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호

이명박 인수위 vs 오바마 인수위

정책 헤집어 갈등 부르는 한국 비전 논하며 ‘통합’ 그리는 미국

  • 홍규덕│숙명여대 사회과학대학장 kdhong@sookmyung.ac.kr│

    입력2009-01-08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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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 활동은 조용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새로운 각료 인선을 조기에 발표함으로써 미국 국민과 세계 여론에 당선자의 의지와 주안점을 강력히 부각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는 2008년 초 갖가지 논란에 휩싸였던 이명박 인수위의 활동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1년의 시차를 두고 이뤄진 두 나라 인수위의 활동을 비교하는 작업은, 권력 전환기에서 한국이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고 새로 주력할 부분을 찾아낸다는 취지에서 의미심장하다. 17대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상근자문위원으로 일한 전문가가 이를 비교, 분석하는 글을 ‘신동아’에 보내왔다. ‘편집자’
    이명박 인수위 vs 오바마 인수위
    비록 5년마다 겪는 일이지만 대통령직인수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훌륭한 대통령을 만드는 일은 훌륭한 준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17대 인수위의 활동은 이른바 ‘노 홀리데이(No Holiday)’ 원칙으로 유명세를 탔다. 새벽에 나와 밤늦게까지 주말도 없이 모두 열심히 일했지만, 모두들 ‘중요한 전략적 결정은 다른 상위 부서나 어디에선가 소수 인원이 별도로 준비하고 있겠지’라는 일말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회고다.

    미국 국무부 전직 관료인 커트 캠블과 텍사스주립대 린든존슨 행정대학원의 제임스 스타인버그 학장은 최근 ‘워싱턴 쿼털리’에 ‘대통령직 전환기의 외교 및 국가안보 도전 관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이들은 72일간 이어지는 인수기간은 미국이 당면한 엄청난 위기들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선거캠페인 당시의 공약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과 팀워크를 고려하지 않은 인사는 갈등과 혼선의 근본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특히 정책의 내용보다는 사람의 선택과 정책결정의 과정을 제대로 만드는 일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외교안보정책의 성공을 위해 대통령 당선자는 우선순위를 정확하게 짚어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들이 오바마 인수위에 건의하는 네 가지 사항은 우리로서도 곱씹어볼 대목이 적지 않다. 첫째, 큰 결정은 가능한 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력을 확보한 후에 내려야 한다. 둘째, 캠페인 당시 생각으로부터 진화해야 한다.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여건을 소화한 후 새로운 상황에 맞게 적응해나가야 한다. 셋째, 국가안보에 관한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국민적 통합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따라서 의회와의 관계를 조기에 개선하고 특히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지지기반을 넓히며 대(對)언론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기상황에 대한 준비를 충분히 갖춰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사람이다



    오바마 인수위는 자신들의 활동내용 자체보다는 누가 앞으로 미국의 위기 진화를 견인할 것인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자국민과 세계 여론에 희망과 안심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일단 전략적 방향을 잘 세워나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와는 단연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명박 인수위의 경우 그 활동이 국가 비전을 세우는 일에 집중되기보다는 세세한 정책 내용에 편중됨으로써 국민의 관심을 지나치게 자극했다. 특히 휴대전화 수신료 인하, 출퇴근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공무원시험 가산점, 전문직 탈세 처벌, 공항귀빈실 사용, 영어몰입교육 등 국민의 생활편의나 제도개선과 관련해 찬반 여론이 비등했고 정치적 논쟁으로 번져나갔다. 그렇다 보니 결국 큰 방향에서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거나 국민 여론을 통합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특히 미국과 비교해볼 때 가장 큰 아쉬움은 각료의 인선이 조기에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청와대 수석보좌진용이나 각료 인선이 인수위 활동 종료시점에 가서야 이루어짐으로써 국민에게 신선한 기대감을 줄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지 못했다.

    물론 당선자 입장에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다 보니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지만, 결국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를 두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첫 인선부터 편중된 인사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소위 ‘고소영’ 내각이라는 불편한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일부 지명된 인사들마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는 등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데 실패했고,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위해가 됐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물론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임 정부와의 정치적 갈등관계가 있었음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성향의 정부로부터 권력을 넘겨받는 수직적 정권교체가 아닌 다음에야 정권 인수과정이 순조로울 수는 없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고위 공무원들의 임기를 보장하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실제로 임기 마지막까지 자신의 인사권을 행사했다.

