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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외환딜러가 본 북한 화폐개혁의 속뜻

“박정희 모델 답습한 개혁·개방 준비작업…실패라 할 수 없다”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nga.com |

탈북 외환딜러가 본 북한 화폐개혁의 속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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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화폐개혁’과 비교하면

탈북 외환딜러가 본 북한 화폐개혁의 속뜻

평양 락랑구역에 있는 통일거리시장의 내부.

▼ 화폐개혁의 기본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화교들을 비롯해 몇몇 돈주에게 돈이 급속도로 집중돼 유통이 안 되는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다. 국가에 100원이 필요한데 들어오는 돈은 70원밖에 없다고 치자. 필요한 30원은 찍어내야 100원을 맞출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런 조치 없이 그냥 찍어내면 유통량이 지나치게 많아진다. 돈주들의 집에 잠들어 있는 돈을 아예 못쓰게 만들어 없애버린 다음에 그 한도 안에서 필요한 돈을 찍어내기 위한 사전조치가 바로 화폐개혁이다. 시중에 나가 있는 돈 가운데 상당부분을 아예 사라지도록 만들고, 그만큼을 국가가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여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1960년대에 박정희 정부가 화폐개혁을 한 이유가 무엇이었나. 재벌기업의 금고 속에서 잠자고 있는 돈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겠다는 게 당시 화폐개혁의 목적 아니었나. 원리는 똑같다. 돈을 쌓아놓기만 하는 화교와 무역상, 귀국자, 장사치 등 돈주들의 현찰을 중앙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돈으로 바꾸겠다는 취지다.”

▼ 그런 돈이 어느 정도 규모였을지 가늠할 수 있을까.



“최소한 총유통량의 10%, 많게는 30% 가까이도 될 수 있다. 돈이 얼마나 풀려있는지 확인할 수 없으면 경제개혁을 할 수 없다. 이 정보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어야 어떤 정책을 어떤 시점에 펼쳐야 할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경제개혁의 첫 번째 출발점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결심했다고 봐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외화정책도 마찬가지로 보면 된다. 북한은 외화를 관리하는 방식이 남한과 다르다. 달러가 들어오면 돈이 있다고 계정을 잡아놓은 뒤 환율을 계산해 그만큼 원화를 찍어낸다. 은행에 쌓아놓은 달러는 국가에서 무역하는 데 쓰고, 그만큼의 돈을 새로 만들어 월급을 주는 등 예산으로 쓴다. 마치 원화가 들어온 것처럼 가정하고 쓰는 것이다. 혹은 굳이 돈을 찍어내는 대신 무현금행표(남한의 자기앞수표에 해당)를 발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오래 누적되면 시중의 통화량은 꾸준히 늘어난다. 예금에 근거해 무현금행표를 발행한다면 이런 문제가 벌어질 리 없지만, 인민들은 예금을 불신해 집에 현찰을 모아놓는다.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통화량이 늘어나니까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번에 시중에서 달러를 직접 쓰지 못하게 했다. 무조건 환전해서 쓰라는 것이다. 이 역시 통화량을 컨트롤하겠다는 의도다. 모든 상점에서 달러를 그대로 받는 상황에서 개방을 하면 국가가 그걸 감당할 수가 없다. 개인들이 마구 쓰던 것을 정상적인 외화유통체계로 바꾸자는 것이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

▼ 북한 당국이 시장을 폐쇄했다가 후유증이 심각해 다시 열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애초부터 시장을 완전히 폐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폐쇄라기보다는 화폐개혁 때문에 타격을 입은 돈주들이 장사를 하러 나오지 않아 폐쇄된 것처럼 보인 것뿐이다. 또 당국이 30~40대는 시장에서 장사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북한 경제에서 장사는 원칙적으로 일자리가 없는 나이든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개념에 가까웠다. 그러나 직장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장사가 더 이익이 많으니까 많은 사람이 근무시간에 시장에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옛날 돈을 묶어버리면 새 돈이 나오는 직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런 효과가 하루아침에 100% 나타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약을 먹는다고 바로 감기증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감기가 나아가는 것은 맞다. 분명 통화경제의 건전성은 나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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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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