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한 직장인인 성윤기(38)씨는 최근 일부 펀드 투자자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그가 2008년 10월20일 인터넷 사이트 다음 카페에 ‘중국펀드 선물환 계약 피해자 소송 모임’을 개설한 이후부터다. 일부 기자들도 한때 그에게 전화를 걸어 카페 회원의 움직임을 체크했다. 11월 중순엔 MBC와 KBS가 잇따라 이 카페를 보도하기도 했다.
그가 이 카페를 개설한 것은 국민은행에서 판매한 피델리티자산운용의 차이나포커스펀드에 가입했다가 큰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2007년 10월5일 이 펀드에 1550만원을 넣었다. 그러나 1년 후인 2008년 10월15일 그가 손에 쥔 금액은 겨우 480만원이었다. 원금의 75%가 날아가버린 셈이다.
환매 당시 그가 가입한 펀드는 정확히 반토막이 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손실률이 75%로 커진 것은 환차손 때문이었다. 그는 펀드 가입 당시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려고 선물환 거래도 함께 계약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환율이 폭등하면서 선물환 계약에서도 손실을 본 것이다.
그는 “처음에 은행 직원이 환율 변동 위험을 제대로 설명해주었다면 선물환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를 더 화나게 한 것은 펀드 가입 기간에은행 측이 환차손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 카페를 개설한 것도 이런 문제를 공론화해보려는 생각에서였다.
성씨는 그나마 다행인 편이다. 원금의 일부라도 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씨가 개설한 카페에선 역외펀드에 투자했다가 ‘깡통’을 찬 투자자들의 분노와 절망, 한숨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투자 원금을 날리고도 추가로 돈을 은행에 물어줘야 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한 투자자가 11월 말 이 카페에 올린 사연이다.
“…선물환 계약 문제는 시민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다. 나도 2005년 신한은행의 권유로 1000만원을 일본펀드에 가입했다. 나는 선물환 계약을 해마다 하는 줄 몰랐다. 최근 700만~800만원 입금하라고 해서 알게 됐다. 2007년 선물환 계약 여부도 묻지 않은 채 은행 직원이 맘대로 선물환 계약을 했다는 게 내 입장이다. 나는 서면 사인도 하지 않았다. 당시 은행 직원이 선물환 계약 여부만 나에게 물어봤어도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황당하고 괴롭다. 12월17일 선물환 정산일인데, 소송하면 승소할 수 있을까요?”
역외펀드란 외국의 자산운용사가 해외에서 펀드를 설정한 뒤 각국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전세계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이런 펀드는 투자자 개인이 환 헤지 여부를 선택한다. 그러나 국내 은행과 증권회사가 이런 펀드를 팔면서 환 헤지를 권유하다시피 했다고 역외펀드 투자자들은 주장한다.
선물환 계약으로 이중손해
문제는 은행과 증권회사가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을 예상하고 선물환 계약을 했다는 점. 물론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2007년 말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이 ‘2008년은 1달러당 800원대까지 원화가치가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 그러나 올해 들어 원화가치가 한때 1달러당 1500원대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역외펀드 투자자의 환차손이 크게 불어났던 것.
성씨가 개설한 카페 회원 가운데 소송 참가 의사를 밝힌 사람은 2008년 11월30일까지 총 490명. 건수로는 630건이다. 성씨는 “변호인단을 공개 모집한 뒤 2009년 초에 법원에 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490명의 총 투자금액은 150억원. 이들의 평균 펀드 손실률은 58%이고, 선물환 계약 손실률은 20%다. 결국 1인당 평균 78%의 손실을 입은 셈이다. 손실률이 가장 높은 사람은 4800만원을 투자해 -113%를 기록한 서울 수유동 이모씨였다. 국민은행이 630건 가운데 가장 많은 516건을 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