    정치 지형의 한계

    그뿐만 아니라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가 구상하고 있던 통일부, 여성부, 정보통신부, 해양부의 폐지 등 소위 ‘작은 정부’ 구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인수위가 시행한 정책부서 평가에 대해서도 반성문을 쓰라는 의미로 들린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인수위가 각 부처 실국장들에게서 브리핑을 받는 과정에서도 이들을 취조하듯 나무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인수위가 한창 활동 중인 시기에 노 대통령은 선거 당시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이명박 특검법안’에 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당선자 측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치적 민감성은 10년 만에 진보정권에서 보수정권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불가피한 상황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 대통령으로 전환하는 과정과 비교하면 순조로운 전환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해도 아쉬움은 남는다. 미국의 경우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에서 부시 공화당 행정부로 이어지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임기말 북한과 정상회담을 진행해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는 대북지원 약속을 한다거나 고위 공직자들과 위원회의 인사를 강행한 점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이념적인 갈등과 대결의 정치가 부드럽고 원만한 인수작업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2008년 4월9일로 예정됐던 총선은 모든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 인수위에서 진행하는 새로운 정책구상 발표는 항상 선심용으로 의심받거나 매도됐고, 진보언론이나 시민사회그룹은 그 문제점을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견제만이 한나라당의 독식을 저지하는 유일한 대안으로 간주됐다. 구(舊) 집권여당의 경우 대통령선거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총선에서도 패배한다면 열린우리당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 보고 물러설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중구난방 연합군의 부작용

    캠블과 스타인버그가 지적했듯 인수위에서는 세부적인 정책보다는 인선에 비중을 두고 새로운 정책과정을 만드는 업무의 흐름을 개선하는 일에 주력했어야 했다. 그러나 사실상 한국 상황에서는 이런 시도가 불가능했다.

    당선자는 매사에 신중을 기하다 보니 1기 이명박호(號)에 승선할 인원을 고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진했다. 또한 당선자가 여러 경로를 통해 엄선한 인원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너무도 냉혹했다는 점에서 미국과 현저히 비교된다. 조각을 미리 할 수 없는 상황을 염두에 뒀다면 인수위원 선정에서도 이들을 정부의 주요 직책에 발탁할 가능성을 갖고 신중하게 선발했어야 했다.

    그러나 인수위에 합류한 인원들은 당, 학계, 관련부처 공무원, 선거캠프 등에서 골고루 차출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업무분담이나 긴밀한 업무협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미국의 경우 대선후보로 확정되는 순간 이미 인수팀이 가동되기 시작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러한 움직임은 자칫 경솔함이나 오만함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가동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은 2000년 조지 W 부시 당선자가 플로리다 개표 상황이 늦어지는 바람에 취임을 불과 5주 남긴 시점에서 각료 후보군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때의 혼선을 염려한 오바마 후보는 일찍부터 존 포데스타를 중심으로 비공식 인수팀을 운영해왔고 필요한 사람들을 선발하는 등 우리보다 훨씬 유리한 처지였다. 물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힐러리 클린턴 진영의 인사들을 폭넓게 포용하는 과정에서 캠프 내 주요 인사들로부터 불만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탕평인사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워낙 높기 때문에 이런 불만을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인수위 차출이 곧 차기 행정부 핵심 포스트로의 승진을 담보하다 보니 인수위 진입을 희망하는 사람은 항상 넘쳤고, 캠프에서 일했던 많은 이에게 참여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없는 당선자 측근들의 고민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인수위가 자리했던 삼청동 금융연수원은 그야말로 너무도 비좁은 공간이 됐고 시작부터 효율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뼈아픈 것은 이명박 정부의 전략적 방향에 관한 보고서나 기초적 문건이 미리 준비돼 있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인수위 참가자들은 당선자의 방침을 충분히 숙지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인수위 활동에 들어갔다.

    통제해야 할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대부분의 실무위원이나 자문위원은 그저 각 부처의 견해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관료 출신의 경우 그 속성상 새 정부의 입장에서 자신의 부처를 상대로 하는 과감한 개혁안을 만들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었다. 이명박 당선자는 시무식 연설을 통해 일본 대장성 관리들이 개혁을 위해 스스로 자신의 조직을 정리하는 구국의 결단을 내렸던 점을 본받자고 역설했지만, 당시는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하루하루 주어진 임무만을 해내기도 역부족이었다.

