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호

펀드산업 대해부

‘고수익률’집착은 지는 게임, 비용 낮은 펀드 선택하라

  • 윤영호│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yyoungho@donga.com│

    입력2009-01-08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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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 펀드 팔아 재미보다 ‘소송 대란’ 부메랑
    • 판매사 중심 펀드시장, 잘 팔릴 펀드 우선시
    • 은행 계열 자산운용사 펀드가 잘 팔리는 내막
    • 총 보수 중 자산운용사 몫은 고작 30% 안팎
    • “높은 보수와 비용은 장기 수익률에 치명적”
    • 펀드 매니저는 투자자 재산을 얼마나 불려줄까
    • “펀드는 위험 자산, 투자의 기본에 충실해야”
    펀드산업 대해부
    ▼ 제 1 부| 펀드 열풍의 뒤안길

    평범한 직장인인 성윤기(38)씨는 최근 일부 펀드 투자자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그가 2008년 10월20일 인터넷 사이트 다음 카페에 ‘중국펀드 선물환 계약 피해자 소송 모임’을 개설한 이후부터다. 일부 기자들도 한때 그에게 전화를 걸어 카페 회원의 움직임을 체크했다. 11월 중순엔 MBC와 KBS가 잇따라 이 카페를 보도하기도 했다.

    그가 이 카페를 개설한 것은 국민은행에서 판매한 피델리티자산운용의 차이나포커스펀드에 가입했다가 큰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2007년 10월5일 이 펀드에 1550만원을 넣었다. 그러나 1년 후인 2008년 10월15일 그가 손에 쥔 금액은 겨우 480만원이었다. 원금의 75%가 날아가버린 셈이다.

    환매 당시 그가 가입한 펀드는 정확히 반토막이 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손실률이 75%로 커진 것은 환차손 때문이었다. 그는 펀드 가입 당시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려고 선물환 거래도 함께 계약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환율이 폭등하면서 선물환 계약에서도 손실을 본 것이다.

    그는 “처음에 은행 직원이 환율 변동 위험을 제대로 설명해주었다면 선물환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를 더 화나게 한 것은 펀드 가입 기간에은행 측이 환차손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 카페를 개설한 것도 이런 문제를 공론화해보려는 생각에서였다.



    성씨는 그나마 다행인 편이다. 원금의 일부라도 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씨가 개설한 카페에선 역외펀드에 투자했다가 ‘깡통’을 찬 투자자들의 분노와 절망, 한숨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투자 원금을 날리고도 추가로 돈을 은행에 물어줘야 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한 투자자가 11월 말 이 카페에 올린 사연이다.

    “…선물환 계약 문제는 시민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다. 나도 2005년 신한은행의 권유로 1000만원을 일본펀드에 가입했다. 나는 선물환 계약을 해마다 하는 줄 몰랐다. 최근 700만~800만원 입금하라고 해서 알게 됐다. 2007년 선물환 계약 여부도 묻지 않은 채 은행 직원이 맘대로 선물환 계약을 했다는 게 내 입장이다. 나는 서면 사인도 하지 않았다. 당시 은행 직원이 선물환 계약 여부만 나에게 물어봤어도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황당하고 괴롭다. 12월17일 선물환 정산일인데, 소송하면 승소할 수 있을까요?”

    역외펀드란 외국의 자산운용사가 해외에서 펀드를 설정한 뒤 각국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전세계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이런 펀드는 투자자 개인이 환 헤지 여부를 선택한다. 그러나 국내 은행과 증권회사가 이런 펀드를 팔면서 환 헤지를 권유하다시피 했다고 역외펀드 투자자들은 주장한다.

    선물환 계약으로 이중손해

    문제는 은행과 증권회사가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을 예상하고 선물환 계약을 했다는 점. 물론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2007년 말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이 ‘2008년은 1달러당 800원대까지 원화가치가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 그러나 올해 들어 원화가치가 한때 1달러당 1500원대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역외펀드 투자자의 환차손이 크게 불어났던 것.

    성씨가 개설한 카페 회원 가운데 소송 참가 의사를 밝힌 사람은 2008년 11월30일까지 총 490명. 건수로는 630건이다. 성씨는 “변호인단을 공개 모집한 뒤 2009년 초에 법원에 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490명의 총 투자금액은 150억원. 이들의 평균 펀드 손실률은 58%이고, 선물환 계약 손실률은 20%다. 결국 1인당 평균 78%의 손실을 입은 셈이다. 손실률이 가장 높은 사람은 4800만원을 투자해 -113%를 기록한 서울 수유동 이모씨였다. 국민은행이 630건 가운데 가장 많은 516건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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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는 은행 측이 선물환 계약의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상품 자체의 구조적 결함 의혹도 제기했다. 한마디로 은행 측이 펀드 손실과 환율의 상관관계를 잘못 분석했다는 것. 투자자들이 그에 따른 덤터기를 쓰게 됐다고 한다.

    국민은행 제휴상품부 박정림 부장은 “2007년만 해도 환율이 하락 추세를 보여 선물환 계약에 따른 정산금을 받아간 고객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은행 입장에선 손해를 보니까 뒤늦게 은행에 책임을 돌리는 투자자들의 태도가 야속할 법도 하다.

