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호

대형마트 가격인하 전쟁

이마트,‘삼겹살 전쟁’통해 온라인몰 제패 노린다

  • 김선미│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kimsunmi@donga.com│

    입력2010-03-02 18: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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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돼지고기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부위는 삼겹살이다. 그런데 삼겹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1월 한 달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할인점들이 경쟁적으로 삼겹살을 납품가 절반 이하로 판매하는 할인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왜 할인점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삼겹살 가격을 깎아줬을까.
    새해 벽두부터 국내 대형마트 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는 ‘깜짝 발표’를 했다. 1월7일 “삼겹살, 즉석밥,우유, 달걀 등 12가지 생필품 가격을 기존보다 최대 36%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업계 2,3위인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는 부랴부랴 맞대응에 나섰다.

    “평소 1주일 정도 진행되는 단기 가격할인 행사 때도 경쟁업체 광고 전단을 보고 제품 가격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 왔는걸요.”

    이날 오후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는 이처럼 ‘가격 담합’을 연상케 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면서 이마트가 가격을 내린 12가지 생필품에 대해 일단 가격부터 내리고 봤다. “이마트가 가격을 내렸는데, 어떻게 할 거냐”란 언론 매체들의 질문을 받느라 홍보팀은 홍보팀대로, 제조업체들과 급작스러운 가격 협상을 벌이느라 바이어는 바이어대로 허둥대며 진땀 빼는 모습이 역력했다.

    흥미로운 건 업계 3위 롯데마트의 대응이었다. 1월14일 롯데마트는 “이마트보다 무조건 10원 이상 싸게 팔겠다”고 보도 자료를 냈다. 신세계와 롯데가 벌이는‘10원 전쟁’의 발단이다. 바로 다음날인 1월15일 이마트는 고구마, 오징어, 노트북 등 10개의 가격 인하 품목을 새롭게 내놓았다. 롯데마트는 이들 품목에 대해 정말로 10원 이상 싼 가격표를 붙였다. 업계에선 경영 전면에 나선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즉 재벌 2,3세끼리의 자존심 싸움으로 확대 해석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마트 측은 “(우리가 가격을 내린다고) 경쟁업체들이 정면으로 맞대응할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라는 반응을 보였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가 이마트의 가격인하 품목에 대해 가격을 내리는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새로운 제품 가격을 내릴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마트는 “우린 아무렇게나 찍어 가격인하 제품을 정한 게 아니다”라면서 “협력회사와 장기간 논의한 끝에 결정했는데, 경쟁업체들이 같은 품목으로 쫓아오니 어이가 없다”고 했다.



    1월의 유통대전

    대형마트 업계의 가격전쟁은 날이 갈수록 격심해졌다. 돼지 삼겹살이 대표적이다. 마트별로 100g당 1500~1800원대이던 삼겹살 가격은 일부 점포에서는 100g당 590원(이마트 영등포점 기준)까지 떨어졌다. 이 삼겹살 판매가는 국내 육가공 회사들이 이마트에 납품하는 가격(100g당 1100원)의 절반 수준이었다. 적어도 삼겹살만큼은 밑지고 파는 게 확실했다. 대형마트들은 “갈 데까지 가보자”며 정육 바이어들을 전국 방방곡곡에 보내 힘겹게 삼겹살 물량을 확보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싼 가격의 삼겹살을 찾는 소비자가 몰려 대형마트 정육 코너에선 으레 삼겹살 품절 사태가 빚어졌다. 느닷없는 삼겹살 열풍이었다.

    삼겹살뿐이 아니었다. 국내 즉석밥 시장에서 7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식품업계 1위 CJ가 이마트와 손잡고 1차 가격인하 품목인 ‘CJ햇반 3+1’(210g 3개 들이에 추가로 1개를 껴주는 제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CJ는 1월19일부터 이 제품의 납품을 중단했다. 이마트 측은 “당초 6개월 가격인하를 계획했는데 차질이 생겼다”고 말했다. CJ 측은 “비정상적으로 가격을 낮춰 제품을 계속 공급하는 건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다”고 맞섰다.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이마트와 CJ는 급히 “협상을 계속하겠다”고 밝혀 국내 대형마트 1위와 식품업계 1위의 ‘결별’을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 CJ햇반의 가격인하 제품은 이날 이후 대형마트 진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 이마트의 다른 가격인하 품목을 생산하는 다른 제조업체들도 난색을 표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마트가 대량 구매를 약속하긴 했지만 무조건 가격을 낮추고보니 소비자가 품질을 의심해 곤혹스럽다는 주장이었다.

