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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14세 차이 극복하고 박근령과 결혼한 괴짜 신동욱

“이 사람도 나처럼 무일푼 … 목숨 바쳐 지켜줄 것”

  • 이정훈│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14세 차이 극복하고 박근령과 결혼한 괴짜 신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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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마당은 비만 오면 질퍽거렸기에 대청 앞에 징검돌이 있었다. 동욱이가 태어나자 아버지는 그 돌에 동욱이 이름을 새겨 넣었다. 내가 그것을 보고 “왜 새깁니까” 하고 물으니, 아버지는 “동욱이는 천왕봉과 집 뒤에 있는 왕산(王山)의 기운을 함께 받고 낳기에 기가 너무 세, 밟아줘야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누님들께 ‘제 이름을 새긴 징검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데요? 누님들은 보셨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전부 고개를 가로저어요. 그러자 형님이 ‘네가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에 내가 뒤집어놓아 아무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시고, 대청 앞에 있는 길이 60cm쯤 되는 돌을 뒤집어 흙을 닦아냈습니다. 그러자 ‘申東旭 光一’이라고 새겨진 한자가 보였습니다. 형님은 이름을 밟으면 불길하다는 생각에 뒤집어 놓았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돌은 부산 형님 댁에 보관돼 있습니다.

제가 지금 아내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 돌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로 신동욱이 하나의 빛을 낸 것 아닙니까. 그러니 이젠 죽을 것 같지 않습니다. 결혼하기 전, 반대하는 사람들은 결혼을 막으려고 무슨 짓이든 하려 했겠지만, 지금에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가 빠진 카리스마

청산유수. 집중력이 좋은 것 같았다. 자기 말에 자기가 취해서 말하는 버릇이 있는 것도 같았다. 웅변을 했다면 아주 잘 했을 것이다. 그의 말에는 사람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었다. 기가 약한 사람은 쉽게 빨려들 것이다. 그러나 카리스마는 말솜씨 하나로 형성되지 않는다. 실력과 재력과 인품도 갖춰야 한다. 사회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이가 빠진 카리스마’를 포착해낸다.



자기 이야기에 빠진 그를 꺼내놓을 필요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눈치가 빨랐다. 그는 “나는 어떤 것도 속일 수 없다. 나를 공격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기에 나의 모든 것은 발가벗겨져 있다. 내가 거짓말을 하면 그 순간 나는 바로 매장된다”며 어릴적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1968년 2월 태어난 그는 금서국민학교를 거쳐 경호중학을 다니다 2학년 때 부산에 살고 있던 형님 댁으로 가, 사상중학을 졸업했다. 소년의 꿈은 정치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산 구포의 성도고등학교에 입학해 학생회장을 지냈다. 고등학생 시절 그는 이따금 가출을 하며 방황했다고 한다.

“형님 내외분의 형편은 긴박했다. 아들 하나에 딸 셋을 두었는데, 큰조카가 나와 세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러니 형수님이 하루라도 허리를 펼 수 있었겠는가? 나는 학생회장까지 지내고 졸업했으나, 졸업식 날 아무도 축하해주러 오지 않았다. 꽃다발도 없이 교문을 나서면서 나는 ‘세상은 다 그런 거야…’하며 내가 나를 위로했다.”

그는 “정말로 학생회장을 했느냐”는 질문에 “당시에는 학생 선거로 뽑았기에 내가 뽑힐 수 있었다”라고 대답했다. 목소리가 좋고 배짱이 있다면 학생들을 휘어잡아 선거에서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더 이상 확인해보지 않기로 했다. 그는 경남대 정외과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그리고 ‘신군’으로 불리며 부산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잡부로 일하고 저녁에 단과학원에 나가 공부했다.

이때 그는 한 잡지에서 빨간 폰티악을 몰고 다니면서 ‘가왕(歌王)’ 조용필 씨와 맞먹는 수익을 올린다는 성우 배한성씨 기사를 읽었다. 그는 ‘돈이 고팠으므로’ 자신의 목소리가 좋은 만큼 성우나 배우가 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이듬해 2년제인 부산 경상전문대학 방송연예과에 88학번으로 입학했다. 이 학교 선배로는 배우 송강호씨가 있고, 후배 중에는 가수 배기성씨와 탤런트 장혁씨, 코미디언 신봉선씨가 있다.

1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그는 LPG 충전소에서 일을 하다 육군 8사단 훈련소로 입대했다. 그리고 바로 전경으로 차출돼 서울 용산경찰서에 있는 서울기동대 15중대에 배치됐다. 일경(一警) 시절 그는 하극상이라는 죄목으로 영창에 갔다오기도 했다.

‘난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

영창에서 나온 그는 지금 타워팰리스가 들어선 서울 도곡동의 93중대에 배치됐다. 93중대는 백골단으로 불리며 시위자들을 체포하는 조직이었다. 1992년 1월 수경(首警)으로 제대한 그는 바로 복학했다. 복학과 동시에 성우나 배우, 탤런트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렸다. 그는 만들어지는 사람보다는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연출의 중요성을 안 그는 부산 MBC가 주최한 영상공모전에 도전해 연출상과 작품부분에서 금상 없는 은상을 받았다고 한다.

졸업을 앞둔 그는 문화콘텐츠 분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거원영역(映易·영화무역, 지금의 ‘거원시네마’)에 입사했다. 그는 주로 기획실에서 일했는데 1997년 거원영역이 무너졌다. 그 뒤치다꺼리를 하던 그는 1998년 초 천안에 있는 남서울대학 광고홍보학과 야간부 3학년에 편입했다. 그리고 IMF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그해 8월 ‘씨뉴(cinew)필름’이라는 영화 수입회사를 차렸다. 사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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