    박 부장은 또 “선물환 계약을 통해 은행이 얻는 이익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은행이 고객에게 선물환 계약을 ‘강권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 그는 “국민은행이 판매한 역외펀드 가운데 60%만이 선물환 계약을 했다는 것은 고객의 선택권을 보장했다는 증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국민은행 선물환 계약 관련 실무 대책반장인 이용술 팀장도 “고객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업무를 정상 처리했기 때문에 고객이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은행은 2006년 10월부터 피델리티의 차이나포커스 펀드를 팔기 시작했다. 11월24일까지 판매한 금액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일부 투자자는 선물환 계약의 ‘강제성’ 의혹을 제기한다. 한 투자자는 “역외펀드에 가입하는 모든 고객에게 무조건 선물환 계약을 맺도록 하라는 내용의 지침이 있었다는 담당 직원의 증언을 녹취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6년 11월 H증권에서 차이나펀드에 가입했다. 그러나 그는 그 증권사 이름은 끝내 밝히지 않았다.

    ‘펀드 소송 대란’ 오나

    이미 소송을 제기한 투자자들도 있다. 인터넷 사이트 다음 카페에서는 펀드 투자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투자자 모임이 활발하다. 이들의 움직임도 소송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펀드 소송 대란’ 조짐이라고 할 만하다. 투자자들이 주가 폭락으로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분노를 표시하고 있는 것.

    ‘펀드 소송 대란’은 2008년 10월말 파생상품 펀드인 ‘우리파워인컴펀드’ 관련 소송이 8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이들에 이어 ‘우리2star파생상품투자신탁KW-8호’ 펀드에 투자한 217명도 지난 11월4일 76억원의 투자금 반환소송을 냈다. 11월21일엔 ‘블랙록 메릴린치 월드 광업주 펀드’ 등 역외펀드 2개의 투자자 4명이 소송을 냈다.

    이들은 은행 등 펀드 판매사가 불완전 판매를 했다고 주장한다. 불완전 판매란 판매자가 상품 정보와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고 고객에게 파는 행위를 말한다. 금융상품의 경우 금융회사가 원금을 까먹을 가능성이나 투자 대상 등을 투자자에게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을 때 불완전 판매에 해당할 수 있다.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하는 펀드인 ELF도 소송에 휩싸일 우려가 높다. ELF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이 다음 카페에서 의견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상품 구조가 복잡한데도 은행 등 판매회사가 ‘안전하다’는 사실만 강조했고, 원금 손실 가능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ELS는 기초자산의 주가가 일정 수준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연 20% 안팎의 높은 수익을 얻는 장외 파생상품. 그러나 주가가 기준시점보다 40~50%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날 수도 있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로 증시가 폭락하는 바람에 실제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

    민원 제기도 늘고 있다. 2008년 10월 말 현재 금융감독원이 접수한 펀드 불완전 판매 분쟁 조정 건수는 655건으로, 지난해(109건) 대비 510%나 증가했다. 증시가 활황이던 2004~2006년엔 각각 25건, 69건, 40건에 지나지 않았다. 펀드 손실이 확대되면서 민원·분쟁이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2008년 11월11일 우리CS자산운용의 우리파워인컴펀드와 관련해 배상 조정 결정이 난 이후엔 분쟁 조정 신청이 하루 평균 90여 건 쇄도했다. 종전 하루 평균 건수(24건)의 4배 수준이다. 금감원은 이날 우리은행이, 우리파워인컴펀드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한 주부에게 손실액의 50%를 물어주라고 결정했다.

    투자자의 이런 움직임에 때아닌 호황을 누리는 곳이 변호사 업계다. 일부 법무법인은 ‘펀드·주식 등 불완전 판매 피해자 모임 소송 카페’를 만들어 소송 참가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다. 또 일부 변호사는 e메일과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이용해 마구잡이로 소송을 권유하고 있다.

    “은행 배지 떼고 퇴근한다”

    자산운용업계에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부 변호사가 투자자들의 분노와 허탈감을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것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것.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최근 변호사 업계가 불황에 빠지면서 투자자들의 소송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은행·증권회사 등 펀드 판매사는 투자자의 이런 움직임에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중은행 한 지점장은 “퇴근할 땐 은행 배지를 떼고 나간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업계도 불똥이 자기들에게 튀지나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그저 시장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실토했다.

    은행·증권회사 관계자들이라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신한은행의 한 부지점장은 “1999년 대우채 사태 당시 개별적으로 투자자의 손실을 보상해준 은행 직원이 있었다”면서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은행 직원들로서는 불완전 판매를 항상 조심한다”고 말했다.

    일부 펀드 투자자가 억지를 부리는 것도 사실이다. 어디까지나 투자는 자기 책임 원칙에 따라 해야 하기 때문에 손실이 났을 때도 자신이 감수해야 한다. 이익이 났을 땐 자기가 챙기고 손실이 나면 판매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정당한 태도가 아니다.

    한국증권연구원 김재칠 연구위원은 “투자자가 펀드의 위험을 제대로 모른 상태에서 최근 펀드산업이 압축성장하면서 문제를 키웠다”고 진단했다. 김 위원은 이런 결과는 판매사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채 펀드 판매에만 열을 올렸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펀드 투자자도 이번 사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투자자가 자신의 위험 성향이나 재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위험자산인 주식형 펀드에 성급하게 뛰어든 잘못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7년 말 미래에셋 인사이트 펀드가 나왔을 때 너도나도 가입한 것을 ‘묻지마 투자’의 전형으로 꼽았다.