    누가 전략을 그릴 것인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수위 구성원들 가운데 전략적인 방향을 논의할 핵심 인원을 구분하지 못했던 점은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구성원 모두를 동원하다 보니 고급인력들이 100대 과제 선정 같은 소모적인 작업에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국가안전보장회의(NSC)나 비상기획위원회 같은 중요한 조직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은 최대 실책이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의 처리 문제가 대통령에게 두 시간 이상 지연 보고된 점은 분명 이와 연결해 해석할 수밖에 없다. 각종 자연재해가 점차 늘어나고 테러 위협이 세계 각국으로 확대되는 현 상황에서 인간안보를 담당할 비상기획위원회의 기능을 재조정하지 못한 채 사장시켰다는 점은 앞으로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오바마 인수위도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NSC와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효율적인 운영이다. 결국 답은 한두 사람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타인버그는 미국 역사상 라이벌 관계에 있던 몇몇 인사 사이의 경쟁이 팀워크를 해쳤던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내정자나 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내정자의 개인 역량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NSC 출신 인사들의 월권 논란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직 자체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년간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약점도 결국 NSC 폐지 내지 축소와 무관치 않다.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대북정책은 물론 국제안보 측면에서 조직적인 정책 전개가 거의 불가능했다. NSC가 단순히 위기관리 기능만을 담당하는 부서라고 생각하는 데도 문제가 있다.

    미국의 경우 미래전략비전을 담당하는 부서를 안보보좌관 밑에 두고 있음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안보보좌관이 매일 발생하는 업무 때문에 미래전략 방향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도록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반복되는 일상에 몰두할 때 하버드 법대 학장 출신의 로버트 블랙윌이 중국을 견제할 인도와의 동맹관계를 새롭게 개척하고 훗날 인도대사로 발령을 받고 나간 일화는 유명하다. 큰 그림을 그릴 일손을 따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인수위의 ‘교육 기능’

    5년 뒤를 생각할 때 미국처럼 각료를 조기에 선정하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부서를 책임질 장·차관이 인수위 소속 자문위원들과 함께 향후 진행할 전략적 방향이나 도전과제들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상황대처능력이 훨씬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순조로운 전환을 위해 각 부처와 인수위 간의 업무협조체제가 잘 유지되고 있다. 수많은 업무를 단기간에 모두 검토하게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다. 따라서 각 부처는 단기, 중기, 장기 과제로 나누어 인수위 핵심요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자료를 정리하고 주요 쟁점 사항에 대한 정부 입장을 자세히 설명해주도록 노력하고 있다. 특히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경우 전환 노력이 순조롭고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인수위 팀은 게이츠 장관의 그러한 역량에 깊이 감동받았다고 미국 주요 언론은 전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능력이 그의 국방장관 유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경우에는 인수위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새로운 인원들이 마지막 순간에 일부 청와대 수석보좌진에 수혈되기도 했다. 이는 책임을 부여받은 당사자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두 달 반 정도의 인수위 활동기간 중 참여인원과 팀워크를 다지고 많은 관련 부처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드는 경험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주요 위치에 임명할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인수위에 소속시켜 충분한 경험을 쌓도록 했어야 했다.

    미국 인수위가 한국과 다른 가장 중요한 차이는 각료 후보군에 대해 교육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만 있던 후보나 기업에 오래 종사했던 이들이 어떻게 언론을 다루고 의회와의 관계에 대처해야 하는지에 관해 최소한의 교육이나마 시키고 있음은 부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각료 구성원이 일찍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은 자연히 인수위 소속 개개인의 면모나 그들의 발언, 말실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오보도 많았고,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보도한 내용이 의도와 관계없이 급속히 정치쟁점화하는 경우가 있었다. 전체 인수위 기간 가운데 단 하루도 TV 화면에 인수위 소식이 나오지 않은 날이 없었다.

    과도한 보도와 관심은 결국 무리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고, 언론과의 관계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언론들이 인수위의 구체적인 활동 내용에 대해 되도록 보도를 자제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주요 언론이 인수위 구성원들의 활동보다는 새로 임명된 각료들과 그들의 미래정책 구상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명박 인수위 vs 오바마 인수위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자리했던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의 당시 모습.

    국민통합을 위한 신구 조화

    국제 금융위기의 해결을 위해 1분1초도 낭비할 수 없다고 밝힌 오바마 당선자는 재무장관과 국가경제위원장,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과 사무국장, 백악관 예산국장 등 경제팀 명단을 11월24일과 25일에 걸쳐 발표했고, 12월2일에는 외교안보팀 인선을 공개했다. 클린턴 사단의 대표주자들이 인수위에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충분히 예상된 인사이긴 하지만, 위기상황에서 오바마 당선자는 새로운 실험을 감행하기보다는 경험 많은 인사들을 기용하는 신중함을 선택했다.

