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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리포트

이명박 인수위 vs 오바마 인수위

정책 헤집어 갈등 부르는 한국 비전 논하며 ‘통합’ 그리는 미국

  • 홍규덕│숙명여대 사회과학대학장 kdhong@sookmyung.ac.kr│

이명박 인수위 vs 오바마 인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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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지형의 한계

그뿐만 아니라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가 구상하고 있던 통일부, 여성부, 정보통신부, 해양부의 폐지 등 소위 ‘작은 정부’ 구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인수위가 시행한 정책부서 평가에 대해서도 반성문을 쓰라는 의미로 들린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인수위가 각 부처 실국장들에게서 브리핑을 받는 과정에서도 이들을 취조하듯 나무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인수위가 한창 활동 중인 시기에 노 대통령은 선거 당시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이명박 특검법안’에 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당선자 측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치적 민감성은 10년 만에 진보정권에서 보수정권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불가피한 상황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 대통령으로 전환하는 과정과 비교하면 순조로운 전환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해도 아쉬움은 남는다. 미국의 경우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에서 부시 공화당 행정부로 이어지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임기말 북한과 정상회담을 진행해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는 대북지원 약속을 한다거나 고위 공직자들과 위원회의 인사를 강행한 점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이념적인 갈등과 대결의 정치가 부드럽고 원만한 인수작업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2008년 4월9일로 예정됐던 총선은 모든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 인수위에서 진행하는 새로운 정책구상 발표는 항상 선심용으로 의심받거나 매도됐고, 진보언론이나 시민사회그룹은 그 문제점을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견제만이 한나라당의 독식을 저지하는 유일한 대안으로 간주됐다. 구(舊) 집권여당의 경우 대통령선거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총선에서도 패배한다면 열린우리당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 보고 물러설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중구난방 연합군의 부작용



캠블과 스타인버그가 지적했듯 인수위에서는 세부적인 정책보다는 인선에 비중을 두고 새로운 정책과정을 만드는 업무의 흐름을 개선하는 일에 주력했어야 했다. 그러나 사실상 한국 상황에서는 이런 시도가 불가능했다.

당선자는 매사에 신중을 기하다 보니 1기 이명박호(號)에 승선할 인원을 고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진했다. 또한 당선자가 여러 경로를 통해 엄선한 인원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너무도 냉혹했다는 점에서 미국과 현저히 비교된다. 조각을 미리 할 수 없는 상황을 염두에 뒀다면 인수위원 선정에서도 이들을 정부의 주요 직책에 발탁할 가능성을 갖고 신중하게 선발했어야 했다.

그러나 인수위에 합류한 인원들은 당, 학계, 관련부처 공무원, 선거캠프 등에서 골고루 차출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업무분담이나 긴밀한 업무협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미국의 경우 대선후보로 확정되는 순간 이미 인수팀이 가동되기 시작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러한 움직임은 자칫 경솔함이나 오만함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가동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은 2000년 조지 W 부시 당선자가 플로리다 개표 상황이 늦어지는 바람에 취임을 불과 5주 남긴 시점에서 각료 후보군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때의 혼선을 염려한 오바마 후보는 일찍부터 존 포데스타를 중심으로 비공식 인수팀을 운영해왔고 필요한 사람들을 선발하는 등 우리보다 훨씬 유리한 처지였다. 물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힐러리 클린턴 진영의 인사들을 폭넓게 포용하는 과정에서 캠프 내 주요 인사들로부터 불만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탕평인사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워낙 높기 때문에 이런 불만을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인수위 차출이 곧 차기 행정부 핵심 포스트로의 승진을 담보하다 보니 인수위 진입을 희망하는 사람은 항상 넘쳤고, 캠프에서 일했던 많은 이에게 참여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없는 당선자 측근들의 고민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인수위가 자리했던 삼청동 금융연수원은 그야말로 너무도 비좁은 공간이 됐고 시작부터 효율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뼈아픈 것은 이명박 정부의 전략적 방향에 관한 보고서나 기초적 문건이 미리 준비돼 있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인수위 참가자들은 당선자의 방침을 충분히 숙지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인수위 활동에 들어갔다.

통제해야 할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대부분의 실무위원이나 자문위원은 그저 각 부처의 견해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관료 출신의 경우 그 속성상 새 정부의 입장에서 자신의 부처를 상대로 하는 과감한 개혁안을 만들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었다. 이명박 당선자는 시무식 연설을 통해 일본 대장성 관리들이 개혁을 위해 스스로 자신의 조직을 정리하는 구국의 결단을 내렸던 점을 본받자고 역설했지만, 당시는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하루하루 주어진 임무만을 해내기도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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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규덕│숙명여대 사회과학대학장 kdhong@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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