    뒤늦게 부산 떠는 감독 당국

    ‘펀드 소송 대란’ 움직임이 일자 감독 당국은 뒤늦게 펀드 불완전 판매 예방 종합대책을 내놓는 등 부산을 떨었다. 금융감독원은 2008년 11월25일 펀드 판매 절차 마련, 판매 인력 전문성 제고, 광고 규제 개선 등의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불완전 판매 행위를 적발할 경우 엄격히 제재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은 ‘미스터리 쇼핑’ 제도다. 외부 전문 조사기관에 의뢰해 펀드 판매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려고 2009년 2월부터 실시한다. 미스터리 쇼핑이란 조사원이 고객 신분으로 상담 내용을 녹취하는 것을 말한다. 감독 당국은 이를 제도 및 관행 개선 기초 자료로 활용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대책에도 여전히 미흡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판매 직원의 펀드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항상 받기 때문이다. 기자도 이를 경험했다. 기자는 2006년 6월 한 은행 지점을 통해 펀드에 가입했다. 2008년 10월 이 지점에 들어가 해당 펀드의 투자설명서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담당 직원은 처음엔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담당 직원은 투자설명서를 요구한 고객은 그 지점에서 기자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나마도 그 자리에서 받지 못하고 다음날 겨우 전달받았다. 컴퓨터에 오류가 생겨 투자설명서를 출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자설명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펀드에 가입하기 전에 반드시 이 투자설명서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기자 역시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셈이다. 물론 처음 가입시 투자설명서를 요구하지 않은 기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당시 담당 직원은 투자설명서를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은행이 판매하는 펀드 종류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국민은행은 현재 40개 자산운용사가 만든 펀드 약 200종을 판매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판매하는 펀드는 140종 정도. 은행의 펀드 판매 직원이 이렇게 많은 종류의 펀드를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은행에서는 “펀드 리포트도 자주 내려보내고 판매 직원들을 교육하는 데다 한 직원이 판매하는 펀드 종류는 한정돼 있어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해명이야말로 고객의 다양한 욕구에 맞는 펀드를 판매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개인 투자자는 펀드 투자에 대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셈이다. 물론 법이 허용한 투자자문 회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은 주로 기관 투자가나 거액을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만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은행이 기본을 외면했다”

    반면 펀드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개인의 펀드 투자를 도와주는 전문가가 있다. 바로 독립적인 파이낸셜 플래너(FP)가 그들이다. 국내에서도 2009년 2월 시행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을 개정해 FP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이를 검토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우선순위가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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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내부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최근의 펀드 대란은 그간 펀드 판매에 목을 매다시피 했던 은행에 되돌아온 부메랑”이라고 말했다.

    “2007년 말 외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해 정기예금에 가입하려 했더니 창구 여직원이 ‘요즘 누가 정기예금에 가입하느냐’면서 펀드 투자를 권유했다. 은행 임직원에게 이 정도였으니 일반 고객에게는 어떻겠는가. 은행의 기본 임무는 고객의 예금을 모아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 제공하는 자금 중개 기능이다. 그런데도 은행은 한때 기본을 무시하고 투자은행(IB) 업무를 한다느니, 펀드 판매 수수료를 늘리느니 하면서 법석을 떨었다. 결국 ‘펀드 소송 대란’ 우려는 그에 따른 부작용인 셈이다.”

    한 금융 전문가도 “은행과 증권회사에서 각각 펀드를 산 투자자의 심리 상태가 서로 다른데도 은행이 이를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기본적으로 은행 상품은 원금을 보전해주기 때문에 은행이 판 펀드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투자자가 많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은행은 그동안 펀드 판매로 상당한 재미를 봤다. 은행이 거둔 수수료 수입은 2005년 3994억원을 기록한 뒤 매년 100% 이상의 신장을 보였다. 2007년엔 1조6824억원의 펀드 수수료 수입을 올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인 2008년 상반기엔 8000억원에 달했다.

    이런 상황은 은행의 펀드 판매 추이에서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은행의 펀드 판매 비중은 2005년 말 31.5%에서 2008년 9월 말 43.1%로, 무려 11.6%포인트나 높아졌다. 펀드 붐을 주도한 것은 은행이었다고 할 만하다. 반면 증권회사는 같은 기간 66.3%에서 48%로 떨어졌다(표 1 참조).

    펀드 수수료 수입이 은행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높다고는 할 수 없다. 2007년 은행의 영업이익(42조원)과 당기순이익(15조원)에서 펀드 수수료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와 11.3%다. 그러나 저금리 상황에 시중자금이 펀드 쪽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수익원은 없었다.

    물론 은행이 펀드 판매를 통해 자본시장의 뿌리를 튼튼히 한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은행이 적립식 펀드 인기를 주도하면서 장기 투자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여기에 펀드로 간접 투자하는 시대가 되면서 이를 운용하는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에 따라 한국 주식시장의 변동성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펀드 판매 붐은 은행 스스로 예금의 씨를 말리는 ‘자해’ 행위나 다름없었다. 당시 은행 창구에서는 고객에게 정기예금을 중도해약해 펀드 상품으로 갈아타기를 권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은 어처구니없게도 대출 늘리기 전쟁을 했다. 그런 후진적인 은행 경영이 현재의 은행 자금난을 불러온 한 원인인 셈이다.

    ▼제2부 “투자자는 모를수록 쉽게 뜨거워진다”

    항상 그렇듯 시장이 달아오를 때 뒤늦게 뛰어든 사람은 ‘상투’를 잡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원승연 교수는 “판매사들이 막연한 장밋빛 시장 전망에 근거해 펀드를 판 결과”라고 비판했다. 고객의 재산 상황이나 위험 성향에 맞게 자산 분배 서비스를 해야 하는 은행의 본분을 망각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투자자들은 언제나 투자 붐의 막차를 탔다. 달아오르는 시장이 보내는 유혹의 눈길을 한번도 피하지 못했던 것. 이들은 그 시장으로 가는 길에는 황금이 깔려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그런 시장은 가장 투기적인 시장일 소지가 크고, 결국은 몰락의 현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준다.