    뉴욕연방은행 총재를 지낸 티머시 가이스너를 재무장관에, 하버드대 총장 출신으로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한 로런스 서머스를 국가경제위원장으로 임명함으로써 공격적인 자세로 경기침체를 반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일자리 창출과 주택문제, 금융감독 개선을 책임질 백악관 경제회복자문회의 의장에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임명했고, 사무국장으로 실무를 책임질 자리에는 자신에게 경제 자문을 해준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대 교수를 임명했다. 굴스비 교수는 대공황 전문가로서 당선자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백악관 예산국장에 피터 오스자그 의회예산국장을 임명하면서 오바마 당선자는 모든 예산을 각 페이지와 항목별로 철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불필요한 예산을 공격적으로 줄여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당선자의 행보에 미국 국민은 신망과 기대를 아낌없이 보내고 있고, 경제팀 인선 결과에 대해 미국 내 여론은 물론 국제사회까지 적극적인 지지를 밝히고 있다.

    안보팀 구성 역시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민주당 경선 당시 본인의 최대 라이벌이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에 임명하고, 로버트 게이츠 현 국방장관을 유임시키는가 하면, 해병대 4성 장군 출신인 제임스 존스 전 NATO 사령관을 안보보좌관에 임명한 것은 이번 인사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무장관에 임명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역시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던 거물로 유엔 대사와 에너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 조예가 깊은 히스패닉계의 대표주자란 점에서 리처드슨의 입각은 오바마 1기 내각의 깊이를 더해줄 수 있는 요소라는 평을 받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 대통령과 조화로운 팀워크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있긴 하지만, 국민들은 힐러리 임명에 69%, 게이츠 유임에 80%의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번 인사에 대한 여론의 지지율이 78%를 상회하고 있음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부시 첫 내각 임명 당시의 65%, 클린턴 첫 내각 당시의 67%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수치다.

    필자의 눈에 흥미로운 것은 선거기간 내내 오바마 캠프에서 활동했던 수전 라이스 전 국무부 아프리카담당 차관보가 유엔대사로 내정됐다는 사실이다. 당선자는 이와 함께 유엔대사 자리를 장관에 준하는 위치로 격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는 향후 미국의 대(對)유엔정책이 어떻게 변화할지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44세의 젊은 나이에 유엔대사가 된 라이스는 아프리카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 필요성과 평화유지군(PKO)의 역량 개선 문제에 많은 관심을 표명해왔다. 스탠퍼드대를 졸업하고 로즈 장학생으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라이스는 전임 행정부의 콘돌리자 라이스처럼 대통령의 관심과 지원을 한몸에 받을 인물로 보인다. 콘돌리자 라이스가 46세에 첫 관직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수전 라이스가 더 빠른 셈이다. 그런 그가 유엔을 맡게 됐다는 사실은 미국이 그간의 오만한 이미지를 벗어나 국제협력 및 다자외교를 강화해나갈 창구로 유엔을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이와 비교하면 유엔에 대한 이명박 인수위의 접근법은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말로는 ‘글로벌 코리아’를 내걸었지만 유엔과의 새로운 협약을 맺는 일에는 관심을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여건이 좋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아쉬울 따름이다. 새로운 인물을 발탁해 이명박 정부의 포커스가 바뀌고 있다는 인상을 세계 각국대표에게 심어주는 일도 하지 못했을뿐더러, PKO에 대한 기여 확대나 글로벌 리더를 세계 오지에 보낸다는 한국판 평화봉사단 파견계획은 집권 1년이 지나도록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

    성급한 조직개편의 후유증

    전체적으로 오바마 당선자는 경험 있는 인사를 입각시킴으로써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미국의 대외 이미지 개선과 지도력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특히 안보정책에 관한 한 전환기를 잘 관리해나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게이츠를 유임시킨 국방부만 해도 부장관과 차관은 각각 리처드 댄지그 전 해군장관과 미셀 풀로니 전 국방부 차관보 등 자신의 선거참모로 일했던 사람들을 임명함으로써 신구(新舊)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당초 국방장관 하마평에 올랐던 댄지그를 장관에 바로 임명하지 않은 것은 현 장관을 보좌해 이라크 철군 문제 등 주요 현안을 무리 없이 처리하도록 시간을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캔터와 스타인버그의 논문에 등장한 ‘여유를 갖고 대처하기’의 전형인 셈이다.