    광기에 가깝게 치닫던 대형마트 가격 전쟁에서 가장 먼저 한발 물러선 것은 홈플러스였다. 홈플러스는 1월24일 “대형마트 업계의 가격 경쟁 이전 가격으로 ‘환원’한다”고 발표했다. 일부에선 홈플러스가 가격 경쟁을 ‘포기’했다고 말했지만, 홈플러스 측은 “포기가 아닌, 소비자를 위한 가격 환원”이라고 강조했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은 “대형마트 간 가격인하 경쟁이 공정거래와 유통질서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다”며 “특히 신선식품의 경우 지나친 가격 경쟁은 소비자가 원할 때 살 수 없는 물량 확보 문제와 품질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1월7일 12개 제품, 15일 10개 제품 등 두 차례에 걸친 가격인하 조치 이후엔 추가 가격인하 제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1차 가격인하 때 12개 제품 중 5개(41.6%)였던 신선식품은 2차 때는 10개 중 2개(20%)로 그 비중이 낮아졌다. 업계에선 “가공식품과 달리 신선식품은 물량 공급에 애를 먹어 가격을 낮추기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설 이후 3차 가격인하 제품을 발표할 이마트는 여러 제조업체와 물밑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이마트로부터 가격인하 제안을 받은 회사들은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엄연히 정상가격 제품을 팔고 있는 입장에서 가격을 내린 제품을 상시로 내놓는 건 ‘제 살 깎아먹기’란 얘기다.

    이마트는 가격인하 한 달째인 2월7일 “이마트가 다른 대형마트와 가격인하 경쟁을 해온 22개 품목의 가격을 처음 인하가격으로 환원한다”고 발표했다. 대형마트 간 경쟁으로 이들 품목의 가격은 계속 떨어져왔다. 동일 상권 내 경쟁으로 같은 날 세 번에 걸쳐 가격이 떨어진 적도 있다. 이마트는 “이번 가격 환원은 업체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항상 싸게 판다’는 대형마트의 원칙과 소비자에게 충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날 이마트는 가격인하를 선언한 1월7일~2월6일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 늘었다고 밝혔다.

    이마트가 가격전쟁을 주도한 이유

    이마트는 1월7일 가격인하를 단행하면서 ‘박리다매’(薄利多賣)라는 대형마트 업계의 본질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이마트 측의 발표는 일종의 자기반성을 담고 있었다. ‘그동안 1,2주일 정도 단기간에만 싸게 팔던 기존의 영업 관행은 유통회사들이 고정된 이익률을 확보한 상태에서 수익을 더 많이 내기 위해 일시적으로 가격을 내리는 대형마트 중심 영업방식이었다. 그러나 대형마트 업계 전체가 업체 간 경쟁에만 치우치다보니 온라인몰 등의 업태 간 경쟁에서도 뒤처지는 건 물론 고객가치 훼손으로 이어져 자체 경쟁력을 스스로 악화시켰다.’

    이마트는 지난해 미국의 유통 컨설팅 업체인 ‘맥밀란’사(社)로부터 경영 컨설팅을 받았다. 1993년 이마트가 서울 도봉구 창동점을 시작으로 국내 대형마트 시대를 연 뒤 업계는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로 승승장구해왔다. 2006년 월마트와 까르푸 등 국내에 진출했던 외국계 유통업체를 떠나보낼 때까지만 해도…. 그러나 지난해 이마트의 매출은 전년 대비 4.5% 신장하는 데 그치는 등 국내 대형마트 업계는 ‘성장의 위기’에 빠졌다. 신세계유통산업연구소와 롯데백화점 유통전략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대형마트 업계의 신장률은 4%대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14%대 신장률이 점쳐지는 온라인몰과 대비되는 양상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올해 신년사는 이 같은 이마트의 고민과 향후 전략을 담고 있었다. 신년사에 나타난 2010년 신세계의 경영방침은 크게 세 가지다. △상시 저가 정책으로 이마트의 경쟁력 강화 △백화점 부문의 성장 가속화 △온라인사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 등이다. 특히 정 부회장은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몰 시장에서 반드시 업계 1위를 하겠다”고 밝혔다. 신세계가 구축한 상품력과 140개가 넘는 점포망을 충분히 활용해 배송 시스템을 정비하고 서비스 체제를 재구축해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수립,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이마트가 참고로 삼는 모델은 미국 대형 슈퍼 체인인 ‘크로거’(Kroger)다. 크로거는 지난 5년 동안 ‘right store, right price’란 구호로 가격 마진을 계속 낮춰 미국 대형마트 1위인 월마트와 경쟁 구도를 갖추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세계는 이마트를 통해 신 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의지로 지난해 장중호 신세계유통산업연구소장을 이마트 마케팅 담당 상무로 발령했다.

    현재 이마트의 가격인하 정책을 주도하는 장 상무는 “그동안 다양한 제조회사의 컨설팅을 맡았던 개인적 경험에 비춰볼 때 국내 제조회사들은 아직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며 “그동안 유통회사와의 암묵적 합의하에 제조회사들이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격적 주류’가 되자고 외치는 크로거의 전략을 이마트가 고스란히 따르고 있는 셈이다.