    1990년대 말의 나스닥이 대표적인 사례다. 1975년 세계 최초로 인덱스펀드를 개발한 존 보글은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The little book of common sense investing)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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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자들은 주가가 과대평가된 1999년과 2000년에 4200억달러를 펀드에 투자했다.…게다가 1990년대에는 위험이 큰 성장형 펀드에 자금의 20%만을 투자했지만 1999년과 2000년 초 시장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에는 자금의 95%를 성장형 펀드에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나스닥 지수가 3000을 웃돌기 시작한 뒤였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가 기술주에 투자하기에는 최악의 시기였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눈에는 ‘신경제’는 영원할 것 같았다. 결국 거품이 터지면서 흥분이 슬픔의 눈물로 반전했다.

    더욱이 당시 투자자들은 신기술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기술주에 열광했다. “인간의 감정은 아는 것에 반비례하므로 잘 알지 못할수록 더 쉽게 뜨거워진다.”(버트란트 러셀) 새로운 시장이나 새로운 산업에 대해 항상 낙관적이기만 한 투자자들의 심리에 꼭 들어맞는 말이지 않은가.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펀드 붐도 1990년대 말 미국의 기술주 붐을 연상케 한다. 한국 투자자도 최근 3년 사이에 주식시장이 달아오르자 너도나도 주식형 펀드 투자 열풍에 가담했다. 이에 따라 주식형 펀드 수탁고가 짧은 기간에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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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부신 해외 주식형 펀드 성장

    2004년 말 주식형 펀드 수탁고는 8조5500억원(역외펀드 제외)으로, 전체 펀드 수탁고 186조9900억원의 4.57%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8년 10월 말 주식형 펀드 수탁고는 무려 139조5400억원으로 늘었다. 전체 펀드 수탁고 345조1600억원의 40.43%나 된다. 금액 기준으론 2004년 말에 비해 무려 16.32배로 증가한 것.

    이렇게 보면 최근 3년 사이에 국내 펀드산업의 발전을 이끈 것은 주식형 펀드다. 그동안 혼합형이나 채권형 펀드, 머니마켓펀드(MMF) 수탁고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표2). 주식형 펀드에 자금이 집중 유입되면서 펀드시장을 키운 것이다.

    이 과정에 개인 투자자의 역할이 컸다. 개인 투자자의 펀드 계좌 수는 2006년 말 1221만74개였으나 이듬해 말에는 2317만3145개로 2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 말 전체 가구 수는 1641만7000가구. 한 가구가 1개 이상의 펀드 계좌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개인 투자자들은 특히 해외 펀드, 그중에서 해외 주식형 펀드에 열광했다. 자산운용협회는‘펀드 통계’에서 해외 투자 및 국내외 혼합 투자를 목적으로 국내에서 설정된 해외 펀드는 2004년 말 5조7000억원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주식형은 930억원에 불과했다. 겨우 1.6% 수준이다(표3).

    그러나 2005년부터 해외 펀드는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다. 이해 말 전체 해외 펀드는 8조8000억원으로 증가했고, 그 가운데 해외 주식형 펀드는 전체 해외 펀드의 13.6% 수준인 1조2000억원이 됐다. 2006년엔 전체 해외 펀드 수탁고가 19조7000억원으로 급증했고, 이 가운데 해외 주식형 펀드 비율도 32.5%로 늘었다.

    2007년은 해외 펀드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펀드 이름에 중국 인도 등이 들어가지 않으면 팔리지 않을 정도였다. 2007년 말 해외 펀드 규모는 73조400억원이나 됐다. 이 중 해외 주식형 펀드는 49조8860억원으로 급증했다. 무려 68.3%나 된다. 2008년 11월 말 해외 주식형 펀드 규모는 54조6220억원.

    당시엔 해외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지 않으면 팔불출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서울 여의도에선 당시 한 광역단체장이 2006년 취임 직전 부동산을 처분해 해외 주식형 펀드에 ‘몰빵 투자’를 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이 단체장은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세계 주가가 폭락하면서 큰 손실을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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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당시 일부 신흥시장에 투자하는 해외 펀드는 한국 투자자들이 해당국 증시를 좌지우지하기도 했다. 2006년 11월 한국투신운용이 내놓은 베트남 펀드 3종에 한 달간 몰린 자금만 3000억원이나 됐다. 이는 당시 베트남 증시 시가총액의 4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베트남 증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규모였다.

    해외 투자 펀드가 이처럼 인기를 끈 것은 높은 수익률을 보였기 때문. 중국의 경우 한때 한해 주가 상승률이 100%를 넘긴 적도 있었다. 여기에 정부가 2007년 6월 해외 주식 양도 차익에 대해 한시적으로 비과세하기로 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원·달러 환율 하락 추세를 막으려 해외 투자를 적극 장려한 것이다.

    현재 상황은 10여 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국내 금리가 하락세를 타던 1996년 경제 개방과 함께 고금리 정책을 선보인 러시아 펀드가 투자자의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2년 뒤 러시아는 대외채무지불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주가와 함께 펀드 수익률이 곤두박질치면서 업계는 곤욕을 치렀다.