    반면 이명박 인수위의 경우는 전임 행정부에서 문제가 된 통일부를 폐지하기로 미리 공표했다가 여당과의 줄다리기를 위해 끝까지 협상 칩(chip)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통일부 직원들의 사기와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주었음은 불문가지다. 정보통신부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너무 일찍 표명함으로써 중요한 전환기에 수많은 고급인력이 일손을 놓고 몇 달간 방황하게 만든 점도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다.

    끝나지 않은 인수과정

    이제와 돌이켜보자면 노무현 정부로부터 새 정부로 전환하는 일련의 과정을 관리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판단했어야 했다. 이를 바탕으로 당장 행정개혁의 효과를 내려 하기보다는 1년 정도 시간여유를 두고 검토했어야 옳았다. 이를테면 지금 시점에 정부 조직개편 같은 작업이 이뤄졌다면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조치를 명분으로 보다 강력한 개혁을 위한 ‘작은 정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면 별다른 문제 없이 개편이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바마 당선자나 주변 참모들의 진보적 성향을 감안할 때 외교안보 분야에서 안정과 지속성을 핵심 기조로 선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지혜롭게 대처했고, 국민들이 당선자의 진보적 성향에 대해 갖고 있는 일말의 불안감을 확실히 해소했다. 오바마 인수팀의 현명함이 빛나는 대목이다.

    혹자는 이명박 정부의 인수작업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단순히 전임 정부에서 일했던 직업 관료들이 주요 부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새 정부의 특성이나 정체성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는 대통령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대표적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코리아’의 추진이나 북한 개발에 관한 장기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채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해왔다는 점에서 실기했음이 분명하다.

    미국 차기 행정부의 진용이 갖춰진 현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대미 접촉을 늘리는 일이 아니다. 구체적인 비전과 전략, 운영계획에 관한 소프트웨어를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오바마 정부가 적극적인 대북접근을 시도할 것으로 예견되지만 북핵 불용의 원칙을 깨거나 북한의 핵 모호성을 쉽게 인정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핵 문제의 교착상태가 지속된다면 결국 한미동맹의 가치는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 만들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전부터 글로벌 무대에서의 역할 증대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어떤 전략적 협력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함구하고 있다. 우리가 보다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전 라이스와 힐러리 클린턴 등 새 행정부 핵심인사들은 동맹국과의 지역안보협력 노력을 확대해나갈 것이다. 한국이 미국에 전략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동맹관계는 얼마든지 새롭게 발전할 수 있고, 나아가 핵심동맹의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다.

    손해를 보는 것은 대통령 자신

    그런 의미에서 최근 소말리아에 파견을 검토하고 있는 KDX-Ⅱ급 구축함 전단은 매우 유용한 자산이 될 수 있다. 특히 기항지로 알려진 지부티가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나 레바논에서 해상평화유지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이처럼 새로운 영역에 대한 개척은 유럽을 통해 미국에 접근하는 보다 용이한 방식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복선화해야 할 필요가 절실해진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이러한 방식을 통한 NATO와의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는 의미심장한 카드다. 최근 청와대가 450억원이라는 비용 문제를 이유로 구축함 파견을 1~2개월 늦추기로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것은 그런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대통령이 새로운 전략적 구도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주변에서 그런 의견을 제대로 개진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핵심은 누가 대통령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책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물이고 아이디어다. 인수위에 참여한 일부 공무원들에게만 진급 기회를 열어주고 문을 닫는 한국의 정권인수 과정에서 가장 손해를 본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 자신이다.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대북정책이나 국제안보정책에서 뚜렷한 대안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선거 유세 당시의 구상에서 진전된 전략지침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 인수위 vs 오바마 인수위
    홍규덕

    고려대 정외과 졸업, 미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국제정치학)

    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 역임

    국방부·육군 정책자문위원, ARF-EEP 한국대표, 민주평통 자문위원

    유엔체제학회 사무총장, 국제정책연구원 원장, 국제정치학회 편집총괄위원

    17대 대통령직인수위 상근자문위원

    現 숙명여대 사회과학대 학장


    미국에서는 이미 민주당 정권인수위 백서가 출간됐고 의회조사국에서 발행한 인수위 전략지침이 벌써 세 권째 발행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동안 우리가 침묵했던 것에 대해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을 기다린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다는 정도일까. 인내심과 신중함 때문이었다고 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1월말 오바마 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할 때까지도 아무런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비전과 전략이 미국의 새 행정부에 제시되지 못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인수과정이 안 끝난 것이 아니라 인수를 못한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인수작업이 여전히 진행형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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