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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법 한약재 범람은 보건복지가족부 때문?

‘국산으로 위·변조할 수 있게 법 고치고, 10년 동안 단속도 전무(全無)’

  • 최호열│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중국 불법 한약재 범람은 보건복지가족부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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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8년 국산 한약재 생산량 4500t 불과?
  • ● 수입 한약재 유통경로 파악 불가능하게 만든 보건복지가족부
  • ● ‘자가포장 금지’ 입법예고하고도 최종결재 안 나는 까닭
  • ● 국내 신기술로 중국한약재 품질 높여라?
  • ● 보건복지가족부 “법 잘못 개정한 것은 규제개혁 때문”
  • ● “한약재이력추적관리제, 유전자잉크 라벨로 유통질서 바로잡겠다”
중국 불법 한약재 범람은 보건복지가족부 때문?
보건복지가족부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중국 등에서 약용과 식품으로 수입된 한약재가 7만7000여t, 국내 한약재 생산량이 6만여t에 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약용농작물 생산 농민들이나 한약재 상인들은 정부 통계를 믿지 않는다. 농림수산식품부의 국산 한약재 생산량 통계가 주먹구구식으로 부풀려졌을 뿐 아니라, 식품으로 수입되는 한약재는 정부 통계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경동시장에서 만난 한 약재상은 “전국적으로 유통되는 국산 한약재의 70~80%는 중국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특히 “중국산과 국산을 7대3의 비율로 섞어 국산이라고 하면서 팔면 전문가도 육안으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우리한약재살리기운동본부 권희대 사무총장도 “70%가 중국산이라고 보면 된다. 최근 우리 단체가 보건복지가족부와 함께 한의원에 유통 중인 5개 품목 430여 개 제품을 수거해 조사했는데, 250개가 넘는 제품이 육안검사에서부터 중국산이거나 중국산과 혼합된 것으로 의심됐다. 정확한 조사를 위해 성분검사를 하고 있는데 최소 80~90%는 원산지를 위조한 것으로 판명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약재 위·변조는 다양한 수법이 동원되는데다, 수입업자와 도소매상은 물론 생산농민들까지 결탁돼 있어 적발이 어렵다. 예를 들어 수입업자가 식용으로 작약을 들여와 농가에 넘기면 농민은 자신이 재배한 작약과 섞어 말린 뒤 절단해 국산으로 유통시킨다. 구기자나 산수유의 경우 토종 종자를 중국으로 가져가 현지에서 재배해 들여오면 육안은 물론 유전자 감별로도 국산과의 식별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중국산 식품과 약용 한약재를 국산으로 불법 유통하는 이유는 단 하나, 가격 차이 때문이다. 한의원 공급가를 비교해보면 수입 한약재와 국산 한약재 가격이 3~5배 차이 난다. 예를 들어 천마는 수입 약재가 1만원(kg당)인데 국산은 최고 3만5000~5만원이다. 작약은 수입 약재가 1600~2800원(600g당)인데 국산은 6000~9400원에 거래되고 있다. 황기는 식품으로 들여오면 kg당 350원 정도이고, 도매상과 소매상을 거쳐도 2000~ 3000원이다. 하지만 약재로 들여온 수입산 황기는 소매가가 6000~7000원, 국산 한약재는 8000~3만원(한의원 한약제조가격)에 거래된다. 엄청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국산 한약재는 뒷전으로 밀려 한의원이나 약국, 소매상들이 자기들 업소에서는 국산 한약재를 판다는 걸 입증하기 위한 최소한의 양만 거래되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권 사무총장은 “단속을 나갔을 때 한 소매상에 당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구입장부를 보니 2006년도에 국산 당귀를 25kg 구입한 게 전부였다. 그걸 지금도 팔고 있다는 것인데,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식품으로 수입된 것을 국산 한약재로 팔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약 생산 농민은 “2007년 정식으로 들여온 약용 작약 물량은 7t이었다. 국내에서 생산된 작약은 농림부 통계로는 1100t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300t 정도다. 그런데 지금 전국 한약재시장에서 유통되는 작약이 2000t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전통약용농산물생산자총연합회 박건홍 정책위 의장은 “얼마 안 되는 국산 한약재조차 판매가 안 돼 농가마다 재고로 쌓여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다 보니 1987년 20만t 규모이던 생산량이 2007년엔 5만t으로, 2008년엔 4500t으로 격감했고, 생산농가도 5000호로 줄었다. 이대로 가면 수년 안에 국산 한약재는 전멸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가족부는 사실과 다르며 6만여t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자가포장제

박 의장은 “한약재시장이 이렇게까지 혼탁해진 것은 전적으로 보건복지가족부에 그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98년 관련 규정을 개악(改惡)해 중국산 한약재가 국산으로 둔갑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었을 뿐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불법유통을 묵인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해 이익을 얻는 관련단체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국산 한약재 불법 유통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농산물시장이 개방되면서 식용으로 들여온 중국산 한약재가 국산으로 둔갑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에 보건복지가족부는 1996년 수입 약용 한약재와 국산 한약재에 대해 규격제품만 유통되도록 하는 포장표준화제도 실시를 예고했다. 정부가 허가한 제조업체에서만 한약재를 가공 포장하도록 함으로써 중국산 한약재의 불법 유통을 근절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자 일부 한의사, 한국한약도매협회, 한국생약협회 등에서 극렬하게 반대했다. 수매구조가 취약한 ‘한약재 소량 생산 농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게 박 의장의 이야기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를 낳았다. 당초 1996년 관련 규정을 예고하며 한약판매업자에게 2년 동안만 규격품 포장을 허용한다는 유예조치를 두었는데, 1998년 관련 규정을 개정하면서 2년 동안만 유예한다는 내용은 없애고 ‘한약판매업자가 농민이 자체 생산해 단순 가공·포장한 한약재를 적합하게 단순 가공한 것은 판매할 수 있다’는 조항은 그대로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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