    투자자들은 왜 투자 붐의 막차를 타는 것일까. 탐욕에 눈이 멀어 끝없이 증시 활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 탓일까. 그러다가 흥분이 가시면 ‘펀드 통(痛)’으로 밤잠을 설칠 줄 뻔히 알면서도 그런 일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 팔리는’ 펀드만 판다”

    전문가들은 투자자의 이런 행태를 부추기는 것은 펀드 판매사와 자산운용사라고 비판한다. 펀드 판매사와 자산운용사는 증시가 정점에 이르면 새로운 펀드를 재빨리 만들어내거나 마케팅 활동을 열심히 한다. 이때가 펀드를 팔기에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잘 팔리는’ 펀드를 우선시한다는 얘기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2007년 10월 새로 설정된 주식형 펀드 수는 모두 70개. 월간 단위로는 그해 6월의 72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2007년 10월9일 미국 다우존스산업지수는 1만4164.53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10월16일과 10월31일엔 중국 상하이종합지수와 한국의 코스피 지수가 각각 최고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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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산운용협회 공시에 따르면 또 2007년 10월 모든 펀드가 끌어들인 돈이 80조9280억원으로, 월간 단위로 두 번째로 많은 규모다. 가장 많은 금액이 유입된 것은 2006년 6월로, 93조9770억원이다. 그러나 이때는 109조3440억원이 펀드에서 빠져나가 전체적으로는 15조3680억원의 순유출을 기록했다.

    반면 주가가 낮아진 2008년 10, 11월에 새로 설정된 주식형 펀드는 각각 8개에 불과했다. ‘오마하의 현인(賢人)’으로 추앙받는 워런 버핏은 대중이 공포에 질렸을 때 투자에 나서라고 말한다. 자산운용업계는 버핏의 이런 충고와는 반대로 움직이는 셈이다.

    자산운용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판매사를 잡지 못하면 펀드를 팔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산운용사가 나름의 투자 철학과 원칙을 바탕으로 아무리 좋은 펀드를 만들었다고 해도 은행이나 증권회사가 이를 팔아주지 않으면 그 펀드는 태어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현행법상 자산운용사는 판매 채널과 조직을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 펀드 판매는 은행이나 증권회사, 보험회사 등이 맡고 있다. 특히 국민·우리·신한은행 등 3대 시중은행이 펀드 판매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지금은 현직에서 물러난 한 펀드 매니저는 “은행은 자산운용업계의 영원한 갑이다”고 말했다.

    “특정 펀드의 수익률이 한동안 시장 수익률보다 못한 경우 이를 판매한 은행이 바로 반응한다. ‘수익률이 저조한 이유를 분석해서 보고하라’ ‘경쟁사 펀드가 잘 팔리는 것은 수익률이 좋기 때문 아니냐’고 닦달한다. 그렇지 않아도 회사 내부에서도 눈치가 보이는데 그런 전화까지 받으면 속된 말로 돌아버린다. 물론 판매사도 고객의 항의 때문에 그러기는 하겠지만 야속할 때가 많다.”

    전문가들은 최근 3년간 주식형 펀드가 펀드시장을 주도한 것을 판매사 우위의 판매 구조와 연관지어 해석한다. 영남대 원승연 교수는 “주식형 펀드의 판매 보수·수수료가 채권형 등 다른 유형보다 높기 때문에 은행 등 판매사가 주식형 펀드를 주도한 의혹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2008년 5월 말 현재 전체 펀드의 평균 판매 보수는 0.94%. 그러나 주식형 펀드의 판매 보수는 이보다 훨씬 높은 1.28%다. 1.14%인 혼합 주식형이나 0.95%인 혼합 채권형 모두 주식형에는 미치지 못한다. 반면 채권형은 0.32%에 불과하다(표4).

    계열사 펀드 밀어주기 의혹

    한국의 자산운용사는 대부분 판매사의 지배를 받고 있다. 외국계 자산운용사를 제외하면 은행계 금융지주회사 또는 증권회사의 자회사인 것. 2000년대 들어 국내 자산운용업이 커지면서 황금알을 낳는다는 얘기가 나오자 판매사들이 너도나도 자산운용사를 설립한 결과다.

    일반적으로 개인 투자자는 펀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펀드를 선택한다. 그러다 보니 판매 채널이나 마케팅이 투자자의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펀드 브랜드나 전문가의 조언, 판매망의 권유, 광고 등이 펀드의 운용 성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은행 펀드 판매의 고질인 ‘계열사 밀어주기’는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다. 고객에게 자기 계열 자산운용사가 만든 펀드를 집중 권유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판매사 입장에선 판매 보수가 높은 펀드나 자기 계열 자산운용사 펀드를 판매하는 게 이익이다. 그러나 그 펀드가 고객에게 반드시 좋은 펀드라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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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점에서 투자자는 특히 판매사가 펀드 판촉 활동을 할 때는 유의해야 한다. 국민은행의 한 지점장은 “몇 년 전 KB자산운용이 ‘광개토 주식형 펀드’를 내놓았을 때 은행 내부에서 ‘그래도 자회사가 만든 것인데 신경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해 주변에 판매를 많이 했는데, 수익률이 곤두박질쳐 혼이 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신동아’는 ‘계열사 밀어주기’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각 은행으로부터 2008년 1~10월중 펀드 판매 현황을 받았다(표 5). 이 기간에 국민은행은 상위 5개 펀드의 판매금액이 4조2339억원이다. 신한(2조2624억원), 우리(1조165억원), 하나(3657억원)은행 순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경우 판매 규모 1위와 2위 펀드 간 격차가 심했다는 사실이다. 반면 우리은행이나 하나은행은 상위 5위 펀드의 판매 금액이 상대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특히 하나은행은 상위 5위 안에 드는 펀드 가운데 1000억원 넘게 팔린 것이 없었다. 또 채권형 펀드가 상위 5위 안에 2개나 있었다.