    온·오프라인 연계를 통한 시장 확대를 꿈꾸는 이마트는 올 들어 가격인하 전쟁을 촉발한 후 신문광고 하단에 ‘이마트의 가격인하 제품은 이마트몰에서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란 문구를 넣었다. 일단 상시 저가 정책으로 오프라인 매장에 손님을 끌어들인 후 다시 온라인몰로 끌어보자는 심산이다. 이마트는 올 들어 시작한 가격인하 정책으로 1월7일~2월6일 고객 수가 지난해 대비 4.1% 늘었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이마트의 경쟁력이 점차 확대되리란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박진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소매 경기가 개선 추이에 있는데다 이마트의 가격인하 정책도 예상보다 큰 고객 유입효과를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세계그룹은 현재 운영하고 있는 두 개의 온라인몰인 신세계몰과 이마트몰을 올 5월 대대적으로 정비해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이마트는 미국 대형마트 1위인 월마트의 공격적인 온라인몰 강화도 관심 깊게 보고 있다. 월마트는 창립 45주년이던 2007년 경영 위기에 직면해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로부터 ‘중년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가슴 아픈 말까지 들어야 했다. 과거 성공을 일궈낸 ‘저가 전략’에 집착해 소비자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탓이었다. 월마트는 그해 하반기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소비자들이 값싼 물건을 찾아 대형마트로 몰릴 것’으로 예측하고 스타일 있는 상품 구색을 늘려 재기에 성공했다. 지난해 9월엔 월마트의 온라인몰인 ‘월마트닷컴’을 열고 가정용품과 의류 등 100만 가지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자체 의류 브랜드 ‘메트로 7’과 디자이너 ‘노마 카말리 라인’ 등 패션 부문도 빠른 속도로 강화 중이다. 이마트도 최근 자체 의류 브랜드인 ‘데이즈’의 디자인과 생산 등을 신세계 패션 계열사인 신세계인터내셔널에 넘겨 올가을부터 확 달라진 ‘이마트 표’ 옷을 선보일 예정이다.

    ‘유통공룡’ 롯데의 야심

    이마트의 전략은 다음과 같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연초부터 가격인하 정책으로 소비자의 관심을 끈 후 이마트몰로 유인한다. 기존에 제품력이 강한 신선식품 이외에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상품 구색을 갖추어 소비자가 온라인몰에서도 이마트를 찾게 한다!

    이마트의 가격인하에 대한 롯데마트의 공격적 맞대응은 최근 롯데그룹의 공격적 경영 행보와 관련 있다. 롯데그룹은 1월 편의점 사업 부문인 ‘세븐 일레븐’을 통해 ‘바이더웨이’를 인수(2740억원)한 데 이어 2월9일엔 GS리테일이 매물로 내놓은 GS스퀘어 백화점과 GS마트도 1조3400억원을 들여 손에 넣었다. 롯데는 “국내 시장에서 바잉 파워를 높이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운영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GS마트 인수로 롯데마트는 총 점포 수 84개(롯데 70개+GS마트 14개)가 됐으며 매출은 2009년 기준으로 5조2950억원(롯데 4조5000억원+GS마트 7950억원)이 됐다. 롯데마트는 올해 국내 신규점포를 10개 이상 열어 연말까지 100개가량의 점포망을 구축해 1, 2위 업체인 이마트(점포수 127개)와 홈플러스(115개)를 바짝 쫓겠다는 전략이다.

    백화점업계에선 부동의 1위지만, 대형마트업계에선 3위인 롯데가 대형마트업계에서의 입지를 공격적으로 넓히는 것이다. 롯데그룹은 백화점, 대형마트, 슈퍼, 편의점, 온라인몰, 홈쇼핑, 아울렛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확보한 상태에서 계열사인 롯데제과와 롯데칠성, 롯데주류 등의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힘을 한층 더 키우게 됐다. 롯데는 최근 한국야쿠르트가 생산해 롯데마트에 납품하는 자체 브랜드 라면인 ‘롯데라면’을 롯데마트뿐 아니라 롯데백화점 등 롯데 전 유통망에 판매해 ‘유통 공룡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마트가 연초부터 촉발시킨 대형마트 가격전쟁에서 롯데가 일부의 “쩨쩨하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즉각 ‘10원 전쟁’에 나선 건 대형마트 업계에서도 승부를 걸겠다는 야심이 있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마트가 2월7일 최초 가격인하 때 가격으로 환원을 선언하자 롯데마트 측은 “‘10원 싸게’ 원칙은 변함없이 지속된다”고 밝혔다.

    이마트 가격 내린 제품은 7만개 중 22개

    사실 대형마트 간 가격 경쟁은 소비자에게 10원이라도 싼 가격으로 제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반길 일이다. 단 유통회사와 제조회사가 비슷한 수준의 힘을 가졌을 때란 전제가 붙을 때다. 일방적으로 한 쪽의 힘이 클 때 다른 한 쪽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정작 존중돼야 할 소비자 권익이 훼손될 수도 있다. 싼 삼겹살을 좋아라하고 사왔다가 비계가 가득 낀 불량 품질에 소비자 마음이 상한다면 이마트든 롯데마트든 각 회사가 꿈꾸는 장밋빛 미래는 한순간 사라질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지속 성장이 가능했던 기업들은 소비자의 굳건한 신뢰를 구축한 덕에 실패했다가도 다시 일어섰다. 이마트는 올 초 “연말까지 모든 제품의 가격을 내리겠다”고 했다. 가격을 내린 제품은 전체 7만개 중 아직까지 22개다. 갈 길이 멀고 바빠 보이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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