿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곳 관계자는 “일정 금액 이상의 PF에 참여할 경우 CRS 외에도 심사 경험이 풍부한 인력으로 구성한 여신심사위원회에서 추가 심사를 한다. 2단계 심사를 통해 부실 우려가 높은 프로젝트는 배제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는 “우리는 심사위원회에서 철저한 심사를 해왔기 때문에 연체율이 낮은 편이다. 게다가 2년 반 전부터 은행 자체 충당금을 축적해놓는 등 리스크 관리를 충분히 해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저축은행 PF대출 부실 문제 해소를 위해 자산관리공사(KAMKO)를 통해 1조3000억원 규모의 부실 PF 대출 채권을 매입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한 은행, 보험사, 증권사가 보유한 부실 PF 대출에도 금융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출발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자산관리공사는 최근 PF 채권 매입이 가능한 사업장을 분류해 해당 저축은행에 통보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부실 사업장이 아니라 우량 사업장이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토지 매입을 70% 이상 진행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감정가의 70%에 매입하되 현금은 70%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채권을 매입하겠다고 한다. 게다가 우량 사업장만이 대상이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로서는 채권을 팔 이유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상관없이 금융계와 건설업계에서는 ‘공적자금 투입으로 현재의 부동산 PF 부실을 막을 수 있느냐’는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서 PF 대출 부실이 증가하는데, 어디까지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건설업계는 현재 ‘동작그만’의 상태다.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 상암동 랜드마크 타워까지 금융권에서 PF 계약을 연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금융기관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건설사도 마찬가지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150억원을 손해 보게 됐다며 하소연했다. 괌에 700가구 규모의 콘도미니엄을 짓기로 도급계약까지 맺은 건설사가 갑자기 해지를 통보했다는 것이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공사비 1800억원 중에 1430억원을 모았다. 설계는 물론 모델하우스까지 만들어놨다. 나머지 금액은 대출을 받기로 구두계약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건설사에서 갑자기 계약을 취소했다. 요즘 같은 경기로는 분양이 힘들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 탓에 우리는 선투자한 150억원만 날리게 됐다.”

    신규 대출을 중단한 것뿐 아니라 기존 대출도 연장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아직 만기가 안 된 대출도 빨리 갚으라고 독촉하고 있다고 한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BIS 자기자본비율 8%’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외환위기 당시 금융당국은 자기자본비율이 8%가 안 되는 은행을 모두 정리해버렸다. 자본 확충이 곧 생존과 직결되는 셈이다. 현재 일부 은행의 BIS 비율은 10%대 아래로 떨어진 위기에 빠져 있다.

    ‘BIS 8% 노이로제’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멀쩡한 시행사마저 부도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한 중견 건설업체 자금 담당자는 “부동산 PF 만기가 돌아오는데 금융권에서 만기 연장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돈을 가져다 쓰라고 사정할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선 PF 대출을 조기 상환하라고 압박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BIS 때문인 줄 알지만 해도 너무 하다. 그렇게 해서 자기들 BIS만 맞추면 뭐하나. 건설사들이 부도나면 어차피 은행 BIS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처럼 금융위기가 건설사 부실로 이어지고, 다시 건설사 부실이 금융기관 건전성을 위협하는 악순환을 불러올 위험이 높다. 대한건설협회는 2008년(11월 말 기준) 부도가 난 건설사가 365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60개사)보다 40.4% 증가했다고 밝혔다.

    부도까지는 아니더라도 47개 대형 건설업체 중 절반이 넘는 25개 건설사의 신용 등급을 신용평가기관이 하향조정했다. 신용 등급이 떨어지면 건설사들이 돈을 빌릴 때 더 많은 이자를 물거나 아예 돈을 빌리지도 못하게 된다. 부도 위험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건설사의 신용등급 하락은 은행의 신용도 하락시킨다. 은행으로선 건설사에 빌려준 대출금의 위험도가 높아져 결과적으로 BIS 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도 건설사와 금융권 위기의 큰 변수다. 건설사나 시행사는 분양수입 등 앞으로 들어올 현금을 담보로 보통 1~3개월마다 기업어음을 발행해 추가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이것이 ABCP다. 급전을 돌린다고 보면 된다. 금융감독원은 ABCP 규모를 15조~18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융권으로서는 이 돈을 빨리 회수하고 싶을 것이고, 건설사로서는 이것이 끊어지면 자금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 돼 부도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자기들이 현재의 경제위기 주범인 것처럼 손가락질받는 게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부동산 PF 부실 탓에 생긴 금융권 위기는 부동산시장이 침체한 때문이지 우리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제 전반의 문제라는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따라서 부실은행 정리 주장에 대해서도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 정부에선 우량 저축은행이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합병하길 바란다. 과거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례가 몇 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실은행 정리는 연쇄적 파급효과가 크다. 그게 디폴트로 가는 지름길이 될지, 금융권 전체가 회생하는 길이 될지 속단하기 힘들다. 아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단기 성과주의의 결과?

    이들의 주장처럼 부동산 PF 대출 부실은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권의 방만 경영, 방만 대출이 한 원인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은행권이 수익을 늘리기 위해 과도하게 외형 경쟁을 벌인 게 크게 작용했다. 그 배경엔 임원들이 자기 임기 중에 실적을 늘리려는 단기 성과주의가 한몫했다”고 비판했다.

    건설사 관계자는 “금융권의 PF 대출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지금까지 부동산 PF는 사업 아이템보다는 어떤 건설사가 지급 보증을 맡느냐를 더 중요시했다. 그러다 보니 시공사는 지급보증 위험 부담을 이유로 공사비를 부풀렸고, 시행사는 비자금을 챙기는 등 부동산 거품을 만들었다. 그 거품이 오늘의 위기를 만들었다. 지급보증제도를 없애고 금융기관이 처음부터 PF 사업을 책임 있게 감독하면 이런 거품이 빠질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부동산시장을 살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아직까지 정부도, 금융계도, 건설업계도 지금의 부동산 PF 대출 부실 위기를 해결할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책임전가와 책임회피에 더 열중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있다. 그래서 이 위기를 더 심각하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부동산 PF 대출 규모 추이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 추이

    부동산시장 침체로 추진 중이던 재개발 사업이 중단돼 건설사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영업 정지당한 저축은행 앞에 모여든 예금주들.

    부동산 PF 대출 부실이 저축은행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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