    4개 은행 가운데 ‘계열사 밀어주기’가 심한 곳은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었다. 두 은행은 판매 순위 5위 안에 드는 펀드중 3개가 계열 운용사 상품이었다. 특히 신한은행은 상위 1~3위 펀드가 모두 계열사인 신한BNP파리바운용과 SH자산운용 상품이었다. 반면 하나은행은 판매 순위 1, 2, 5위 펀드가 계열 운용사 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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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판매순위 5위 안에 드는 계열 운용사 상품이 1개였다. 국민은행의 판매순위 2위를 기록한 ‘신광개토 선취형 주식투자신탁’이 계열사인 KB자산운용이 설정한 펀드다. 또 우리은행의 판매 순위 3위를 기록한 마이 불마켓 파생상품투자신탁1호가 계열사인 우리CS자산운용 펀드다.

    물론 각 은행은 이에 대해 “고객에게 다양한 상품을 제시해 설명한 뒤 고객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선택한 결과”라고 해명한다. 이 해명대로라면 은행이 매년 고객의 펀드 자산에서 판매 보수를 꼬박꼬박 챙겨가는 근거가 애매하다. 도대체 은행이 무슨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판매 보수를 가져가는가 하는 불만인 셈이다.

    ▼제3부 ‘운동’이 증가하면 수익은 감소한다

    펀드 보수·수수료는 펀드산업에서 가장 큰 논란 대상이다. 그중에서도 판매사가 가져가는 판매 보수·수수료가 핵심 쟁점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국내에서는 판매 보수·수수료 수준이 적당하고, 정당한지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규제에 의하면 투자자가 펀드 투자와 관련해 지급하는 비용은 보수와 수수료 두 가지다. 개념적으로 보수는 투자기간 내내 투자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가격으로 볼 수 있다. 자산운용사의 운용 서비스에 지급하는 운용 보수가 대표적이다. 반면 수수료는 일시적으로 제공되는 특정 서비스에 대한 가격이다.

    문제는 판매 서비스에 대해서는 판매 보수와 판매 수수료를 모두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2007년 3월 현재 전체 펀드의 약 86%(순자산 금액 기준)가 판매 보수만을 채택하고 있다(중앙대 경영학부 신인석 교수). 판매 보수·수수료를 함께 부과하는 펀드는 대개 판매 보수 수준이 낮다.

    투자자의 상식으로는 판매사에 지급하는 ‘가격’으로는 1회에 한해 차감하는 판매 수수료가 합리적이다. 부동산 중개업소에 1회에 한해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펀드 판매에서는 상식에 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판매사는 매년 펀드 자산에서 판매 보수를 떼어가고 있는 것.

    영남대 원승연 교수는 “외국의 경우 판매사가 단 한 번 차감하는 선취 판매 수수료가 일반적이고, 판매사가 펀드 투자 기간에 판매 보수를 매년 받아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우 펀드 보수·수수료 체계가 판매사에 유리한 구조라고 그는 주장한다.

    원 교수는 우리나라와 같은 형태의 판매 보수를 허용하는 곳은 미국이라고 밝혔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980년 규정 12b-1을 신설함으로써 생겨난 이른바 ‘12b-1 보수’가 그것이다. 그러나 원 교수는 “‘12b-1’ 보수는 주로 자산운용사가 투자자에게 직접 펀드를 판매한 경우에 한해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판매사가 판매 보수를 받아가는 근거는 무엇일까. 중앙대 신인석 교수는 “판매사나 투자자, 감독 기구 등의 의견을 종합하면 판매 보수는 펀드 판매 서비스에 대한 보상이 일차적 기능이고, 펀드 판매 이후 투자자별로 제공하는 각종 ‘자문관리 서비스’에 대한 보상이 암묵적인 추가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 교수는 이 가운데 판매 보수의 일차적 기능은 효율성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일시적으로 제공되는 판매 서비스에 대해 투자자가 투자 기간 내내 보수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또 판매 보수의 추가 기능 역시 서비스와 가격의 연계성이 투명하지 않아 서비스의 질 경쟁이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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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자와 판매사 모두 판매 보수의 대가로 제공하는 관리 서비스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개념이 불분명하다. 심지어 동일 판매사 내에서도 투자자별 ‘관리 서비스’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통일된 개념이 없으며 투자자에게 공시한 적도 없다. 투자자는 펀드가 직접 판매사로 판매 보수를 지급하기 때문에 가격을 지급하고 있다는 의식이 미약하고, 이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나 내용과 무관한 가격 지급이 용인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판매 보수가 총 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신인석 교수는 “2003~2007년 5년간 운용 보수와 판매 보수 간 분배율은 모든 펀드 유형에서 3 대 7로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판매사가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얘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특정 펀드의 성과를 결정하는 것은 자산운용사의 운용 능력이다. 펀드에 편입할 주식이나 채권을 결정하는 등 펀드를 실제 운용하는 것은 자산운용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용사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보수를 가져가는 게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현실은 이와 정반대인 셈이다.

    이유 없이 높은 판매 보수 비중

    영남대 원승연 교수가 국가별 펀드 보수를 비교·분석한 결과를 봐도 한국 자산운용사의 초라한 입장이 드러난다. 원 교수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16개 국 중 한국은 주식형 펀드나 채권형 펀드 모두 총 보수 가운데 운용 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낮았다.

    그렇다면 투자자는 높은 판매 보수 비중에 걸맞은 서비스를 받았을까. 원승연 교수는 “판매 보수와 운용 성과 간 관계에 대한 회귀 분석을 해본 결과 채권형 펀드나 주식형 펀드 모두 판매 보수는 운용 성과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판매 보수 높은 펀드 = 운용 성과 좋은 펀드’가 아니라는 얘기다.

    최근 들어 투자자들도 판매 보수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펀드 수익률이 곤두박질치는데도 판매사들이 판매 보수를 꼬박꼬박 챙겨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감독 당국도 펀드 보수·수수료 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논의를 주도하는 등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논의가 중단된 상태.

    막대한 투자 손실을 입은 투자자를 달래려는 의도일까. 최근 은행들은 펀드 보수·수수료를 인하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2008년 11월 자행이 단독으로 판매하는 펀드의 보수를 20%가량 인하했다. 이에 따라 ‘탑스 프리미엄 주식 펀드’의 판매 보수는 기존 연 1.61%에서 연 1.29%로 인하됐다. 다른 은행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자산운용협회도 11월 초 주식형 펀드와 혼합형 펀드에 가입하면 최소 4년간 매년 10% 이상 판매 보수를 인하하도록 하는 표준 신탁약관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펀드 가입 4년차에는 최소 27% 인하 혜택을 볼 수 있다. 협회 김정아 홍보실장은 “빠르면 2008년 말부터 새로운 약관을 적용하는 펀드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보다 판매보수체계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는 은행이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는 독과점적 가격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를 깨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제3의 판매 채널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

    미국에서 은행과 증권회사의 펀드 판매 비중이 우리보다 낮은 것도 제3의 채널 때문이다. 한국증권연구원 김재칠 연구위원은 “미국은 펀드 슈퍼마켓과 독립형 FP 등 다양한 판매 채널이 있다”고 설명했다. 독립형 FP가 개인 투자자를 상대로 펀드 가입을 권유하고 펀드는 펀드 슈퍼마켓에서 구입하는 체제가 정착돼 있다는 것.

    펀드산업 내부에서는 펀드 보수 및 비용이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서도 끝없는 논란을 벌이고 있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2008년 5월 말 현재 주식형 펀드의 총 보수는 평균 2.07%이다. “1년 수익률이 20~30% 이상일 때가 많은데 그 정도 판매 보수는 별것 아니지 않느냐”고 반응할지 모른다.

    적극적 운용 VS 소극적 운용

    그러나 장기 투자의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소극적으로 운용하는 펀드(대표적으로 인덱스 펀드)와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펀드(액티브 펀드)를 둘러싸고 양쪽 지지자들이 논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 소극적 운용 펀드는 상대적으로 보수가 낮다. 보수가 수익률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논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운용 보수에 관한 것이다. 적극적 운용 펀드 투자자는 펀드 매니저들의 ‘역량’을 믿는다. 이들이 효과적인 기업 분석이나 종목 선정을 통해 더 높은 수익률을 올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또 운용 보수는 이에 대해 당연히 지급하는 서비스료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소극적 운용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애당초 효과적인 종목 선정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소극적 운용 펀드는 기업 분석을 거의 하지 않고 포트폴리오 의사 결정도 하지 않는다. 운용 보수가 낮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적극적 운용 펀드 투자자가 쓸데 없이 운용 보수를 높게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 논점은 거래 비용이다. 적극적 운용 펀드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자주 거래를 한다. 이 과정에 증권 거래 수수료 등 비용이 발생한다. 또 펀드가 특정 주식을 대량 보유한 경우 이를 처분할 때도 ‘비용’이 발생한다. 시장에 충격을 줘 해당 주식 가격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소극적 운용 펀드는 현금 흐름의 필요성이 있거나 벤치마크에 변화가 생겨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거래를 한다. 거래 비용과 시장 충격 비용을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벤치마크란 펀드가 운용 목표로 삼는 수익률로, 펀드의 성과를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 펀드 유형이나 운용 전략에 따라 다양하다.

    학계의 많은 연구는 소극적 운용을 지지한다. 이들 연구는 적극적 운용 펀드 매니저들이 벤치마크에 대비해 더 많은 수익을 거두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펀드 보수나 비용이 수익률에 결정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분석 기간이 장기일 경우 더욱 그렇다는 것.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새뮤얼슨 교수는 “증거에 근거한 나의 가설은 대부분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은 퇴출돼야 한다는 것이다”고 단언할 정도다. 그는 이런 점에서 존 보글의 인덱스 펀드 개발을 두고 “바퀴와 알파벳 발명만큼 가치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이 적극적 운용 펀드를 선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기만은 최고 성과를 올리는 펀드를 지속적으로 고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한 펀드 매니저는 “주변에서 펀드에 투자해 두자릿수 수익률을 올렸다고 자랑하는데 여기에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투자가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ETF 예찬론

    물론 펀드 성과를 분석한 연구에서 액티브 펀드의 효용성이 입증되기도 했다. 리 그레밀리온 전 보스턴 대학 교수는 저서 ‘뮤추얼 펀드 산업 핸드북’에서 “몇몇 펀드는 지속적으로 시장 수익률보다 좋은 성과를 내고, 세상 물정에 밝은 투자자는 이런 펀드로 자산을 옮긴다는 증거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반 투자자는 수익률 1위 펀드만을 찾아다니다 낭패를 볼 수 있다. 과거 수익률이 미래 성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고수익률을 계속 내는 펀드는 극히 드물다. 우리투자증권 서동필 CFA는 “2006년과 2007년 상위 20위 안에 든 펀드 가운데 다음해 역시 20위권을 유지한 펀드는 2006년의 경우 단 1개였고, 2007년의 경우엔 2개에 불과했다”고 밝혔다(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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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연구원은 그 이유를 해마다 효자 업종이 바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높은 수익을 내는 업종이 꾸준히 변하기 때문에 잘나가는 펀드 매니저들도 항상 좋은 실적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분석을 감안하면 투자자로선 펀드 판매창구에서 ‘수익률이 좋거나 인기 있는 펀드를 달라’는 얘기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셈이다.

    소극적 운용 펀드는 이런 변동성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대신 화끈한 수익률을 내는 해도 거의 없다. 소극적 운용의 대표는 바로 인덱스 펀드다. 인덱스 펀드란 시장의 모든 주식을 골고루 한데 모아 구성한 분산형 포트폴리오를 단순히 사서 보유하는 펀드를 말한다. 코스피(KOSPI)나 코스피200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게 일반적이다.

    인덱스 펀드는 지속적으로 시장 수익률을 이기는 펀드는 없다고 전제한다. 삼성투신운용 인덱스운용본부장 배재규 상무는 “다른 비용이 없다면 ‘(모든 투자자의 투자금액)×(투자자의 수익률의 가장 평균)=시장의 수익률 합’이기 때문에 비용이 낮은 인덱스 펀드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인덱스 펀드를 주식시장에 상장한 ETF(상장지수 펀드)도 나왔다. 2006년 10월증권거래소가 KODEX200과 KOSEF200을 상징한 이후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6년까지 1조원이 안 되던 ETF 설정액은 2008년 11월 2조6000억원 안팎으로 커졌다. 그러나 아직은 전체 펀드 수탁고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인덱스 펀드와 ETF는 운용 방식이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우선 인덱스 펀드는 일반 펀드처럼 은행 등에서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ETF는 증권거래소의 주식과 똑같이 증권회사에서만 살 수 있다. 여기에 ETF는 인덱스 펀드보다 수수료가 싼 것도 장점이다. 또 투자 전략을 실행하는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배재규 상무는 “아직은 우리나라 투자자가 기대 수익률 수준이 높은 탓인지 ETF가 걸음마 단계”라고 말했다. 배 상무는 이어 “펀드 선진국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이 되면서 투자 성향이 보수적으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인덱스 펀드 등이 인기를 끌었다”고 덧붙였다.

    투자의 기본에 충실하라

    펀드는 미국의 발명품이다. 미국인이 선호하는 저축수단이 되면서 미국 금융서비스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미국에서는 시장이 활황이든 호황이든 펀드산업이 계속 성장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펀드산업의 뿌리가 깊다는 얘기다.

    반면 한국의 펀드산업은 역사도 짧고 기초도 튼튼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자산운용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 금융자산 규모는 2003년 1000조원을 넘어선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전체 가계 자산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 추세에 있다. 전체 가계자산 중 펀드 투자 비중도 겨우 1.4%다.

    반면 미국의 경우 가계 금융자산 중 펀드 투자 비중은 무려 23.2%나 된다. 이 가운데 개인연금 또는 기업연금 등을 통한 간접적인 펀드 투자 규모는 약 9.0%다. 펀드 직접 투자 규모(14.2%)와 비교했을 때 연금 상품을 통한 펀드 투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1980년대부터 펀드산업이 성장했다. 반면 한국에서 펀드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2004년 하반기 적립식 펀드 열풍이 불면서부터다. 당시 랜드마크자산운용(현 ING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각각 내놓은 ‘1억 만들기’와 ‘3억 만들기’ 펀드는 수익률까지 좋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 점에서 최근 국내 투자자의 집단 대응 움직임은 국내 펀드산업에 첫 시험대가 되고 있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외부 변수가 직접적인 계기였지만 뿌리가 튼튼했다면 이렇게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만큼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판매사는 불완전 판매 시비를 없애야 한다. 또 자산운용업계는 고객 자산을 위탁받아 관리한다는 ‘청지기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자산운용업계가 실적을 공시할 때 수익률이 좋은 특정 펀드만을 부각시켜 투자자를 오도한다는 비판도 있다. 펀드 선진국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유형별로 펀드 성과를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자산운용사가 제공하는 투자설명서가 너무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이와 관련, 미국 SEC는 1998년 28쪽 분량의 ‘쉬운 영어 핸드북:SEC 공시 서류를 명확하게 작성하는 방법’을 펴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이 핸드북에 나와 있는 원칙을 지켜 실제 투자설명서의 내용을 어떻게 쉽게 고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뮤추얼 산업 핸드북’에서 인용).

    ▶ 수정 전

    만기와 듀레이션 관리 결정은 중기에 중점을 두고 이뤄진다. 포트폴리오의 만기 구조는 주기적 금리 변동이 예상될 때 조정된다. 이런 조정은 단기, 즉 매일의 시장 움직임을 따라잡기 위한 시도로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 수정 후

    우리는 향후 금리를 정확하게 예측함으로써 투자 수익을 얻고자 한다. 금리 전망에 확신이 없으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중기 채권을 보유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자의 태도다. 자신의 돈을 지켜줄 사람은 자기 자신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국내 투자자들은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나서야 펀드가 위험 상품임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리스크가 높을수록 투자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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